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분명한 건 내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 써왔고, 또 그게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 보니 내 삶에 이런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도 모르게 골칫거리로 삼아 씨름하게 되는 문제들 중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거의 모든 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p.11>
물론 꽤 많은 사람이 인정하는 술의 좋은 점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취중진담이다. 술을 마시면 더욱 솔직하고 진실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나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술에 취한다는 건 결국 그냥 좀 멍청해지는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게 내가 이십 년 정도 마셔오며 내린 결론이다. 멍청해진 상태에서 하는 이야기가 평소보다 더 진실된 것이라면 좀 이상한 일 아닌가. 물론 멀쩡할 때에는 용기가 나지 않아 하지 못했던 말을 술에 취하면 할 수 있게 되는 일이 종종 있기는 하다. 뇌에서 술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곳 중 하나가 자기 억제를 관장하는 부위라고 하니, 자연스러운 일일 테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밝히는 마음이 더 '진실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야기를 꺼내기 주저하는 마음도 어쨌든 진심이다. 그 마음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진실된 대화란 그렇게 상충하는 여러 진심들을 빠짐없이 마주한 후 적절한 방식으로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뇌의 일부를 마비시키고 특정한 진심만을 꺼내놓는 것과는 다르다.
<p.26>
"기분 탓이야." 이 표현이 널리 쓰이고 있다는 것은,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 '기분'을 좀 하찮게 여기고 있다는 뜻일 터다. 하지만 나는 기분만큼 믿을 만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기분이 어떤지를 잘 살피는 일이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에서 좋은 기분보다 중요한 것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p.52>
그저 멍하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물을지 모르나,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확실히 그렇지 않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는, 흙탕물이 서서히 흙과 물로 분리되듯 시끄러운 생각들이 점차 가라앉고 하고 싶은 바가 뚜렷해진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보다가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은 아직 없다. 대신 뇌의 한 근육이 미세하게, 하지만 지속적으로 시달리는 기분이다. 회복과 피로가 불균형하게 뒤섞이는 느낌이랄까.
<p.62>
한마디로, 나는 아버지로서의 의무 때문에 나의 자유를 양보할 생각이 아직은 없는 것이다.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해도 변명의 여지는 없다. 하지만 세상에는 한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부모라는 타이틀을 모두 거머쥐려다 주변 사람들에게(특히 자신의 자녀에게) 큰 상처를 주는 이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 대열에 동참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다. 부모는 자녀에게 헌신해야 한다. 헌신할 생각이 없다면 낳지 않는 거이 낫다. 그리고 나는 아직 헌신할 생각이 없다. 헌신하는 이들에 대한 존경심은 가지고 있다. 내가 못하는 것이니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지금의 내 삶은 헌신과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p.68>
다만 나는 나 스스로에게 불필요한 무언가를 취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만족감을 느낀다. 그것은 돈을 아끼고 말고와도 좀 다른 문제다. 인생에 군더더기가 없다는 데서 오는 쾌감이다.
<p.79>
그러고 보면 사람의 성향이란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는 것 같다. 물론 한 사람이 가진 불변하는 본질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 본질은 누구 옆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다. 내 경우 아마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유전자와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것이 내 기질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가진 본질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사실 원래부터 정리정돈 강자가 될 떡잎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지금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면 어떨까. 부모님과 내내 같이 살다가 또 다른 정리정돈계의 절대강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면? 여전히 '역시 나는 정리정돈과는 거리가 멀군'이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p.87>
어릴 때에는 좋은 일이 지나가면 슬퍼질 때가 많았다. 아마도 유치원 때쯤, 우리 누나의 친구 한 명이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다. 이름은 세라였던 걸로 기억한다. 두 누나들은 나랑 곧잘 놀아주었는데, 세라 누나가 집에 가려고 하면 나는 가지 말라고 떼를 쓰며 울곤 했다. 초등학생 때에는 어느 해인가 친구들을 여럿 초대해서 생일잔치를 했는데, 그날도 어스름이 깔려올 때쯤 친구들이 하나둘씩 집에 돌아가기 시작하자 나는 무척 슬퍼져 눈물을 흘렸었다. 그 외에도 그 비슷한 일은 얼마든지 있던 시절이었다. 머리가 굵고 난 후에는 그런 것에 대해 점점 무뎌져 온 것 같다. 요 몇 년간은 좋은 날이 지나가는 것에 대해서도, 나이가 드는 것에 대해서도, 연애가 끝나는 것에 대해서도 별로 슬퍼했던 기억이 없다.
<p.104>
자유롭다는 것은 곧 막연하다는 뜻이고, 막연한 삶은 종종 외롭다. 이끌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든 헤쳐나가야 할 때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지 않겠는가.
<p.119>
그리고 나에게 달리기는 일종의 명상이기도 하다. 처음 일이 킬로미터 정도까지는 달리는 행위 자체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지만, 그 후 어느 순간부터는 팔다리가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뇌도 알아서 움직인다. 나의 생각이 의도적인 노력을 벗어나 그저 냇물처럼 흐르기만 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 자체로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이런저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p.135>
'뭐라도 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재미있는 게 있다면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내 일상의 일부를 콘텐츠로 만들고 싶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상이 콘텐츠가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일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p.155>
행복 앞에 뾰족한 수는 없다. 그게 내 기본적인 생각이다. 돈이 많든 적든 재능이 많든 적든 인기가 많든 적든 나이가 많든 적든 애인이 있든 없든 집이 있든 없든 키가 작든 크든 그 무엇을 가졌든 못 가졌든 행복이란 누구에게나 대략 비슷하게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라는 얘기다. 물론 각자 무엇을 가졌는가에 따라 사회적 성공에 다다를 수 있는 가능성은 달라진다. 거기에 있어서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하지만 행복은 다른 문제다. 그 어떤 사회적 성공도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그 성공을 손에 넣는 순간 자신이 그걸 얼마나 절실히 원했었는지 잊어버린다. 혹은 그 성공으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불행을 맞이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눈앞에 놓인 불행을 어떻게든 헤치고 나름의 행복에 닿고자 막연한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이게 여태까지의 삶이 내게 가르쳐준 바다. 물론 앞으로 이 생각을 뒤집어줄 사람이나 사건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적이 없다.
<p.187>
<Nothing That Has Happened So Far Has Been Anything We Could Control>.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 테임 임팔라의 노래 제목이다. 여태까지 일어난 일 중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의미다. 몇 년 전 이 노래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이 가사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되뇌었다. 내 삶에서 내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지나간 일을 하나의 스토리로 끼워 맞추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는 음악을 하고 싶어서 했고, 열심히 했기 때문에 성과를 얻었다, 하는 식으로 엮으면 내 삶은 노력과 결실의 과정으로 기록되는 것이다. 하지만 <싸구려 커피>라는 노래를 만든 것 하나에 대해서만 생각해도, '내가 그 노래를 만들고 싶어서 만들었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그리고 삶은 노래 하나 만드는 것보다는 훨씬 더 복잡한 일들로 가득 차 있다. 테임 임팔라의 노래 제목은 어쩌면 낭만적인 수사가 아닌, 엄중한 현실인지도 모른다.
<p.212>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남을 위로하겠다는 큰 뜻을 품기보다, 내 마음 하나만이라도 잘 들여다보자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나 자신이라도 잘 위로해주자. 그것만이라도 잘해낸다면, 그리고 운이 좋다면, 결과적으로 누군가 위로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 정도가 노래를 만들 때 위로라는 것에 대해 내가 가지는 생각이다.
<p.254>
몇 달 전 군대 후임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후임이긴 하지만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인 그와는 군대에 있을 때도 친했고 전역한 후에도 종종 만나 소식을 전하곤 하는 사이였다. 그가 로스쿨에 진학하고, 나 역시 회사에 입사하고 결혼을 하면서부터는 연락이 뜸해지기는 했지만 그의 결혼 소식은 내게도 정말 기쁜 소식이었다. 같은 부대 사람들을 모아 청첩장을 주기 위해 날짜를 잡았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날 비행이 있었다. 그래서 그와 나는 다른 날짜에 따로 만났다. 점심에 만나 밥을 먹고 날이 좋아 커피를 마시며 마곡 식물원을 크게 한 바퀴 산책했다. 자대에 있을 때 그를 포함해 마음 맞는 선후임끼리 삼삼오오 모여 기지를 크게 한 바퀴 산책했던 일이 떠올랐다. 10년 전의 군기지 산책과 비교했을 때 대화 주제는 많이 바뀌었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좋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화 말미에 그는 내게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어>라는 곡을 알려줬다. 지나가듯 '이 노래 알아?'라며 한 말이었지만 내겐 유독 그 노래의 제목이 기억에 남았었다보다. 다음 날 출근을 위해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 노래를 틀었다. 웃음이 났다. 이후 그 노래가 수록된 장기하의 새 앨범을 처음부터 들어보았다. 곡이 많지 않아서 공항으로 가는 길 내내 듣고 또 들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며칠간은 장기하라는 인물에 빠져 살았다. 그가 책도 썼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 바로 구매해서 읽었다. 지난 앨범도 다시 찾아서 들었다. 그의 음악과 말, 생각과 행동에 혼자 깊은 감명을 받으며 내면에 또 한 사람의 롤모델이 생긴 것처럼 그를 좇았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러면 내가 장기하라는 가수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것이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나는 장기하의 최초 팬이라고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는 고등학생 시절 EBS 스페이스 공감을 즐겨 봤었고 그때 처음 등장한 신인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 공연 본방을 챙겨 본 사람 중에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유튜브에 검색하면 지난 방송까지 전부 나오기 때문에 옛날 방송이나 방영 시간이 지난 방송을 찾아보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방영 시간대를 놓치면 다시 보기가 어려웠다. 내가 EBS 스페이스 공감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아주 운 좋게 우리 집에 남는 TV가 하나 있었는데 그게 내 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15인치 노트북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작은 TV인 데다가 공중파 채널밖에 안 나왔지만 내 방에서 나 혼자 TV를 보는 것이 내게는 꽤나 유쾌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EBS 스페이스 공감은 금요일 혹은 토요일 거의 자정이 되어서야 방송했다. 아무래도 별로 유명하지 않은 신인 인디 밴드들의 공연이다 보니 가장 인기가 없는 시간대에 틀어줬던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고2, 혹은 고3이었던 내게는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잠들기 전까지 깨어 있는 친구들과 문자로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며 한창 감수성이 충만해지는 시간대였다. 온 집안 불은 다 꺼져있고, 부모님은 이미 주무시고, 내 방에서는 나만 혼자 TV를 보며 학업에 대한 고민,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해소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싸구려 커피>와 <달이 차오른다 가자> 공연을 보며 (미미시스터즈는 당시에도 충격적이었다.) 느낀 장기하와 얼굴들은 일단 당시 장기하의 외모가 너무 나이가 들어 보였다. 마치 30대 혹은 40대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삼겹살에 소주 대신 밴드를 결성해 음악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노래 역시 그때 그 시절을 노래하는 것만 같았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내게는 그냥 정말 순수하게 아저씨들 같이 보였다. (충분히 그럴 만도 하지 않은가?)
그 이후로 나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앨범이 새로 나올 때마다 어떻게 그 소식을 접했는지 모르겠지만 꾸준히 찾아서 들었다. 그들의 팬이라거나 노래를 항상 즐겨 듣는 건 아니었지만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에 걸친 시절 워낙 인디 밴드의 음악을 좋아했었기 때문인지 내 아이팟에는 항상 그들의 앨범도 같이 있었던 것이다. 그걸 알게 된 건 최근에 장기하와 얼굴들의 예전 앨범을 다시 들었을 때 그 노래들을 이미 다 내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꽤나 오랜 시간 장기하라는 인물의 영향권 안에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야 그의 생각과 그의 음악에 감명을 받고 많은 공감을 하는 것은 왜일까. 분명 삼촌보다 나이가 많을 것은 분명하고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 꺼내면서 담배 하나 사 오라고 할 것 같은 아저씨였는데 지금은 형처럼 느껴지는 것은 또 왜일까. 본업이 작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의 책을 읽으며 나도 이렇게 간결하고 명료하게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군대 후임의 결혼 소식으로 (글을 쓰는 시점인 현재 그는 이미 결혼식을 마쳤다.) 촉발된 가수 장기하에 대한 생각의 흐름이 과거를 거스르다 여기까지 글을 쓰게 했다. 참으로 재미있는 인연이다. 아, 정작 책에 대한 얘기를 못했네. 책 참 좋다. 음악으로 미처 다 전하지 못한 (혹은 음악으로는 전할 수 없는) 그의 소소한 생각들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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