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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한 하루를 꿈꾸는 허술한 우리 > 정은표, 김하얀, 2024

by Ditmars 2025. 12. 30.

<완벽한 하루를 꿈꾸는 허술한 우리> 정은표, 김하얀, 2024

 

 우리 집은 '아침에 행복하자'가 나름 삶의 목표 중 하나인데요, 행복하게 사는 게 인생의 목표인 저와 아내가 행복의 시작점은 아침이 아닐까 생각해서 그렇게 정했습니다. 아침에 행복하면 하루 종일 행복할 수 있지만 아침에 기분이 조금이라도 상하면 하루 종일 행복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아침에 각자가 기울이는 노력들이 있습니다.
 엄마 아빠는 화내는 걸 최대한 자제합니다. 사실 아침엔 불화가 생길 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지요. 특히 집에 초등학생이 있으면 더 그렇습니다. 피곤한 아이 잠 깨우는 일, 준비물 챙기는 일, 밥 먹는 거, 세수하는 거 등등 일일히 나열하기가 힘들 정도지요. 하지만 아이는 미리미리 자기가 할 일을 알아서 챙기고, 엄마 아빠는 조그만 실수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여유 있게 상황을 대하다 보면 다툴 일보다 웃을 일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선 아침마다 축제가 열립니다.

<p.10>

 

 하은이도 지웅이처럼 책을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처음에는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오빠를 칭찬하고, 그걸 이용해서 자극을 주면 하은이도 승부욕이 있으니 자극 받아서 책을 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나더라구요. 오빠는 잘하는데 나는 못해, 오빠는 공부도 잘하는데 나는 못해, 이런 식으로요. 우리 부부는 다행히도 모 방송 출연 중 전문가의 도움으로 그런 하은이의 소극적인 모습이 우리 잘못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두 살 많은 지웅이는 항상 뭐든지 빨라 그때마다 우리 부부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 칭찬이 하은이를 위축시키고 소극적인 아이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지웅이가 칭찬받을 때마다 하은이는 '오빠는 잘하는데 나는 못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는 거죠.
 전문가들은 우리에게 거꾸로 칭찬법을 알려줬습니다. 지웅이가 잘하는 걸 하은이에게 칭찬해주고 하은이가 잘하는 걸 지웅이에게 말해주는 건데, 예를 들어 어느 날 하은이가 책을 읽고 있으면 칭찬을 해주는 거죠. "와, 지웅이도 책을 좋아하는데 하은이는 더 좋아하는 것 같네. 2년 후에는 하은이가 책을 더 많이 읽을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칭찬을 하면 하은이는 으쓱해하면서 의욕을 얻고, 책을 훨씬 많이 읽는 지웅이는 절대 상처받을 일이 없는 거죠. '칭찬을 고래를 춤추게 한다.'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칭찬을 잘못하면 할아버지 수염을 잡아 당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칭찬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부부는 거꾸로 칭찬법과 기를 살려주는 칭찬이나 말들을 통해 하은이를 적극적이고 의욕적인 성격의 아이로 바꿔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만화책만 좋아하던 하은이는 만화 한 권 읽으면 글밥 적은 글책도 한 권 읽는 징검다리 학습법을 통해 조금씩 책 읽는 양을 늘려서 지웅이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많은 양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p.14>

 

 가끔 우리 부부가 아이들한테 하는 대책 없는 행동을 보고 놀라거나 걱정하는 분들이 있다. 사실 우리 부부는 특별하게 정해놓은 교육관이 있지는 않다. 무슨 일이든 그 상황에 맞게 대화를 많이 했고 생각을 맞추려 노력했을 뿐이다. 다행히 아내나 나나 서로의 생각을 듣는 걸 좋아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흘러온 것 같다.
 아이들도 우리가 소유하고 가르쳐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같이 살아가고 함께 성장하는 사이가 아닌가 싶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비로소 우리도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p.130>

 

 나는 남편에게 하은이의 염색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때 남편과 내가 내린 결론은 '어차피 중학교 들어가면 염색이나 펌 같은 건 못할 테니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걸 하게 두어 나중에 아쉬움이나 후회를 갖지 않게 하자.'였다.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이라면 단호하게 통제해야겠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게 하은이는 파란색으로 첫 염색을 했고, 나중에 검은색으로 돌아갔다가 노란색으로도 해 보는 등 네 번 정도 색을 바꾸었다. 우리 부부는 처음에는 딸내미 멋내기에 돈이 엄청 든다고 구시렁댔고, 나중에는 머리카락과 두피가 상할까봐 전전긍긍했다.
 하은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어느 날 무심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그때 엄마랑 아빠가 화장이나 머리 염색을 못하게 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게 해줘서인지 지금은 그런 거에 아무 관심이 없어. 이것저것 해 보고 싶은 게 최고로 많을 때 하고 싶은 걸 다 해 봐서 그런가 봐. 정말 고마워."
 그 말 듣고 아무렇지 않은 척 "그랬어?" 하고 넘어갔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말해주는 딸이 얼마나 기특하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남편과 내가 심사숙고해 내린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정말 기뻤다.
 얼마 전, 당시 하은이를 가르쳤던 선생님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저는 어머니께서 굉장히 보수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은이가 염색하고 화장을 해도 뭐라 하지 않으셔서 처음에는 의아했어요. 저라면 못하게 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하은이를 보면서 어머니의 판단이 틀리지 않으셨구나, 대단하시다 생각했어요."
 나이가 들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내 방법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지만 숱한 시행착오와 고민을 통해 아이들이 성장하고 또 내가 성장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가까이에 나의 마음과 의도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p.152>

 

 하은이는 집에 오면 내가 먹는 효소와 유산균을 뺏어 먹는다. 기숙사에 있다가 집에 오면 아무래도 과식을 하게 되니 속이 부대낀다면서 끼니때마다 내 효소를 먹는다. 문제는 효소와 유산균 봉지 윗부분을 잘라 털어 먹고는 빈 봉지를 딱 먹은 그 자리에 두고 간다는 거다. 처음에는 보이는 대로 치워줬는데 어느 날부터는 나도 부아가 나기 시작했다. 하은이가 기숙사로 돌아간 뒤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봉지를 보고 있으면 왜 그렇게 짜증이 나던지.
 벼르고 벼르던 어느 날(나도 기분이 별로였던 날인 것 같다) 하은이에게 못 참고 얘기했다. "하은아, 이거 먹었으면 쓰레기통에 버려. 왜 맨날 여기다 그냥 두고 가? 누가 치우라고?" 소리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꾹 누르고 최대한 냉정하게 얘기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랬더니 하은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알았어." 한다. 그래, 알았다고 했으니 어디 두고 보자. 한 번 만 더 걸려라. 내 마음이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그 후 한 번도 그 봉지를 내가 치운 적이 없다. 나는 그날 소리소리 지르며 화내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아무 생각 없이 했던 행동이고 엄마가 앞으로는 주의하라고 했으니 그 말을 따르고 있는 거다. 나를 골탕먹이거나 귀찮게 하려 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 거였다. 아이는 아이다.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라면 이렇게 부탁하거나 올바른 방법을 알려주면 되는 거구나.

<p.154>

 

 지웅이, 하은이가 어려서부터 공부 잘한다는 소문(헛소문임)이 나면서 우리 부부는 공부법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한 게 없어요. 애들이 알아서 했지."라고 말하곤 했다. 이 말은 사실이다. 학습에 관해서는 우리는 정말 관여하지 않았기에 틀린 말이 절대 아니다.
 아이들 공부를 어떻게 가르쳤는지, 엄마 아빠가 학습을 어떻게 이끌어줬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이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 부분을 찾아내는 게 제일 힘들었다. 왜냐하면 정말 우리가 한 것이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조금은 한 것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우리의 대화법이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하는, 자기주도가 가능한 아이들로 만든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진단해 본다.
 사실 우리 부부가 좀 영악하다. 우리 스스로 내린 진단이긴 하지만 둘 다 잔머리가 보통이 아니다. 아이들 키우면서 무슨 일을 진행할 때 혹은 결정해야 할 때면 마지막에는 꼭 아이들이 스스로 하게 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스스로 하는 것처럼 '믿게' 하는 거다.

<p.170>

 

 아이 키우는 일에는 어느 부모나 각자의 정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다른 집 아이가 더 좋아 보이거나 잘나 보인다면 그 집 아이가 우리 아이보다 큰 아이인 경우가 많을 거다. 그들도 아이가 우리 아이만 할 때는 저렇게 능숙하지 않았을 거고, 지금의 나보다 어설펐을 거라 생각하면 된다. 쉽게 말해 내가 아이 키우면서 힘들면 어쩌면 저 사람은 더 힘들었을 거고, 우리 아이보다 두 살 많은 저 집 아이가 더 똑똑해 보이면 2년 후 내 아이는 저 아이보다 훨씬 똑똑할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동갑인데 우리 아이보다 잘 걷거나 말을 잘하는 것도 부러워할 것 없다. 시간이 지나면 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p.199>

 

 가족이 너무 편하다 보니 간혹 실수하는 일들이 생기는 것 같다. 우리 아이가 뭘 많이 먹으면 살찐다고 야단을 치면서 남의 아이가 많이 먹으면 "괜찮아. 키로 갈 거야." 이렇게 말한 적은 없는지, 내 아내나 아이들한테 부정적인 말로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아마도 똑같은 상황이 다른 사람에게 벌어지면 대부분은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을 것이기에.
 내 가족을 때로는 남처럼 생각해 보자 다짐한다.

<p.213>

 

 나는 아이들한테 퍼주는 스타일이다. 반면 아내는 아이들은 부족한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약간의 결핍이 아이를 더 단단하게 하고, 절실함이 있어야 스스로 더욱 노력할 거라는 것이다. 물론 동의한다. 젊은 시절 내가 열심히 노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절실함과 가난이었던 걸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힘든 길을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우리는 가끔 이런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하는데 결론을 내기도 답을 내기도 쉽지 않다.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쉽게 꺾지도 않는다. 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하나로 모아진다. 아이들이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우리 아이들이 부모가 주는 걸 당연하게만 여기지 않고 고마워할 줄 알며, 그것을 표현하고 나눌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p.220>

 

 <영재의 비법>에 출연했을 때 지웅이가 아이큐 검사와 영재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그때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지웅이는 아이큐도 높고 영재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검사를 담당했던 교수님은 이런 아이들은 좋은 그릇을 가지고 태어난다며 "부모가 채워주려 노력하면 그릇에 내용물을 꽉 채울 수는 있지만 그다음에는 흘러 넘쳐버린다. 대신 끌고 가지 않고 따라가주면 그릇을 꽉 채우지는 못해도 그릇이 커진다."라고 말해주셨습니다.
 그날 교수님의 조언은 우리 부부가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에 확신을 심어줬습니다.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기는 했지만 끌고 가지 말고 따라가라는 말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분명 우리보다 더 큰 그릇의 아이가 되도록 이끌어야 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내나 나나 아주 큰 그릇은 아닌 것 같으니 아이들이 스스로 큰 그릇을 만들도록 기다려주고 따라가려 노력했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쉬운 길을 어렵게 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 참견하지 않고 따라가는 건 힘든 일이었습니다. 우리 눈에 너무 쉬운 것 혹은 쉬운 길도 어렵게 간다는 걸 알지만 스스로 실패도 경험하고 아픔도 느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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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정은표 배우의 가족 이야기다. 특별히 대단한 내용이 있다거나 글솜씨가 엄청나게 좋다고 할 수 없는 이 책에 많은 사람들이 웃고 공감하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정은표 배우 가족의 솔직하고 행복 넘치는 삶이 읽는 사람에게도 전염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왜,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행복이 흘러넘치다 못해 그 행복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지는 사람 말이다. 그 넘치는 행복을 이야기를 통해 듣자니 우리 가족도 이렇게 행복 넘치는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살다 보니 가족의 행복을 1순위에 두는 삶을 사는 게 마냥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 역시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여러 고민이 생겼다. 가장 먼저 든 고민은 '지금 살고 있는 곳에 계속 살아도 되는 걸까?'였다. 초등학교부터는 흔히 말하는 '학군'이라는 걸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는데 지금 살고 있는 곳은 학군지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학군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학군지로 이사를 가야 할 텐데 그렇다면 '언제 어디로 이사를 가야 할까?'는 다음 고민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이사 가기 힘들다고 하니 저학년 때 이사를 가야 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가 제일 유명한 학군지 전세나 반전세로 들어가야 할까? 아니면 매수가 가능한 최대 금액의 지역 중에 그나마 학군지로 가야 할까? 그런데 애초에 학군지에 왜 가야 하는 걸까? 학군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가족의 행복을 위한 일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계속하다 보면 결국 내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부모의 근본적인 교육관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문제 속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이것이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인가?' 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다. 부모로서 자녀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기에 나 역시 자녀의 성장 배경과 양육 환경에도 최선의 것을 주고 싶다. 그래서인지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는 마음이 쉽사리 들지 않는다. 지금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 것 같고 지금보다 더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점이 나는 참 이상하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나라는 사람은 남들과의 경쟁과 비교보다는 나 스스로의 성취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통해 만족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왠지 모르게 자녀의 일에 대해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자녀에게 최선을 다 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면 (금전적으로 혹은 시간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핑곗거리라도 있을 텐데 여력이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 하지 않고 여기서 멈추고 만족해 버리는 건 끝까지 노력하지 않았다는 죄책감마저 들게 한다. 쉽게 얘기하자면 학군지로 이사 갈 수 있는 여력이 있는데도 혹은 여러 학원을 보낼 수 있는 여력이 있는데도 가지 않고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고 가만히 놔둔다는 건 내가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 하고, 노력 끝에 얻은 결과에 대해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것이 내 삶의 중요한 가치관인데 자녀 양육에도 같은 가치관을 적용하자니 묘하게 부딪히는 모순점이 생긴다. 무엇이 잘못되을까? 

 이런 저런 고민을 하던 중 사교육 관련 EBS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는데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 영상에서는 자녀를 양육하는 방식에 따라 부모를 '목수'와 '정원사'로 나눴다. 알다시피 목수는 정해진 설계도에 따라 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끼우고 맞춰서 가구를 만드는 사람이고 정원사는 씨앗을 심고 정원을 관리하면서 나무가 잘 자라게 해주는 사람이다. 나는 여기서 내가 가진 질문을 해결할 한 가지 힌트를 발견한 것 같았다. 그것은 바로 '통제'의 문제다. 

 삶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나의 가치관은 근본적으로 나 스스로에 대한 통제, 즉 Self-control과 관련이 있다. 놀고 싶은 것을 참고 공부하고, 귀찮음을 이겨내고 운동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해내고, 순간적인 욕구와 충동을 참아내는 일 등을 '삶에 최선을 다한다'로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삶에 최선을 다하는 방식으로는 나의 주변 환경을 개선하는데 들이는 노력도 있겠으나 나 스스로에게 들일 수 있는 노력에 비하면 그것들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변 환경은 나의 통제 영역 밖에 있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태도가 목수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나 스스로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은 목수가 가구를 정하고 설계도를 그리고 나무를 자르고 다듬는 과정과 같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무는 나 자신이고 목수는 나 자신에 대한 통제를 의미하게 된다. 

 이런 가치관은 개인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바람직한 가치관이다. 그러나 동일한 가치관을 자녀에게 적용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왜냐하면 자녀는 나무가 아니라 씨앗이기 때문이다. 자녀라는 씨앗이 자라 훗날 성인이라는 나무가 되어 스스로의 삶을 완성시킬 수 있는 목수가 되도록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닌가. 그러나 자녀를 나무로 보는 순간 부모는 목수가 돼버리고 만다.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연약한 나무와도 같은 자녀를 설계도에 따라 이리 자르고 저리 다듬으려고 한다면 나무는 바르게 자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부모는 목수가 아니라 정원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무를 키우고 가꾸는 정원사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목수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꽤나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있는 목수와는 다르게 정원사는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정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좋은 흙에 씨앗을 심고 햇빛을 쬐게 하고 정기적으로 물을 주는 것뿐이다. 어떤 나무로 자라게 될지는 전적으로 씨앗에게 달렸다. 만약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정원사가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서 매일 같이 나무를 손으로 잡아 쭉쭉 늘린다거나, 물을 잔뜩 준다거나, 잠도 못 자고 하루 종일 햇빛을 쬐게 한다면 어떨까. 정원사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개인으로서는 목수의 삶을 살고 부모로서는 정원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 목수의 삶은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나 스스로를 통제하는 삶이다. 정원사의 삶은 씨앗을 심고 잘 자랄 수 있도록 지켜보고 돌보는 삶이다. 이 과정에서 삶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목수와 정원사에게 다른 방식으로 적용된다. 자녀라는 씨앗은 정원사의 돌봄으로 성인이라는 나무가 된다. 그리고 훗날 부모를 통해 보고 배운 목수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삶에 있어 목수의 태도로 살아온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통제를 통해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목표를 이뤘다. 이를 기반으로 목수의 태도가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바람직한 태도라고 여긴다. 문제는 그런 태도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사람들일수록 자녀 양육에도 같은 태도를 취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이를 대할 때도 계획을 세우고 통제하면서 이렇게 자르고 저렇게 다듬으면 미래에 멋진 가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아이는 그렇게 자라지 않는다. 나는 이 부분이 현대 성과주의 혹은 실력주의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온 나를 포함한 젊은 엄마 아빠들이 겪는 모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저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여전히 사람들이 하는 얘기와 미디어를 통해 듣는 얘기에 흔들리고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목수의 일에 비하면 정원사의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마치 운전면허를 처음 딴 사람 옆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과 같다. 차라리 내가 대신 운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고, 이렇게 저렇게 훈수 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결국 본인이 경험해 봐야 운전 실력이 느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아이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면서 아이의 인생을 계획하는 일보다 아이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부모의 불안을 잠재우고, 끝까지 아이를 믿어주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 키우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