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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청 > 위화, 2022 (eBook)

by Ditmars 2024. 2. 20.

<원청> 위화, 2022 (eBook)

 

 그는 어머니가 생전에 자주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어머니는 그가 작업실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때 그 말을 했다. 작업실 문 앞에 서서, 아들이 아버지처럼 목공 일을 좋아하니 무척 기쁘다면서 칭찬하듯 말했다.

 "천만금의 재산을 가진 것보다 얄팍하더라고 기술을 가진 게 낫지."

 재산을 잃은 뒤 린샹푸는 그 말을 자주 떠올렸다. 생각할수록 일리가 있는 듯했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탕진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주변에 그런 예가 많았다. 인생에서 회복을 예측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래도 기술이 있으면 재앙을 복으로 돌릴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든 기술은 탕진될 리 없었다. 린샹푸는 자신의 목공 기술을 좀 더 발전시켜야 할 것 같아 계속 가르침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p.83>

 

 그사이 아이가 몇 차례 가냘프게 울었는데 그때마다 안방에서 자던 리메이롄이 곧장 옷을 걸치고 나와서 젖을 먹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이는 다 토해냈다. 린샹푸는 리메이롄의 더러워진 가슴 앞섶을 보고 불안에 휩싸였다. 리메이롄은 어느 아이나 아프고 화를 겪기 마련이며, 한 번 아플 때마다 고비를 한 차례 넘기는 것이고 화를 한 번 겪을 때마다 산을 하나 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위로했다.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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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를 잃고 혼기도 놓쳐 혼자 살고 있는 주인공 린샹푸 집에 어느 날 젊은 남녀 한쌍이 찾아온다. 오빠와 여동생 관계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그들은 경성에 가는 길인데 며칠만 재워줄 수 있겠냐고 묻는다. 며칠을 묵고 떠나기로 한 전날, 여동생 샤오메이가 갑자기 앓아눕는다. 결국 오빠만 경성으로 떠나고 샤오메이는 당분간 린샹푸의 집에 남기로 한다. 이튿날, 샤오메이는 언제 아팠냐는 듯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고 오빠를 기다리는 동안 린샹푸와 샤오메이는 사랑을 나누며 같이 사는 사이가 된다. 그렇게 둘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으나 어느 날 아침 린샹푸는 샤오메이가 떠났음을, 그것도 자신이 모은 재산의 절반을 훔쳐 달아났음을 알게 된다. 린샹푸는 절망 실의에 빠졌으나 이내 기운을 차리고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샤오메이가 빈손으로 다시 돌아온다. 린샹푸는 몹시 화가 났으나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용서하기로 한다. 곧 그녀는 딸을 낳는다. 새로운 생명의 축복과 함께 예전의 화목한 가정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는 듯했으나 어느 날 밤 그녀는 젖먹이 딸과 린샹푸를 두고 한 번 더 집을 떠난다. 비통한 린샹푸는 젖먹이 딸을 안고, 지금껏 모은 재산을 가지고 그녀를 찾아 그녀의 고향이라고 한 원청이라는 남쪽 도시를 향해 떠난다. 그리고 원청을 찾아 떠난 그곳에서 린샹푸는 여러 일들을 겪는다. 

 

 청나라 말기의 중국을 배경으로 하여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의 삶이 잘 드러나는 소설이다. 담백한 문체로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데 오히려 그 담백한 문체 때문인지 등장인물의 삶이 더 잘 느껴졌다. 그들이 처한 현실과 순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안타까웠고 가슴이 아팠다.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읽은 박경철의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만큼이나 고통스러운 독서였다. 이야기만으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 그만큼 작가의 필력이 뛰어나다는 뜻이겠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휘몰아치는 감정의 동요에 피로감이 들기도 하고 소설이 남기는 긴 여운이 후유증처럼 남기도 했다. 한 번쯤은 푹 빠져서 읽어볼 만하지만 다시 읽기에는 엄두가 안 나는 그런 소설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