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잡지사에서 필름 현상 업무를 담당하는 월터 미티(벤 스틸러)는 월요일 아침에 출근해 동료로부터 회사가 매각되었다는 얘기를 듣는다. 곧이어 회사는 직원들을 모아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온라인 잡지로 전환하며 이에 따라 대규모의 구조조정이 있을 거라는 발표를 한다. 그리고 마지막 호의 커버 사진으로 지난 16년간 월터와 일하며 좋은 사진을 보내준 사진가 숀 오코넬(숀 펜)의 25번째 필름을 사용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월터가 숀으로부터 받은 건 25번째 필름이 빠진 필름 한 통과 그가 월터에게 선물한 지갑이 전부였다. 이에 월터는 25번째 필름의 행방을 찾기 위해 숀을 직접 만나러 가기로 한다. 월터가 평소 좋아하고 있었던 직장 동료 셰릴 멜호프(크리스틴 위그)의 도움과 사진 속 단서로 숀이 그린란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망설임 끝에 그린란드로 떠난다. 그곳에서 월터는 헬기를 타고 바다로 뛰어내리기도 하고, 배를 타고 아이슬란드로 가기도 하고, 화산 폭발에 도망치기도 하면서 숀의 흔적을 좇는다. 그러나 결국 월터는 숀을 찾지 못하고 빈손으로 회사에 돌아가 해고를 당한다.
직장을 나온 뒤 집으로 돌아간 그는 속상한 마음에 숀이 선물로 준 지갑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리고 쇼파에 앉아 숀의 사진을 들여다보던 중 사진 속 단서를 통해 숀이 집에 들러 월터의 엄마를 만났음을 알게 된다. 이에 엄마는 숀을 만났으며 숀의 다음 행선지가 아프가니스탄에 위치한 히말라야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잠시 고민하던 월터는 배낭을 메고 다시 히말라야로 출발한다.
여러 고난 끝에 히말라야 산 정상에서 숀을 만난 월터는 25번째 필름의 행방을 묻는다. 숀은 선물로 준 지갑 안에 들어있다고 알려주었으나 월터가 그것을 버렸다는 사실에 둘은 몹시 아쉬워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월터는 정말 운이 좋게도 쓰레기통에 버린 지갑을 꺼내 간직하고 있었던 엄마 덕에 마침내 25번째 필름을 손에 넣게 된다. 그는 즉시 그 필름을 회사로 가져다주면서 동료들을 해고하고 회사를 무시했던 구조조정 담당자에게 독설을 날린다. 며칠 뒤 퇴직금 수령을 위해 회사에 방문한 월터는 우연히 셰릴을 만나게 되고 이번에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데이트 승낙을 받고 둘이 길을 걷던 중 LIFE의 마지막 잡지 커버 사진을 보게 되는데 그 사진은 바로 필름을 검사하는 월터 미티의 모습이었다.
이 영화를 통해 나는 두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 하나는 삶의 정수는 인생의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행복은 보여지는 것의 변화가 아니라 나의 내면의 변화를 통해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 때문일까 아니면 SNS 때문일까. 인생을 특별한 순간들로 채워야 특별한 인생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이 갖는 소중함을 조금씩 잊어버리며 사는 것 같다. 밥을 다 먹어야 맛있는 간식을 줄 수 있다는 엄마의 단호한 말에 밥을 국에 말아 서둘러 욱여넣는 아이들처럼 우리는 일상을 주말이나 휴가 같은 특별한 순간을 위해 참고 견디고 어떻게든 흘려보내야 하는 시간으로 여기곤 한다. 그러나 인생을 놓고 봤을 때 우리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는 건 평범한 일상이다. 놀이기구의 짜릿함을 느끼기 위해 긴 줄에 서서 지루한 기다림을 참아내듯 일상을 그렇게 보낸다면 우리의 삶도 결국 지루하고 무의미한 과정의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과거로 돌아올 수 있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죽기 직전 과거로 돌아온 하루가 가족들과 보낸 지극히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하루였던 것처럼 삶의 정수는 일상 속에 있음을 기억해야겠다. 그리고 그 일상을 오랜 기간 성실하게 보내는 것은 그 사람이 보낸 몇몇의 특별한 순간보다 더 높게 평가 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두번째로 느낀 점은 위와 비슷한 맥락의 얘기이긴 하지만 우리는 때로 행복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모습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다른 누군가처럼 얼굴이 예뻐진다거나, 몸매가 좋아진다거나, 좋은 차를 갖는다거나, 돈이 많아진다면 나도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욕심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생각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내가 추구해야 할 올바른 행복일까? 과연 위에 적은 것들을 이루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아마 잠깐 동안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내 더 예쁜 사람, 더 좋은 차, 더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애써 잡은 행복이 저 멀리 달아나는 걸 보며 또다시 불행 속에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 할 것이다. 이렇게 행복의 기준을 외부에 두면 우리는 영원히 행복의 꽁무니만 좇는 삶을 살게 된다. 반면에 행복의 기준을 내면에 둔다면 외부에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자존감과 행복을 지킬 수 있다. 영화 속 주인공 월터가 숀을 찾아 떠난 여행을 계기로 더 이상 다른 누군가가 되는 상상을 하지 않고도 당당하게 셰릴에게 데이트 신청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어려서부터 평가와 비교에 익숙한 삶을 산 우리들은 남들이 바라는 행복의 모습이나 사회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행복의 모습에 나 자신을 맞추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나 그 허상과도 같은 행복 속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 정말 있는가?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릴 거라고 생각하는 연예인도 실제로는 마약에 손을 대고, 대기업을 일군 기업가도 삶에 대한 비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SNS 속에 존재하는 인플루언서들의 완벽해 보이는 삶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라캉이 한 말처럼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행복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신기루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욕망을 욕망하는' 행복을 위해 살아야 하며 그것의 도달은 결국 내면의 변화를 통해 다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덧붙여 2016년 12월 14일에 적은 같은 영화에 대한 나의 짤막한 리뷰를 첨부한다.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힘든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나는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특히 더 그렇다. 나의 내적 동기 대부분은 귀찮음을 잘 이겨내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과거 충동적으로 했던 일에 대한 좋은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다. 충동적으로 하지 않았으면 평소의 내가 평생 하지 않았을 일들을 돌이켜 보면서 '그 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정말 좋은 결정이었어' 와 같은 흐뭇한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충동적이지 않은 나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학습 효과의 결과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혹은 원하는 직업을 갖기 위해 해 온 노력들은 충동적이어서는 안 되는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내 삶 자체도 크게 보면 노력의 과정으로 늘 계획하고 실천하고 성취하는 삶이었기에 충동적이라는 말은 '무계획, 무책임' 과 같은 의미로 여겨졌다. 지금은 원하는 것을 이루었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게 되었으니 적어도 내 삶에 관해서는 좀 더 충동적이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이다. 좀 더 풍요롭게 세상을 알아가고 싶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베이비 드라이버 (Baby Driver) > 에드가 라이트, 2017 (1) | 2023.12.22 |
---|---|
<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 크리스토퍼 놀란, 2014 (2) | 2023.09.26 |
< 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 > 마크 웹, 2009 (0) | 2022.12.11 |
< 억셉티드 (Accepted) > 스티브 핑크, 2006 (1) | 2022.11.22 |
< 내 아내의 모든 것 > 민규동, 2012 (0) | 2022.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