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시간 주립대학의 천문학과 대학원생인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와 담당 교수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연구 도중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혜성을 발견한다. 계산 결과 이 혜성은 거의 에베레스트 산에 맞먹는 크기로 지구와 충돌까지 앞으로 약 6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이 중대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NASA의 국장급인 오글소프 박사(롭 모건)와 함께 백악관을 찾는다. 그러나 무능력한 제이니 올린 대통령(메릴 스트립)은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선거와 자신이 속한 당의 표에만 신경을 쓰며 '일단 생각해보자'라고 말한다. 이런 예상치 못한 백악관의 반응에 충격을 받은 그들은 언론사와 인기 쇼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직접 이 사실을 알리고자 한다. 그러나 인기 쇼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발언은 유명 연예인의 결혼 얘기에 묻히게 되고 오히려 SNS에서는 그들을 조롱하는 말들과 가짜 뉴스가 확산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백악관에서는 핵미사일을 발사하여 혜성의 궤도를 바꾸기로 한다. 그러나 발사 당일 초국가적 대기업인 배쉬 회사의 회장인 피터 이셔웰(마크 라이넌스)에 의해 계획이 무산된다. 그는 혜성에 포함된 희귀 광물의 가치와 그로 인한 사회경제적 효과를 얘기하며 무인 드론을 보내 혜성을 잘게 쪼갠 뒤 지구로 떨어뜨리는 계획을 주장한다. 민디 박사를 포함한 과학계에서는 해당 계획이 과학적으로 충분히 검증이 되지 않았음을 문제 삼았으나 경제 논리에 밀린 그들의 의견은 묵살되고 만다.

어느새 시간은 흘러 마침내 지구에서도 날아오는 혜성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충돌은 가까워졌다. 이에 사람들은 충돌이 임박하고 있으니 위를 올려다보라는 'Look Up 지지자'와 충돌 걱정은 안 해도 되니 위를 올려다보지 말라는 'Don't Look Up 지지자'로 나뉘어 각종 매체와 SNS를 통해 온갖 정보를 쏟아내며 다투기 시작한다. 어느덧 혜성과 지구와의 충돌은 불과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고 피터 이셔웰은 계획대로 무인 드론을 발사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무인 드론의 오류 발생으로 혜성을 쪼개는 데에는 실패하고 결국 혜성은 지구와 충돌하여 지구는 멸망하게 된다.
이 영화는 지구 멸망의 위기를 앞두고 인류가 어떻게 대처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해 비꼬는 영화다. 지구로 충돌하는 혜성 급의 위기는 아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의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시기에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한다. (반전인 것은 이 영화의 대본은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 시작 전에 이미 완성되어있었다고 한다.)
나는 2012년 초에 군에서 전역했다. 전역 이후에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스마트폰을 사고 카카오톡 앱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2009년 말 입대할 무렵엔 카카오톡이란 앱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스마트폰 역시 널리 보급된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입대를 앞두고 친구들과 문자를 하고 전화를 했다. 군대 내에서 공중전화로 연락하기 위해 수첩에 핸드폰 번호를 빼곡히 적어갔다. 그 이후 2년 동안 군대에서 바보가 되어 전역했을 때 세상은 한층 스마트하게 변해있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이 지난 2022년이 되었다.
10년 동안 기술은 더욱 발전하였고 사람들의 생활 방식은 바뀌었다. 회사 업무부터 은행 업무, 동사무소에서 서류를 떼는 일부터 미국 주식을 사고 파는 일까지 컴퓨터와 스마트폰에서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변화된 생활 방식 속에는 신종 매체가 등장했다. TV, 라디오, 신문은 YouTube, SNS, 인터넷 신문으로 대체되었다. 정해진 시간에 일방적 정보 전달만 가능했던 기존 매체와는 달리 신종 매체는 실시간으로 양방향 정보 전달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제는 깨어 있는 동안에는 원치 않은 정보까지 누군가 계속 떠먹여주는 듯하다. 사회의 이슈와 문제는 그것의 본질을 파악하기 전에 이미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사람들은 그것의 본질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남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인양 받아들인다. 마치 예전에는 정해진 시간의 한 끼를 위해 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고 요리해 먹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버튼만 누르면 24시간 배송되는 밀키트에 물만 부어 조리해 먹는 기분이다. 내가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먹는 건지도 모른 채 결국 입 속에 남는 건 남들이 느끼는 맛과 똑같은 MSG 잔뜩 들어간 자극적이고 텁텁한 뒷맛일 뿐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대중의 생각(이라고 여겨지는 일부의 생각)에 반하는 누군가의 생각은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 되어 그 의견이 무엇인지 들어보기도 전에 비판은 물론이고 순식간에 비난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이전보다 더 많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개인주의 사회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삶만 들여다보았을 때 맞는 말이고 거시적으로 사회의 모습을 보면 오히려 집단주의화된 것 같다. 이런 모습이 동양 문화 혹은 한국 사람의 특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닌가 보다.
나는 이 문제의 원인 중 하나로 익명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뉴스 댓글부터 인터넷 커뮤니티,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블라인드 앱까지 대중성 틈에 숨어 있는 익명성은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더욱 견고해지고 훨씬 다양한 곳에서 이용되고 있다. 현실에서는 차마 이루어질 수 없는 대화도 익명의 공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 속에서 정보 전달은 '카더라'와 '아님 말고'식으로 이루어진다. 현실 세계에서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존중과 예의는 익명의 공간 안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오히려 요즘은 역으로 현실 세계를 침범하여 현실에서도 종종 무시되곤 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 간의 감정적인 교류마저 진정성이 훼손되어 무의미해져 버렸다. 가끔은 가면 속에 감춰진 인간의 본성은 원래 이런 것인가라는 회의적인 물음도 든다.
변해버린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개인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가 너무 어려워졌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양심과 가치는 지키는 삶을 살고 싶은데 그게 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남들보다 앞서야 하고, 나부터 살아야 하고, 돈이 최고인 사회 분위기 속에 살다 보니 내 양심과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 혼란스럽다. 사실 우리가 인간답게 사는 건 어떻게 사는 건지에 대해 배워본 적이 있긴 할까. 돌이켜 보면 그 누구에게도 보거나 들어본 적이 없는 듯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학창 시절부터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업을 갖고 잘 먹고 잘 살아야지'라는 목표나 가져봤을 뿐, '남을 돕고 살아야지,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지' 같은 목표는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예전에 어디선가 시험 감독 없는 학교의 시험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성적보다 정직을 더 중요한 가치로 두는 교내 분위기를 만들고, 교사는 학생들의 양심을 믿어주고, 대다수의 학생들이 정직하게 시험을 봄으로써 일부 커닝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의지마저 꺾게 만드는 것이다. 정직하지 않은 것이 문제이고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그 학교에서는 시험 감독이 필요 없어지게 된 것이다. 익명성을 등에 업은 대중들도 결국은 각자의 양심을 지닌 개개인이 모인 것이다. 정직과 인정이 당연시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개인들도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어진다면 언젠가 우리도 현실이라는 가면을 벗은 익명성의 공간에서도 지금보다 더욱 정직하고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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