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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마 > 채사장, 2021

by Ditmars 2022. 7. 27.

<소마> 채사장, 2021

 

 "잘 다듬어진 화살은 궤적 위에서 방향을 틀지 않는다. 올곧은 여행자는 자신의 여정 중에 길을 바꾸지 않는다. 소마는 잘 다듬어진 화살이고 올곧은 여행자다. 언젠가 삶의 여정 어딘가에서 길을 잃을 때도 있을 게다. 하지만 소마는 다시 본래 자신의 길을 찾게 될 거다. 걱정의 시간도 후회의 시간도 너무 길어질 필요는 없다. 아버지의 말을 명심하거라."

<p.20>

 

 '인간은 진짜 고통에 이르기 전까지는 삶으로 돌아오고자 하지만 진짜 고통에 이른 후에는 어서 빨리 그것을 넘어 죽음에 이르기를 소망하게 된다. 너는 어떠한가. 죽음을 갈구할 만큼의 고통에 이르렀는가.'

<p.212>

 

 '조금은 천천히 가도 되지 않겠는가. 어깨에 진 의무 때문이 아니라, 한 걸음을 더 내디디려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조급할 것 없이 남은 삶의 시간 동안 느리지만 꾸준히 해나가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p.307>

 

 "사람들이 평화와 안정을 원한다는 것은 정치에 미숙한 자들이 갖는 오해다. 사람들은 강력히 통제하는 권위 있는 통치자를 원한다. 정치에 공포가 필요한 것은 공포로 소수의 반란을 찍어 누를 수 있어서가 아니라, 다수가 그 공포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나는 정확히 알고 있다. 크레도니아의 기득권이, 가문들이, 군인들이, 농민들이, 상인들이,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 모두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평화와 자유가 아니다. 그들은 힘에 의해 세워진 강력한 질서를 원한다. 그들은 소마가 아니라, 아틸라를 원한다."

<p.322>

 

 "잘 다듬어진 화살은 궤적 위에서 방향을 틀지 않는다. 올곧은 여행자는 자신의 여정 중에 길을 바꾸지 않는다. 소마는 잘 다듬어진 화살이고 올곧은 여행자다. 누구나 삶의 여정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하지만 언젠가는 본래 자신의 길을 찾게 되지. 그러니 걱정의 시간도 후회의 시간도 너무 길어질 필요는 없다. 화살이 아니라 화살을 찾아가는 과정이 너를 담대하게 하고, 너를 어른으로 만든다.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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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을 정말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민족의 아이로 태어난 소마가 부모를 잃고 길을 떠돌다 여러 역경을 딛고 한 나라의 왕이 되어 흥망성쇠를 경험하는 과정을 그린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배경은 지명과 나라명, 사건, 인물 등이 모두 허구이기에 정확하진 않지만 대체적으로 중세 시대 정도를 염두에 둔 걸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읽으면서 왕좌의 게임의 배경이 떠올랐다. (너무 잔인해서 1편밖에 보지 못했지만)

 

 나는 이 소설이 여러 면에서 낯설게 느껴졌다. 위에 말한 것처럼 소설의 배경 탓도 있을 것이다. 나는 사실 말을 탄 기사라던지 높은 성과 왕관을 쓴 왕이 나오는 중세 시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중세 시대는 어딘가 사랑도 전쟁도 여러모로 너무 적나라하고 잔혹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작가가 채사장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채사장의 오랜 팬이다. 그의 다른 책들을 다 읽어봤을 뿐만 아니라 내가 팟캐스트 지대넓얕의 애청자였기 때문이다. 책과 달리 말은 아무리 나중에 편집이 된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삶과 성격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대넓얕은 아주 작게 시작한 팟캐스트다. 멤버도 동일하고 그리고 꽤나 오랜 기간 운영했다. 몇 년 동안 이어진 그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결국 멤버 한 명 한 명의 삶과 사고방식, 성격의 윤곽을 대충이라도 알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역시 (당연하게도) 그들의 본모습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나 보다. 이 소설은 내가 생각한 채사장의 소설과는 전혀 다른 예상 밖의 소설이었다. 

 

 그러고보면 여태 한국인이 쓴 중세 시대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대체로 내가 읽은 한국 소설들은 많은 부분이 허구로 설정되었지만 최소한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지명 등은 익숙한 한글을 사용한 게 많았었는데, 이 책에 나오는 낯선 배경과 낯선 이름들은 읽으면서도 이 책이 한국인이 쓴 게 맞나 계속 의문이 들게 했다. 생각해보면 주된 줄거리는 어느 배경에서나 충분히 쓸 수 있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굳이 채사장은 서양의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골랐을까. 어쩌면 나처럼 책 한 권 혹은 팟캐스트만으로 채사장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낯선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이유야 어찌 되었건 이런 낯섦은 채사장의 가능성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맨 처음 지대넓얕을 들으며 그를 알게 되었을 때만 해도 그가 인문학 관련 책을 내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사실 많은 구독자 수를 보유한 지대넓얕을 유지한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더 나아가 본인의 콘텐츠를 잘 정리해 책으로 만들었고, 작가가 된 뒤에는 방송 출연, 강연, 유튜브까지 하고 있다. (이 정도까지가 요즘 시대의 많은 작가, 방송인 혹은 인플루언서들이 만들어가는 커리어인 것 같다.) 하지만 채사장은 또 소설이라는 낯선 분야에 도전했고, 이렇게 멋지게 성공하였다. 이렇게 자신의 콘텐츠를 꾸준하게 이어가는 채사장의 모습과 이와 동시에 다른 분야에까지도 도전하는 모습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