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호기심 못지않게 놀라운 재능 하나가 또 있습니다. 바로 '강한 호기심을 잠시 느꼈으나 이내 그것을 억누르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을 살아가는 놀라운 억제력' 말입니다. 어린 시절만 해도 한동안 호기심에 사로잡혔지만, 학교에 들어가고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그리고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호기심에 사로잡혀 그것을 스스로 해결해보고 싶은 마음'에까지 이르는 경험은 현저히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대부분 우리는 잠시 무언가에 호기심을 느껴 궁금해하지만 그것도 그때뿐, 바쁜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하던 일에 집중하거나, 체내 에너지의 23퍼센트 이상을 먹어치우는 1.4킬로그램의 폭식꾼 '뇌'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뇌를 최소한으로만 쓰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p.8>
우리 모두는 스파게티 면과 접착테이프, 실을 가지고 마시멜로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 탑을 쌓아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 시도하는 일에 좋은 계획을 세울 수 없습니다. 경험이 별로 없는 이들이 계획을 세워 봤자 잘못될 가능성이 높죠. 게다가 계획을 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면 다시 회복할 기회가 없습니다. (...)
이 실험결과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회사는 종종 계획을 얼마나 잘 세웠는지를 중요하게 따집니다. 그리고 계획대로 일을 진행했는지를 따져 묻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처음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과가 더 좋더라도 왜 처음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지 않았는지 책임을 묻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해보는 일은 계획할 수 없습니다. 혁신은 계획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혁신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중요한 건 계획을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계획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끊임없이 바뀌는 상황에 맞춰 계획을 수정하면서 실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습니다. 특히 처음 해보는 일에서는 계획보다 실행력이 더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계획'을 세우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젊은 시절 대부분을 그 계획을 완수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으로 보내기도 하지요. 젊은 시절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더 이상 준비를 안 해도 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 '노후 준비'를 해야죠. 젊었을 땐 자기 인생을 준비하고, 중장년 시절에는 자식들 인생까지 준비하고, 나이 들면 또다시 자기 노후 인생을 준비하고... 아직 오지 않은 무언가를 준비하고 계획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삶이 정말 계획대로 되었는지, 자신이 만든 계획 중에서 성공적으로 완수한 계획은 몇 퍼센트쯤 되는지 돌이켜보세요. '내가 왜 이런 짓을 지금까지 하고 있었지'라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p.25>
70퍼센트의 확신이 들면 실행하라
우리가 가진 적절하지 않은 의사결정 패턴 중 하나는 해야 할 의사 결정을 '안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나이 들어 가장 많이 하는 후회 중 하나가 '이거 괜히 했다'라는 후회보다 '내가 그때 그걸 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망설이다가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그냥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겁니다. 의미 있고 중요한 의사결정일수록 판단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이죠. 오히려 사소한 의사결정은 가볍게 시도해볼 수 있지만 인생의 중요한 결정일수록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이때 이걸 지원했어야 하는데', '내가 그 사람에게 고백했어야 하는데'와 같이 기회를 놓치는 경우들이 훨씬 더 많아서, 사실은 'GO/NO GO 순간'에 'GO' 버튼을 누르는 의사결정을 하는 것 자체로 의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
미국 해병대에는 '70퍼센트 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70퍼센트 정도 확신이 들면 95퍼센트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일단 의사 결정을 하고 실행에 옮기라는 겁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일 수 있습니다. "저는 평소에 너무 빨리, 그리고 쉽게 의사결정을 해서 문제예요"라는, 일을 벌이는 타입의 사람들이 있죠. '70퍼센트 룰'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항상 주저하시는 분들에게 권해드리고 싶은 방법입니다. '아직 결정하지 않은 상태'를 오랫동안 방치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훨씬 더 많거든요.
<p.38>
게다가 확시하고 내린 의사결정도 심지어 틀릴 수 있거든요. 그럼 즉시 바꿔야 하는데, 절대로 안 바꿔요. '의사결정을 바꾸면 주변 사람들이 날 무시할 거야', '아버지로서, 남자로서, 조직의 상사로서, 리더로서 권위가 손상될 거야' 하면서 의사결정을 바꾸지 않아요.
하지만 리더가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하는 유형이라면, 의사결정을 바꾸더라도 리더십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내가 잘못했다. 상황이 바뀌었고, 추가로 우리가 이런 걸 알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의사결정을 바꿔야 한다."라고 조직 구성원에게 얘기했을 때, 누가 그 리더를 비난하나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미래를 위해 결정사항을 바꾸는 리더를 우리는 훨씬 더 존경합니다. 의사결정을 쉽게 바꿀 수 있는 리더란 주변 사람 혹은 부하직원과 의사소통을 많이 하는 리더라는 뜻입니다. 밀실에서 혼자 의사결정을 하는 리더는 대게 의사결정을 바꿀 수가 없어요. 그 의사결정 메시지 자체가 유일한 소통이었기 때문에, 그걸 바꾸면 문제가 커지지요. 중요한 건 의사결정을 관철하고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완수하는 것임을 훌륭한 리더들은 알고 있습니다.
<p.49>
길을 잃어본 순간, 우리는 세상에 대한 지도를 얻게 됩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방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p.58>
우유부단함만큼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도 없으며, 그것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도 없다.
-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p.64>
그런데 왜 특히 요즘에 와서 결정장애가 더 사회적인 이슈가 됐을까요? 저는 그것이 '사회적 안전망의 부족'과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한 번 잘못된 선택을 해도 재기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었습니다. 좋은 대학을 못 가도, 대학에서 놀거나 취미생활에 빠져 성적이 안 좋아도 취직 걱정이 적었고, 어떤 시기를 놓쳐도 늦게라도 결혼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요즘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제때 딱딱 맞추지 못하면 완전히 낙오되기 때문에, 패자부활전이 점점 줄고 있어요. 한 번 미끄러지면 재기가 불가능한 사회에서 젊은이들로서는 매번 굉장히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거예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해 있고 사회안전망이 부재한 상황이 사람들의 결정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p.78>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신중함이나 경솔함과는 사실 큰 관계가 없어요. 잘하는 것만 해왔던 아이들은 칭찬에 민감하고 인정 욕구가 강합니다. 그래서 칭찬받지 못할 것 같은 일은 아예 안 하는 거예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나를 얼마나 인정해주느냐보다 내가 그 일을 얼마나 좋아하느냐, 혹은 내 마음에 드느냐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인 사람들은 실패할 것 같더라도 그것을 선택합니다. 판단 기준이 '타인의 인정 혹은 칭찬'이라면, 성격이 신중한가 경솔한가와 상관없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높습니다. 세상은 점점 예측 불가능하고 인생은 늘 불확실한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따라서 잘하는 것에만 매달리는 사람보다는, 그리고 실패의 두려움이 큰 사람보다는 실패 후에 빨리 회복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는 게 더 현명하지 않나 싶습니다.
<p.80>
결핍이 욕망을 만듭니다. 뭔가 부족해야 그 결핍 때문에 뭘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요. 요즘 아이들은 영어를 잘하고 싶어 해외에 보내달라고 떼쓰지 않아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부모가 알아서 해외연수를 보내주죠. 또 공부의 부족함을 느끼고 학원이나 과외를 받게 해달라고 말하기도 전에 부모가 먼저 알아채고 가장 좋은 학원에 데리고 갑니다. 그들은 결핍이 되지 전에 욕망이 충족된 경험을 오랫동안 쌓아오면서 무언가를 절실히 욕망하지 않는 세대로 성장합니다. 대학 때까지는 부모 품에 있으니 별 문제가 없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내가 뭘 하고 살지 결정을 못하는 문제가 벌어지는 거예요. 자신만의 지도를 그린 경험도 없고, 자신의 욕망을 대면할 기회도 없었던 거죠.
<p.82>
독서는 습관이 되기 힘듭니다. 독서과 쾌락이 되어야 평생 책을 읽는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쾌락이 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책을 읽으라고 강요해선 안 됩니다. 스스로 책을 즐길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
아이가 게임에 빠져 있다는 것은 게임 외에는 다른 즐거움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게임에 중독된 아이를 보면 '에고, 내가 우리 아이를 게임 외에는 즐거움을 모르는 아이로 키웠구나!' 하면서 다른 즐거움을 제공하려 애쓸 필요가 있습니다. 게임은 아이들이 학교 공부로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손쉬운 즐거움이거든요. 운동을 즐기고 음악이나 미술 등 다양한 예술 활동에 관심 있는 아이일수록 게임에 중독될 가능성은 줄어듭니다.
<p.102>
오징어잡이 배에 등이 쭉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신 적 있죠? 집어등이라는 건데 오징어를 불러들이는 기능을 합니다. 어느 철학자의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욕망의 자본주의 시대다. 요즘 젊은이들은 집어등에 달려드는 오징어 떼 같은, 그러니까 그 욕망이 자신에게 좋은지 나쁜 지도 잘 모르면서, 심지어는 독이 되는 욕망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내달리고 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학습된 욕망, 부모로부터 혹은 사회로부터 내려와 스며든 욕망들이 자신의 욕망인 줄 알고 열심히 추구하다가 동력을 잃어버리면 어느 순간 좌절하고, 벽을 만나 실패하면 더 이상 추동할 힘이 없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는 게 지금 우리 사회입니다. (...)
저는 우리 사회에 요구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결핍을 허하라! '아, 심심해, 뭐 재밌는 거 없나' 할 수 있는 무료한 시간을 아이들에게 허락해야 합니다. 스스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재미있는 걸 찾기 위해 어슬렁거리는 젊은이들로, 성취 동기로 가득 찬 어른으로 성장하게 하는 길은 그들에게 결핍을 허하고 무료한 시간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방황하면 그 방황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실패하고 사고 쳐도 좋다고 믿어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어린 시절, 청소년 시절, 심지어 젊은 시절에 얼마나 미숙했습니까! 그 시간을 참고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부모가, 학교가, 사회가 그들에게 필요합니다. (...)
여러분에게 결핍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것들이 결핍되었습니까? 그 결핍이 여러분의 삶을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내 삶에서 결핍이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세요. '나는 어린 시절 무엇이 부족했나. 진짜 하고 싶었는데, 못한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지금도 나를 사로잡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보세요. 여러분에게는 인생의 결핍과 대면할 용기가 있습니까? 그것이 열등감이나 정신적 병균이 아니라 삶의 에너지로 작용할 수 있도록 당당하게 대면할 용기를 가지세요. 결핍은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p.104>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드문 현상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저 존재할 따름이다.
-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p.126>
습관이라는 안락함 속에서는 평화롭고 예측 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지요. 반면 습관의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버겁습니다. 때문에 인생의 리셋도 어렵습니다. 새로고침을 신경과학적으로 해석해보면 나쁜 습관, 뻔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입니다. 나와 다른 분야에 있는, 다른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그런 사람을 만날 가능성은 점점 적어집니다. 불편함을 견디면서 새로운 사람과 이야기하는 걸 즐기면서 살지 않으면, 내 삶에 새로운 생각이 유입되는 일들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새로고침은 점점 어려워집니다. 나쁜 습관, 틀에 박힌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삶을 새롭게 뒤바꿀 수 있는 신선한 자극이 있는 곳으로 먼저 여러분이 움직여야 합니다. (...)
인생의 목표가 성공이 아니라 성숙이라면,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습관은 안락하고, 포근하고, 안전하게 우리의 삶을 여기까지 끌고 왔지만, 새로고침이 주는 뜻밖의 재미, 유쾌한 즐거움은 여러분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줄 겁니다. '내가 지금처럼 10년 살아봤더니 이 삶이 주는 즐거움이 뭔지 충분히 알겠어. 그럼 이제 새로운 삶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해볼까?' 하는 설렘으로 새로고침을 시도해보시면 어떨까요. 우리 뇌는 습관이라는 틀을 벗어나기가 매우 어렵게 디자인돼 있지만, 새로운 목표를 즐겁게 추구하도록 디자인돼 있기도 합니다. 어느 뇌 영역을 사용할 것인지는 이제 여러분이 선택하시면 됩니다.
<p.144>
제가 오늘 미신이라는 주제를 환기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너무도 소중한 우리의 삶이 불합리한 요소들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삶을 구속하는 비이성적인 믿음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을 허락하고 있을까요? 내 삶은 내가 하기 나름이고, 나의 온전한 의지에 좌우된다는 고귀한 믿음을 왜 우리는 스스로 기꺼이, 너무나도 쉽게 포기하는 걸까요? 사소한 미신이라고 해서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우리가 비합리성을 미신의 영역에만 머물게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의사결정에도 비합리적 영향을 끌어들이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습니다. 신입 사원 면접을 볼 때 점술인을 곁에 두고 진행했다는 어느 재벌 총수의 얘기 잘 아시지 않습니까?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점술가에게 상담한다는 대기업 오너의 사연 잘 아시지 않습니까?
<p.168>
행복은 예측할 수 없을 때 더 크게 다가오고, 불행은 예측할 수 없을 때 감당할 만하다. (...)
다시 말하면,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행복은 더 크게 누리고 불행은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p.179>
인간의 지적 능력은 얼마나 많은 방법을 알고 있느냐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로 알 수 있다.
- 존 홀트(John Holt)
<p.190>
끝으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독서, 여행, 사람 만나기입니다.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하는, 특히 평생에 거쳐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이 바로 도서, 여행, 사람들과의 지적 대화입니다. 다시 말해 끊임없이 세상으로부터 자극을 받으시라는 겁니다. 의미 있는 세상과의 충돌, 이것이 우리의 인생을 바꿉니다. 이 세 가지는 자기가 직접 물리적 환경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 줍니다.
<p.219>
제가 인공지능이 인간의 뇌를 닮아가면서 점점 발전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대한민국은 지난 70년 동안 인간으로 하여금 인공지능을 흉내 내도록 교육해왔고 평가해왔습니다. 선진국이 만들어낸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데 급급했고, 학습한 지식을 정확하게 실수 없이 뱉어내게 하는 방식으로 청소년들을 평가했습니다. 같은 교과서로 모두의 머릿속에 같은 내용을 채우는 데 대한민국 전체가 몰두했고, 심지어 '선행'이라는 이름으로 남들보다 먼저 입력하는 데 집집마다 많은 사교육비를 썼습니다.
<p.241>
제4차 산업혁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사물인터넷을 통해 아톰 세계를 고스란히 비트화해서 비트 세계와 일치시키면 이 빅데이터를 클라우드 시스템 안에 저장해서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아톰 세계에 맞춤형 예측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는 산업으로의 전환을 말합니다.
<p.251>
그래도 저는 스마트 테크놀로지가 궁극적으로는 안경 타입으로 갈 것이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p.256>
제가 두려운 건, 그동안 의사결정의 주체였던 인간이 앞으로는 인공지능에게 의사결정을 맡기고 결재만 하는 존재로 추락할 것 같은 미래입니다. 지금까지 기계문명은 우리에게 편리함과 효율성, 그리고 놀라운 생산성을 가진 손발이 되어주었지만, 인공지능은 이제 우리의 뇌가 되려 합니다. 그들이 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계산 값을 쏟아내면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의 의사결정을 따라야 할지 모릅니다. 마치 알파고가 의사결정을 하면 그저 바둑판 위에 바둑돌을 놓기만 했던, 이세돌 앞에 앉아 있었던 구글의 엔지니어 아자 황 같은 처지에 놓일까 봐 말입니다. 인공지능의 의사결정 계산 과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우리 사회가 결과 값에만 의존하게 되면 될수록, 의사결정의 주체는 인공지능으로 시나브로 옮겨가게 될 겁니다.
<p.271>
하나의 혁명적인 아이디어가 세상에 퍼지고 결국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기성세대가 설득되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젊은 세대가 주요 세대로 등장하면서 바뀌는 것뿐이다.
- 닐스 보어(Niels Bohr)
<p.289>
그래서 우리에겐 '인지적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인지적 유연성이란 '상황이 바뀌었을 때 나의 전략을 바꾸는 능력'을 말합니다. 가진 것이 망치뿐인 사람은 세상의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입니다. 내 앞에 놓인 모든 문제를 망치질하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하죠. 그렇지만 상황이 바뀌고 문제가 바뀔 때 내 연장을 바꿔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해보는 것, 그것이 바로 인지적 유연성입니다.
<p.312>
예를 들어 빌 게이츠는 하버드를 중퇴하고 창업한 것으로 알려져, 굉장히 단호하고 자기 확신이 강하고 위험 감수 성향이 높은 것으로 많이 회자되는 대표적 인물입니다.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많은 젊은이들의 롤모델이지요. 아이비리그를 다니던 그가 안정적인 미래를 버리고 과감하게 위험한 선택을 한 것을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알려진 것과 달리, 게이츠는 실제로는 위험 감수 성향이 그다지 높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학교를 중퇴하지 않고 장기 휴학을 했으며, 학교와 부모에게 미리 허락을 받았습니다. 휴학도 회사를 창업하고 1년 뒤에 했고요. 자기가 회사를 창업하고 계속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면밀히 검토한 후에, 게다가 학교도 나중에 복귀할 수 있는 휴학 상태에서 본격적인 창업을 시작한 겁니다. 게이츠는 많은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처럼 위험 감수자로 인용되기보다는 위험을 잘 관리하는 사람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합니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드는 혁신가는 늘 직면할 수밖에 없는 '위험'이라는 녀석을 잘 관리하는 능력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것을 너무 만만하게 보아서도, 무모하게 돌진해서도 안 된다는 겁니다.
<p.323>
Q) 세상에는 좋은 머리를 나쁘게 쓰는 사람도 있고 좋게 쓰는 사람도 있는데, 정 교수는 재미있게 쓰는 사람의 대표 사례 같다. 이것이 지속 가능한 머리 쓰기의 한 방식인가?
A) 말을 들어보니 그런 것 같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바로 재미있게 머리 쓰기다. 그런데 나에게는 양립하기 힘든 딜레마가 있다. 한편으로는 삶을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순간들로 채우고 싶은 욕망에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남이 안 하는 것을 해보고,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기도 하고, 위험한 영역에도 가보고... 그런데 세상의 뜻깊은 많은 일들은 어떤 일이 꾸준히 반복되었을 때 그것의 합으로 성취가 만들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둘의 조합을 만드는 것이 딜레마다.
Q) 리더가 동참하는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려울 듯하다.
A) 어떤 이를 추진하든 결국은 감당해야 할 힘든 대목들이 있는데, 그 일이 자기 입으로 자기 머릿속에서 나오면 덜 힘들다. 그래서 이것은 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각자 스스로 결론을 얻을 때까지 기다린다. 리더는 구성원들의 자발적 동기가 충만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p.375>
Q) 여러 일을 벌이는데 마무리는 책으로 묶어내는 것이다. 매듭짓기의 좋은 방식인 것 같다.
A) 기록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모든 일의 핵심은 경험이고, 경험은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에도 축적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책을 낸다.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라는 책을 냈을 때가 스물여섯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뭘 알고 썼는지 모르겠지만 책을 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일찍 벗어난 것 같다.
Q) 인맥이 놀랍다. 가수, 영화감독 등 이질적인 사람들과 자주 어울린다.
A) 심지어 내성적이기까지 하다.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이 힘들다. 얘기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을 만나면 그게 좋고 힘도 받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쉬는 시간이 생기면 혼자 있고 싶다. 그런데 나와 다른 분야의 사람을 만나서 얻는 즐거움을 생각한다. 특히 의외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좋아한다. 뭔가 창조의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모임을 좋아한다.
<p.379>
이 책은 마치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가 우리에게 삶을 좀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들려주는 것 같다. 여기서 잘 산다는 말은 부자가 된다는 뜻이 아니라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현재에 충실하게 산다는 뜻이다. 뇌를 연구하며 얻은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분석하고 그 분석을 통해 우리의 삶에 대한 고민을 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대개 과학자들은 이성적 사고와 논리를 바탕으로 연구와 분석까지만 하는 것이 그들의 본분이자 마무리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이를 토대로 개인의 삶과 사회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까지 이뤄냈다는 점에서 작가는 역시 참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다양한 생각을 하는구나 싶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뇌를 사용하는 활동을 할 때, 예를 들어 선택을 하거나, 욕망하거나, 그냥 놀거나 할 때 일어나는 뇌의 활동에 대해 연구하고 그 결과만 쭉 적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이러이러하다,라고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으로 그의 연구는 마무리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과학적 근거를 가진 상태에서 사람과 사회에 대한 고민을 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사회가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를 우리에게 쉽고 재미있게 알려준다. 이것을 두고 과학과 인문이 만나 조화를 이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과학에도 관심이 많은 내게는 참 흥미로운 책이었다.
작가는 원래 천체물리학을 공부하려고 했다가 뇌과학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고 들었다. 만약 천체물리학을 전공으로 계속 연구했다면 이렇게 삶과 사회에 대한 철학을 가질 수 있었을까? 사람의 뇌와는 달리 하늘의 별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네 삶과 사회와 전혀 관련이 없는데 아마 어렵지 않았을까. 아니면 다른 예로 내가 직업으로 하고 있는 항공기 조종을 10년, 20년 동안 하며 전문성을 얻었다고 그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삶의 성찰을 얻을 수 있을까? 항공기를 운항하고, 세계 각국에서 이, 착륙을 하고, 사람과 화물을 실어 나르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사람의 뇌를 연구하는 것은 개인과 삶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직업 활동을 통해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어 참 좋을 것 같다. 나도 내 직업의 전문성을 키우는 것과 동시에 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삶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생각해 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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