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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무새 죽이기 > 하퍼 리, 1960

by Ditmars 2021. 12. 18.

&lt;앵무새 죽이기&gt; 하퍼 리, 1960

 

 "세상에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 죽은 뒤의 세계를 지나치게 걱정하느라고 지금 이 세상에서 사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 말이야."

<p.89>

 

 "이봐, 잭! 어린애가 무엇을 묻거든 제발 직접 대답해줘. 대답을 지어내지 말고. 애들은 역시 애들이지만, 답을 회피하는지는 어른들보다도 빨리 알아차리거든. 그리고 답을 회피하면 애들은 혼란에 빠지게 되지."

<p.168>

 

 "제 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재능을 자랑하지 않는 법이란다."

<p.188>

 

 "아빠, 아빠가 틀리셨는지도 모르잖아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글쎄, 모든 사람들은 자기들이 옳고 아빠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들에겐 분명히 그렇게 생각할 권리가 있고, 따라서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줘야 돼.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 원칙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야."

<p.200>

 

 "난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 때로 나는 어려움에 처할 때가 있지. 누군가 욕설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불린다고 해서 모욕이 되는 건 절대 아니야. 그 사람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인간인가를 보여줄 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아."

<p.208>

 

 "난 네가 할머니에게 뭔가 배우기를 원했다. 손에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다는 생각을 갖는 대신에, 참으로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배우길 말이다. 참으로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배우길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새로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낼 때 바로 용기가 있는 거다. 승리란 드문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지. 겨우 98파운드의 몸무게로 할머니는 승리하신 거야."

<p.214>

 

 그가 옆에 있으면 삶은 일상적이었지만 그가 없으면 참을 수 없었다.

<p.220>

 

 "알고 있는 걸 모두 말할 필요는 없지. 그건 숙녀답지 못한 거구. 둘째로, 사람들은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이 옆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 화가 나는 거지. 말을 올바로 한다고 해서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변화시킬 수 없어. 그들은 스스로 배워야 하거든. 그들이 배우고 싶지 않다면 입을 꼭 다물고 있거나 아니면 그들처럼 말하는 수밖에."

<p.239>

 

 "아직 저 애의 양심은 세상 물정에 물들어 있지 않았어. 하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어봐, 그러면 저 앤 구역질을 느끼며 울지 않을 거야. 어쩌면 세상에서 옳지 않은 일을 보아도 울먹이지 않을 거야. 앞으로 몇 년만 나이를 더 먹어봐, 그렇게 되지 않을 테니."

 "아저씨, 내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운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고통 때문에 우는 거지. 심지어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말이야. 흑인들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는 않은 채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안겨주는 그 고통 때문에 우는 거란 말이다."

<p.380>

 

 "나는 크면 어릿광대가 될 거야. 그래 맞아. 광대가 되는 거야. 웃는 것 말고는 사람들에 대해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어. 그래서 서커스단에 들어가 배가 터지도록 실컷 웃을 거야."

 "딜, 너는 지금 거꾸로 알고 있는 거야. 광대들은 언제나 슬퍼. 그들을 보고 웃는 건 관객이란 말이야."

 "그럼 난 새로운 종류의 광대가 될래. 무대 한가운데 서서 관객들을 쳐다보고 웃을 거야. 저기 좀 봐."

<p.408>

 

 아빠는 오빠가 뭔가를 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실제로는 충분한 시간이 지날 때까지 얼마 동안 그것을 보관해두고 있다는 거다. 그러고 나서야 오빠는 그것에 대해 제대로 생각할 수 있고 정리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것을 생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오빠는 다시 옛날처럼 될 거라고 하셨다.

<p.465>

 

 "헥, 이 문제를 조용히 무마시킨다면 내가 그 애를 기르려고 해온 방식을 간단하게 부정하는 것이 돼. 때론 부모로서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할 때가 있지만 그 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내가 전부네. 젬은 다른 누군가를 쳐다보기 전에 나를 먼저 쳐다본다네. 나도 그 애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도록 살려고 노력해왔고... 이런 식으로 뭔가를 묵인한다면, 솔직히 말해 난 그 애의 눈을 대할 수가 없지. 그리고 그렇게 대하지 못하는 날, 나는 그 애를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고. 그 애와 스카웃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그 애들뿐이니까."

<p.514>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갈색 문 왼쪽 편에 기다란 덧문이 달린 창이 있었다. 그곳으로 걸어가 그 앞에 서 있다가 돌아섰다. 아마 대낮이라면 우체국 모퉁이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밝은 대낮이라면 말이다... 내 마음속에서 어두운 밤이 점차 사라졌다. 밝은 대낮이었고 이웃 사람들은 분주해졌다. 스테파니 크로포드 아줌마가 길거리를 건너와 레이첼 아줌마에게 최근 소식을 전해주었다. 모디 아줌마가 철쭉꽃에 허리를 굽히고 계셨다. 여름이 되었고, 어린애 둘이 멀리서 다가오는 사내를 향해 인도를 따라 종종걸음으로 내려갔다. 그 사내는 손을 흔들었고, 아이들은 힘껏 달려 그 사내에게로 갔다.
 여전히 여름이었고 아이들은 좀더 가까이 다가왔다. 한 소년이 뒤에 낚싯대를 질질 끌고 인도를 따라 뚜벅뚜벅 걸어 내려갔다. 사내는 엉덩이에 손을 얹고 서서 기다렸다. 여름 그리고 아이들이 자기들이 꾸민 서툴고 이상한 연극 놀이를 하며 앞마당에서 친구와 놀고 있었다.
 어느덧 가을이 되었고, 그 아이들은 듀보스 할머니 집 앞 인도에서 서로 다투고 있었다. 소년은 누이동생을 땅바닥에서 일으켜 세워줬고, 그들은 다시 집으로 발길을 향했다. 가을이 되었고 아이들은 얼굴에 그 날의 희로애락을 간직한 채 길모퉁이를 깡충깡충 뛰며 왔다갔다했다. 기쁨과 당혹함과 공포를 느끼며 떡갈나무에서 걸음을 멈췄다.
 겨울이 왔고, 그 남자의 아이들은 활활 불타고 있는 집을 배경으로 실루엣이 되어 앞문에서 떨고 있었다. 겨울 그리고 한 남자가 길거리로 걸어가 안경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총으로 개를 쐈다.
 여름이 되었고 그 남자의 아이들의 가슴이 무너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또다시 가을이 되었고, 아이들은 부 래들리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아빠가 정말 옳았다. 언젠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참말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신 적이 있다. 래들리 아저씨네 집 현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p.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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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앵무새 죽이기>는 1930년대 미국 앨라배마 주의 작은 동네인 메이컴 마을을 배경으로 백인 변호사가 강간죄로 누명을 쓴 흑인을 변호하게 되면서 마을과 마을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이야기이다. 이 소설이 갖는 특별한 점은 소설의 서술자가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의 딸인 6살 소녀 진 루이스 핀치(스카웃)이라는 점인데, 아직 차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이미 뿌리 깊은 편견을 갖고 있는 어른들의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한 말과 행동을 바라본다는 점이 무척 재미있다. 꽤나 긴 책이지만 아이들의 모습이 귀엽고 인물들이 다양하고 스토리가 좋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설을 통해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50년도 넘게 흐른 지금의 현실을 비교하기도 하며 느끼게 된 점이 많았다. 

 

 여러 가지 느낀 점이 있었지만 그 중 내가 느낀 점을 두 가지만 적어보고 싶다. 첫 번째는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내게 가장 감명 깊었던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위에 기록한 스카웃의 회상 장면이다.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내적으로 성장한 스카웃이 백인이었지만 마을에서 차별받고 소외된 부 래들리의 입장이 되어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는 장면은 다시 읽어 봐도 참 감동적이다. 나와 다르고 나보다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부 래들리를 두려워하기도 하고 놀리기도 했던 철없던 6살 어린 여자 아이가 몇 년 사이에 그의 입장이 되어 그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소녀로 자란 것이다.

 

 우리는 때로 가난하거나, 병에 걸렸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차별하려고 한다. 무의식 중에 이루어지는 이 차별은 그들을 불쌍하게 보는 시선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노력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들이라고 하는 말로 나타나기도 하고, 그들을 사람들로부터 분리하고자 하는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건 그들이 지금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유가 그들의 잘못이 아니듯, 우리 역시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도 언제든 그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스카웃처럼 그들의 입장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려는 노력을 할 때 비로소 진정으로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동등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두 번째로는 뜬금없겠지만 부모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양육 태도이다. 이건 특히 내가 지금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 소설을 읽었기에 더 느낀 바가 많았을 수도 있는데 내게는 이 책이 그 어떤 자녀양육서보다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해준 것 같다. 이 책을 쓴 작가는 아마 어린 시절 부모에 대한 기억이 좋았거나 아니면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을 소설에 녹여낸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훌륭한 부모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스카웃의 아버지인 애티커스 핀치는 자녀의 그 어떠한 말도 우선 끝까지 들어준다. 그리고 혼을 내거나 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알아야 할 것을 간결하게 알려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이건 말로만 들으면 그다지 어려울 거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온갖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듣는 건 많은 참을성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올바르게 살고자 노력하면서 아이들의 좋은 본보기가 된다. 아이들에게 '이것이 올바른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가르치고 지시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본인이 먼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내가 이웃들에게 인사하지 않는데 아이에게는 이웃들을 보면 인사하라고 가르친다면 어떨까. 아이는 진심으로 이웃들에게 하는 인사를 배울 수 없을 것이며 그때마다 인사하지 않는 나를 바라볼 것이다. 아이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도록 살려고 노력한다는 그의 말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사실 이 소설의 주된 내용으로 널리 알려진 건 인종 차별 문제이다. 그러나 내게는 성장 소설로 느껴지기도 하였고, 자녀양육서로 느껴지기도 하였다. 아마 다른 누구에게는 지금껏 잘 알지 못했던 인종 차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차별에 맞서 사회적 정의를 이루고자 하는 변호사의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그만큼 이 소설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양한 면에서 다양한 생각을 갖게 한다는 뜻이 아닐까. 누구나 한 번쯤 읽어봤으면 싶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