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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도에 관하여 > 임경선, 2018

by Ditmars 2021. 4. 21.

<태도에 관하여> 임경선, 2018

 

 현실에서는 오히려 '생각'하고 '행동'하기보다 '행동'을 하면서 '생각'이 따라서 정리되었다. 그때의 청승맞은 여행도 그저 생각을 비우는 역할을 했을 뿐이었고, 깊은 생각은 돌아온 후 새로운 일의 가능성을 손수 알아보려고 움직이면서 비로소 자극받아 꿈틀대기 시작했다. 나의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나의 밖을 둘러봐야 했던 것이다.

<p.17>

 

 확고한 생각이나 단단한 가치관이 되어주는 것들은 내가 자발적으로 경험한 것들을 통해서 체득된다. 생각이 행동을 유발하지만 사실상 행동이 생각을 예민하게 가다듬고 정리해준다.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을 때는 일단 그 상황에 나를 집어넣어보는 것이 좋다. 가장 확실한 리트머스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용기는 그래서 필요하다.

<p.19>

 

 정말로 그 일을 하고 싶다면 그것이 안전한지, 적성에 맞는지, 내가 생각한 대로의 꿈의 직업일지, 사전 검증이 있든 없든 어떻게든 그 일에 가까이 가려고 할 것이다. (...) 진심으로 열망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 마음을 참지 못하고 행동을 일으킨다. 소설가 김연수 씨가 산문집 <소설가의 일>에서 소설가가 되려면 소설을 쓰는 게 우선이라고도 말했듯이, 핑계를 대며 돌아가지 않고 정중앙으로 쭉 걸어 나간다. 그 일을 하고 싶으면 우선 그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아이러니 같은 진리. 누구에게 질문할 필요조차 없고 더더군다나 누가 말린다고 해서 관두지도 않는다.

<p.33>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감당하려고 애쓰는 것은 착한 게 아니라 비굴한 것이다. 그것은 그저 갈등이 생기거나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서 미리 자신을 상처 입힐 뿐이다.

<p.42>

 

 자식은 부모라는 껍질을 깨고 나와야 어른이 된다. 성장은 나의 부모가 나처럼 한낱 불완전한 인간임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부모와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해결하지 못할 바에는 물리적으로 벗어나는 것말고는 방법이 없다.

<p.65>

 

 그래도 나는 서로를 좋아하는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완전에 가까운 애정 표현은 결혼이라 생각하고, 결혼을 하면서 다른 인간에 대해 깊이 이해하거나 내가 이해받으려고 노력한다는 면에서는 결혼이 꽤 의미 있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p.73>

 

 젊을 때 성실하게 애쓰고 노력하는 것은 기초 체력 쌓기 훈련 같은 거라서 몸과 정신에 각인시킬 수 있을 때 해놓지 않으면 훗날 진짜로 노력해야 할 때 노력하지 못하거나 아예 노력하는 방법 자체를 모를 수 있다. 잘 될지 잘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젊은 시절 최선을 다해 노력했거나 몰두한 경험 없이 성장해버리면 '헐렁한' 어른이 되고, 만약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이건 나의 최선이 아니었으니까'라며 마치 어딘가에 자신의 최선이 있다고 착각하면서 스스로에게 도망갈 여지를 준다.

<p.166>

 

 남에 대한 이야기를 할 시간과 기력으로 나의 일을 하기로 한다.

<p.202>

 

 예로 "삶의 여유를 가져라"라고 주장하는 유명 인사가 있다면, 사실 그 분은 그 말을 하기 전까지 엄청나게 무리하고 노력하면서 스스로를 혹사시킨 사람이었다는 거죠. (...) '노력하는 것이 되게 촌스럽고, 무모하고, 남 좋은 일 시키는 거다!' 저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어요. 누가 어쨌든 노력한다고 하면 그것은 죽는 날까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에너지이고 동력인 것 같아요.

<p.241>

 

 "저는 직업을 발톱에 낀 때만도 못하게 여기거든요."
 - 김현철 (정신과 전문의)

<p.243>

 

 "제가 늘 얘기한 게 이거에요. '어떤 결정을 해도 애매할 때는, 직장이든 결혼이든 이혼이든 생각할 때는 당신이 룩셈부르크 같은 낯선 데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거기선 아무도 당신을 몰라요. 그럼 어떤 결정을 할래요?' 이 말은 뭐냐면, 우린 결국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산다는 뜻이에요. 근데 현실은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아요. 내 안에 자기 내면의 눈이 많은 거예요. 내 안의 눈이 너무 많으니 내 안의 눈을 이렇게 조금씩 감추면 되는데, 그게 아직까지는 힘드니까요, 당분간은 유치하지만 상상을 하는 거죠.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룩셈부르크 같은 저기 어디 먼 곳에 있다 치자고."
 - 김현철 (정신과 전문의)

<p.260>

 

 "가장 좋은 결혼 관계를 유지하려면 오히려 결혼이라는 단어를 지워라, 라고 해요. 결혼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때, 배우자가 생판 남이라고 생각했을 때 어떻게 대할 것이냐? '부부는 사실 남이다'라고 말하죠."
 - 김현철 (정신과 전문의)

<p.267>

 

 조금 다른 얘긴데, 제가 김현철 선생님을 SNS를 통해서 처음 알았잖아요. SNS의 폐해도 많이 얘기되고 있지만 저는 SNS를 긍정적으로 보는데, 그 이유가 나랑 생각이 같은 사람이 있음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에요. 무리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해주는 게 고맙더라고요. 왜냐하면 그전까지는 다른 대안이 없어서 오프라인에서 주변 사람들과 타협하면서 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거든요. (...) 나의 어떤 특수성을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감각. 나처럼 이상한 사람도 있구나, 하는 안도감! (...) 어떤 사람들은 SNS에서 자기를 꾸민다고 하지만, 제 경우 SNS는 솔직히 나를 더 내보일 수 있는 공간이에요.

<p.272>

 

 더불어 하고 싶었던 얘기는, 내가 하고 싶은 건 절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지금 이대로 있어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거.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건 어마어마하게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구요. 분명히 어느 선에서는 대가를 치르고 무리를 할 수밖에 없어요. 예로 텔레비전 속 여자 배우는 왜 이렇게 날씬하냐? 타고난 위너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 여자 배우는 지난 20년간 저녁을 먹지 않은 거예요. 그런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리해야 하는 부분을 무시하고 왜 이것은 이렇게 힘들까,라고 물으신다면...

<p.280>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오늘도 무사히' 예요. 그렇게 살려고 하다보면 어떤 경우도 나답게 살 수 없는 거예요. '오늘도 무사히'에서 무사히라는 단어를 지우고 '오늘도 나답게'라고 바꾸고 싶어요. 그러려면 결국은 상처 입을 각오를 해야 돼요."
 - 김현철 (정신과 전문의)

<p.287>

 

 어느 순간부터 자존감이란 단어가 사람들의 절체절명의 과제처럼 되었어요. 저는 자존감이 없어요, 라는 고민이 너무 많아요.

 "자기애적 사회, 껍질만 자꾸 키워나가는 사회니까 내가 없는 거죠. 나라는 심지가 없다 보니 사람들이 자꾸 열등감을 느끼고 비교하고 그러죠. 내가 없으니까요."

 또 한편으로는 사소한 것 가지고 나는 이러한 큰 문제가 있어, 라며 오히려 문제를 일부러 키우는 듯한 느낌? 문제로 만들고 과잉 해석한다고 할까요.

 "그 자체가 벌써 자존감이든 뭐든 간에 문제가 있다는 거죠. 그게 의구심인데요. 조금 더 아래 단계의 불안이지만, 어쨌든 의구심이 든다는 건 내가 없다는 뜻이에요.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지금 많이 돌고 있다면, 사회에 껍데기만 있다는 거죠."

<p.293>

 

 "정신의학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태도로, 웜 앤드 펌warm&firm을 들거든요. 원칙이 있으면서, 철저하되, 따뜻해야 한다..."
 - 김현철 (정신과 전문의)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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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인생을 살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태도를 다섯가지로 압축하여 적은 산문집이다. 그 다섯 가지는 자발성, 관대함, 정직함, 성실함, 공정함이다. 대개 인생을 논할 때면 '인생의 가치관'이라던지, '삶의 철학'과 같은 표현이 익숙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작가는 '태도'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나는 그 표현이 낯설면서도 한편으로는 삶이라는 단어와 더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가진 삶의 철학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태도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가치관과 철학이라는 단어가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라 한다면, 태도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확고한 가치관과 철학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을 견고히 지키는 것만으로는 다양성 가득한 이 사회를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다양한 환경과 다양한 사람들 앞에서 내 철학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는지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삶의 철학만큼이나 태도도 고민해 볼 일이다.

 

 몇 년 전 군대 동기들과의 모임 자리에서 '이런 사람하고 결혼해야 한다'를 주제로 한창 얘기를 나눴던 적이 있다. 제각기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었는데 그때 나는 이런 의견을 냈었다. '자신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성취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하고 결혼해야 한다.' 내가 생각해낸 것은 아니고 나도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그 말에 적극 동의했기에 꺼낸 말이었다. 비록 당시에는 이 말의 의미를 멋지게 설명하지 못해 반응은 미지근했었지만(?) 이 책에서 작가가 노력에 대하여 얘기한 부분을 읽으며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작가는 최선의 노력을 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훗날 진짜로 노력해야 할 때 노력하지 못하거나 아예 노력하는 방법 자체를 모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예전에 들은 말은 이렇게 노력의 경험이 없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말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이 말에 동의한다.

 

 우리가 삶을 살다 보면 무수히 많은 일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대부분의 일들은 내게 익숙하지 않으며 처음 해보는 일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처음 해보는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어떻게 할지 생각한 뒤 그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해보는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누구나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이미 그 일을 했었고, 누군가는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고난 능력의 차이로 노력해도 안 되는 일들이 분명히 있지만,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일들은 다 고만고만한 일들이다. 비슷한 삶을 사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한 일을 나라고 못 할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노력은 무척 중요하고 젊은 날의 노력과 성취의 경험은 내면에 단단히 뿌리내려 훗날 어떤 일을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도록 지탱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노력의 가치가 많이 폄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차피 노력해도 안돼' 라는 패배주의에 물든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남들에 비해 재력 없는 부모를 만난 것과 부족한 외모로 태어난 것에 대해 얘기하며 이번 생은 망했다고들 한다. 개인의 노력이 아닌 타고난 재능 탓을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나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마냥 비난할 수만도 없다. 타고난 것으로 결정되는 사회적 격차는 심해졌고 과거에 비해 노력해도 안 되는 영역이나 일들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과정을 공정하게 한다 해도 출발선이 다르면 공정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기성세대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그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노력하지 않는 청춘들에게 여전히 노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젊은 세대의 패배주의, 점점 격차가 벌어지는 사회, 현실을 외면하는 기성세대, 이런 세 가지의 문제는 눈덩이 굴러가듯 서로 얽혀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나는 앞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누구나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노력의 가치를 무척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만약 지금 10대라면, 20대라면, 지금과 똑같이 생각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이제 막 두 돌이 지난 내 아이는 블록 놀이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다 자기 마음대로 잘 안되면 짜증을 내곤 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천천히 노력해보면 결국은 다 할 수 있어' 라고 얘기하며 다시 해보게끔 한다. 그러나 언젠가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 아무리 노력해봐도 안 된다고 좌절하고 남들과 다른 출발선을 원망할 때도 과연 이렇게 얘기해줄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