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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박완서, 1992

by Ditmars 2021. 1. 4.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1992

 

 그러나 만약 그때 엄마가 내 도벽을 알아내어 유난히 민감한 내 수치심이 보호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민감하다는 것은 깨어지기 쉽다는 뜻도 된다. 나는 걷잡을 수 없이 못된 애가 되었을 것이다. 하여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사는 동안에 수없는 선악의 갈림길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p.90>

 

 감수성과 기억력이 함께 왕성할 때 입력된 것들이 개인의 정신사에 미치는 영향이 이렇듯 결정적이라는 걸 생각할 때, 나의 그런 시기의 문화적 환경이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너무나 척박했었다는 게 여간 억울하지가 않다. 그러나 한편 우리가 밑바닥 가난 속에서도 드물게 사랑과 이성이 조화된 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엄마 덕이었다고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 것은 강경애의 소설을 읽고 나서였다.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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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을 하기 전에 간단하게 박완서 작가의 생애와 주요 작품들을 훑어보았다. 돌아가신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다는 사실과 내가 읽어본 책이라고는 지금 적고 있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요즘 읽고 있는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이렇게 두 권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 여자네 집> 혹은 <그 남자네 집>이 학창 시절 교과서에 실려 있었는데, 짤막한 글에 밑줄 치고 문제 풀며 읽었음에도 꽤나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인 1931년에 태어난 한 여자 아이의 유년 시절 이야기가 이렇게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고 흥미진진할 수 있는 까닭은 분명 작가의 능력일 것이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어렸을 때의 철없던 감정, 불필요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어 나를 괴롭힌 날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싶었던 전날 밤의 고민.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유년 시절의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자세하고도 생생한 묘사와 감정 표현은 나에게 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와 더불어 내가 들어보지도 못한 시절, 즉 한국의 40년대의 생활상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도 이 책을 읽는 큰 재미 중 하나였다.

 

 여태껏 누군가 나에게 박완서 작가에 대해서 물어보면 "그분 유명하시지. 나도 그분 책 좋아해.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도 세 번은 읽은 것 같아."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렇게까지 아는 척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박완서 작가가 주로 작품 활동을 했던 70년대와 80년대의 작품은 하나도 읽어본 적이 없거니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엄밀히 따지면 그녀의 어린 시절 기억에 기반한 자전적 소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소설가로서의 박완서 작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걸 수도 있다. 그녀의 소설도 차차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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