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을까.
- 이방인, 첫 문장
<p.13>
그런 몇 가지 문제만 제외하면 나는 지독히 불행하지는 않았다. 한 번 더 말하자면 요점은 시간을 어떻게 죽이느냐 하는 데 있었는데, 회상하는 법을 터득한 순간부터는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때때로 나는 내 방에 대한 회상을 시작하곤 했다. 우선 나는 상상을 통해 방 한 귀퉁이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런 다음 머릿속으로 내가 가는 길목에 놓여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처음 출발했던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처음만 하더라도 회상은 금방 끝났다. 하지만 매번 거듭할 때마다 그 여정은 조금씩 길어졌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가구 하나하나를 기억해 냈을 뿐만 아니라 그 각각의 가구에 대해서도 그 위에 올려져 있던 각각의 물건들을 떠올렸으며, 다시 그 각각의 물건들에 대해서도 그것들의 미세한 부분까지 생각해 냈다. 또 그 세부들에 대해서도 거기 입힌 세공이라든가 갈라진 부분, 깨진 모서리, 또는 그것들의 색깔이나 오돌토돌한 질감을 상기했다. 내 목록의 전체 맥락을 놓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빠짐없이 열거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 몇 주가 지나가 나는 내 방 안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헤아리는 일만으로도 꼬박 몇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듯,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때까지 내가 알지 못했거나 잃어버렸던 사실들을 점점 더 많이 기억의 편으로 끄집어낼 수 있었다. 설사 생을 단 하루밖에 살지 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감옥 안에서 별로 힘들이지 않고 백 년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가 지닌 추억의 양은 지루함을 재우기에 충분하리라.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일종의 특권이기도 했다.
<p.112>
이렇게 해서 잠자고, 회상하고, 기사를 읽고,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사이에 시간은 흘러갔다. 나는 전에 감옥에 있으면 시간의 개념을 상실하게 된다고 쓴 글을 분명 읽은 적이 있지만, 막상 그런 일이 내게 크게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나는 예전에는 하루하루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긴 동시에 짧을 수 있는지 몰랐다. 살아 내기에는 길다 할 수 있을 나날의 시간들은 늘어나고 또 늘어난 끝에 마침에 서로 범람하기에 이르렀고, 그럼으로써 제 이름을 잃고 말았다. 이제 내게는 어제나 오늘이란 단어만이 유일하게 의미를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다.
<p.114>
<이방인>처럼 이제까지 숱하게 번역되고 읽혀 왔으며 대학 수업의 교재로 꾸준히 채택되는 고전 텍스트의 또 다른 우리말본을 만들고 해설을 덧붙일 때는 다소 모순적인 고충이 뒤따른다. 앞서 나온 판본들뿐만 아니라 그간 축적되어온 관련 연구와 분석 자료들이 작품에 대해 남긴 많은 말들을 번역자는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그것들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게 어느 정도는 의무이기조차 하다. 반대로, 그 모든 참조물들과 선행된 연구물들, 혹은 자기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얼마간의 지식이나 최초의 인상에도 불구하고, 텍스트를 마치 처음 대하는 것처럼 새롭고 무방비적인 시선으로 읽는 일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
- 역자해설 (김예령)
<p.175>
소설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평범한 삶을 살던 젊은 사내 뫼르소가 어느 날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 한다. 버스로 몇 시간 거리에 있는 어머니가 계시던 요양원에서 밤새 장례를 치르는데 슬프다기보다는 피곤한 마음에 얼른 장례가 끝나기를 바란다. 장례를 마친 뫼르소는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여자 친구 마리와 해수욕을 즐기고 코미디 영화를 보고 사랑도 나눈다. 며칠 후 우연한 기회로 친해지게 된 이웃의 레몽이라는 사내는 뫼르소와 마리를 근처 해변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뫼르소는 우연히 만나게 된 레몽의 원수 아랍인을 총으로 쏴 죽인다. 해변을 산책하던 중 찌는 듯한 더위와 강렬한 햇빛에 눈이 부셨다는 것이 그가 말하는 살인의 이유였다. 이러한 이유로 뫼르소는 법정에 서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사실과 장례식 다음 날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했다는 사실, 햇빛에 눈이 부셔 아랍인을 살해했다는 사실 등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는다. 결국 그는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뫼르소는 솔직한 사람이다. 남에게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솔직하다. 지나치게 솔직한 뫼르소의 태도는 결국 그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도 그는 꿋꿋히 솔직한 태도를 보인다. 융통성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그의 모습에 나는 답답했다. '어머니의 장례식이고 주변에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속으로 슬프지 않다 쳐, 그래도 겉으로는 슬픈 척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혹은 '실수로 사람을 죽였어, 잘못한 건 분명 맞는데, 당장 내가 사형당하게 생겼는데 얼른 사죄하고 반성해야 어떻게든 살 수 있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소설 속의 사람들도 나와 동일하게 생각했기에 그에게 사회 부적응자라는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고지식하다 싶을 정도로 정직하거나 솔직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될 일을 얘기해서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거나, 선의의 거짓말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바람에 싸움을 키우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을 만나면 '그냥 좋게 빨리 빨리 넘어가지...' 라며 속으로 답답해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습은 내가 오래전부터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던 누군가의 모습이었다. 상황과 분위기를 너무도 중요시 여기는 바람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표현하고 싶은 감정이 있어도 남의 눈치를 보며 그것들을 숨기고 상황에 자신을 맞추는 모습. 어느 때에도 해야 할 말, 하고 싶은 말은 하자고 다짐했던 나도 막상 누군가가 내 앞에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에는 불편함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정확하진 않지만 나도 아마 나를 숨기고 그 상황에 맞추고 있었을 것이다.
내 주변에도 뫼르소 같이 본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친구가 있다. 사실 그 친구 역시 주변으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지는 못했다. 그의 솔직한 말이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 적도 있고 그의 행동이 모임의 분위기를 깨기도 했다. 친구를 처음 본 사람들은 인간관계에 매너가 없다고 그를 멀리 했다. 나는 그 친구와 오래 알고 지냈기 때문에 그의 본성이 원래 착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구나 첫 만남에서는 그 사람이 겉으로 드러내는 말과 행동으로 그 사람의 본성을 파악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친구가 편하고 좋다. 정직한 행동과 솔직한 말에서 신뢰를 느꼈다. 특히 나이가 들며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몸소 체감하게 되면서 때로는 직설적인 사람이 겉과 속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과 상황에 맞게 요리조리 나 자신의 성격을 변화시키면 처음 몇 번의 만남에서는 좋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지만 곧 나도 지치고 상대방도 어색함을 느낀다. 이상하게 보일지언정, 상대방이 싫어할지언정, 나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편한 일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제는 사회적 분위기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차가운 사람, 솔직한 사람, 이상한 사람, 말이 없는 사람, 재미없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여유가 생겼다. 따라서 2021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모두 스스로를 믿고 두려움 없이 우리가 편한 모습으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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