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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진 독서법 > 이동진, 2017

by Ditmars 2022. 5. 31.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2017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단 한 권의 책을 읽은 사람이다"
 - 토마스 아퀴나스 (중세 철학자)

<p.25>

 

 인간이 천 번 만 번 다시 태어나서 산다면 다양한 삶을 경험해보겠지요. 하지만 인간은 한 번밖에 살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인생에서의 모든 것은 시연 없이 무대에 올라가서 딱 한 번 시행하는 연극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 타인이라면 다양한 상황과 특정한 경우에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해 주고 감정을 이입하게 해 줍니다. 인간의 실존적인 상황, 그 한계를 좀 더 체계적이고도 집중적인 설정 속에서 인식하게 하고 고민을 숙고하게 만들죠.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간접 경험보다는 직접적인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죠. 그런데 직접적인 경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간접적인 경험을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직접적인 경험보다 간접적인 경험이 더 핵심을 보게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가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완벽하게 파악하고 예측할 수 있겠어요. 인생에는 변수가 정말 많거든요. 그런데 소설은 그런 변수들을 통제하고 정리해서 만들어낸 이야기잖아요. 그리고 그것이 관계에 대한 문제인지, 인간이 고독을 즐길 수 없는 무능력에 관한 문제인지, 과연 어떤 문제인지를 보게 해 주죠. 그러니 우리는 직접적인 체험보다 책, 특히 소설을 통한 간접적인 체험으로 삶의 문제를 더욱 예리하게 생각할 계기를 갖게 됩니다. 미국에 갈 수 없기 때문에 미국에 관한 책을 읽는 게 아니라는 거죠. 미국에 직접 가보고도 알 수 없는 것들을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거죠.

<p.30>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딸이 중학생이던 시절에 학교에서 가훈을 붓글씨로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고 해요. 우리 집 가훈이 뭐냐고 묻는 딸에게 박찬욱 감독이 '아님 말고'라고 했다죠. 정말 명쾌하고 좋은 말 아닌가요?

<p.35>

 

 세상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빠르게 완료하지 못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은 대부분 오래 걸리는 시간 자체가 그 핵심입니다. 책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책과의 만남, 그 글을 쓴 저자와의 소통, 또 책을 읽는 나 자신과의 대화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 시간을 아까워하며 줄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한 번 무엇을 위해서 책을 읽는가 생각해봅니다. 독서 행위의 목적은 결국 그 책을 읽는 바로 그 시간을 위한 것 아닐까요. 그 책을 다 읽고 난 순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독서를 할 때 우리가 선택한 것은 바로 그 책을 읽고 있는 그 긴 시간인 것입니다.

<p.58>

 

 17세기 철학자 파스칼의 말입니다. "오늘날 모든 불행의 근원은 한 가지다. 인간이 홀로 조용히 방에 머무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미 17세기에도 고요히 방 안에 홀로 있을 수 없다고 한탄했는데 지금은 어떻겠어요. 더구나 지금은 과잉연결시대라고 하잖아요. 우리가 겪는 문제의 상당 부분은 혼자 있는 시간이 모자라서 생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독서는 혼자 있는 시간의 가장 영화로운 순간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책을 읽는다는 건, 기본적으로 혼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독서 체험 자체가 기본적으로 고독한 행위입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못하는 것이 바로 그 고독한 행위인데 일삼아서라도 혼자 정신적으로 홀로 설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필요한 일 아닐까요.

 한 사람이 책 한 권을 쓴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하나의 주제 아래 자신의 지적인 세계를 만들어서 거기에 투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족하고 어설퍼도 그것에 들어가는 저자의 노력은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건, 저자가 만들어낸 지적인 세계, 그러니까 한 사람의 세계와 통째로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한 경험입니다.

<p.79>

 

 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일단 책이라는 것 자체가 삶의 일부가 되도록 끌어안는 게 중요해요. 그러다보면 책이 우리에게 질문을 하게 해 준다는 거죠. 아주 세세한 질문이기도 하고, 아주 큰 질문이기도 한데, '이 길이 옳은가', '나는 왜 사는가'에 대해 책이 답을 주지는 않지만, 일종의 방향성이나 지향성 같은 걸 주는 거죠. 그런 것은 다른 어떤 매체도 갖고 있지 않은, 책이 갖고 있는 자기 반영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p.92>

 

 접해보지 못한 건을 욕망할 수는 없어요. 최소한 접해 봐야 욕망할 수 있어요. 어떤 특정한 사람을 욕망하려면 최소한 그 사람을 봐야 욕망할 것 아니겠어요. 많은 경우에 사람들이 자기가 취향이라고 생각하는 교양의 경계에 갇혀서, 그 좁은 우물 안에 갇혀서 좋은 하늘을 보는 거예요. 동전만 한 하늘을 보고 있는 거죠. 제대로 여러 가지를 접했을 경우 자기의 취향은 사실 다른 쪽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냥 우물 안에 앉아서 이 세계가 전부이고 나는 결국 이렇게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전혀 그렇지 않은 데도요.

<p.138>

 

 왜 이런 말이 있잖아요. 행복은 강도가 아니고 빈도라고. 저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말이에요. 아직 한 번도 안 해본 것들이 있잖아요. 남극에 가보겠다, 죽기 전에 이구아수 폭포를 보고 싶다, 우유니 사막을 방문하고 싶다 이런 것. 한번 보면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것 같고, 실제로 가보면 그래요. 그런데 저는 그게 행복이 아니고 쾌락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저는 쾌락은 일회적이고, 행복은 반복이라고 생각해요. 쾌락은 크고 강렬한 것, 행복은 반복되는, 소소한 일상에 있는 일들이라고. 그래서 제가 항상 이야기하는 습관론이 나오게 되는데, 행복한 사람은 습관이 좋은 사람인 거예요. 습관이란 걸 생각해보면, 습관이 없으면 사람은 자기 동일성이나 안정성이 유지가 안돼요.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17세기 보르도 지방에 떨어졌다고 생각해보세요. 끔찍할 거라고요. 무엇을 어떠할 것인가. 모든 것을 매 순간마다 결정해야 하잖아요. 우리는 지금 그럴 필요가 없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와 같은 그 시공간 속에서 일단 습관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채우고, 최소한의 결정이 남는 시공간을 여집합으로 두는 거죠. 밥을 하루 세 번 먹는다. 세 번 중 한 번은 가족과 먹는다. 점심은 동료들과 밖에 나가서 사 먹는다. 그다음에는 커피를 마신다. 시간이 잠깐 나면 눈을 붙인다. 오후에 책을 30분 읽는다. 주말에는 고교 동창들과 낚시를 하러 간다. 이런 것들일 텐데요. 우리 삶을 이루는 것 중 상당수는 사실 습관이고, 이 습관이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거예요.

 마치 습관의 시간에서 탈출해야 재미있는 것처럼 생각하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그 시간에 뭘 하냐. 낮 동안에 일하느라 힘들었으니까 오늘 저녁은 한 번도 안 가본 곳에 간다거나 그런 게 우리는 행복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습관 부분에서 재미를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머지는 오히려 쩔쩔매는 시간이에요.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거죠.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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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명을 대며 당당하게 나의 독서법이라고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그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아니면 대단히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일 것이다. 독서에 대해서는 학위나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동진은 독서의 전문가이다라고 하기에는 학계(?)의 논란이 있을 것 같고 대신에 나는 그가 대단히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그의 엄청난 독서량과 그에 걸맞은 독서에 대한 많은 사색과 글쓰기라는 탄탄한 뒷받침에서 왔을 것이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독서에 대한 그의 애정이다. 이 책을 읽으며 독서는 작가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취미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내가 존경하는 기장님 중 한 분은 출퇴근을 할 때 늘 책을 들고 다닌다. 여기서 책을 들고 다닌다는 건 말 그대로 손에 들고 다닌다는 말이다. 보통 책이라 하면 가방에 넣어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가. 아마 서점에서 막 책을 산 사람도 책은 쇼핑백 안에 들어 있고 손은 그 쇼핑백을 들고 있지, 책을 손으로 직접 들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늘 책을 직접 들고 다녔다. 그 덕에 나와 주변 사람들은 그가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어디쯤 읽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가 책을 직접 들고 다니는 모습은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직접 들고 다녀도 불편하지 않을까? 걷다가 놓치거나 깜빡하고 어디에 놓고 다니지는 않을까? 두 손이 필요한 순간에는 어떻게 할까? 우스꽝스러운 책을 들고 다니면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지는 않을까? 등등... 그리고 나는 그걸 따라 해 보기로 했다. 대중교통 중 버스와 택시를 타는 경우에는 책을 들고 다녀도 읽을 수가 없다. 책을 들고 다니며 가장 읽기 좋은 때는 지하철을 탈 때이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3년 전 나는 지하철을 탈 일이 생기면 책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책을 들고 다니면서 느낀 점 중에 하나는 생각보다 그것이 불편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오히려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이 편할 때가 더 많았다. 그 이유는 책과 핸드폰을 같이 들고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가방을 잘 들고 다니지 않는 나는 외출할 때 늘 최소한의 짐만 챙기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지갑, 핸드폰, 에어팟 정도이다. 그러나 지갑을 주머니에 넣어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체크카드 하나만 주머니에 넣고 다니게 되었고, 마찬가지로 에어팟 케이스가 주머니에 들어 있을 때의 불편함 때문에 케이스를 빼고 에어팟(이어폰)만 들고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핸드폰 같은 경우는 주머니에 넣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작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걸을 때면 주머니에 넣고 앉을 때면 주머니에서 빼는 무척이나 번거로운 동작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불편함을 한 번에 해결한 것이 책과 핸드폰을 같이 들고 다니는 것이었다. 이는 실제로 집에 있는 책을 가지고 실험해봐도 좋은데 둘을 겹쳐서 잡게 되면 핸드폰 하나만 들고 다닐 때보다 그립감이 두툼해져 손에 꽉 쥐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손가락을 잘 이용하면 왼손의 세 손가락을 이용해 책을 쥐고 양손 엄지와 검지로 카톡을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어디에 가던 책이라는 받침대가 생겨 핸드폰을 놓기 편하고 또 책 위에 핸드폰이 같이 놓이면 어디서든 눈에 띄기 때문에 둘 다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어차피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 것이기 때문에 에어팟도 이어폰만 따로 들고 다니는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카드는 주머니에 넣고 책과 핸드폰은 따로 손에 쥐고 다닌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상대방이 약속 시간보다 늦어도 짜증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 읽고 있으면 그만이다. 오히려 혼자 책 읽는 시간을 갖기 위해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적도 많았다. 커피 한 잔을 시키고 상대방을 기다리며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건 생각보다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첫 번째는 핸드폰과 책을 동시에 쥔 손으로는 지하철 손잡이를 잡기 어렵다. 간혹 두 손으로 지하철 손잡이를 잡아야 할 만큼 지하철이 출렁거릴 때가 오면 손잡이를 잡은 유일한 한 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코어 근육을 사용해야 한다. (그간 코어 단련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을 시작하기 전에 코어 단련을 먼저 하길 권한다.) 두 번째는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생각보다 책 제목만으로는 오해를 사는 책들이 많아서 어떤 책은 들고 다니면 흰 나시에 꽉 끼는 가죽바지를 입고 다니면 이런 느낌일까 생각하게 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이라던지 <나는 개새끼입니다> 같은 책들이 그렇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읽던 책과는 별도로 무난한 제목과 무난한 두께의 책을 찾게 된다. 마지막은 모임 자리에서 책 때문에 내가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건 사실 내가 '그럴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지레 겁먹는 것이지, 실제 다른 사람들은 생각보다 책에 관심이 없다. 나는 술자리에 가는 길에도 책을 들고 다녔기 때문에 (돌아올 때는 못 읽지만 갈 때는 읽을 수 있으니까) 고깃집 테이블에 비어 있는 의자를 책과 핸드폰이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 모습에 유난 떤다고 주변에서 할 만도 한데 다행히 아직까지 그런 얘기는 못 들어봤다. (혹은 그런 얘기를 할 때 마침 내가 화장실에 가 있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내게는 이동진 독서법만큼이나 큰 도움이 되었던 기장님 독서법이다. 코로나 때문에 혹은 자동차를 많이 이용하면서 혹은 친구가 없어서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에 가는 일도 점점 줄어들고는 있지만 기회가 될 때면 계속 책을 들고 다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