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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 2015

by Ditmars 2021. 1. 18.

<장정일의 공부> 장정일, 2015

 

 한 때, 지금이야말로 스페셜리스트의 시대라고 하여 모두 스페셜리스트를 동경하면서 "제너럴리스트는 모든 분야에서 사용할 수 있어도 큰 도움은 되지 않는 대중적인 지적 노동자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견해가 유행처럼 번졌다. 하지만 그것은 낮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를 가리키는 표현일 뿐이다. 스페셜리스트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로 존재하며, 사회의 모든 시스템은 결국 제너럴리스트가 움직이는 것이다. 모든 거대 조직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사람, 정책을 기획하는 사람, 의사 결정을 하는 사람, 집행 부문의 상층부에 존재하는 기업의 운영자 등은 모두 제너럴리스트이다. 기술 부문 출신의 대기업 사장이나 관청의 수장인 기술 관료들도 있지만 그들은 결코 스페셜리스트로서 최고의 자리에 앉은 것이 아니다. 기술자이지만 경영에 대해서, 영업을 전개하는 전략에 대해서, 정치나 사회의 동향에 대해서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면 결코 최고 자리에 앉을 수 없다. 반대로 사무 부문 출신이라도 기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기업이든 관청이든 최고 수준에는 오를 수 없다. 기술은 몰라도 된다는 사고방식은 그야말로 낮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의 사고방식이며, 높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는 당연히 기술에 대한 이해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 높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를 육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높은 수준의 리버럴 아트 교육이다.

 "결국 모든 전문직 위에 서 있는 가장 높은 계급에 해당하는 사람은 다양한 현장에서 과학자들이 발견한 것을 토대로 고찰한 일반적 명제를 통합하여 좀 더 큰 통찰을 이끌어 내는 사람"
 -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다치바나 다카시

<p.55>

 

 '교육의 목적은 현 제도의 추종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 콩도르세 (1743~1794 : 프랑스의 철학자)

<p.59>

 

 블로크는 "시험과 등수"에 연연하는 초, 중, 고등학교의 교육이 학생들을 개로 만든다면서 "서커스에서 재주를 부리는 개는 많은 것을 아는 개가 아니라 미리 선택된 연습을 통해서 알고 있는 듯한 환상을 주도록 훈련된 개다."라고 말한다. 열넷이나 열다섯 살 정도의 학생들이 배우는 중등학교에서는 지식이 아니라, 논리를 훈련하는 도구를 가지고 시민으로서의 정신을 훈련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강요되는 시험 편집증은 "성공이 앎에 대한 관심을 대신"하게 만들고, 자유로운 호기심과 지적 자발성을 앗아 간다. 선별의 수월성을 위해 몇몇 교과목에 편중될 수밖에 없는 시험 위주의 교육은 학생들의 다양한 능력을 한정한다. 공화주의자 블로크가 보기에 시험 편집증에 걸린 공교육의 가장 우려되는 폐해는, 공화국 시민에 걸맞은 "비판 정신"과 "포용력" 있는 "시민정신"을 함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점수의 노예'로 훈련된 엘리트는 "그랑제콜"과 같은 "특권적인 기관"에서 "추억과 우정"을 나눈 뒤, "폐쇄적인 작은 사회"를 만든다. 그들은 장차 "인간적인 문제에 대해 진정한 인식이 없는 우두머리들, 세상을 모르는 정치가, 새로운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행정가"들이 된다.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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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정일 작가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는 꽤 여러 대답이 있는 것 같다. 그의 생애와 여러 작품을 알아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저 내가 우연한 기회로 읽게 된 이 책에 대해서만 기록하고 싶다. 누군가 내게 소개해주거나 어쩌다 알게 된 계기가 아니라면 영영 알지 못했을 것 같은 책이다. 나 역시 유시민 작가가 <표현의 기술>에서 이 책을 언급하여 알게 되었다.

 

 공부라면 나도 많이 했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한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학창 시절부터 취업 준비까지 참으로 많은 공부를 해왔을 것이다. 인생의 절반 가까이의 시간을 공부하며 보냈는데 사실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다. 공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던 어린 나이부터 시작해서 그런지 공부에 대해서는 늘 수동적인 자세가 되고 만다. '공부'라는 단어만으로도 왠지 피하고 싶고 거부감이 드는 단계까지 온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도 공부는 계속해야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공부'라는 단어 대신 '연구', '읽다', '알아보다' 등의 단어를 쓴다는 점이었다. 원하는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격이 필요하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며 어떤 일정으로 일이 진행되는지 알아보아야 했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사수가 가르쳐 주는 일을 잘 적고 암기해야 하고 매뉴얼을 읽어야 했다.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어떤 서류가 필요하고, 어떻게 자금조달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 연구해야 했다. 어떤 분야에서건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배우고 암기하고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실제 상황에서 적용할 줄 알아야 했다. 왜냐하면 누가 알려주지도 않고 책을 찾아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학창 시절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했던 말처럼.

 

 "붉은 여왕의 나라에서 제자리에 있고 싶으려면 죽어라 뛰어야 한다. 네가 할 수 있는 한 힘껏 달려야만 이곳에 겨우 머무를 수 있을 뿐이야. 만약 네가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면 적어도 이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하지."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이 앨리스에게 한 이야기이다. 지금 이 세상은 우리에게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최대의 노력을 요구한다. 다른 사람들이 평범해 보인다고 가만히 있는다면 나는 평범해질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평범한 얼굴 아래 적극적으로 두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들 평범하게 살기 위해 치열하게 사는 것이다. 다들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한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적극적인 투쟁'을 하고 있다.

 

 아님 말고 식의 근거 없는 주장과 편향적으로 편집된 정보, 해설 없는 전문 지식과 알고 싶지 않은데 알게 되는 사실들이 인터넷에 널려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얻고자 몇 시간 동안 인터넷을 뒤져 보지만 정확하고 명쾌한 답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성인이 된 후의 공부는 어렵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는 점과 공부하지 않는 삶을 책임져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 공부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인터넷과 커뮤니티를 뒤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