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생각하는 어른이란,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으면서 일상을 단정하고 정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p.204>
임경선 작가의 7편의 짧은 단편 소설이 엮인 책이다. 작가의 생각이 담긴 두 산문집 <태도에 관하여>와 <평범한 결혼생활>을 읽고 난 뒤 읽어서 그런지 소설 속에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가의 일관된 삶에 대한 생각과 태도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소설 속 주인공의 말이 마치 작가가 하는 말처럼 느껴질 때 희미한 웃음이 나기도 했다.
7편의 단편 소설 속 등장인물과 그들이 처한 상황은 다양했다. 다양한 삶 속에서 자신이 주인공인 인생을 살기 위해 저마다 고독한 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 그대로였다. 그중에는 내가 아는 삶도 있었고 모르는 삶도 있었다. <사월의 서점> 속 남자 주인공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진 가장의 삶은 알고 있지만 <나의 이력서> 속 여자 주인공처럼 여러 부서 이동과 승진을 거치며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의 삶은 잘 알지 못했다. 하물며 암 투병 중인 과부의 퍼스널 트레이닝을 맡게 된 헬스 트레이너의 삶은 더더욱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이 내 주변 가까운 사람 중에 한 사람이고 그들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느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작가의 등장인물의 상황과 심리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지금까지 나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 대해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소설을 읽는 이유 중 하나가 내가 모르는 세상 속 제삼자의 삶을 엿보는 것이라 한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행위를 좋아하는지도 알 것 같다. 때로는 관심도 없고 굳이 알아야 할 이유도 없는 타인의 삶 속 작은 부분에서 사람들은 기쁨과 슬픔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 삶의 의미도 찾게 되는가 보다.
그러나 한가지, 개인적으로 나는 각각의 소설 속에서 지속적으로 대한민국 여성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이랄까 피해의식 같은 게 묻어나는 것 같아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소설의 주제나 줄거리에 대놓고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생각 등에서 말이다. 이렇게 은연중 '한국 여자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토로가 느껴지는 부분을 읽을 때면 굳이 이런 말을 넣어야 했을까, 굳이 이런 상황을 설정해야 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만약 <82년생 김지영>처럼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받는 차별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인 책이었다면 작가의 의도를 확인하고 그 부분을 인정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 대부분의 줄거리는 남녀 상관없이 평범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불필요하게 줄거리가 옆길로 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여성이 느끼기에는 너무나도 당연한 한국 사회에서의 평범한 삶의 모습이라면... 아마도 그것 역시 내가 전혀 모르고 있었던 제삼자의 삶과 다를 바 없을 것이고, 나는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삶에 대한 오만과 편견을 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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