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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결혼생활 > 임경선, 2021

by Ditmars 2021. 4. 13.

<평범한 결혼생활> 임경선, 2021

 

 그에 비해 나는 인정 욕구와 애정결핍, 질투와 불안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다. 그것들이 내가 하는 일에 동기를 부여하고 연료가 되어주는 측면도 있지만, 지난 인생을 돌이켜보면 단 한 번도 '꾸준히' 평온했던 시간이 없었다. 평온은 열정과 불안 사이, 고통과 공허함 사이사이 잠시 반짝 모습을 보여주고 이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아니, 오히려 평온하다 싶으면 그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상황을 흔들어 기어코 스스로를 불안정한 상태로 나를 다시 던져놓고야 말았다.

<p.17>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럼 왜 결혼을 하느냐?'라는 반문이 나오는 시대다. 이 질문을 숙고해보았다. 나는 왜 그때 결혼을 했던 것일까? 사실 당시엔 이런 질문 자체가 내게 없었다. 상대가 가정을 꾸릴 경제적 능력을 갖췄는지 알아보지도 않았고, 결혼한 후 겪을 가부장제와 양성 불평등을 미리 우려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그런 문제들이 걱정되지만 우리의 사랑으로 다 이겨낼 수 있어' 같은 정신 승리나 자기 합리화도 필요하지 않았다. 결혼에 이르는 과정 중의 모든 번잡스러움은 한낱 곁다리에 불과했고 관심도 없었다. 나는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과 하루라도 빨리 손가락 깍지 끼듯 뿌리 끝까지 엮이고 싶었다. 낭만주의자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예 '생각' 자체가 없었던 한심함이기도 했다.

<p.107>

 

 사랑이 식은 건 아니지만, 평생 그를 사랑할 것 같다고도 생각하지만, 결혼한 상태에선 상대를 사랑하고 위할수록 내가 없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좌절과 열등감을 안겨주고, 나를 가장 잘 알기에 가장 아프게 상처 주는 방법을 꿰고 있다. 천국과 지옥은 이토록 한 끗 차이다.

<p.122>

 

 누군가에게 의지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알고 보면 무척 쓸쓸한 인간이라는 것을 살면서 불현듯 깨닫는다. 뿐만 아니라 자기와 가까운 사람도 쓸쓸하게 만들어 버린다. 아내와 남편으로서의 역할극은 집어치우더라도, 가장 가깝다고 여기는 내 곁에 남아 있는 사람에게 몸과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일, 거기에는 번잡함을 동반한 애틋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신은 나처럼 메마르고 독립적인 사람에게 몇 번의 병원 입원 생활을 배당한 것일 테다.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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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이 책에 대해서 몇 가지 적어보자면 첫 번째, 이 책은 작가 본인이 토스트라는 출판사 이름으로 독립출판한 작품이다. (ㅌㅅㅌ를 세로로 쓰면 책표지의 출판사 로고가 된다.) 작가는 5년 전 마틸다라는 이름으로도 독립출판을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이름을 사용했다고 한다. 나는 독립출판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책의 제작부터 인쇄, 제본, 유통까지 대형 출판사가 아닌 1인 혹은 소규모의 출판사에서 이뤄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과 같이 때로는 작가 본인이 출판사를 만들기도 한다고. 두 번째, 책이 예쁘다. 마치 이케아의 쇼룸 책장에 꽂혀 있는 인테리어 소품 같다. 너비가 여느 책과는 다르게 잡지처럼 넓고 책이 얇다. 그리고 하드커버이다. 세 번째, 이 책은 올해 결혼 20주년을 맞이한 작가가 본인의 결혼생활과 그에 대한 생각을 적은 산문집이다. <태도에 관하여>를 읽었을 때도 그렇고, 이번 책을 읽었을 때도 그녀가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고, 자녀까지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결혼과 육아가 얼마나 바쁜 일이고 사람의 정신을 쏙 빼놓는 일인지 알기 때문에 그 와중에 글을 계속 써왔다는게 대단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책 읽고 소감 몇 줄 적는 일도 오래 걸리고 그마저도 뜨문뜨문 적고 있는데...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또래에 비해 일찍 결혼한 편이다. 주변의 친구들은 이제 막 결혼을 하거나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대화 주제가 결혼으로 넘어갈 때가 많다. 특히 최근 자본주의화(?)된 결혼 시장의 흐름에 맞추어 이 사람이 잘났니, 못났니 혹은 이 결혼이 잘한 결혼이니, 못한 결혼이니 평가가 종종 이루어진다. 그 평가에 대한 결과는 결국 모임의 유일한 기혼자인 나에게 기대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서로 사랑하면 결혼하는 거지 뭐~"라며 뻔한 대답으로 그 상황을 모면하곤 했다. "잘했다, 괜찮다, 결혼해!"의 대답을 바라지도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는 대답도 바라지 않았을 주변 사람들은 실망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진짜 모르는 걸...

 

 그 질문에 대한 속마음을 여기에 적어보자면 "너 참 결혼 잘했다"는 말은 갓 결혼한 사람들에게 쓰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결혼이 끝났을 때, 즉 인생의 마지막에 써야 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공연을 막 시작한 가수에게 "공연 잘한다" 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마라톤을 막 시작한 사람에게 "달리기 잘한다"고 하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결혼이 시작된 사람에게 결혼 잘했다고 하는 것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사실 그 말이 '좋은 조건의 배우자를 만났다' 라는 뜻으로 쓰인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다시 마라톤에 비유하자면 나는 이미 출발을 해서 달리고 있는 중이고, 그들은 출발선에 서기도 전이기 때문이다. 마라톤을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잘 달리기 위해 출발선에 서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은 평소 체력 관리를 하고, 좋은 신발과 좋은 옷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마라톤을 무사히 완주하는데 필요한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듯 아무리 좋은 조건의 배우자와 좋은 환경에서 결혼을 한다 하더라도 그게 꼭 잘한 결혼이 될 거라는 보장은 없다. 결국 "이 결혼 잘한걸까?"에 대답은 "두고 봐야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나도 다음 달에 결혼기념일이 있다. 결혼 4주년이다. 연애는 2012년 10월부터 했으니 아내가 내 삶의 일부가 된 것도 벌써 9년이 되었다. 흔히들 연애를 하면서 다투거나 부부싸움을 하면 주변에서 이런 조언을 한다. "지난 이십 몇 년동안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났는데 당연히 다툼이 일어날 수 밖에 없지. 그렇게 하나씩 알아가고 맞춰가는 거야."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2034년을 은근히 기대한다. 2034년은 내가 아내 없이 혼자 살아온 날보다(22년) 아내를 만나고 같이 살아온 날이 더 많아지는 해다. 그 때가 되면 "아닌데요? 올해를 기점으로는 나 혼자 살아온 시간보다 이 사람이랑 같이 산 시간이 더 많은데요? 같은 환경에서 산 시간이 더 길어지는데요?" 라고 반박할 수 있겠지.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