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생활은 빙하에 비유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은 실제 진행되고 있는 일의 10분의 1도 알지 못한다. 겉으로 보이고 들리는 게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p.15>
양육적인 가정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일부러 나쁜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녀 중 누군가가 파괴적인 행동을 보인다면, 어떤 오해가 발생했거나 자존감이 위험스러울 정도로 낮아진 상태라는 걸 이해한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남들에게서도 소중한 사람으로 대접받을 때 비로소 학습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기에 자녀를 다그치거나 궁지로 몰지 않는다. 수치심을 주거나 처벌을 통해 행동을 교정할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한 흉터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안다. (...)
양육적인 가정의 부모는 인생에는 으레 문제가 따른다는 사실을 이해하기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아 나선다. 반면 문제 있는 가정의 부모는 애초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데 헛되이 에너지를 낭비하다가, 정작 문제가 발생하면(당연히 문제는 발생한다) 위기를 해결하는 데 쓸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은 지경이 된다.
<p.31>
기분이 침울한 것과 솥이 비어 있을 때의 감정은 같은 게 아니다. 솥이 비어 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원치 않는 감정을 겪을 때 그런 감정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만이 침울하다는 기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도 침울해질 수 있다. 하지만 기분이 침울하다고 해서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치부하거나 침울한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가하지도 않는다. 가끔 침울한 기분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침울한 상태를 극복해야 할 상태로 인식하는 것과 침울하기 때문에 자아를 경멸하는 지경까지 치닫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은 결국 우리의 태도에 따른 결과다. 태도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p.38>
인간의 학습 능력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유지되므로 너무 늦은 시기란 없다. 나는 이것이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언제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인생은 변화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언제나 희망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p.41>
자존감과 이기심은 같은 게 아니다. 이기심은 우월감의 한 형태로 '내가 너보다 낫다'라는 메시지가 깔려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가치의 표현이다. 자기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길 때 남도 똑같이 가치 있게 여길 수 있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을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하기 쉽다.
<p.43>
어쩌면 부모의 가장 큰 숙제는 성심성의껏 씨앗을 심고 그 씨앗이 어떤 식물로 자라날 것인지 지켜보며 기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식물이어야 한다는 고집이나 선입견을 버리고, 싹을 틔워 자라나는 식물이 그 자체로 고유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p.47>
그렇게 당신에게 못된 성향이 있다고 치자. 이제부터는 그걸 끄집어내 잘 포장하고 이 성향을 당신의 일부로 받아들여라. 그런 면을 아껴주고 다른 감정들과 함께 간직할 자리를 마련해보는 것이다. 다른 성향들에 대해서도 모두 똑같이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해야 한 가지 성향이 나머지 전부를 짓밟지 않을 것이며, 자연스럽게 드러나 당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작용할 것이다. 억지로 성향을 감추거나 억누르려고 해도 마음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언제든 탈출해 날뛸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p.114>
여기서 중요한 건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어떤 감정을 갖든 그것이 인간적이고, 따라서 수용 가능하다는 규칙을 가지고 있다면 자아는 성장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용납된다는 건 아니다. 다만 감정이 환영받을 때, 다양한 행동 경로를 세우고 좀 더 적절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 (...)
많은 사람들은 분노가 인간의 필수적인 정서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분노가 때로 파괴적인 행동을 촉발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분노 자체가 파괴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파괴적인 건 분노가 아니라 분노의 결과로 취해진 행동이다.
<p.126>
부모의 사춘기 시절 행동이 어땠는지에 관한 것도 대단히 큰 비밀이다. 가족 규칙에 따르면 어떤 부모도 그 시기에 엉뚱한 행동을 한 적이 없고 못된 짓을 하고 다니는 건 오직 '너희'뿐이다. 이런 상황은 너무나도 흔히 일어난다. 그래서 나는 부모가 아이의 어떤 행동에 대해 병적인 반응을 보이면, 아이의 그 행동이 부모의 청소년기 시절 비밀을 떠올리게 한 건 아닌지부터 살피곤 한다. 실제로, 아이가 부모와 정확히 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행동을 했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 내가 하는 일은 부모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수치심을 떨쳐내 더는 감출 필요가 없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부모는 아이를 이성적으로 대할 수 있다.
<p.132>
함께 있더라도 그 사이에 공간을 두라.
하늘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출 수 있도록.
서로를 사랑하되 사랑으로 구속하지 말라.
그대들 영혼의 기슭 사이를 바다가 춤추며 흐르도록.
서로의 잔을 채우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에게 자기 빵을 건네되 한쪽의 덩어리만을 먹지 말라.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즐거워하되 각자 홀로 오롯하라.
한 가락 음률을 위해 함께 떨리는 류트의 현들조차도 서로 떨어져 있듯이.
그대들의 마음을 건네되 서로의 마음에 가둬두려 하지 말라.
오로지 생명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마음을 온전히 품을 수 있으니.
함께 서 있되 서로 너무 가까이 있지는 말라.
신전의 기둥들조차 서로 떨어져 서 있으며,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에서는 자라지 못하니까.
- 칼린 지브란
<p.138>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결혼을 하면 어떤 점이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는지 돌이켜보라.
당신의 희망은 무엇이었는가? 여러 해 동안 사람들이 나에게 밝힌 희망 중에서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여자들의 희망은 대체로 세상 모든 사람 중에서 자신만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아껴주며, 함께 대화하는 것이 기쁘게 느껴지고, 늘 같이 있어주고 위안과 만족감을 주며, 어려울 때 자기편을 들어줄 남편을 갖게 된다는 데 있었다.
남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채워줄 수 있는 욕구를 가지고 있고, 자신의 힘과 육체를 좋아해 주며, 자신을 지혜로운 리더로 여겨주고, 요청하면 기꺼이 자신을 도와줄 아내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과 만족스러운 섹스를 원한다고 이야기했다.
<p.140>
이번에는 약간 각도를 틀어, 연애와 결혼의 기본적인 차이점과 그 차이점에 내재되어 있는 몇 가지 문제점을 생각해보자. 연애할 때 두 예비 부부는 계획을 세우고 서로 만난다. 자기 스케줄을 조절해 상대방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양쪽 모두 상대방과 함께하는 걸 가장 앞선 우선순위로 여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상대방이 자신을 아주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느낌이 전달된다.
결혼 후 이 감정은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연애를 할 때는 상대에게 가족, 친구, 업무, 취미 활동, 그 밖의 의무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기가 쉽다. 연애는 실제 인생에 비해 다소 인공적인 상황이다. 결혼 후에는 이런 실생활적인 측면들이 다시 등장하면서 주의력을 빼앗아 간다. 자신이 상대방에게 모든 것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여러 외부인(또는 여러 책임)과 그 사람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면 문제가 시작될 수 있다. 당신이 이제 더는 상대의 인생에서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p.146>
사랑을 갉아먹고 파괴하는 또 다른 요인은 사랑이 동일성을 의미한다는 착각이다. "당신은 항상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당신은 날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이런 관점에서는 어떤 차이점이든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동일성과 차이점에 대해 생각해보자. 나는 두 사람이 처음에 동일성 때문에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더라도 그 호감이 오랫동안 유지되는 건 서로의 차이점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달리 말해 두 사람이 동일성을 찾지 못했다면 절대 만나지 않았을 것이고,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인간적이고 흥미로운 인간관계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p.149>
사람들은 부모가 되면 자신에게 속임수를 쓴다. 급작스럽게 부모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고 여기고, 쓸데없이 진지해져서 모든 가벼움과 즐거움을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더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거나 재미있게 즐기지도 못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정반대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고 그들을 현실로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정생활에서 발생하기 마련인 여러 어려움을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대처할 수 있다.
재미있게 즐기거나 유머 감각을 발휘한다고 해서 유능하거나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진정으로 유능한 사람은 자기 자신도 즐기면서 함께 일하는 상대방까지 즐겁게 해주고, 자신의 일을 즐긴다. 최근 한 학회에 참석했다가 어떤 대기업의 새로운 인재 선발 기준 세 가지를 접했다. 이 회사는 친절하고, 유쾌하며, 능력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이 세 가지는 모든 사람이 높이 평가하는 자질이므로 육아의 목표이자 인생의 목표로 삼아도 좋을 듯하다.
<p.162>
자신의 허점을 웃어넘기고 그걸 농담 삼아 이야기하는 법을 배우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다.
<p.163>
이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다! 중요한 건 좋은 부모가 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자신의 위치를 솔직하게 인정한다면 당신에 대한 자녀의 신뢰가 높아질 것이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완벽함이 아닌 진실함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
사람은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가 어차피 '사람'일 뿐임을 인정하고 나면, 부모라는 역할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어른들이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듯, 아이들 역시 모든 걸 느끼며 자라난다. 아이들은 자신이 느끼는 희망, 두려움, 실수, 불완전함, 성공의 세계를 부모도 잘 알고 그 심정에 공감한다는 사실을 알 때 더욱 안정적으로 성장한다. 때때로 무력감, 두려움, 실망감을 느끼거나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성인이 어디 있는가.
<p.179>
가족들은 각자의 꿈을 지킬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고 지지해줄 수 있다. 단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네 꿈을 말해봐. 나도 내 꿈을 말해볼게. 그런 우리가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도록 서로 도울 수 있을 거야." 나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앉아서 각자의 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라고 자주 권한다. 이것은 자녀들에게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때 "네 꿈이 왜 현실적이지 못한지 이야기해줄게"라는 말보다는 "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어떻게 노력할 수 있을까?"라는 말이 훨씬 도움이 된다. 그리고 실제로 정말 흥미로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p.190>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일부다. 나는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인생이 현실적이고 보람 있는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른 것들을 죽음으로 오인하고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비판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큰 나머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비판을 피하려고 애쓴다. 비판을 죽음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비판이 유쾌한 건 아니지만, 꼭 필요한 것이고 가끔은 유익할 때도 있다. 실수 또는 잘못에 대한 두려움 역시 죽음과 결부될 수 있다. 또 많은 사람이 매일 조금씩 죽어간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두렵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사람들은 평생 죽음을 피하려고 기를 쓰다가 삶을 제대로 누릴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진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p.195>
여러 육아 관련 서적을 읽으며 다양한 조언을 들었다. 이를테면 '좋은 부모라면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얘기하고,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얘기해야 한다.', '부모의 이런 행동은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저런 행동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같은 조언들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하는 말과 행동에 변화를 주고자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였다. 화가 나도 먼저 감정을 공감해준 뒤에 지켜야 할 규칙을 알려줬으며, 아이 앞에서는 가능하면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그렇게 할 순 없었다는 것이다. 힘들고 피곤할 때는 다시 나의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나의 본모습이 완전히 형편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순간이면 책에서 배운 대로가 아니라 나의 원래 성격대로 하게 되고, 책에서 배운 말과 행동이 아니라 평소에 하던 말과 행동을 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리 집은 평소 아내가 아이들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는데, 어느 날 첫째 손톱을 깎으려고 보니 손톱이 얼마 안 자라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내가 '발톱은 이만큼 자랐는데 왜 손톱은 하나도 안 자랐지?' 하고 물어보니 첫째가 배시시 웃으며 '아빠 습관을 배웠는지 나도 손톱을 물어뜯었어'라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그 말에 나는 의아했다. 내가 집중하거나 뭔가가 잘 안 풀릴 때 손톱을 물어 뜯기는 한다. 그런데 그건 주로 공부할 때나 일할 때이지, 집에서는 그런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언제 그랬지?'라는 생각과 동시에 '내가 무의식 중에 집에서도 그런 행동을 했었나 보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어렸을 때 아빠의 행동이나 습관을 따라한 적이 있다. 어렸을 때 아빠가 공부하던 책에서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에 '(?)' 표시를 해놓은 걸 본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나도 모르는 문제가 나올 때마다 같은 표시를 해 놓는다.
모든 부모는 아이 앞에서 양육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평범한 사람이다. 아이는 양육자로서의 부모에게서 배우는 점도 많겠지만 한 명의 사람으로서의 부모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운다. 이런 말을 들은 적 있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 아이는 부모의 말과 가르침이 아닌, 일상 속의 행동과 뒷모습을 보며 삶의 태도를 배운다는 의미이다. 내가 아무리 많은 육아 서적을 읽고 그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한다고 해도 아이는 여전히 내가 모르는 사이의 내 평소 모습과 행동과 습관을 보며 따라하게 될 것이다. 많은 육아 서적을 읽고, 해박한 육아 지식을 갖고, 아이에게 완벽한 부모가 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바른 인성과 태도를 가지고 올바르게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 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리고 결국 이것이 이 책의 제목인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에 대한 해답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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