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 2004

by Ditmars 2021. 1. 18.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2004

 

 소중한 것은 스쳐 가는 것들이 아니다. 당장 보이지 않아도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들이다.

<p.28>

 

  열무와 나의 두 번째 여름은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열무에게 익숙하지 못한 아버지였다. 하지만 내게 아버지가 없었더라면 그마저도 못할 뻔했다. 아이가 생기면 제일 먼저 자전거 앞자리에 태우고 싶었다. 어렸을 때, 내 얼굴에 부딪히던 그 바람과 불빛과 거리의 냄새를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받은 가장 소중한 것.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

 집이 있어 아이들은 떠날 수 있고 어미새가 있어 어린 새들은 날갯짓을 배운다. 내가 바다를 건너는 수고를 한 번이라도 했다면 그건 아버지가 이미 바다를 건너왔기 때문이다. 나도 이제 열무를 위해 먼저 바다를 건너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물론 어렵겠지만.

<p.30>

 

 그나마 삶이 마음에 드는 것은, 첫째 모든 것은 어쨌든 지나간다는 것, 둘째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

<p.34>

 

 때로 쓸쓸한 가운데 가만히 앉아 옛일을 생각해보면 떨어지는 꽃잎처럼 내 삶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인다. 어린 시절이 지나고 옛일이 그리워져 자주 돌아보는 나이가 되면 삶에 여백이 얼마나 많은지 비로소 알게 된다.

<p.42>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는 게 있다면, 세상의 모든 키친 테이블 노블은 애잔하기 그지없다. 어떤 경우에도 그 소설은 전적으로 자신을 위해 씌어지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스탠드를 밝히고 노트를 꺼내 뭔가를 한없이 긁적여 나간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직장에서 돌아와 뭔가를 한없이 긁적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긁적이는 동안, 자기 자신이 치유받는다. 그들의 작품에 열광한 수많은 독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키친 테이블 노블이 실제로 하는 일은 그 글을 쓰는 사람을 치유하는 일이다.

<p.60>

 

 시간이란 무엇일까? 그건 한순간의 일이 오랫동안 기억되는 과정이다.

<p.86>

 

 여류시인 이시바시 히데노가 폐병을 앓다가 죽은 것은 그녀의 나이 서른여덟 살의 일이었다. 그녀에게는 여섯 살짜리 딸이 하나 있었다. 어느 여름이겠다. 그녀의 병이 깊어져 구급차가 집으로 달려와 그녀는 병원으로 운송되고 있었다. 구급차로 옮겨지는 동안, 매미가 어찌나 큰소리로 울던지... 그 와중에 딸아이는 제 엄마가 구급차에 실려가는 게 무서워 울면서 엄마를 쫓아오고 있었는데, 어느 결엔가 그 애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다. 이시바시 히데노가 '매미소리 쏴- / 아이는 구급차를 / 못 쫓아왔네'라는 겨우 17자로 표현한 일은 바로 이 일을 뜻한다.

<p.90>

 

 꽃시절이 모두 지나고 나면 봄빛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천만 조각 흩날리고 낙화도 바닥나면 우리가 살았던 곳이 과연 어디였는지 깨닫게 된다. 청춘은 그렇게 한두 조각 꽃잎을 떨구면서 가버렸다. 이미 져버린 꽃잎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p.132>

 

 그 집의 식구들은 모두 스물넷에서 서른두 살 사이의 사람들이었다. 인생의 정거장 같은 나이. 늘 누군가를 새로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데 익숙해져야만 하는 나이. 옛 가족은 떠났으나 새 가족은 이루지 못한 나이. 그 누구와도 가족처럼 지낼 수 있으나 다음날이면 남남처럼 헤어질 수 있는 나이.

<p.136>

 

 여전히 삶이란 내게 정답표가 뜯겨나간 문제집과 비슷하다.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는 있지만, 그게 정말 맞는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p.136>

 

 내가 시를 쓰게 된 것도 그가 내게 던진 말 때문이었다. 한 번은 내가 무슨 일로 약간 비꼬는 투를 섞어 "저도 시나 써야겠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정확하게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네가 어떤 시를 쓸지 꼭 보고 싶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의 격려 덕분에 내 안에 가시덩굴처럼 쌓여 있던 수많은 두려움들, 예컨대 "이제까지 백일장은커녕" 같은 것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p.193>

 

 봄빛이 짙어지면 이슬이 무거워지는구나. 그렇구나. 이슬이 무거워 난초 이파리 지그시 고개를 수그리는구나. 누구도 그걸 막을 사람은 없구나. 삶이란 그런 것이구나. 그래서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자라는구나.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옷 곳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이구나. 울어도 좋고, 서러워해도 좋지만,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게 삶이로구나.

<p.242>

 

더보기

 김연수 작가가 시를 이렇게 좋아하고 또 잘 알고 있는지 몰랐다. 중국 당나라 시조와 일본의 짧은 시 하이쿠가 그의 청춘의 문장이라니. 내게는 그저 한자의 나열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그것들 속에서 많은 이야기와 생각을 풀어내는 그가 무척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청춘을 이렇게 많은 시를 읽고 많은 생각을 하며 보냈을 거라고 생각하니, 나는 내 청춘을 어떤 생각을 하며 보내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여러 대답이 있을 수 있다. 그중에서 어디선가 읽은 '내가 하루 종일 하고 있는 생각이 바로 나'라는 말이 내게는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요즘의 내가 하루 종일 하고 있는 생각이 별 볼 일 없는 생각들 뿐이어서일까? 한 편의 시를 읽고 하루 종일 그 감상에 젖은 눈과 머리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것도 참 좋은 청춘일 것 같다.

 

 김연수 작가가 본인의 청춘의 문장들로 풀어낸 소소한 생각과 담담한 이야기가 17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이번에는 나의 청춘의 문장들이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나의 청춘의 문장들도 다음 번에는 다른 누군가의 청춘의 문장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