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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운아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2011

by Ditmars 2022. 7. 29.

<행운아>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2011

 

 나름 가수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데 TV에 나온 대부분이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다. 아무래도 난 특이하게 보이는 사람인 것 같다. EBS에서 인간극장 비슷한 걸 찍자고도 했는데 내 음악 말고 내 생활이 사람들에게 들키는 게 싫어서 사양한 적도 있었다. 나는 이미 내 노래로 나를 다 까발려줬는걸. 물론 내 노래의 화자가 완벽히 나와 싱크로하는 건 아니지만. 절반 정도는 비슷해.
 TV라는 게 화려한 사람은 더 화려하게 만들어주고 초라한 사람은 더 초라하게 만들어주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자극적이고 과장되어 있는 거지. 그리하여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나온 나를 보고 내 주위 친척들은 언제나 잔소리다. 엄마는 음악 때려치우라고 난리다. '루저'를 팔아서 먹고사는 유명한 딴따라 아들내미보단 이명박 똥구멍 빨아주는 양복쟁이 아들내미를 원하는 건 모든 어머니가 똑같겠지. 그런데 이번에는 인터뷰는 짧게 나오고 그나마 공연장면이랑 연습장면이 나와서 낙오자처럼 보이진 않더군. 인터뷰하면서 부탁 부탁 부탁을 해서 그런가. 초라하게 나오면 안 된다고, 어머니 우신다고. 평소에 입는 옷이 너무 후져서 그런가. 피부 관리를 안 해서 그런가. 말투가 좆같아서 그런가. 왜 인터뷰만 하면 븅신처럼 보일까. 공연 때마다 반팔을 하나씩 사긴 하는데 가을 겨울 옷을 사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올해는 패셔니스타가 되어볼까. 간만에 G마켓에서 옷을 골라보지만 결국 장바구니엔 선풍기만 하나 넣어두고 로그아웃.

<p.247>

 

 음악을 사랑하면서 음악을 하려면 음악이 두번째 직업이 되어야 한다. 첫번째 직업인 돈 버는 직장에서는 음악하는 걸 숨기는 게 제일 좋지만 사람들이 알게 되었을 경우 뻔뻔스럽게 처신해주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경우, 소위 '성공가도'를 달리긴 힘들다. 때문에 사생활이 보장되는 기본연봉이 꽤 높은 직장을 강추.

<p.253>

 

 그의 음악을 이루는 또 하나의 축은 사랑이었다. 사랑의 기쁨보다는 이별의 아픔이었다. '말없이 보내드리오리다'도 아니고 '복수할 테야'도 아니고 그저 속절없이 그리워하거나 원망하는 노래들이었다. 사랑으로 인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 때는 고작해야 TV 속 미녀 아나운서를 보는 경우(내가 뉴스를 보는 이유)였고, 사랑에 대한 갈구가 가장 불타오른 건 외로움에 지쳤을 때(나를 연애하게 하라)였으며, 원망에 대한 노래로 얻고 싶은 건 '돈이나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폐허의 콜렉션)이었다. 그도 분명히 연애를 해봤을 텐데, 88만 원도 못 버는 신세에서 출발해 결국 월 100만 원을 버는 기쁨 비슷한 것을 누리는 처지가 됐는데, 결국 그런 낭만은 달빛요정의 음악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조연도 못 됐다. 아무리 삐딱하고 자조적인 사람이라도, 마음 어딘가에 갖고 있을 그런 사연과 생각들을 펼쳐보지도 않고 그는 떠났다. 통속성과 사회성이 결합된 이야기와, 80년대 가요와 90년대 록이 버무려진 음악을 남기고.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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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2009년 무렵이다. 어떤 계기로 그를 알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2009년 초 나는 그의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땐 아직 스마트폰이 출몰하지 않은, 모두가 스마트폰에 사로잡혀 있지 않던 세상이었다. 나는 아이팟에 연결된 유선 이어폰(놀랍게도, 그때는 배터리 충전이 필요 없는 이어폰이 있었다.)을 귀에 꽂은 채 대학교 기숙사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폴더 폰의 액정을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누군가의 문자 메시지를 기다리면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첫눈 오는 그날에>를 들었다. 그리고 그 해의 첫눈을 떠올렸다.

 

 대학에 입학하고 채 1년이 되기 전에 군에 입대했다. 당시 나는 휴가 나왔다가 복귀하는 길이면 항상 지하철 가판대에서 경제 신문을 한 부씩 사서 부대로 들어갔다. 근무 중간에 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아 신문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 글자씩 꼼꼼히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작은 해방으로 느껴졌던 때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가 내가 그의 소식을 알게 된 때이기도 하다. 한 글자씩 꼼꼼히 읽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로 작은 공간에 그의 소식이 짧게 실렸다. 그의 본명이 이진원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2010년 11월 6일에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신문에서 그의 죽음을  알게 된 뒤에는 잊고 지냈던 그의 음악이 생각났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음악을 다시 듣고 싶었다. 그러나 군대에서는 음악을 들을 방법이 없었다. 나는 다음 휴가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휴가 가는 날이 왔을 때 나는 집에 와서 그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찾아보고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며 그의 음악을 듣고 또 들었다. 음악이 참 신기하다고 생각되는 건 아무리 즐겨 듣던 음악일지라도 막상 그 음악을 다시 듣기 전까지는 내가 이 음악을 자주 들었다는 것조차 기억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작년 여름에 무슨 음악을 들었지?'라고 떠올려보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우연한 기회로 그때 들었던 음악을 듣게 되면 '아 맞아, 이 음악 작년 여름에 많이 들었었는데!' 하고 여름날의 기억들이 하나둘 생각나는 것이다. 나는 그의 음악을 들으며 새내기 대학생이자 민간인의 신분이었던 2009년의 시절들을 떠올렸다. 여기까지가 내가 가지고 있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과의 추억이다.

 

 그러다 최근에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쓴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내가 여태까지 이 책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을까 싶었다. 책은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에 출간되었다. 아마 이 책이 출간된 2011년이 내가 한창 군 복무를 하고 있었을 시기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책을 읽으며 그의 음악을 다시 들었다. 책 속에 담긴 그의 생각을 찬찬히 읽고 있자니 그의 음악이 예전과는 또 다르게 들렸다. 달빛요정은 힘든 세상살이에도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엄청나게 멘탈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노래도 이렇게 재밌고 솔직한 가사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듣는 그의 음악은 예전처럼 재밌게만 들리진 않았다. 어쩌면 나도 어느새 그가 음악을 하던 나이가 되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책을 읽고는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그가 2010년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 있었더라면 어떤 방법에서든 그때보다 훨씬 유명해질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유튜브도 있고, 인스타그램도 있고 무엇보다 TV에서도 무명 가수들을 발굴하기 위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의 매년 하고 있는데. 그래서 요즘은 어떻게든 한 번만 유명세를 타면 그 후로는 주변에서 알아서 유명인으로 만들어주는 세상인데. 그가 조금만 더 버텼다면 그가 그토록 원했던 연봉 1200만 원이 아니라 월 1200만 원씩도 벌 수 있었을 텐데. 그가 더 잘 되었다면, 잘 살았다면 그의 죽음이 이토록 아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음악과 자조적인 노랫말이 돈 없고 지질하고 힘든 시절의 나에게 많은 힘이 되었는데, 그 덕분에 나는 죽지 않고 버텨서 지금의 삶까지 왔는데, 이제는 앨범을 사서 들을 돈도 여유도 생겼는데, 팬으로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이제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을 추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