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류승룡)이라는 작가가 있다. 그는 7년 전 베스트셀러를 낸 유명 작가이다. 하지만 그 이후 더 이상 작품을 내지 못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또 그는 혼자 살고 있는 기러기 아빠이다. 10년 전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다 이혼했다. 전 아내인 미애(오나라)는 고3이 된 아들 성경(성유빈)을 혼자 키우고 있고, 현 아내는 자녀 교육 때문에 외국에서 어린 딸을 혼자 키우고 있다. 그에게는 30년 지기 친구이자 7년 전 그의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던 출판사의 직원이기도 한 순모(김희원)가 있는데 사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미애와 사귀고 있다.

양육비와 생활비 부담에 허덕이며 일을 하고, 새로운 작품을 위한 글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며, 술을 마시고 하루를 허비하는 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에게 어느 날 유진(무진성)이 나타난다. 유진은 그가 가르치는 수업의 학생이다. 7년 전 김현의 책을 읽고 그에게 사랑을 느낀 유진은 김현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유진이 동성애자이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진심임을 알게 된 김현은 그와 선을 긋기로 한다. 그러자 유진은 자신이 쓴 습작을 주며 읽어보라고 한다.

유진의 습작을 읽고 난 뒤 김현은 생각에 잠긴다. 유진의 습작이 무척 좋았기 때문이다. 결국 김현은 다시 유진을 찾아가 공동집필을 제안한다. 며칠 간의 합숙 끝에 공동집필을 마치고 둘은 마침내 책을 낸다. 그러나 유진에게 질투를 느낀 한 동료 작가에 의해 '유진이 동성애자이며, 유진과 김현은 연인 사이이고, 책 내용은 사실 그들의 이야기이다'라는 내용이 폭로된다. 이에 큰 상처를 입은 유진은 TV에 출연하여 본인이 동성애자인 것은 맞지만 다른 말들은 모두 거짓임을 고백하고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다음 해 4월 1일, 김현과 유진은 리투아니아의 우주피스 공화국에서 만난다.
위의 줄거리에 다 적을 수 없었지만 사실 이 영화에는 미애와 순모의 연애도 나오고 김현의 아들 성경이 이웃 아줌마 정원을 짝사랑하는 내용도 나온다. 크게 보면 김현-유진, 미애-순모, 성경-정원 이렇게 세 종류의 관계가 나온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어느 하나도 사랑으로 이어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애초에 사랑으로 이어지기는 힘든 관계였다. 사회적인 시선, 나이 혹은 성적 취향 때문에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관계는 맺어지고 누군가는 사랑을 하게 된다. 이렇듯 이 영화는 김현이라는 인물과 그 주변 인물들의 관계와 그들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이다.
스쳐 지나가는 한 편의 영화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는 그만큼 이 영화가 내게는 재미도 있었고 감동도 있었기 때문이다. 진지하기도 웃기기도 한 류승룡의 연기는 역시 최고였고, 동성애자 역할을 맡아 진실되고 순수한 눈빛을 보여준 무진성의 연기도 참 좋았다. 관계 속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는 일이 얼마나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 과거에 느꼈던 감정들이 다시 떠올랐다. 또 누군가에게 정당한 이유가 있건 없건 (정당한 이유라는 게 존재하지도 않겠지만) 사랑을 거절당할 때의 쓰라린 아픔도 떠올랐다. 다 지나고 나니 별 거 아닌데 그때는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따라 흔들리는 내 마음도, 거절하거나 거절당하는 순간도 모두 그게 그렇게 아프고 힘들었던 것 같다. 짝사랑에 거절당하고 울고 있는 아들 성경을 위로해주는 김현의 모습이 마치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위로해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때때로 어떤 영화들은 보기 전에 굳은 결심을 먼저 하게끔 한다. 내게는 주로 대작이라고 일컫어지는 영화들이 그러하다. 워낙 유명해서 과거에 한 번 보고 큰 감동을 느꼈던 영화들이다. 허나 그런 영화를 다시 한번 시작(?)하려면 중간에 끊어지는 상황이 생기지 않을 만큼의 시간적 여유와 끝까지 볼 수 있는 정신적 여유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대작에 걸맞은 큰 감동의 쓰나미를 다시 한번 느껴야 할 것만 같은 부담이 왠지 모르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과거에 본 적이 있는 유명한 영화는 쉽게 다시 보기를 하기 어렵다. 글래디에이터라던지 피아니스트 같은 영화들이 그렇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언제 다시 보기를 해도 부담 없이 편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은 이런 영화가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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