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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 > 히가시야마 아키라, 2022 (eBook)

by Ditmars 2024. 2. 7.

<류> 히가시야마 아키라, 2022 (eBook)

 

 "사람이란 같은 걸 보고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완전히 다른 이유로 웃고 울고 화내지만 슬픔만은 안개 속에서 뻗어오는 등대 불빛처럼 늘 거기에 있으면서 우리가 좌절하지 않도록 이끌어주지."

<p.78>

 

 어쩌면 할아버지의 죽음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심각한 게 아닐지 모른다. 매일 어디선가 누군가는 불행한 죽음을 맞는다. 그래도 사람들은 변함없이 복권 당첨을 생각하고 영화를 보고 레코드를 듣고 실종된 개 때문에 애면글면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p.152>

 

 "자네 할아버지는 늘 화가 나 있었어요. 가슴속에 아직 희망이 있었던 거죠."

 "희망?"

 "조바심과 초조함은 희망의 다른 얼굴이니까요."

<p.289>

 

 사람에게는 성장해야 하는 부분과 성장할 수 없는 부분과 성장해선 안 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혼합된 비율이 인격이고, 우리 가족에 관해 말하자면 마지막 부분을 존중하는 피가 흐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p.400>

 

 "우리 마음은 늘 과거 어딘가에 붙잡혀 있지. 억지로 그걸 떼어내려 해봤자 좋을 게 없단다."

<p.424>

 

 사소한 일로 자기 대신 분노를 뿜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늘 조금쯤 친절해진다. 그런 법이다.

<p.475>

 

 물고기가 말했다.
 나는 물속에 살아서 당신은 내 눈물을 볼 수 없어요.
 - 왕쉬안

<p.486>

 

 잘못한 사람은 하나도 없단다, 마오마오도 잘못한 게 아니야, 그 못도 그래, 아무도 너를 다치게 하려던 게 아니니까, 이럴 때는 그저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렴, 설령 목숨을 잃더라도 아무도 원망해선 안 된다...

<p.518>

 

 그러나 모든 남녀 관계가 그렇듯 파도와 바람이 일지 않을 때는 자기혐오조차 대충 넘길 수 있다. 그리고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둘의 관계가 더는 돌이킬 수 없는 데까지 뒤틀렸을 때야, 모든 균열이 시작된 시점으로서 비로소 아련하게 떠올리는 것이다.

<p.518>

 

 나는 점점 고집스럽게 할아버지 사건에 매달렸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방어기제가 작동했을지 모른다. 프로이트가 주장한 '퇴행'은 견딜 수 없는 일에 직면했을 때, 인간의 마음이 더 유치한 발달단계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렇다, 견딜 수 없는 일 따위 하나도 없던 시절로. 그럼으로써 괴로운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다.

<p.598>

 

 사람이 동시에 두 가지 인생을 살 수 없다면 어떻게 살든 후회는 따르기 마련이다. 중국에 가도 후회하고 안 가도 역시 후회한다. 어차피 후회할 바에는 나로서는 얼른 후회하는 게 낫다. 그러면 그만큼 빨리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다시 시작만 하면 또 다른 데서 후회할 여유도 생길 터이다. 끝까지 파고든다면 그게 바로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닐까.

<p.633>

 

 진심으로 원하는 게 손에 들어오지 않을 때 우리는 그와 비슷한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정반대의 것으로. 그리고 영원히 비슷한 것을 비슷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을 볼 때마다 타협했다는 현실이 코앞에 놓인다. 하지만 대부분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비슷한 그것조차 이 손으로 잡은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는 것을.

<p.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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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 전 이시다 이라의 <텅 빈 마흔 고독한 아빠>를 읽었다. 아내와 사별하고 홀로 초등학생 남자아이를 키우는 소설 작가의 이야기다. 그 책을 통해 일본 출판 세계의 모습을 살짝 엿볼 수 있었는데 그래서 궁금해졌다. 현실 속 역대 나오키상 수상작들이. 매번 책을 읽기 전에 작가 소개를 읽어보기 때문에 일본 소설 덕후로서 나오키상이나 아쿠타가와상 같은 이름에는 익숙했지만 아무래도 우리나라 문학상이 아니기 때문에 큰 관심을 두진 않았다. 그러다 이번 기회에 역대 나오키상 수상작, 아쿠타가와상 수상작들의 목록을 살펴봤다. 목록에서 아는 작품의 이름을 발견할 때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에 읽어 볼 책은 이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제목이 끌렸다. <류>

 

 이 소설은 중국과 대만의 과거사에 배경을 두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 읽을 때 낯선 등장인물의 이름과 지명에 이게 정말 일본 소설이 맞나 싶었다. 국민당, 공산당, 장제스, 마오쩌둥 등의 얘기가 나올 때면 이에 대한 역사적 배경 지식이 없어 처음에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계속 읽어나가면서 등장인물의 대화와 약간의 설명을 들으며 어렴풋이 과거 중국과 대만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속 내용과 책을 읽은 뒤 조금 알게 된 내용을 기반으로 간단하게 그 둘의 과거사를 적어 보려 한다. 이 책을 읽기 전 이 정도만 알고 있어도 소설을 이해하기 훨씬 쉬울 것이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고 그다음 해 1912년 중화민국이 건국된다. 그러나 여전히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중국 내부는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과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으로 나뉘게 된다. 둘은 정권을 두고 엎치락뒤치락 서로 전쟁을 벌이다 (제1차 국공내전)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 중국이 일치시기(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를 겪게 된다. 이에 국민당과 공산당은 우선 힘을 합쳐 일본군과 싸워 이기자며 국공합작을 하고 이후에는 일본군과 전쟁을 벌인다. 그러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의 항복으로 중국은 일본군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 일본의 지배가 사라진 뒤 국민당과 공산당은 정권을 두고 다시 싸움을 벌인다. (제2차 국공내전) 그 결과 공산당의 승리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패배한 장제스와 국민당은 대만으로 도피하여 그곳에서 중화민국 정부를 세운다. 그리고 1975년에 장제스가, 1976년에 마오쩌둥이 사망한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소설의 줄거리를 간단히 적어 보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예치우성으로 예준린의 손자이다. 예준린은 일치시기 때 친일파였던 왕커창이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는 걸 옆에서 목격한다. 예준린은 이에 대한 복수로 왕커창 일가를 생매장하는 악행을 저지른다. 일본군이 물러나고 제2차 국공내전이 일어났을 때 예준린은 국민당 소속이 되어 공산당과 전쟁을 벌인다. 전쟁에서 패배한 예준린은 의형제였던 슈알후 대장의 아들 슈위우원을 구해 양아들로 삼고 대만으로 도피해 포목점을 연다. 그 포목점에서 예치우성은 태어나고 할아버지, 할버지, 엄마, 아빠, 고모, 슈위우원 삼촌과 함께 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장제스가 사망한 뒤 얼마 되지 않아 할아버지 예준린이 포목점에서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다. 경찰은 범인을 잡기 위해 조사를 하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어 결국 범인을 잡지 못하고 사건이 종결된다. 예치우성은 학창 시절 목격한 할아버지의 죽음과 찾지 못한 범인의 정체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성인이 되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할 때까지 계속 고민을 하던 그는 마침내 진짜 범인이 누군지 알게 된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중국 본토로 떠나고 마침내 그곳에서 뜻밖의 범인을 마주한다.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주인공이 단서를 발견하고 범인을 찾는 과정이 이 소설의 뼈대이긴 하나 그렇다고 이 소설을 미스터리, 추리 소설로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내게는 이 소설이 성장 소설로 느껴졌다. 전쟁을 겪은 할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부터 시작되어 경제 성장으로 많은 걸을 누리게 된 주인공 세대를 아우르며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고 그 속에서 주인공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젊은 세대는 지금도 때로 과거 기성세대들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며, 왜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했냐며 비난 섞인 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는 말로 둘러대듯 말을 돌리는 기성세대들에 대해 실망을 하기도 하고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의 도덕적 기준과 윤리적 잣대를 과거에 들이대며 그 시대를 평가하려고 하는 건 우리의 오만한 생각일 것이다. 소설 속에서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춥고 굶주린 가운데 공산당 밥을 얻어먹으면 공산당이 되고 국민당 옷을 얻어 입으면 국민당이 되어 그렇게 서로를 증오하고 총을 겨누게 되었다고. 가족의 위태로운 안위와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그들에게 생존 이외 그 어느 것이 중요할 수 있었을까. 마찬가지로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토요일까지 야근해 가면서 집에 오면 자느라 바빠 살림에는 손 하나 까딱 안 했던 우리네 아버지와 없는 살림에서 한 푼이라도 아껴보고자 자기 꾸미는 것도 포기하고 시장에서 목소리 높여 가며 억척스럽게 변해버린 우리네 어머니를 보며 어떻게 '왜 그렇게 사냐며, 세련되지 못하다'며 비난할 수 있겠는가. 정말로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고 그들 나름대로는 삶에 최선을 다하며 지금껏 살아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