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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의 고전을 읽어드립니다 > 서민, 2023

by Ditmars 2026. 1. 20.

<서민의 고전을 읽어드립니다> 서민, 2023

 

 실수는 진솔한 말 대신 겉치장을 하려 할 때 발생하는 법이다.

<p.178>

 

 남자끼리 있는 게 재미없는 이유는, 그들이 서로의 말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 여성들은 상대의 작은 변화에도 관심을 갖고,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준다. 이 과정에서 과하다 싶을만큼 리액션이 뒤따른다. 말하는 사람이 흥이 날 수밖에. 하지만 남자들의 경우는 이와는 다르다. (...)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나'. 그들은 서로 자기 말을 들어 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하지만, 들어주는 이는 없다. 다른 이의 고민에 대해 '뭐 저런 거 가지고 난리야'라고 생각하며, 리액션이 없거나 냉소적인 웃음이 고작이다. 이러니 말하는 이도 괜히 말을 꺼냈다고 후회하고, 웬만큼 큰일이 아니면 말을 꺼내지 않으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 등장한다? 내 말을 들어주고 리액션을 해주는 이가 생겼으니, 말이 하고 싶어질 수밖에. 한 여성의 합류로 인해 술자리가 시끌벅적해진 건 당연한 이치였다.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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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읽어보았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10권의 고전을 읽고 그 독후감을 모아놓은 책이다. 10권의 고전은 <제인 에어>, <부활>, <돈키호테>, <파우스트>, <안나 카레니나>, <죄와 벌>, <백년의 고독>, <페스트>, <농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신곡>, <아들과 연인>,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이 중에 내가 읽어본 건 <페스트>와 <호밀밭의 파수꾼> 밖에 없다. 나머지 8권의 고전은 줄거리만 아는 것도 있고, 제목만 들어본 것도 있었는데 다행히 작가가 줄거리까지 재밌게 풀어내서 읽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작가가 서문에서 밝혔듯 이 책에는 고전에 대한 심오한 분석이나 깊은 깨달음이 담겨 있지 않다. 작가가 평범한 독자의 입장에서 읽기 힘든 고전을 읽은 경험을 나눴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고전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관심이 있거나 언젠가 읽어 보고 싶은 사람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고등학생 때였을 것이다. 언젠가 아빠가 딱 봐도 무거워 보이는 박스 두 개를 집으로 가져 오셨다. 박스에는 책이 가득 들어 있었는데 지금 내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 백만 원어치 책이라고 했던 얘기를 들은 것 같다. 그 많은 책은 내 방 앞 책꽂이에 차곡차곡 꽂혔는데 나는 공부하다가 지루해지면 책꽂이에 꽂힌 책 제목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곤 했다. 당연하게도 (?) 고등학생 때는 시험공부를 하느라 책을 읽지 못했다. 내가 그 책꽂이에서 책을 꺼내 읽은 건 아마 수능이 끝난 뒤였을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민음사에서 나온 <폭풍의 언덕>을 읽었다. 왜 그 책을 읽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17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 책의 줄거리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등장인물이 너무 많고 복잡해서 책의 맨 뒷 장에 등장인물의 이름과 관계도를 적어 놓고 틈틈이 참고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책이 엄청나게 재밌지도 않았어서 꽤 오랜 시간에 걸쳐 한 권의 책을 다 읽을 수 있었고 다 읽고 난 뒤 뭔가 해냈다는 느낌의 뿌듯함을 느꼈던 기억도 난다. 그 밖에 책꽂이에는 다양한 고전 명작들이 있었으나 그 뒤로 <허클베리 핀의 모험> 한 권을 더 읽은 것을 제외하면 특별히 고전을 찾아 읽지는 않았다.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고전을 읽은 후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꽤 다양한 고전을 읽어 왔다. 아직도 읽어 볼 엄두가 안나는 <파우스트> 라던지 <신곡>, <자유론> 같은 걸 제외하고는 꽤 재밌게 읽은 고전도 있고 내 인생책 중 하나가 된 고전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맹목적으로 고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거나 옹호하는 입장은 아니다. 특히 '고전 속에 답이 있다' 거나 '살면서 반드시 읽어야 하는 고전 100선' 같은 얘기는 더욱 더 좋아하지 않는다. 그 속에는 어딘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마치 자기 자신은 잘 아는 듯 보여주면서 일종의 멘토이자 구루 행세를 하려는 마케팅도 숨어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나라 특유의 지나친 경쟁과 교육열 때문에 불필요하게 어려운 책을 권유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의 작가는 솔직한 편이다. 작가의 직업적 권위라던지 명성을 고려한다면 여러 고전을 읽고 (혹은 읽은 척을 하고)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으며 인생에 대한 조언을 하는 책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저 솔직하게 '이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읽기 싫어도 참고 읽었다' 같은 얘기를 한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 속 모든 사람들이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를 보며 멋진 옷이라고 추켜세울 때 순진하고 솔직한 아이는 이해할 수 없다면서 벌거벗었다고 얘기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이런 느낌은 예술의 가치를 논할 때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다. 몇 달 전 파리에 갔다가 루브르 박물관 가이드 투어를 했다. 그 곳에서 '모나리자'를 봤는데 나는 아직도 이 그림이 왜 그렇게 유명한지, 왜 고전 명작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내 기준에 루브르에는 모나리자보다 훨씬 더 멋지고 훌륭한 그림들이 많았다. 또 대학생 때는 현대 미술을 관람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달팽이를 흉내 내는 작가의 모습을 촬영한 비디오 아트가 무슨 상을 받아 전시관 하나를 통째로 빌려 전시되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도 나는 이게 왜 좋은 작품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금의 가격이 높은 건 금이 가진 희소성에다 우리가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지, 금 자체의 본질적인 사용 가치가 높아서가 아니다. 사용 가치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면 전 세계에 깔려 있는 전선 속 구리가 더 높아야 했을 것이다. 어떤 점에서 보면 고전이라 불리는 것들도 역사의 시간이 지난 뒤 남겨진 희소성에 우리가 지속적으로 가치를 부여해 왔기 때문에 '고전'이 된 것이 아닐까? 고전의 가치가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삶의 본질을 깨닫고 그 안에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는 말은 어떻게든 갖다 붙인 변명 같은 이유가 아닐까? 먼 훗날 언젠가 사람들이 "안나 카레리나 노잼인데! 왜 유명한지 모르겠어!"라고 외치기 시작한다면, 그제야 너도 나도 "사실 나도 노잼이었는데 다들 명작이라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어..." 하고 고백하게 되며 <안나 카레니나>가 고전의 반열에서 탈락하게 되는 건 아닐까? 아직 나의 예술적 감각과 지적 수준이 그 정도 단계에 닿지 못했기 때문인지, 예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이런저런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