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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도시의 사랑법 > 박상영, 2019 (eBook)

by Ditmars 2026. 2. 10.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2019 (eBook)

 

 수술을 마친 후 엄마는 복부에 피 주머니와 관을 줄줄이 꽂고서도 새벽 다섯시에 득달같이 일어나 침대에 앉았다. 협탁에 촛불을 켜놓고 30분이 넘도록 손을 모아 기도를 했다. 배며 다리가 접히는게 환부의 회복에 좋을 리 없는데도 구태여 그런 습관을 반복했다. 기도를 마친 후에는 침대의 식탁을 펴놓고 하루에 몇 장씩 성경 구절을 써내려갔다. 나는 그녀의 집요한 피랏가 구도자의 고행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본의 아니게 일어난 불행에 대해 울고불고 난리를 치고 머리를 쥐어뜯고 소리를 지르는 대신 모나미 볼펜으로 공책에 꾹꾹 성경을 눌러쓰는 방식을 택한 것이겠지. 마취조차 거부했던 엄마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삶의 방편이었기에 그녀의 필사는 일종의 호흡처럼 느껴졌다.
 들숨에 한 글자, 날숨에 한 글자.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지난 시간 동안 앓았던 열망과도 닮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상에 대한 열망? 대상에 사로잡혀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에 대한 열망?
 그래, 한없이 나 자신에 대한 열망.
 예수를 사랑하고 누구보다 열렬히 삶에 투신하는 자신에 대한 열망. 어쩌면 한때 내가 그를 향해 가졌던 마음, 그 사로잡힘, 단 한 순간도 벗어날 수 없었던 그 에너지도 종교에 가까운 것일지 모르겠다. 새까만 영역에 온몸을 던져버리는 종류의 사랑. 그것을 수십년간 반복할 수도 있는 것인가. 그것은 어떤 형태의 삶인가.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 것인가.

<우럭 한점 우주의 맛,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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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 얘기하자면 이 책은 동성애를 다룬 소설이다. 그리고 지긋지긋하게 게이들의 섹스 얘기가 많이 나온다. 나는 개인적으로 퀴어에 대한 담론이 유행처럼 번져 있는 현재의 국문학 상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동성애는 쿨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봤다. 아마 그때가 처음으로 동성애라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접했던 때인 것 같다. 영화 속에는 미성년자가 보기에 다소 충격적인 장면도 있었으나 수려한 주인공들의 연기와 멋진 연출 그리고 무엇보다 화려한 수상 경력과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100가지 영화' 중 하나라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그 영화가 '쿨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래서 한창 '쿨해' 보이고 싶던 20대 초반에 나는 내 영어 이름을 'Ennis'로 정했다. 그리고 누군가 어디서 따온 이름이냐고 물으면 <브로크백 마운틴>을 인상 깊게 봐서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뜨악스러운 말을 하고 다니곤 했다. 그러다 군대를 전역할 무렵 우연히 인터넷에서 '동성애자의 양심고백'이라는 글을 읽었다. 이 글을 통해 '식성', '찜방', '성병' 등 내가 몰랐던 동성애의 다른 면을 알게 되었다. 사실 당시에는 그것 역시 영화 속 장면처럼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졌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여자친구가 생기고 사랑에는 정신적 요소만큼이나 육체적 요소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동성애에 대해 갖고 있던 모든 환상이 현실 속에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구체화된 그것(항문성교)은 내가 차마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는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되었다. 

 

 어쩌면 나의 이런 감정은 동성 간의 육체적 관계라는 동성애의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에서 느끼는 배신감에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전까지 나는 동생애를 일종의 플라토닉 사랑이라던지 혹은 이성애보다 한 차원 더 숭고하고 낭만적인 그 무언가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동성애를 지지하고, 성소수자를 인정하고, 성적 다양성을 포용하는 행위는 보다 깨어 있고 성숙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쿨한' 태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그 이면에는 육체적 쾌락 추구와 문란한 성생활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더 나아가 과거에 내가 가졌던 동성애에 대한 생각들이 현대의 상업주의가 교묘하게 만든 동성애에 대한 환상이거나 주류에 대항하는 비주류의 한 갈래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늘 돈이 모일 만한 곳으로 모여들기 때문에 미화된 동성애가 기존의 문법에 식상한 대중들에게 참신한 소재로서 먹힌다는 것을 깨달은 기업과 미디어가 동성애를 상업적으로 이용한다고 보는 것이고, 동성애 자체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저 '비주류(소수)를 차별하지 말고 존중하라'는 기성 문화에 대한 저항 정신의 도구로서 이용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사회의 여러 동성애 지지자 중에서는 동성애가 정확히 뭔지, 어떻게 이뤄지는지 모르지만 아름답다고 하니, 존중해 달라고 하니, 쿨하다고 하니 그것을 지지하는 것이 아닐까? 마치 여성들이 육체적인 사랑에 대한 묘사는 없는 잘생긴 주인공들의 낭만적인 BL 소설 같은 걸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퀴어를 다룬 소설을 읽을 때면 작가의 본심이 궁금하다. 진짜 동성애와 그들의 섹스를 알면서도 이렇게 옹호하는 건지 아니면 동성애 코드가 요즘 잘 먹히고 어딘가 있어 보이기 때문에 소재로 사용하는 건지 말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여태까지 읽은 퀴어 소설 중에서 가장 문란하고 동성 간 섹스 신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에 맞게 수위도 엄청 셌다. 에이즈를 의인화하여 미화한 것부터 콘돔을 빼고 하고 싶다거나 피가 난다거나, 남자들을 바꿔가면서 잤다거나, 성기 사이즈를 얘기하는 것 등이 동성 간의 섹스를 쿨한 태도로 노골적으로 묘사한 내용을 읽을 때면 솔직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아무튼... 이 책을 읽어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조심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