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사교육이 평가원을 참조하는 동안 평가원도 사교육을 참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공생은 평가원에도 이득입니다. 상위권 학생의 절대다수는 어떤 식으로든지 사교육을 이용하니까요. 스타 인터넷 강사가 강조하는 풀이가 곧 수험생들의 풀이이고, 스타 인터넷 강사의 테크닉은 수험생들의 테크닉이 되니까요. 평가원은 이를 추론하여 수험생들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예상 난이도를 더욱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p.32>
수능이란 결국 객관적인 기준이 필요한 오지선다 시험으로, 그 특성상 신비평주의(New Criticism) 사조와 궤를 같이 하게 됩니다. 1920년대 태동한 신비평주의는 '저자의 의도에서 벗어나 텍스트 그 자체를 이론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비평이론의 한갈래입니다. 즉, 종래의 문예비평에서는 작가의 삶이 강력한 판단기준이었다면, 신비평주의자들은 글이 이루는 내적 질서와 외부적 이론을 통해 작품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셈입니다. 예컨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원제 The Education of Little Tree, 1976)의 작가가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자였듯이, 하지만 해당 작품이 공존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것 또한 진실이듯이, 텍스트가 작가를 배신하는 경우는 아주 많습니다.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과 같은 문제 유형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는 셈이지요. 따라서 시인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문제를 맞히지 못한 것은 자연스러운 상황으로, 유효한 비판의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p.37>
국민과 정치권이 시키는 대로 하면 문제가 쉬워지는데, 문제가 쉬워지면 등급 커트라인을 조절할 수 없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합니다. 딜레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평가원은 '낮은 난이도'와 '높은 분별력'이라는, 보조가 맞지 않는 두 날개를 달고 엉거주춤 날아가는 중입니다. 물론 추락하지 않고 그나마 날아가기라도 하는 것은 어떻게든 해법을 찾았다는 의미겠지요. 그 해법 중 하나는 바로 난해한 주제와 개념어로 기선제압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p.44>
지문의 길이에 한계가 존재하는 이상, 문제 유형이 정해진 이상 비문학 세트의 규격화는 필연적인 귀결입니다. 이렇게 수능 해킹의 레시피가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문장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문단과 문단은 어떻게 구성되는지, 논리 전개는 어떠한지, 어떤 문항이 출제되고 선지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안다면 최단경로를 정립할 수 있으니까요. "첫 문단을 보고 유형을 분간한 다음, 이런 유형이면 어느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 읽고 저런 유형이면 문제의 요구사항부터 파악해라" 와 같은 행동강령이 생기는 것입니다.
물론 과거에도 이런 문제풀이용 행동강령은 있었습니다만, 당시에는 '학생 스스로, 기출 분석을 통해 방법론을 고안하는' 자기주도학습의 성격이 강했다보니 그 나름대로 사고력을 기르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반면 이제는 사교육이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규격화된 형태로 제공하게 되었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를 사고의 외주화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겁니다.
<p.65>
학습 능력을 검증하겠다는 것은 허울 좋은 명분일 뿐이고, 수능은 결국 줄 세우기 게임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으니까요. 줄 세우기에 실패한다면 제일 큰 손해를 입는 것은 결국 수험생들 자신이니까요. 달리 말하자면 수능에 응시한다는 것은 생존 게임의 규칙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내가 100명 중에서 10등인지 20등인지만 확실히 정해달라는 것이, 10등과 30등이 뒤섞이는 상황은 피해달라는 것이 이들의 욕망이지요.
<p.77>
"제 고등학교 시절에는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정도는 읽어야 한국사 만점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읽었고 실질적으로 쓸모 있는 내용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요. 지금은 좀 이상해요. 저도 교직에 20년 넘게 몸담았으니까 느끼게 되는 안타까움인데, 어쨌든 인생의 시간이라는 것은 한정적인 자원이잖아요. 그중에서 고등학교 시기는 특히 중요한 때고요. 중요한 것, 좋은 것을 배워야 할 시기에 아무 쓸모도 없는 기술을 배우는 게, 그리고 그걸 몇년씩 하는 게 너무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죠."
- 이봉수(좋은교사운동 서울정책위원장/덕성여자고등학교 교사)
<p.87>
기본 원리에 입각해 값을 추론하는 것과 모든 값을 사전에 외워버리는 것, 둘 중에서 무엇이 학문적 이해에 가까운 태도일까요. 아무래도 전자입니다. 그런데도 2020년대의 수험생들은 요령을 정석처럼 대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이건 개개인의 마음가짐을 탓할 사안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시험의 형식과 요구사항이 잘못된 인식을 유도하고 강제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잘못된 인식은 학습 태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지요. (...)
이런 보상 시스템이 학생들에게 보내는 메세지는 명확합니다. 수단의 합목적성이나 최종적인 가치에 대한 고민은 무의미하고, 오로지 가시적인 성과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p.97>
사람이 재도전을 결정할 때가 언제일까요. 이 성적이 자신의 진짜 실력과 동떨어져 있다고 판단했을 때, 능력보다는 운이 작용했다고 여길 때, 한번만 더 시도한다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으리라 느낄 때입니다. 즉, 지금처럼 문제가 불합리한 방식으로 어려워지고 '찍기'가 중요한 요소로 부각된다면, 실력이 똑같다고 느꼈던 경쟁자와 한발짝 차이로 당락이 갈린다면, 학생들로서는 결과에 승복할 수 없게 됩니다. 다음 기회를 노리려 하지요.
<p.103>
이러한 사교육의 고도화는 양극화와 경쟁 압력의 심화로 이어집니다. 동네 자전거 경주에서는 참가자가 '페달을 열심히 밟기만 하면' 1등을 거머쥘 수 있는 반면, 선수권 경기에서는 1초를 줄이기 위해 경량 프레임을 채용하거나 핸들바 높이를 조정하는 작업이 일상적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봅시다. 2010년대 초반 이전의 수능이 전자에 가까웠다면, 현재의 수능은 단연 후자입니다. 더 큰 문제는 두 유형의 자전거들이 동일한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보가 충분한 서울권 선수들이 자전거의 경량화와 최적화에 몰두하며 1~3등급 이내의 등급 경쟁을 격화시키는 동안, 지방의 선수들은 동네 마실용 자전거를 타고 "우린 왜 이렇게 성적이 안 나올까?"라는 자책에 빠지는 겁니다.
<p.200>
그런데 강사의 존재는 곧잘 착시를 일으킵니다. 사람이 눈앞에서 말하고 움직이는데다가 동영상을 재생하기만 하면 진도율이 올라가는 까닭에, 인터넷강의가 실상 수험서에 적힌 텍스트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 간과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수험생들은 수준에 맞지 않는 강의를 들으면서도, 실제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무언가 해낸 기분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특히 고난도 문제풀이 강의는 '일단 눈앞에서 문제가 풀리기 때문에' 착각이 더 심하지요.
<p.220>
"옛날에는 수험생들이 인터넷강의 자체를 꼭 필요한 것만 샀어. 그런데 지금은 업체에서 워낙 통으로 팔다보니 몇몇 수험생들이 착각에 빠지는 거야. '동네 학원이나 학교 선생님들한테 못 들어본 지식이다'라는 느낌이 오면 뭐든 배우려 하는 식으로. 한 강의도 놓치기 싫으니까. 그런데 이게 실제로는 자기 공부 시간을 줄이는 거야. 축구를 예로 들자면, 옛날에는 인강이 수준 높은 경기를 분석하고 정보를 얻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선수들이 공은 안 차고 그냥 스튜디오에서 경기만 보는 거야. 그러면 자기가 축구할 시간이 없어."
- 강필(전 티치미, 다호라 인강 강사)
<p.222>
요컨대 해당 주장들이 그려내는 입시제도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분야를 명확히 아는 스페셜리스트'가 될 것을 요구하며 학교 현장은 거기에 순응합니다. 그러나 사실 고등학생들은 각 학문의 기초조차 모르는 상태입니다. 볶기, 굽기, 삶기, 튀기기(그리고 주방 이용 방식)부터 배워야 하는 학생들에게 '프랑스 요리를 전공으로 하겠느냐, 중국 요리를 전공으로 하겠느냐'부터 묻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학문적 기초를 제대로 쌓지 못하 상태로 전문가가 되느라, 즉 '대학이 보고 좋아할 만한 활동 경험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부터 만드느라 내실을 잃게 되지요. 이는 올바른 학습 과정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선행학습 하면 흔히 떠올리는 초등 의대반 등과는 다른 의미로) 선행학습 유발 요소로도 작용합니다. 대학의 몫이어야 할 교습 과정이 개별 학교와 학생, 학부모에게 떠넘겨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p.232>
<원숭이 꽃신>이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어느날 오소리가 원숭이에게 푹신푹신한 꽃신을 선물해줍니다. 걷다가 돌을 밟아도 아픔을 느끼지 않고, 겨울에는 따뜻하기까지 하니 원숭이로서는 기쁠 따름입니다. 그런데 신발이 다 닳아서 신을 수 없을 지경이 되자 문제가 시작됩니다. 그간 굳은살이 사라진 탓에, 맨발로 다니자니 너무도 아파 걸을 수가 없는 겁니다. 원숭이가 새로운 꽃신을 달라 부탁하자 오소리는 꽃신 값을 요구합니다. 원숭이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꽃신 밑창이 닳을 때마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원숭이는 필요하지도 않았던 꽃신 때문에 큰 부담을 짊어지게 되지요(물론 꽃신은 여전히 푹신하고 따뜻하며, 오소리는 원숭이가 맨발로 걷는 것을 막지 않습니다...)
오소리와 원숭이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자발적인 결정이 이루어졌으니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요? 한편 꽃신은 어떨까요? 돌밭 위를 걷게 도와주고 추위까지 막아주니 좋은 물건이라 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굳은살을 없애고 원숭이를 곤경으로 밀어넣었으니 나쁜 물건이 되는 걸까요?
<p.245>
19세기의 골드러시로 부자가 된 사람은 광부가 아니라 청바지 공장 사장이었다고들 하고, 카지노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카지노 주인뿐입니다. 사교육의 고도화로 누가 이득을 보는지는 명약관화합니다. 상대평가 체제하에서는 무한한 군비경쟁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학생들은 내실 갖춘 지식을 폭넓게 배우기보다는 수능에만 쓰이고 끝나는 문제풀이 스킬을 갈고 닦으니 교육적인 효용조차 없습니다. 더 나아가 사교육은 다른 서비스 산업에 투자될 수 있었던 자원을 집어삼키는 '내수 구멍'으로 기능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상황이 음모의 결과가 아니거니와 사교육을 탓해서 해결될 일조차 아니라는 데에 있습니다. <원숭이 꽃신> 이야기에서는 오소리가 원숭이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안겨주면서 일이 커졌으니 오소리에게 기망의 죄를 물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교육의 고도화는 그 반대입니다. 악의를 가지고 수험생을 속인 사람은 없습니다. 사교육 업계가 단체로, 수능 난이도를 올려달라고 로비를 벌인 것도 아닙니다. 50만 수험생 모두가 조금이나마 더 좋은 꽃신을 신고, 조금이나마 더 빨리 달려 나가길 바랐을 뿐입니다. 시장은 원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물건을 주는 장소지요.
<p.281>
그러나 유일하게, 매 순간 승리하며 부단히 성장하는 주체가 있습니다. 바로 대형 학원과 수험생 커뮤니티입니다. 이들은 매 순간 부품들을 갈아끼우며 부품끼리의 상호작용을 중개함으로써 중간 이윤을 얻는 자가보수 기계로서의 플랫폼이고, 수능 콘텐츠 산업 그 자체입니다.
<p.320>
"기성세대한테는 사교육 하면 무한경쟁, 생존경쟁 같은 측면만 강조되지만 학생들한테는 그 이상의 문화인 거죠. 수능이라는 시험 하나에 너무 과몰입을 하고 있다, 컬트 문화적인 구석이 있다, 커뮤니티가 그런 인식을 강화하는 면이 크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누가 제일 나쁘냐'라는 질문에 제 감정을 이입하자면 가장 나쁜 건 커뮤니티라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모인 커뮤니티가 그런 흐름을 스스로 재생산하는 면이 명백히 있는 거고. 또 오르비 자체도 사이트로서 생존하기 위해 그런 부분을 조장하지 않았나 싶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서 커뮤니티를 강제로 닫을까요?"
- 국어 연구원 T(기업형 연구소 소속)
<p.325>
공부의 문화화
입시와 공부, 그것도 고등학교 수준의 공부가 수단을 넘어선 문화가 되었으며 그 향유자의 규모가 상당하다는 사실은 한국사회의 결핍을 방증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학생이 열의를 지니고 몰두할 분야가 부족하거니와 성인조차도 수험의 경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일테니까요. 하지만 이런 거시론은 전면적인 변혁만을 강조하게 된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대신 이렇게 물어보겠습니다.
이토록 강한 열망은, 과몰입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서는 주로 어디에서 공유되고 심화되는 것일까요?
수험생 커뮤니티입니다.
<p.332>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대학 이후의 삶을 겪기도 전부터 학벌의 힘을 깨닫게 됩니다. 특목고, 자사고 학생의 경험과 지방 일반고 학생의 경험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특정한 집단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자체로 이득이 발생하는구나. 내가 소속된 집단이 나 자신보다 중요할 수 있구나" 하고 실감하면서 그 질서에 순응하는 겁니다. 게다가 이러한 영향력은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까닭에, 소외당하는 학생이라도 당위를 믿지 못합니다. "이 X반고에 온 내 잘못이고, 특목고에 가지 못한 내 잘못이다." 라고 느끼며 차별의 위계와 무력감을 내면화할 뿐이지요.
이것이 바로 학벌주의가 집단적 믿음 이상의 실체로 자리매김하는 방식입니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밀어주고, 특정 집단 내에서만 공유되는 정보를 특권화하고, 외부자의 접근 시도를 교묘하게 저지하는 배타주의가 실제적인 이득과 직결되는 이상 간판의 힘은 여전할 수밖에 없지요. 게다가 이 모든 과정에는 대학의 에고티즘이 연루되어 있습니다. '배움의 장'으로 기능하며 공공의 선을 추구해야만 할 고등교육기관이, 입시 경쟁의 규칙을 적극적으로 조작함으로써 고등학생들에게 학벌주의를 주입하는 것입니다.
극심한 학벌주의는 국가적 성장동력을 소모시킵니다. 무수한 사람이 학벌주의에 발목이 잡혀 좌절을 겪는 중이고, 심지어 고등학생들마저 '고등학교 간판'의 힘을 체감하며 좌절의 자장에 포섭되는 상황입니다. 사회와 제도는, 교육기관은 그 좌절에 대해 "열심히 해서 특목고에 갔어야지..." 이상의 대답을 내놓을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순환이 존재하는 이상, 다른 무엇보다도 대학이 먼저 응답해야만 합니다.
<p.448>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이다. 이 말에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교육과 관련이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수능을 앞둔 자녀가 있는 것도 아니고,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와서 수능을 다시 치를 것도 아닌데 처음부터 끝까지 수능 얘기만 하는 이 책에서 그렇게 큰 인상을 받다니? 그런데 정말로 나는 이 책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이유로 첫 번째는 요즘 수능이 내가 알던 수능과는 전혀 딴판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고 두 번째는 내가 가진 자녀 교육 철학과 상충되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나 하는 걱정 때문이고 세 번째로는 글 자체가 중간에 멈추기 어려울 정도로 흥미롭게 잘 쓰였기 때문이다.
나는 우연한 기회로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사실 책을 구입한 건 작년 초였는데 한참을 책꽂이에 꽂혀 있다가 '어디 읽을만 한 책 없나' 둘러보던 중에 마지못해 이 책을 꺼내 읽게 되었다. 그만큼 사놓고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생각보다 두꺼운 책의 두께와 왠지 모르게 음모론을 다루고 있을 것 같은 책의 표지 때문인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수능'이라는 소재는 나처럼 평범한 일반인에게는 '나도 수능 쳐봤고, 우리 때도 수능 말 많았는데, 지나고 다면 다 추억이야'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이 점은 대한민국 남자들이 흔히 군대를 떠올릴 때 하는 생각과 매우 비슷한 듯하다. 군대 안에 있을 때는 뭐 이딴 곳이 다 있냐면서 온갖 부조리에 분노하거나 저항하기도 하고 혹은 반대로 군생활의 달인 비슷하게 되어 좀 더 개선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하다가도 전역하고 나면 바로 남 일이 돼버린 것처럼 무관심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치명적인 이유 때문에 이 책이 생각보다 대중들에게 많이 읽히지 않았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수능이 그 환경 안에 있는 소수의 몇몇 집단에 의해서만 좌지우지되다 보니 결과적으로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책에 나온 두 가지 개념에 초점을 맞춰 내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하나는 '수능 시험의 퍼즐화' 이고, 다른 하나는 '공부의 문화화'이다.
첫번째로 '수능 시험의 퍼즐화'이다. 저자에 의하면 2020년대 이후 수능은 시험범위의 축소와 변별력 유지 때문에 개념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능력보다는 제한 시간 내에 극도로 복잡해진 문제를 푸는 능력을 검증하는 시험으로 변질되었다고 한다. 더 이상 개념에 대한 이해만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어졌고 각 문제 유형에 대한 문제 풀이 방법을 파악하고 있어야 풀 수 있기에 수능이 퍼즐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약간 의아했다. '그건 나 때도 마찬가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때도 수능은 항상 시간에 쫓겨가며 문제를 풀었고, 개념에 대한 이해만큼이나 문제 푸는 요령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 책에서 예시로 든 몇몇 문제를 풀어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아무리 수능 치른 지 오래되었다고 해도 문제부터 이해가 안 될 정도로 개념도 낯설고 용어도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혹시 책에서 극단적인 예시를 든 것이 아닐까 하여 직접 인터넷을 통해 2009학년도 수능 화학 1 문제와 2026학년도 수능 화학 1 문제를 비교해 봤다. (나는 2009학년도 수능을 봤다. 17년이 지난 이후로 처음 다시 본 문제인데도 놀랍게도 대부분 문제의 답이 기억이 났다.) 결과는 더 놀라웠다. 같은 과목을 배운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문제가 확연하게 달랐다. 2026학년도 수능 화학 1 문제는 개념을 묻는 문제는 거의 없었고 온통 숫자와 공식과 계산 투성이었다. 대부분 '이런 문제는 이런 방법으로 풀어야 해'라는 특정 문제 풀이 방법에 대해 알고 있어야만 풀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요즘 수능이 이런 식의 문제들로 이루어져있다면 더 이상 예전처럼 혼자서 교과서와 참고서를 읽으며 개념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문제를 읽고 해답을 찾는 식의 공부로는 점수를 올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변질된 수능을 루빅스 큐브 푸는 것에 비교했다. 이 비유는 내게 찰떡처럼 와닿았다. 왜냐하면 바로 내가 고등학생 때 루빅스 큐브에 빠져서 공부하는 틈틈이 큐브 공식들을 외우곤 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내가 큐브를 맞추며 했던 의문이 저자가 수능에 대하여 갖는 의문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것은 바로 '어느 순간부터는 원리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하고 공식의 암기로서만 큐브를 풀 수 있는 걸까?'이다.
완전히 어질러진 큐브의 색을 한 면씩 맞춰 가는 과정은 처음 몇 단계까진 이해가 된다. 예를 들어 '이 색을 여기에 잠깐 가져다 놓았다가 다른 색을 옮겨 놓고 다시 원래 자리에 놓으면 한 면을 맞출 수 있다' 같은 방식이다. 그러나 중간 단계 이상이 되면 원리가 이해가 안 되기 시작한다. '이걸 여기에 놓고, 반대쪽을 돌리고, 저걸 여기에 놨다가, 이걸 바꾸고, 한 번 더 돌리면... 이게 어떻게 이렇게 되는 거지?' 라는 식으로 색이 맞춰지는 원리나 이유를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 그러나 이해가 안 되더라도 공식에 나온 대로 큐브를 돌리다 보면 어느 순간 6면의 색이 절묘하게 다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한 번 큐브를 맞추는 방법을 익히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암기와 반복이다. 더 다양한 공식을 외울수록 (여전히 이해는 안 되지만) 더 다양한 상황에서 지름길을 알고 있는 것과 같기 때문에 더 빠르게 큐브를 맞출 수 있다. 결국 큐브를 빠르게 맞출 수 있다는 건 더 많은 공식을 암기하고 숙달되었다는 뜻이지, 머리가 좋거나 사고력이 뛰어나서 큐브가 풀리는 원리를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이 책에 의하면 수능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에는 개념에 대한 이해와 응용으로 수능 문제를 풀 수 있었다. 그러나 수능의 퍼즐화가 진행된 2020년대 이후의 수능은 그렇지 않다.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더라도 특정 문제에 적용되는 특정 풀이 공식을 암기하지 않는 한 처음 보는 문제를 풀기 매우 어려워졌다. 즉, 이렇게 풀이 공식을 누가 더 많이 접해봤고, 누가 더 많이 암기했느냐에 따라 점수가 갈리는 이런 문제들로는 개념과 원리에 대한 이해와 진정한 '수학능력'을 평가할 수 없다.
게다가 단순히 수능이 평가도구로서 부적합하다는 사실 외에도 나는 수능 시험의 퍼즐화가 세 가지 부차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수단의 목적화'이다. 입시와 수능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는 것 역시 자신의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수단이 목적으로 주객전도된 상황에서는 이 사실을 자주 잊곤 한다. 수능이 퍼즐처럼 변하기 전에는 수능을 준비하며 배운 개념과 원리를 그나마 대학교 학문의 기초로써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수능이 문제 풀이 공식의 암기 테스트로 변질된 현 상황에서는 그것마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열심히 노력해서 익힌 기술이 대학 입학 후에는 그 어디에도 쓸모없는 기술이 돼버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능의 퍼즐화는 수단의 목적화를 더욱 강화시키기에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두번째는 '사회적 자원 낭비'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스무 살 이후로는 아무 쓸모도, 소용도 없지만 이미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되어버린 수능 공부 때문에 어마어마한 사회적 자원이 낭비되고 있다. 실제로 국내 사교육 시장 규모는 약 27조 원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는 국내 출판 산업 규모(약 5조 원), 화장품 시장 규모(약 17조 원), 가구 시장 규모(약 18조 원)에 비하면 매우 큰 규모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사교육 시장 통계에 활용된 대상은 초, 중, 고등학교 학생들인데 이 숫자는 약 500만 명으로 우리나라 인구의 10분의 1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10분의 1의 인구가 사교육에 쓰는 돈이 전 국민이 책 관련해서 쓰는 돈보다 5배 많고, 화장품이나 가구 관련해서 쓰는 돈보다 1.5배 많은 것이다. 이렇게 많은 돈이 아이들에게 실질적으로 교육적 효과가 있다거나 아니면 우리나라 인적 자원 향상에 쓰인다면 이렇게까지 아깝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돈이 수능만 끝나면 학교 운동장에 버려지는 산더미 같은 참고서처럼 초,중,고등학교 생활이 끝나면 아무 쓸모도 없는 지식에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매년 27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오로지 그 해에 태어난 아이들을 차례대로 줄 세우는 것 외에는 딱히 쓸모없는 일에 허비되고 있다.
세번째는 '사고의 외주화'이다. 이 책에서 제시된 이 개념은 극도로 난해한 퍼즐처럼 변해버린 수능 문제 탓에 본인 스스로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대신 사교육 업체가 제공하는 문제 풀이 기술과 공식을 이용하여 문제를 푸는 현상을 의미한다. 나는 이 점이 특히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시험을 보는 가장 큰 목적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잘 이해했는지 검증하고, 이 지식을 응용하여 연관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데에 있다. 결과적으로 학교에서 하는 공부의 근본적인 목적은 지식의 습득과 이해, 응용 및 적용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논리적 사고 과정의 훈련이라는 의미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성인이 된 후에 새롭게 접하게 될 지식이나 기술을 익히는 데에 단단한 밑바탕을 만들어주는 데에 학교 공부의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형적으로 변해버린 현재 수능 상황 아래에서는 이러한 '논리적 사고 과정의 훈련'의 중요성이 배제된다. '이런 지식을 토대로 이런 생각을 했고, 이런 생각을 해보니 이렇게 해결할 수 있었다.' 같은 과정 없이 '이런 문제는 이렇게 풀면 된다. 풀이 과정을 이해하려드는 것은 시간 낭비이므로 그냥 외우는 게 빠르다.'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나의 주체적인 사고는 사라지고 외부에서 정한 결정에 따르는 것, 이것이 '사고의 외주화'의 큰 문제점이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사교육에서 정해주는 대로 하던 학생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주체적인 사고 대신 권위에 기대거나 혹은 여론을 따르는 식으로 사고 과정을 타인에게 떠넘기는데 익숙해진다. 이렇게 '수능의 퍼즐화'는 단순히 수능 점수나 입시에만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학생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과 태도에 있어서도 큰 영향을 주기에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수능의 퍼즐화'가 내가 인상 깊게 생각한 첫번째 개념이었다면 두 번째 개념은 '공부의 문화화'이다. 책에 의하면 현재 입시와 공부는 일종의 수험생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처럼 변했고 그 규모가 상당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수험생 커뮤니티가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오랜만에 다시 '오르비'에 들어가 봤다. '오르비'는 주로 학생들과 재수생들로 이루어진 국내 최대 입시 커뮤니티 사이트이다. 나도 2008년에 09년도 입시를 준비하면서 우연한 기회로 이 사이트를 알게 되어 몇 번 들어가곤 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오랜만에 다시 접속한 오르비 사이트는 내 기억과는 180도 달라져 있었다. 과거에는 게시판도 몇 개 없었고 기껏해야 본인 점수 올리고 대학 입시 상담하는 정도였던 것 같은데 요즘 오르비는 내가 느끼기에 완전히 상업화가 되어 있었고, 매우 폐쇄적이었고, 보수적이었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디시, 에펨, 더쿠, 보배드림, 클리앙 같은 사이트와 별 다를 게 없었다. 글쓴이의 말투도 비슷했고 올라오는 내용도 비슷해서 이게 과연 아직 고등학생인 아이들이 쓴 글이 맞나? 진짜 학생들이 하는 생각이 맞나? 싶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인터넷 커뮤니티가 우리 사회에 굉장히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책에서 이런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인터넷이 발명되고 막 도입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 세상에 큰 기대를 했다. 이제 앞으로는 모두가 평등하게 정보를 접할 수 있고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을테니 지금보다 깨어 있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사회는 더 민주적으로 변할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인터넷 도입 후 약 30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그 기대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자유로운 인터넷 공간 속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더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익명성에 기대 더 쉽게 그들과 뭉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이 커뮤니티로 이어졌다. 자신이 선호하는 정보, 자신과 일치하는 의견만이 가득한 그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세계관은 왜곡되고 현실과의 괴리가 심해진다. 그들에게는 커뮤니티 속 세상이 평균이고 현실이 비정상이 된다. 최근 사회적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좀처럼 의견의 수용과 합의가 어려워지는 이유가 나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 이러한 커뮤니티의 악영향이 학생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매개는 고등학교 교육 과정에 불과한 공부와 입시에 관한 커뮤니티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부의 문화화'는 잠시 거쳐가는 기간에 불과한 고등학교 공부와 대학 입시를 수험생들이 소비하고 향유하는 문화로 만들어 그들만의 폐쇄적인 집단을 만들고 특정 세계관을 주입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상업화 된 입시 커뮤니티에서 문화처럼 번지는 '공부'는 결국 사교육이고 '공부문화'는 사교육 시장에 불과하다. 커뮤니티 내에서 어떤 문화가 생겨나고 있는지, 어떤 대화들을 주고 받고 있는지는 사람들의 관심과 규제 밖에 있다. '그냥 학생들이 스트레스도 풀 겸 얘기하는 거겠지' 정도로 치부해 버린다면 인터넷과 커뮤니티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사회 경험이 부족한 학생들은 특히 취약하여 이런 커뮤니티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왜곡된 자아를 가질 수도 있고 세상에 대한 시선 역시 한쪽으로 치우질 우려도 있다. 그런 점에서 '공부의 문화화' 역시 학창 시절과 수능 시험을 끝으로 그 영향력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남은 인생의 여러 여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반드시 짚어보아야 할 문제이다.
이것 저것 적다 보니 두서없이 글이 길어진 것 같다. 결론은 이러하다.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수능은 교육 철학이 사라진 퍼즐 문제가 되어버렸고, 학생들은 사교육 커뮤니티 사이트에 모여 공부를 일종의 문화처럼 소비하고 있다. 학생들은 고등학교 3년 동안 수능 준비를 하며 단순히 불필요한 공부를 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넘어 편협한 가치관과 왜곡된 세계관이 가득한 커뮤니티 속 세상에 살다가 현실 사회에 첫 발을 디디게 된다. 이것이 현재 수능이 가진 가장 큰 문제이다. 2008년 11월에 수능을 치르고 2026년이 될 때까지 대한민국 교육 과정과 수능에 아무 관심이 없었던 나 스스로를 반성하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현재 교육 상황과 수능의 심각성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에 이 글을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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