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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안녕이라 그랬어 > 김애란, 2025

by Ditmars 2026. 4. 3.

<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2025

 

 "성민씨는 어때요? 주식 하죠?"
 성민이 주저하다 대꾸했다.
 "네, 그럼요. 저도 불과 두 해 전에 제가 금융 문맹인 거 처음 알았어요. 언론에서 알려줘서. 저도 뒤늦게 막 이것저것 공부하고 있어요. 뒤처질까봐. 그런데 한편으로는..."
 김이 물었다.
 "한편으로는?"
 "아, 아니에요."
 오대표가 성민을 온화하게 타일렀다.
 "왜? 얘기해봐. 괜찮아요."
 성민이 입술에 침을 바른 뒤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연이 보기에 성민이 소탈한 막내 역을 하느라 그런지 아니면 술에 취한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사실 해방 이래 한 번도 돈을 욕망하지 않은 적 없으면서, 겉으로는 노동과 근면을 미덕인 양 가르쳐온 사회가 갑자기 저더러 문맹이라니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그간 저나 제 부모님이 살아온 방식을... 응, 실존을 부정당한 것 같아서."
 박이 취기어린 투로 응했다.
 "실존. 진짜 오랜만에 들어본다."
 김이 무슨 말을 할지 망설이다 뜻밖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내가 이래서 성민씨 좋아해. 이래서 다양한 사람들과 자주 만나봐야 한다니까. 안 그러면 굳어."

<p.38, 홈 파티 > 

 

 남편과 티브이를 보며 어쩌다 야식이 돼버린 저녁을 먹었다. 뉴스에서는 부동산 소식이 흘러나왔다. 요즘은 어딜 가든 부동산 이야기가 들려왔다. 남편이 피자를 씹다 말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때 대출받아서라도 이 집을 샀어야 했는데."
 남편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장면이 있었다. 사 년 전 공인중개사 사무소에서 전세 계약서를 꼼꼼하게 읽는 우리를 보며 집주인이 가볍게 설득하듯 말했다.
 "조금 더 보태서 사지 그래요?"
 조금이 아니라 많이 무리해야 가능한 액수였지만 우리는 쑥스럽게 웃으며 '아직 그럴 상황이 안 된다'고 했다. 전국적으로 부동산 하락세가 점쳐졌고, '지금 집 사는 건 미친 짓'이라는 말이 돌 때였다. 그런데도 마치 그때 우리에게 기회가 있었던 것 같은, 그 기회를 놓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내년 봄, 이곳을 떠나 이사할 생각을 하니 더 그랬다. 근 일 년간 부동산 기사에는 집값이 안정되기를 바라는 무주택자를 조롱하고 무시하는 댓글이 난무했다. 시기니 질투니 하는 말도 모욕적이었지만, 무지니 게으름이니 하는 말도 부당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힘들게 한 건 '어쩌면 잘못은 정말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다. 매일 아침 한강을 건너 출근하는 남편은 '요즘은 풍경이 다 돈으로 보인다'며 뉴스를 보다 말고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됐어, 다 똑같은 놈들이야"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왠지 그 말이 듣기 싫었다.
 "그래도 우리는 조금이라도 쥔 게 있는 세대잖아. 감사하며 살자."
 남편이 선량한 듯 서글픈 얼굴로 대꾸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서 결국 이렇게 된 거 아닐까?"
 "'이렇게'가 뭔데?"
 "..."
 "일 년 넘게 아무리 여론이 들끓어도 지방 청년들이나 사회 초년생들한테는 다 딴 세상 이야기라 하더라. 전세금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고."
 남편은 잠시 침묵하다 "내가 탐욕을 부리거나 투기를 하겠다는 게 아니잖아. 그저 좀 생존하겠다는 건데. 가진 사람들은 세금 몇 푼에도 펄쩍 뛰고 피해자가 되지 못해 안달인데, 정작 사다리에서 튕겨나간 나는 좀 속상해하면 안 돼?" 항변했다. 젊었을 때라면 나도 "우리가 아니라 사다리를 의심해야지"라 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 말이 입에서 차마 안 나와 남편을 타이를 수밖에 없었다.
 "돼. 그래도 어디 가서 그러지 마. 특히 회사 신입들 앞에서는."
 그러자 남편이 허탈하게 웃으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했다.
 "그 신입이 나보다 부자인데?"
 우리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p.121, 좋은 이웃>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그런데 얄궂게도 남의 욕망은 탐욕 같고 내 것만 욕구처럼 느껴집니다. 기본욕구, 생존 욕구할 때 그런 작은 것으로요. 그런데 그곳에 생존이란 말을 붙여도 될까, 그런 건 좀 염치없지 않나 자책하다가도, 자본주의사회에서 모두에게 떳떳한 선이란 과연 어디까지일까 반문합니다. 얼마 전 남편이 내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잘살게 되면 남을 돕고 살자." 그런데 여보, 우리가 잘살게 되면 우리가 '더' 잘살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때도 이웃이 생각날까? 그저 약간의 선의와 교양으로 가끔 어딘가 기부하고, 진보 성향의 잡지를 구독하는 정도로 우리가 좋은 이웃이라 착각하며 살게 되지는 않을까? 그러자 한동안 피하고 싶었던 무겁고 부담스러운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말 그대로 그것,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그게 나라면, 이 시장에서 이익을 본 게 나라면, 지금도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었을까? 대놓고 기뻐하거나 자랑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깊은 안도감 정도는 느끼지 않았을까? 하고요. 

<p.141, 좋은 이웃>

 

 그는 잠시 주저하다 '돈이 참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별게 맞다'는 말로 입을 떼었다. 언제부터인가 부모님 간병이나 수술로 형제끼리 돈 각출할 일이 생기는데, 똑같은 상황이라도 내 살림이 빠듯하면 '형은 왜 그거밖에 안 내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게 인간인 것 같다고. 반대로 내 상황이 좀 여유 있으면 '그럴 수도 있지' 자연스레 넘어가지더라고 했다. 자기가 원하는 건 큰 성공이나 호사까진 아니어도 살면서 그런 순간이 왔을 때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는 거라고.

<p.158, 이물감>

 

 기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맛을 음미하며 지금 이 순간 홀로 집에 가고 있을 엄마를 떠올렸다. 나의 오늘과 당신의 오늘이 다르다는 자명함이, 엄마의 하루와 자신의 하루의 속도와 우선순위, 색감과 기대가 늘 달랐다는 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게 문득 뼈아프게 다가왔다. 아무리 최선을 다한들 자신은 이 감정을 평생 느낄 거라는 점도. '나만 겪는 일은 아닐 텐데. 누군가는 진작 감내해온 일일 텐데.' 다들 대체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어쩌면 다들 날마다 아무 내색 않고 일터에 나와 있는 걸까?' 맨정신에, 취기 없이. 기진이 제 앞의 케이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p.214, 레몬케이크> 

 

 나는 뭐라 더 말을 못하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 마나 한 말'을 최대한 진심어리게 하는 것도 어른의 화법일 텐데, 누군가의 부고와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가 가진 표현의 한계와 상투성에 어쩔 줄 몰라했다. 상투성이 뭐 어때서. 세상에 삶만큼 죽음만큼 상투적인 게 또 어디 있다고. 그 '반복'의 무게에 머리 숙이는 게 결국 예의 아니던가.

<p.231, 안녕이라 그랬어>

 

 잠시 후 노래가 끝나자 헌수는 '왠지 '가지 말라'는 청보다 '보고 싶다'는 말보다 '너한테 배웠어, 정말 많이 배웠어'라는 가사가 더 슬프게 다가온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 것 같다며. '삶은 대체로 진부하지만 그 진부함의 어쩔 수 없음, 그 빤함, 그 통속, 그 속수무책까지 부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인생의 어두운 시기에 생각나는 건 결국 그 어떤 세련도 첨단도 아닌 그런 말들인 듯하다'고 했다. '쉽고 오래된 말, 다 안다 여긴 말, 그래서 자주 무시하고 싫증냈던 말들이 몸에 붙는 것 같다'고.

<p.249, 안녕이라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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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의 신이 돌아왔다. 지난 단편소설집에 비해 이번에는 더 많은 작품에 공감이 되고 고민도 많이 하게 되었다. 특히 여러 기사와 서평에서 얘기했듯이 이번 단편소설집에서는 '돈과 이웃'을 주제로 하는 작품이 많았다. 나와 비슷한 30대 혹은 40대의 경제활동을 하고 가족을 꾸리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주제에 대해 여러 생각과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최근 빠르게 변한 사회의 모습과 그 안을 아등바등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미묘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잘 묘사했다. 

 

 경향신문에 실린 작가의 인터뷰를 읽으며 지난 몇 년간 갈팡질팡했던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은 말이 있어 옮겨 보고 싶다.

 

 '소설 안에서 현실의 욕망과 고민들은 순간의 사건에 그치지 않고 삶을 대하는 태도로까지 확장된다. 작가는 “지난 몇 년은 특히 모두가 굉장한 돈이나 이익에 몰두했던 시기다. 경제적인 상황은 삶의 기본적인 필요기 때문에 그것 자체를 가치판단하는 것은 아니”라며 “자기 보존의 욕구가 만연한 사회에서, 어느 순간 이웃의 생명이나 안전을 놓고 저울질해야 하는 순간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것을 보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직전이었는지 코로나 직후부터였는지 잘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모두 돈과 부동산과 주식에 대해서 미친 듯이 얘기하기 시작했다. 누구는 그 원인을 찾고자 했고, 누구는 유튜브에 몰두했고, 누구는 분노했고, 누구는 말을 아꼈다. 벼락거지, 패닝바잉, 금융문맹 같은 단어가 유행했다. "어디 살아요?"라는 질문은 단순히 주거지를 묻는 것 이상의 질문이 되었다.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정말 투자에 실력이라는 것이 있는 건지, 순간의 선택에 따라 여러 사람들의 운명이 바뀌었다. 나 역시 '이게 맞는 건가?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도 되는 게 맞나?' 갸웃거리면서도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으로서 최신 트렌드를 익히느라 바빴고 이게 자본주의 사회겠거니 하며 시대의 흐름을 좇느라 바빴다. 

 

 다만 그렇게 급변한 최근 5년 동안 나의 사고방식도 지나치게 자본주의화된 것이 아닌가 고민스러운 적이 많다. 사는 지역에 따라 은연중에 상대방의 재산을 가늠하고, 전세나 자가 여부에 따라 묘한 우월감을 갖기도 하고, 주식이나 코인으로 몇 십억을 벌었다는 동료의 얘기를 들으며 '그게 과연 오래갈 수 있을까?' 같은 질투 섞인 생각을 갖기도 했다. 예전에는 정의나 평등, 사회복지 같은 데에 관심도 많았는데... 그때보다 가진 게 훨씬 많아졌는데 마음은 더 팍팍해졌다. 갓 결혼했을 때 '이 정도의 재산만 있으면 걱정 없이 편하게 살 수 있겠다. 그때까지만 열심히 고생하자' 며 상상했던 재산을 이제는 갖게 되었는데 지금은 '이걸로 충분한가?'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분명 10년 전, 5년 전의 나보다 훨씬 부유해졌는데, 젊은 나이에 나더러 많이 모았다며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상하게 내 시선은 그쪽이 아니라 다른 쪽을 향한다.

 

 내 시선은 그때 그 주식을 샀던 지인과 그때 그 집을 샀던 동료를 향한다. 그때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하지 못했는지 그건 내가 운이 없었던 게 아니라 내 실력과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앞으로 또 선택의 기회가 온다면 더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지금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건 아닌지. 그럼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계속 자산 상승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 건지. 그러다 문득 이렇게 변한 내가 낯설게 느껴지면 속으로 되뇐다. '어쩔 수 없잖아.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나는 가족도 있고 아직 어린아이들도 있잖아.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의 재산을 지킬 수가 없는 걸.' 정글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음을 단단히 지키며 산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아래는 각 소설을 읽고 간단하게 아이폰 메모에 적어 놓은 감상평이다. 왜 평론가가 그녀를 사회학자라고 얘기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홈파티 : 단순히 여섯 명의 사람들이 집에 모여 술 마시는 장면을 묘사하는 건데 그 좁은 공간과 짧은 시간에 이렇게 긴장감 넘치는 대화를 묘사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

 

 숲 속 작은 집 : 있을 법한 일이긴 하지만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여자의 반응이 좀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홀엄마와 외동딸, 게스트와 메이드의 관계가 소설 속에서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지 잘 모르겠다.

 

 좋은 이웃 : 최근 몇 년 간 부동산, 주식, 코인, 돈 등 이런 얘기가 너무 많아서 남들과의 비교에 질투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반대로 안도가 되기도 하는 상황에 마음이 너무 피로했다. 이렇게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을 소설 속에 잘 담아냈다.

 

 이물감 : 헤어진 전 연인도 아니고 이혼한 사이인데 미련이 있는 걸까?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레몬케이크 : 엄마아빠 생각이 났다. 특히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소설 속 엄마와 우리 엄마가 비슷하게 느껴져서 그랬는지 읽으면서 나의 과거를 돌아봤다. 어떻게 그렇게 무심하고 차갑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처음 보는 남한테도 보이지 않는 태도를 왜 엄마한테 할 수 있었을까? 엄마를 만나고 나면 소설 속 주인공처럼 항상 마음이 복잡했다. 고맙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착잡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다들 이렇게 사는 걸까? '다들 이렇게 살겠거니' 생각해야 내 마음도 편하고 죄책감도 줄어드는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안녕이라 그랬어 : 미드 <모던 패밀리>에서 스페인 사람인 글로리아가 미국 사람과 결혼해서 한 말이 유명한 짤이 되어 돌아다닌 적이 있다. "Do you know how frustrating it is to translate everything in my head?", "Do you even know how smart I am in Spanish?"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과 슬픔을 외국어로 표현할 때의 답답함과 동시에 간편함을 '화상 영어'라는 소재를 이용해 잘 풀어냈다.

 

 빗방울처럼 : 등장인물 묘사도 너무 좋고, 소재도 너무 신박하고, 자그마한 반전과 그에 따른 감정과 심리 묘사까지 너무 좋았다. 이 잔인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순간의 선택이, 순간의 운이 한 사람과 한 집안의 운명을 바꿔놓기도 한다. 그 사람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누구나 그 희생양이 될 수도 있는데, 착하게 살아도, 아니 오히려 착하게 살면 더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될 수도 있고. 그렇게 힘들어진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보다 나는 다행히 희생양이 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더 큰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