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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내 아내의 모든 것 > 민규동, 2012

by Ditmars 2022. 7. 19.

<내 아내의 모든 것> 민규동, 2012

 

 내진설계를 공부하는 학생 두현(이선균)은 요리를 공부하는 정인(임수정)을 일본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둘은 오랜 연애 끝에 마침내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행복했던 연애 시절도 다 지나가고 어느덧 결혼 7년 차가 된 두현은 더 이상 정인과의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다. 그 이유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정인의 독설과 잦은 불평 때문이다. 하지만 차마 먼저 이혼하자는 얘기는 꺼내지 못하고 끙끙대던 두현에게 1년 간의 회사 장기 출장 기회가 찾아온다. 두현은 간신히 그 기회를 얻어 강릉으로 출장을 떠난다. 이제 최소 1년 간은 자유라고 생각했던 강릉에서의 첫날밤, 두현은 정인이 자신을 따라 강릉으로 이사 왔음을 알게 되고 좌절한다. 

 

ⓒ 2012. 다음영화

 

 두현은 그녀와 헤어질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한다. 정인이 두현에게 먼저 이혼하자고 말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말이다. 그러던  와중에 그는 옆집에 매일 같이 새로운 여자들이 찾아오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다 마침내 이웃집 남자의 정체를 알게 된다. 이웃집 남자는 전설의 카사노바 성기(류승룡)였다. 이름마저 섹시한 그는 자신의 더티섹시 매력으로 순식간에 여자들을 자신과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두현은 성기라면 정인을 꼬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성기에게 거금을 주며 자신의 아내를 유혹해달라고 부탁한다.

 

ⓒ 2012. 다음영화

 

 성기는 그 날 이후로 천천히 정인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두현으로부터 정인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취미와 특기, 성격 등의 정보를 미리 파악한 성기는 우연을 가장한 만남부터 시작해서 치밀한 전략을 세운 데이트까지 여러 방법을 통해 정인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노력한다. 그 사이 정인은 우연한 기회로 강릉에서 라디오 DJ라는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녀 특유의 솔직한 화법과 독설이 의외로 구독자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받아 그녀는 라디오에서 더욱 큰 인기를 얻게 된다. 본인에게도 인정받는 직업이 생겨서인지 아니면 자신을 진심으로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성기와의 만남 때문인지 정인이 두현을 대하는 태도도 예전과 다르게 변한다. 더 이상 두현에게 막말을 하거나 불평불만을 쏟아내지 않는다.

 

ⓒ 2012. 다음영화

 

 달라진 정인의 모습과 그녀가 없는 빈자리에 허전함을 느끼던 두현은 자신이 이제 더 이상 아내와 이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두현은 성기를 찾아가 아내에게 유혹을 그만 멈춰달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성기는 정인을 유혹하는 과정에서 진짜로 정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결국 정인을 두고 두 남자의 실랑이가 벌어지다 정인은 두현이 성기로 하여금 자신을 유혹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배신감을 느낀 정인은 결국 두현에게 이혼하자고 얘기한다. 두현은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뒤늦게 정인을 놓친 것을 후회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이혼 절차를 위해 법정에 간 그들은 본인 차례를 바로 앞두고 휴정이 되는 바람에 같이 마지막으로 밥을 먹으러 나왔다가 일본에서 처음 만났던 때를 추억하며 둘의 관계를 다시 시작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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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나는 얘기가 있다. '결혼생활은 대체로 행복하지만 아주 가끔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대신 남편의 죽음에는 내 잘못이 없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해외 출장 중 일어난 비행기 사고 같이 내가 바꿀 수도 없고, 나의 책임도 없는 일로 남편이 죽는 것이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미망인이 되어 다시 혼자가 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매우 슬프겠지만 마음 한편 어딘가에는 작은 해방감이 있을 것 같다.' 임경선 작가의 <평범한 결혼생활>에 나오는 얘기다. 나는 책에서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웃음이 났다.

 

 이 영화도 큰 맥락에서는 비슷한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영화 속 주인공은 아내와의 결혼 생활이 지치고 짜증나지만 이혼을 요구하거나 혹은 이혼당할만한 잘못을 저지를 만큼의 용기는 없는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그는 원만한 결혼생활의 책임을 다 하지 못했다는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견딜 만큼 독한 사람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내 탓이 아닌 일로 이혼하고 싶어 한다. 그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 이혼을 요구할 것이고 그러면 마지못한 척하며 그녀와 이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겉에서 보기에 남자는 아무 잘못이 없고 여자만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이혼의 귀책사유는 전적으로 여자에게 있도록 만들고 남자는 이혼으로부터 생기는 죄책감에서도 해방되고 다시 예전처럼 자유로운 몸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도 웃음이 났다.

 

 내가 웃음이 자꾸 났던 이유는 아마 이 마음에 대해서 조금은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마음은 처음에 이런 식으로 시작한다. 결혼하고 같이 살게 되면서 상대방의 단점이 하나둘 보이고 상대방이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을 겪게 된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든다. 내가 이 여자를 내 평생의 반려자로 선택한 게 과연 잘한 일일까?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내 주변에는 분명 이 여자보다 여러 방면에서 나은 여자들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주변에 이런 여자들을 놔두고 왜 이 여자를 선택했을까? 혹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수많은 싱글들이 보인다. 그들의 삶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애초에 나는 왜 결혼을 한다고 했을까? 내가 진심으로 결혼을 원했던 게 맞을까? 갑자기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후회가 된다. 지금이라도 혼자가 되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이혼을 요구하거나 이혼당할 만한 행동을 하면 나는 평생 결혼 생활 실패한 놈으로 살아야 한다. 나는 그런 놈은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때문에 아내와 헤어지게 된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돌싱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내가 먼저 나쁜 짓을 해서 이혼을 하거나 아내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나만 혼자로 남겨진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나는 내 실수를 만회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물론 이런 생각은 하등의 쓸모도 없는 일이다. 모두가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결혼생활을 하다보면 배우자와 다투거나 배우자가 미워 보일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불경한 생각이 슬쩍 고개를 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옆에서 그 생각이 커지게끔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타인과의 비교이다. 어디선가 비교는 비참해지거나 교만해지는 것의 줄임말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정말 그렇다. 배우자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행동은 배우자를 비참하게 만들고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행동은 나를 교만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우리가 비교하는 남의 모습은 그 사람의 실제 모습이 아니다. 우리가 비교하는 남의 모습은 그 사람의 겉모습뿐이거나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의 모습일 뿐이다. 인스타그램에서 보이는 그 사람의 멋진 순간들이나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사람의 좋은 점들을 가지고 내 남편, 아내와 비교하는 것이다. 식당에서 휴지를 챙겨주는 직장 상사의 자상한 모습 뒤에는 집안일에는 손끝 하나 돕지 않으려 하는 가부장적인 아빠의 모습이 숨어 있을 수도 있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늘 웃는 얼굴로 인사하는 아랫집 아줌마의 모습 뒤에는 자녀에게 막 대하고 소리를 지르는 못된 엄마의 모습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배우자에 대해 알고 있는 모습에 비하면 비교 대상인 타인의 모습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것만 가지고는 누가 더 나은지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그러면 타인의 실제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의 배우자와 그랬던 것처럼 그 사람과도 결혼하고 결혼생활을 해봐야 한다. 그러나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타인과의 비교는 의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과 비교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나는 이렇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가 아랫집 아줌마와 아내를 비교하면서 '아랫집 아줌마는 항상 웃고 친절한데 왜 아내는 그렇지 못할까?'라고 생각하는 동안 아랫집 아줌마의 남편도 '윗집 아줌마는 항상 웃고 친절한데 왜 아내는 그렇지 못할까?'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