
직업은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므로 하나의 아이덴티티에 얽매인다는 것은 하나의 직업에 얽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과 사회의 두 가지 상황을 종합해보면 아이덴티티에 집착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일본의 기업인이자 작가인 호리에 다카후미도 저서 <다동력>에서 꾸준히 노력하는 시대는 끝났으니 싫증 나면 바로 그만두라고 조언한다. 이 말 또한 파라노이아보다 스키조프레니아가, 그리고 트리보다 리좀이 중요하다는 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일관성 있는', '흔들리지 않는', '외길 십 년'과 같은 말을 무조건 칭찬하고 보는 어수룩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그런 가치관에 사로 잡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편집증적으로 고집하는 것은 이 사회에서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p.240>
우리는 직업과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하는지를 생각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말이 대개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일이란 실제로 해 보지 않으면 재미있는지, 그리고 잘하는지 결코 알 수 없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며 망설이다가는 우연찮게 찾아온 기회마저 놓치고 말 우려가 있다.
<p.241>
사람들은 으레 착각하곤 하는데, 도망치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용기가 있기에 도망칠 수 있는 것이다.
<p.242>
시기심을 품는 것은 자신과 같거나, 같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내가 말하는 같은 사람이란 집안이나 혈연관계, 연배, 인격, 세상의 평가, 재산 등의 면에서 같은 사람들을 뜻한다. (...) 또한 사람들이 누구에게 시기심을 품는지도 확실하다. 왜냐하면 다른 문제와 함께 이미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은 시대와 장소, 연배, 세상의 평가 등 여러 면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질투를 느낀다.
- <수사학> 아리스토텔레스
<p.246>
우리의 배움은 알았다고 생각한 순간에 정체되고 만다. 과연 스스로 설렐 만큼, 앎으로써 자신이 달라졌다고 생각할 정도로 알게 되었는가? 우리는 안다고 내세우는 일에 조금 더 겸허해져도 좋을 것이다.
<p.268>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 앨런 케이
<p.324>
이 책의 작가인 야마구치 슈는 철학을 전공했다. 그는 경영학 학위, MBA도 없이 세계 1위 경영, 인사 컨설팅 기업 콘페리헤이그룹의 임원 자리에 올랐다. 회사를 경영하는 데에는 경영학적 지식에 기반한 의사 결정만큼이나 철학적 사고방식에 기반한 의사 결정이 중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많은 경영학 이론과 자료, 통계, 수치보다 본질을 꿰뚫는 철학적 의문 하나가 당면한 현실을 더 올바로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겪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어떻게 철학에서 찾을 수 있는지 알려주고 있다. 우리가 겪는 문제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 같아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지난 수백 년간 철학자들이 고민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의 삶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살아가는 방식과 환경이 변하긴 했어도 늘 같은 문제로 고민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떠한 학문이든 그 경지에 오르면 결국 철학이 기다리고 있다'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인간은 지금까지 학문적 분야에서 많은 지식을 축적했고, 또 계속해서 쌓아가고 있지만, 결국 그 지식은 모두 철학적 문제의 해답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뜻이라고 추측해본다. 시간이 곧 돈이자 효율이 최고의 가치인 세상에서 가만히 앉아 사색을 하거나 사람들과 철학적 물음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시간을 매우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주위 사람들의 생각뿐만 아니라 나부터도 그렇게 생각하게끔 변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시간을 갖고 싶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그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언젠가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사라지고 다시 예전과 같은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면 꼭 그런 모임에 나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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