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식의 전파와 의사소통이라는 부문에서도 마찬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사건의 얽히고설킨 배경과 이면을 이해하는 데 에너지를 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짧고 명쾌한 설명과 즉각적인 즐거움을 원한다. 책 한 권은 고사하고 다소 긴 탐사보도 기사조차 읽기 버거워한다. 그래서 카드 뉴스와 인공지능의 기사 요약 서비스가 나왔다. 그마저도 동영상으로 넘어가는 추세다. 이제 곧 5분짜리, 아니 50초짜리 핵심 요약 동영상들이 글자를 대체할 것이다. 가만히 놔두면.
그런 '스낵 정보'들은 여러 사연을 생략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단순화한다. 스낵 정보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횡행하고 음모론과 반지성주의가 퍼지기도 쉽다. 어떤 정보가 궤변인지 아닌지, 그 정보를 어느 정도 중요성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판단하려면 머릿속에 지식의 구조와 맥락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제대로 된 지식의 구조는 스낵 정보들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p.13>
사람이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매우 다양하며, 행복한 삶의 비결은 그 다양한 즐거움을 골고루 누리는 데 있다. 균형 잡힌 식사와 같다. 사람은 우선 여러 가지 신체적 기쁨을 꾸준히 얻어야 하고, 동시에 친밀하고 건강한 대인관계에서 나오는 정서적 안정감도 누려야 한다. 목표를 이루며 성취감을 얻고, 일을 하며 집단에서 인정받고 자신의 쓸모를 확인해야 한다. 때로는 군중집회나 종교 행사에서 자아를 잊고 보다 거대한 무리 속으로 녹아들어가기도 해야 하며, 아름답고 감동적인 서사나 풍경을 접하고 감정이 고양되는 경험도 종종 필요하다.
<p.32>
창작의 욕망을 억지로 누르면 어떻게 될까. 나는 현대사회에 만연한 공허감이 바로 그 결과라고 생각한다. 요즘 한국 사회는 어느 연령대, 어느 세대를 봐도 '내가 여기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고 객관적인 조건이 나쁘지 않은데도 공허함을 토로하는 젊은이도 있고, 중년에 이르러 허무함을 못 견디겠다며 뒤늦게 일탈하는 이도 있다. 그런 정체성 위기는 자기 인생의 의미, 자신이 만들어내는 일의 가치를 확신하지 못할 때 온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지금 내가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감각이 필요하다. (...)
훨씬 더 빠르고 직접적인 해답이 있다. 창작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만들자. 공들여서 하자. 빨리 시작하자. 당신은 본능을 채우지 못해 굶주려 있는 상태다. 다 좋지만 그중에서도 책 쓰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는 당장 착수하라고 권하고 싶다. 특별히 뭐 준비할 게 있나? 캔버스? 물감? 악기? 연주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된다.
<p.40>
두발자전거를 타는 데 필요한 건 물리학이나 기계공학 지식이 아니다. 그보다 필요한 것은 넘어지는 경험이다. 막상 넘어져보면 기껏 살갗이 조금 까지는 정도인데 넘어지기 전에는 그게 무척 두렵다. 어떤 이들은 '이 나이가 되도록 자전거를 못 타다니'라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자전거를 배우지 못한다. 뒤에서 붙잡아달라는 요청을 할 만한 친지가 없고, 우스꽝스럽게 넘어지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도 싫은 것이다. 아쉽고 안타깝다.
이 바닥이 이토록 연구가 덜됐고, 그저 쓰고 고치고 비틀거리면서 스스로 깨치는 방법밖에 없다는 사실은 어쩌면 축복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누구라도 소용없고, 비싼 사교육도 통하지 않고, 고가의 시설이나 장비를 이용한다고 유리한 것도 아니다. 모든 초심자에게 이토록 공평하게 막막한 분야가 세상에 얼마나 남았단 말인가.
<p.81>
시장조사를 벌이는 것보다 훨씬 더 간단하게 이 질문의 답을 얻는 길이 있다. 바로 '세상에서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것이 좋은 에세이의 전부는 아니지만, 출발점을 제대로 잡으면 좋은 에세이를 쓸 가능성이 확 높아진다.
나는 에세이는 저자의 매력이 핵심이 되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좋은 여행 에세이를 쓰려면 여행지 정보가 아니라 여행을 하는 작가의 생각과 느낌을 잘 서술해야 한다. 좋은 서평 에세이, 좋은 영화 에세이 역시 마찬가지다. 서평이나 영화평을 쓸 때에도 '육아하는 젊은 아빠가 본 영화들'이라는 식으로 자신의 관점을 넣고 여러 글에 통일된 테마를 부여할 방법을 찾아보자.
<p.98>
자신을 학대한 가족에 대한 원망을 꾹꾹 눌러 담은 문장이 느닷없이 '그러나 지금은 상대를 용서했다, 그곳 하늘에서는 편하신가요'라는 결말로 끝난다면 읽는 이가 누구라도 나처럼 머리를 긁적이게 될 것이다. 글쓴이는 분명히 상대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음속에서 '에세이는 교훈적으로, 감동적으로, 착하게 끝나야 한다'는 부조리한 검열 기제가 작동하는 듯했다.
에세이에 결론이 있으면 좋다. 그런데 결론이 없어도 좋다. 상대를 원망하는 에세이도 나쁘지 않다. '지금도 당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고통스럽고 혼란스럽다'라고 글을 마쳐도 된다. 그게 정직한 심정이라면 그렇게 마쳐야 한다. 감동을 받고 교훈을 얻은 일화가 있다면 그에 대해 쓰라. 그러나 갑남을녀 대부분은 그보다는 일상에서 고통과 혼란을 느낀 적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통과 혼란에 대해 쓰라. 괜찮다.
오히려 그런 고통과 혼란의 묘사에서 진솔한 에세이만이 줄 수 있는 뜻밖의 감동이 나올 수 있다. 글의 힘은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정직하게 잘 쓴 글은, 거기서 묘사하고 있는 사건뿐 아니라 그 글을 쓸 때 작가의 자세도 독자에게 보여준다. 내면의 고통과 혼란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한 인간의 모습은 늘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어떤 미사여구도 거기에는 못 미친다.
그리고 다시 한번, 글의 힘은 참으로 오묘하다. 정확한 언어로 자기 안의 고통과 혼란을 붙잡으려 할 때, 쓰는 이는 변신한다. 그런 글을 쓰면 쓸수록 그는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간다. 에세이 작가는 단어와 자기 마음을 함께 빚는다. 한번 그 맛을 알면 점점 더 솔직하게 쓰게 된다. 에세이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장르다.
<p.111>
학생들에게 나는 "인물의 욕망과 두려움이 느껴지게 써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약자라고 해서 욕망이 없는 게 아니고, 강자라고 두려움이 없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사회 경험이 풍부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정치적 올바름을 지나치게 의식해서였을까. 적지 않은 학생들이 사회적 약자를 자기 글에 등장시키면서 그들을 욕망 없이 고통과 두려움만 느끼는 존재로 묘사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요즘 표현으로 말하자면 약자의 약자성만 강조하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설명하면 예외 없이 그날이나 다음 날 몇몇 학생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약자에게 욕망이 있다는 말씀이 불편했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그 학생들의 선량한 마음을 존중한다. 그러나 욕망은 악이 아니며, 모든 인간은 욕망이 있다. 그것은 두려움과 마찬가지로 인간 존재의 핵심이다. 약자에게 욕망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은, 약자에게는 약자성만 있어야 한다고 믿는 작가는, 약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p.159>
염치가 없어야 한다. 신문기자와 소설가로 일하면서 취재원에게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이자 가장 중요한 질문을 딱 하나 꼽아본다면 이거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인터뷰이의 말을 멈추고 '그게 무슨 뜻이냐'라고 되묻는 게 의외로 쉽지 않다. 상대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설명하는 내용을 못 알아들었다는 사실이 창피하고, 상대를 의심하고 따지는 것처럼 비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간신히 한번 "그게 무슨 뜻인가요?"라고 물어서 인터뷰이가 친절한 표정으로 길게 설명을 해줬는데도 여전히 못 알아듣겠는 상황일 때는 정말 난감하다. 정말 철면피가 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아, 그렇군요"라고 고개 몇 번 끄덕거리고 알아듣는 척하면서 넘어가게 된다.
이런 태도를 버리는 데 몇 년 걸렸다. 그사이 취재해 온 내용으로 기사를 쓰려다가 비로소 그 사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깨달은 적이 백 번도 넘었을 거다. 선배한테 혼나고, 데스크한테 깨지고, 다시 취재원에게 전화를 걸고, 같은 내용으로 또 혼나고 깨지고, 또 전화를 걸고, 마감 시간에 부랴부랴 다른 전문가를 찾아 재차 확인하는 경험을 수십 번 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낸 다음에야 겨우 체면 따지지 않고 궁금하면 바로 물어보는 습관을 몸에 익히게 됐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현장에서 알아들었다고 여긴 이야기 중에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내용이 많다. '당연히 이런 뜻이겠거니'라고 믿은 정보 중에서도 오해한 내용이 많다. '아마 이런 뜻이겠지'라고 추측한 사항은 반절이나 맞으면 다행이다. 그러니까 이해했다고 믿은 이야기라도 "이거 맞죠?"라고 확인을 해봐야 한다.
많은 경우에 "그게 뭡니까? 왜 그렇습니까?"와 같은 쉽고 뻔한 질문들이 가장 훌륭한 질문이다. "그러니까 이런 뜻이란 말씀이죠? 이건 아니라는 얘기죠?" 이런 질문도 좋은 질문이다. 그런 질문들을 던지려면 염치가 없어져야 한다.
<p.194>
워드프로세서의 그런 기술적 특성과 그로 인해 생기는 작업 방식은 내가 소설을 대하는 태도나 추구하는 이야기에 잘 들어맞는다. 나는 바지 뒷주머니에 들어가는 수첩과 조금 더 큰 공책도 종종 활용하지만, 그보다는 워드프로세싱을 더 선호한다. 여행을 갈 때에도 가능하면 스마트폰에 연결할 수 있는 블루투스 무선 키보드를 가져가려 한다. 도서관에서 글을 써야 할 때를 위해 실리콘 재질의 USB 키보드도 마련했다. 둘둘 말아서 가지고 다닐 수 있고, 자판을 두드려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있건 없건, 몸 상태가 어떻건 간에 매일 꾸준하게, 직업인처럼 쓰려고 한다. 소설을 쓰는 시간과 청소를 하는 시간 등을 합쳐서 '근무 시간'을 정해놨는데, 그 시간을 매일 스톱워치로 재서 엑셀 파일에 기록한다. 1년에 220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이 목표다. 지난해에도, 재작년에도 모두 그 목표를 달성했고, 올해도 차질은 없을 것 같다.
왜 2200시간이냐 하면, 한국 근로자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이 2100시간 남짓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출퇴근 시간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1년에 최소한 2200시간 정도는 일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내 책을 사주는 독자에 대한 내 나름의 예의이기도 하고, 그런 숫자를 정해놓지 않으면 마냥 게을러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해야 '생활인으로서의 감각'을 그나마 놓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인터뷰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화제가 되었고, 이후에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기자들이 '2200시간'에 대해 묻는다. 나는 솔직히 다른 사람들이 놀란다는 사실에 놀랐다. "1년에 2200시간씩 글을 쓰는 건 상당히 힘든 일 아니냐"고 묻는 기자들에게는 이렇게 반문한다. "기자님이 일하는 시간도 1년에 3000시간 넘지 않나요?" 그러면 그제야 인터뷰어가 자신이 일하는 시간을 따져본다. 그리고 2200시간이라는 시간이 그리 많은 양이 아님을 깨닫는다. 나는 기자 시절에 일주일에 평균 70~80시간씩 일했다. 연간으로 치면 3500시간 이상이다. 1년에 2200시간은 휴가나 다름없다. 하루 평균 6시간씩 글을 쓰거나 청소를 하고, 12월 31일에도 다른 날보다 10분 더 일하면 된다. 재택근무에, 상사도 없고, 일정 조정도 자유롭다. 내키면 아무 때나 낮잠을 자거나 휴가를 낼 수도 있다.
그 시간 내내 맹렬하게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사실 '근무시간' 동안 내가 주로 하는 일은 그냥 멍하니 노트북 화면을 쳐다보거나, 창밖에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거나, 방 안을 돌아다니며 머리카락을 줍거나 하는 일이다. 실제로 키보드에 손가락을 대고 한 글자라도 끼적이는 순간은 근무시간 전체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도 받는데, 나도 영감의 존재를 믿기는 한다. 그런데 영감을 불러일으키려면 먼저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고 본다.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뇌에 일정 시간 이상 압박을 줘야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목욕을 할 때 비로소 뒤늦게 답을 얻게 되는 것이다.
<p.270>
그는 지금 런던 패딩턴 역 근처의 맥주집에 앉아 있다. 오랜 걸음으로 갈증이 났던 그는 들어오자마자 바텐더에게 기네스 한 잔을 주문했다. "Can I have a glass of Guinness?" 바텐더가 잔에 맥주를 따르는 동안 미리 동전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가격을 물었다. "How much is it?", "It's five-fourty." 동전을 꺼내려던 그는 예상외의 가격에 그냥 카드로 결제하기로 했다. 2파운드짜리 동전이 두 개 정도밖에 없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네스 한 잔을 받아 든 그는 되도록 바에서 멀리 떨어진, 아무도 앉아 있지 않는 창가 쪽의 테이블 하나에 자리를 잡는다. 창문 밖으로는 부지런히 지하철역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인다. 스마트폰 배터리 충전이 필요했기 때문에 노트북을 꺼냈다. 하루 종일 충전기를 들고 다녔지만 어댑터가 없어 영국의 110V 콘센트에는 무용지물이었다. 다행히 노트북의 USB 케이블을 통해 충전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여행 도중 틈틈이 노트북에 연결해 충전을 했다. 이를테면 노트북이 보조배터리 같은 것이 된 것이다.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무게가 무척 무겁다는 점이다.
그가 오늘 시차 때문에 영국의 이른 새벽 시간에 일어났을 때만 해도 자신이 오늘 런던 시내에 나가게 될지 확신하지 못한 상태였다. 평소 혼자 여행하는 걸 그다지 즐기지 않는 그는 해외에 가더라도 주로 호텔에 있거나 호텔 근처를 도는 정도의 산책만 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오늘 아침 6시경에 갑자기 시내에 나가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우연한 기회에 접속한 페이스북 때문이었다. (혹은 아침 6시부터 창밖으로 보이는 맑은 날씨와 환한 바깥의 풍경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접속한 게 언제인지 모를 페이스북을 접속하기 위해 핸드폰으로 보안코드를 입력하는 번거로움까지 감수한 그는 자신의 지난 과거를 다시금 들여다보았다. 그 속에는 그가 군에서 전역한 이후부터 회사에 입사하기까지의 삶의 모습과 그의 지인들의 댓글, 메시지가 들어있었다.
그는 오래전에 자신이 올린 사진과 글을 들여다보며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었으며 힘든 일이나 기쁜 일에 많은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그들 중 아직까지 연락을 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들의 사소한 댓글에 힘이 나기도, 위로를 받기도, 설레기도 했던 것에 비하면 지금 그의 주변에는 거의 아무도 없는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그를 그들로부터 단절하게 만들었는가. 앞으로 다시 그들과 연락할 일은 없을 거라는 점에서 그들은 이미 내게는 죽은 것과 다름없다는,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때 그들의 댓글은 그들이 내게 남긴 마지막 유언이 된 셈이다.
그 순간 그는 런던 시내에 나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재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미처 충전이 다 되지 않은 핸드폰을 충전기에서 분리했다. 노트북과 책을 챙기고 호텔방을 나섰다. 당장 어느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 하는지도 잘 몰랐지만 가다 보면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도망치듯 밖으로 나섰다. 그렇지 않으면 또 예전처럼 미적거리다 침대에 눕게 될 것만 같았다. 런던의 아침 날씨는 맑고 선선했다. 반팔 옷을 입은 팔 위로 스치는 바람에 기분이 좋아졌다. 마스크를 벗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시내로 나가는 길은 예상했던 것보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시내에 나가는 길을 잘 찾을 수 있을까 싶었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었다. 늘 그렇듯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가 걱정하는 일에 비하면 별 일 아닌 경우가 많다.
그는 런던의 타워브릿지가 보고 싶었다. 여행의 1차 목표를 타워브릿지로 정했다. 타워브릿지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지하철역을 검색했다. 공항에서 익스프레스 열차를 타고 패딩턴 역에 내리고서도 30분가량 지하철을 타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정확하게 갈 수만 있다면 시간은 문제 되지 않았다. 하루라는 긴 시간 중에 아직 아침 7시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여느 날이었다면 아직도 침대에 누워 있을 시간이었다. 런던 지하철 Circle 노선을 따라 Tower Hill 역에 내렸다. 내리자마자 타워브릿지가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이정표를 따라 조금 걷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하늘색의 타워 브릿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던 전체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나는 가다 보니 타워브릿지 위로 올라간 것이다. 숲 속에서는 숲을 볼 수 없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결국 타워브릿지를 통해 런던의 중심을 흐르는 템즈강을 건너고 나서야 타워브릿지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하늘색 현수교의 모습은 무척 멋졌다.
타워브릿지를 보고 나서는 템즈 강변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평소에도 걷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지금의 날씨가 걷기에 딱 좋은 날씨라고 생각했다. 타워 브릿지를 뒤로 하고 서쪽으로 걷다 보니 타워 브릿지에 비하면 무척이나 초라한 모습의 런던 브릿지가 나왔다.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을 흥얼거리며 계속해서 걸었다. 강변에 위치한 버로우 마켓과 TATE 미술관을 구경했다. 생각보다 볼 게 없었던 미술관을 뒤로하고 나왔을 때 그는 일렬로 늘어선 공유 자전거를 발견했다. 단돈 2파운드에 24시간 동안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설명을 읽고 그는 자전거를 빌렸다. 자전거를 빌리고는 다시 다리를 건너 템즈강 북변을 따라 자전거를 탔다. 차도와 인도 사이에 있는 자전거 도로는 여행 중간에 멈춰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없고 차들과도 분리되어 있어 혼자서 자유롭게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왼쪽으로는 템즈 강과 런던 아이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빅벤을 보며 자전거를 타는 기분은 정말 좋았다. 자전거를 빌리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자전거를 타고 서쪽으로 계속 달리다 보니 그의 위치는 패딩턴역과 더 가까워졌다. 원래라면 어디서든 다시 지하철을 타고 패딩턴역으로 갈 계획이었지만 그는 이참에 지하철 요금 값도 아낄 겸 자전거를 타고 다시 패딩턴역으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패딩턴역에 도착했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간절했던 그는 눈에 보이는 바에 들어가 기네스를 주문하게 된 것이다.
장강명의 <책 한 번 써봅시다>에 대한 소감으로는 내가 직접 이야기를 써보는 것이 이 책에 대한 최고의 존중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실제로 패딩턴 역 근처의 맥줏집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맥주도 마셨겠다 아무 생각 없이 쓰고 싶은 대로 써보자는 생각으로 오늘의 시내 구경을 적어보았다. 그동안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많아지고 잘 정리되지 않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오래 걸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이렇게 휘뚜루마뚜루 쓰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이제 노트북 배터리가 거의 다 되었다. 생각보다 오래 버텨주었다. 이제 패딩턴역으로 걸어가 다시 호텔로 가는 익스프레스 열차를 타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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