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의 성공을 이룰 수 있는 지식이 있다고 생각해 봐. 어떤 두 사람에게 같은 정보를 전달해줬을 때 누군가는 목표를 이루고 누군가는 이루지 못하지.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바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나'라는 객체에 있어. (...) 현대 사회는 디지털 시대고 돈을 벌고 행복을 일구는 지식들은 온라인 공간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에, 사실 그저 주워오기만 하면 되거든. 그러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보를 얻는 게 아니고, 나를 바꾸는 일이야.
<p.29>
따라서 뭔가 인생이 안 풀리고, 이 길이 아니다 싶을 땐 네가 지나온 생각의 언저리에서만 답을 찾지 말고 미로의 좀 더 먼 곳, 심층적인 곳, 네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던 가치들, 가치관들, 행동들부터 하나둘씩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야. (...) 해결책을 찾을 때는 기본적으로 머리는 말랑말랑하게 해야 해. 이것도 내 생각이랑 다르고, 저것도 내 생각이랑 다르고, 이건 옳고 저건 그르고... 이런 것부터 좀 깨끗하게 지우고, 너의 상식과 가치관이 너를 잘못된 길로 이끌었으므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너의 상식과 가치관을 부수는 일이 될 거야.
<p.37>
남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준다는 게 얼마나 큰 노력과 수고가 필요한지 아니? 우리는 잠깐 스쳐가는 택시 기사 아저씨의 말 상대를 해줄 인내심도 없는데 말이야.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 역시 책무를 다하고 남에게 사랑받기 위해서고, 외모를 가꾸는 이유도, 열심히 사는 이유도 누군가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 (...) 성숙한 어른이란 내가 무엇이든, 어떤 위치에 있든 날 사랑해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사랑받기 위해 책임과 노력을 다하는 사람을 말하는 거야.
<p.102>
돈 자체가 불편한 건가? 아니지. 그게 불편했다면, 우리가 굳이 평생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데 시간을 바치지는 않았겠지. 우리가 내면에서 느끼는 불편감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사실은 돈이 부족함으로 인해 생기는 불편함과 정신적 박탈감이야. 사람은 사실 돈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돈을 얻음으로써 채울 수 있는 본인의 욕망에 대해 집착하는 건데, 본인의 욕망과 집착을 가리기 위해 아무런 선악의 개념이 없는 돈에 돌멩이를 던지는 거지.
돈이란 건 그저 편리한 도구고, 거래의 수단일 뿐이고 내 삶의 성취와 행복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야. 우리가 돈을 벌고 돈이 많아질수록 돈에서 자유로워지면서 돈이 무가치해지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돈을 볼 수 있는 반면에 돈에 쪼들릴수록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지고 욕망은 더욱 커지며, 돈에 지배당하는 삶을 살게 되는 거야.
<p.118>
우리가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를 하는 이유는 단순이 돈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정부의 합법적 폭력인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나의 자산을 지켜나가는 행위인 거야.
<p.159>
우리가 삶에서 본인이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것들, 이 차를 사면 인생이 행복해질 것 같고, 저 가방을 들면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질 것 같고, 훌훌 털고 해외여행을 떠나면 자유로워질 것 같고... 우리 정신을 움직이는 이러한 충동들은 기업의 마케팅과 그걸 만드는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결정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사람들은 그게 본인의 생각과 신념인 것처럼 떠들고 다니지.
<p.239>
우리는 돈을 벌려고 건강도 바치고 부동산도 기웃거리고 유튜브도 찾아보고 하지만 투자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뭐니 뭐니 해도 인생의 균형을 유지하는 거라는 얘기야. 근데 다들 바쁘게 살다 보면 자꾸 깜빡하게 되지. 돈, 건강, 시간, 사람 하나라도 부족하면 실패해 버리는 게 인생이야. 나이 먹고 네 가지 모두 가진 사람 거의 찾기 어려워. 그래서 이 게임이 어려운 거지.
<p.435>
사람들은 살면서 자존심을 지켜내는데 엄청난 돈을 소비하곤 하지. 친구가 산 차를 보고 자극받아 무리해서 새 차를 사기도 하고, 친구의 화려한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고 자극받아 빚을 내서라도 과분한 소비를 하며 자기 자존심을 지키려 해. 얼핏 보면 별개의 소비 패턴 같지만, 사실은 모두 내 마음을 빈약하게 만드는 박탈감을 몰아내고 자존심을 지켜내기 위한 비합리적인 행동이야.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만 아껴도 남들보다 훨씬 앞서나갈 수 있는 거야. 물론 쉽지는 않아. 남들에게 상처받지 않으려면, 단단한 자존감이 있어야 상대방의 차가운 태도나 상대적 박탈감에도 자기 멘탈을 보호할 수 있어. 하지만 자존감이란 건 그냥 내가 나를 사랑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고 어느 정도 자신을 사랑할 근거가 있어야 하거든? 뭐라도 네가 너 자신을 자랑스러워할만한 것을 이뤄야만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거저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야.
<p.442>
우리는 항상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어. 이성과 감성, 성장과 분배, 돈과 사랑, 모두 조금만 치우쳐도 잘못된 방향으로 가버리기 쉽지. 애초에 한쪽으로 치우쳐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이지만 균형이라는 건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몸의 위치를 바꿔줘야 하기 때문에 절대 쉬운 일이 아니야.
<p.530>
근데 가만 생각해 보면 이렇게 기준도 없이 왔다 갔다 하고 엿장수 맘대로인 것 같은 정의도 사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긴 해. 이 글을 차분히 읽다 보면 한 가지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그게 뭐냐고? 바로 '나'를 중심으로 정해진다는 거야. 내가 자영업을 해서 방역 통제로 가게가 망하면 불의한 거고, 내가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면 정의로운 통제고, 내가 한국인이라서 미세먼지의 피해를 보면 불의한 거고, 내가 유럽인이라 미세먼지의 영향 밖에 있으면 정의로운 거고, 내 아이의 행복은 정의롭지만 남의 집 아이는 뭐 그다지, 가끔 TV에 유니세프 나오면 성금이나 좀 보내주는 정도지 뭐. 우리나라에 5000만 국민이 있으니 각자 5000만 개의 정의가 있는 거지. 이제 정의가 뭔지 좀 알겠니? 복잡하게 연결된 세상을 사는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삶을 살게 되어 있어. 누군가가 원망스럽니? 응, 누군가도 네가 원망스러울 거야. 보편적 정의는 모든 인간이 죽어 없어지는 순간까지 달성되지 않겠지.
따라서 인간의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 기준은 탐욕과 정의가 아니고, 이기주의자로 사느냐, 아니면 위선자로 사느냐야. 둘 다 좋을 건 없지만 그나마 좀 더 나은 건 이기주의자로 사는 거고, 거기서 좀 더 나은 건 정의로운 이기주의자가 되는 거지. 정의로운 이기주의자가 되기 위해선 선과 위선을 가려낼 지혜가 필요해. 우리 모두 위선자의 삶은 내려놓고 정의로운 이기주의자가 되도록 해보자.
<p.587>
우리가 미디어를 볼 때 항상 생각해야할 건 미디어는 절대로 대중들에게 정보나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생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야. 네가 회사에 다니는 이유는 뭐지? 회사를 위해서? 그럴 리가 있나.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해서지. 미디어도 마찬가지야. 미디어 자본도 철저히 본인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해.
<p.623>
예를 들어보면,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신혼부부 전세자금대출을 늘린다는 기사가 나왔을 때 평범한 시선으로 보면 '아, 신혼부부들이 전세를 좀 더 쉽게 들어갈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기가 쉽지. 하지만 좀 더 깊은 시선으로 보면 전세자금대출을 늘린다는 건 시중에 돌아다니는 돈이 늘어난다는 것, 즉 통화량의 증가를 의미하고 통화량의 증가는 집값을 자극하게 되어 있어. 또한 월세보다 전세 수요가 늘어나므로 전세를 낀 갭투자가 용이해질 것이고 결과적으로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할 수 있지.
그럼 정부의 의도는 신혼부부에 대한 대출 확대로 표심을 끌어내고 동시에 집값 부양으로 통화량을 증가시켜서, 즉, 가계대출로 경기를 활성화시키거나 건설사나 은행의 부실을 막으려는 거고 그 말은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니까 곧이곧대로 전세를 들어가 버리면 대출로 집을 구매한 사람보다 뒤처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지.
<p.630>
아이는 부모의 그림자와 같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긴 한데, 부모 자신의 모든 걸 거울처럼 투영시키거든. 네가 살아온 인생의 결과물이고. 잘못 양육했다면, 평생을 짊어져야 할 형벌이기도 하지.
아이는 결국 부모의 성품과 지혜를 온전히 물려받기 때문에 아이가 엇나가는 건 결국 부모 스스로 짊어져야 할 문제일 거야. 본디 사필귀정이라 우리가 살면서 나태하게 살거나, 악하게 살거나 하는 모습들이 결국 아이의 품성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에 아이야 말로 우리가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인생을 살아가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어.
<p.777>
두 아이의 아빠이자 한 가정의 외벌이 가장으로 산 지 10년이 되어 간다. 정신없이 앞만 보며 달려서인지 딱히 힘든 줄도 몰랐다. 아이들도 조금씩 크고 내 시간도 생기게 되면서 '이제 한숨 좀 돌려도 되겠지' 싶었다. 달리던 걸음을 잠시 늦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이런 젠장, 뒤돌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출발선이 보인다. 고개를 돌려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결승선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정신없이 달렸는데 고작 여기밖에 못 온 건가? 갑자기 몸에 힘이 쭉 빠진다. 이렇게 열심히 달렸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에 잠긴 그 잠깐의 순간에도 여러 명의 주자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간다. 거친 숨소리를 내는 그들에게서 옅은 땀냄새가 난다. 달리기라는 것이 원래 그렇듯 한 번 멈춰 버리면 다시 뛰는 건 정말 지옥이다. 게다가 멘탈은 이미 게슈탈트 붕괴다. 그냥 걸을까? 삶이란 건 원래 각자의 페이스대로 사는 거라는데 좀 뒤처지면 어때? 느긋하게 걷는다고 해도 나와 우리 가정만 행복한 거 아니야? 붕괴된 멘탈 틈 사이로 한 송이 꽃이 피기 시작한다. 이름도 무시무시한 '자기 합리화'다. 그렇게 나는 수제비 반죽 마냥 퍼져버렸다.
요즘 이거를 매너리즘이라고 해야 할지 오춘기라고 해야할 지 아무튼 삶이 버겁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돈 벌고 알뜰하게 살고 아이들 건강하게만 키우면 될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순진했었는지 깨닫는다. 현실은 그보다 100배는 할 일이 더 많다. 내 일을 통해 돈 버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고 더 중요한 건 투자를 잘해야 한다. 1순위는 부동산이다. 평소에 호갱노노를 모니터 하고 임장도 다니면서 때 되면 주택담보대출을 알아봐서 갈아타야 한다. 옛날과 다르게 요즘은 주식도 안 하면 안 된다. 국내 주식과 미국 주식, 은퇴 후 연금 세팅을 위해 ETF와 IRP도 해야 하고, 아이들 미래를 위해서 미리 증여도 하고 나스닥 지수 추종 주식도 사야 한다. 분야는 어떤 것이 좋을까, 미래의 먹거리는 역시 AI와 로봇일까? 밖에 나가 일하더라도 요즘은 가정에 충실해야 백 점짜리 아빠다. 집안일도 돕고, 쉬는 날이면 아이들의 경험을 위해 여기저기 다녀야 한다. 게다가 아이들 교육 문제는 더 골치 아프다. 영유를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더 좋은 학군으로 이사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느 학원을 다니고, 특목고를 보내고, 무슨 입시 전형을 노리고 모든 일에 부모가 신경을 써야 한다. 써놓고 보니 실제로 버거울 수밖에 없는 삶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가진 것이 참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참 많은 행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내가 살던 행성이 목성으로라도 바뀐 건지 어깨에 짊어진 삶이 훅 무거워졌다. 삶이 디아블로 2 같은 게임이라면 인터넷에 있는 공략대로 캐릭터 스탯을 찍고 스킬을 익히고 아이템을 구하면 그만일 텐데. 선택의 순간마다 내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나 차이를 불러일으키는 걸 봐왔기에 매우 두렵고, 조심스럽고, 외롭고, 회피하고 싶다. 소서리스를 키우다 민첩을 찍었다면 처음부터 다시 키우면 될 텐데, 엉뚱한 스킬을 배웠다면 스킬 초기화를 하면 될 텐데 삶은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내가 했던 선택과 하지 않았던 선택에 의해 지금 내 삶과 나의 가정이 이렇게 되었고, 앞으로 해야 할 선택과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이 10년 후 미래의 내 삶과 가정의 모습을 결정할 거라고 생각하니 (게다가 리셋이 불가능!) 이거 참 부담스러운 삶이 아닐 수 없다.
이 책도 내게 '설명서도 읽지 않고 인생을 살고 있다'며 호통을 치긴 하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자, 이게 인생의 설명서야'라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이런 비슷한 종류의 책이나 글이 으레 그렇듯 내 생각엔 이게 정답이야!라고 큰소리로 얘기해 놓고는 시간이 흘러서 그게 맞으면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그러게 왜 내 말대로 안 해가지고!'가 되고 그게 틀리면 그런 말을 언제 했었냐는 듯 조용해지는 그런 책인 것 같다. 아무튼 설명서가 없는 삶을 실수 하나 없이 완벽한 캐릭터로 키우고 싶은 마음이 삶을 버겁게 하는 것 같다. 앞으로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럴 때 그런 걸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퓨쳐 미Future Me. 미래의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놓지 않을까? 10년 뒤의 내가 이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할지 몹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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