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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게 뭐라고 > 장강명, 2020

by Ditmars 2021. 5. 7.

<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2020

 

 '인류를 사랑하는 건 쉽지만 인간을 사랑하는 건 어렵다.'
 - 버트런드 러셀 or 스누피

<p.28>

 

 예의와 윤리는 다르다. 예의는 맥락에 좌우된다. 윤리는 보편성과 일관성을 지향한다.

<p.54>

 

 '좋은 삶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와 같은 주제를 놓고 대낮에 맨정신으로 지인과 토론할 일은 거의 없다. 직장 동료와 점심을 먹다가 그런 질문을 던지면 "뭐 잘못 먹었어?"라는 대꾸를 듣기 십상이다. 또는 걱정 어린 시선과 함께 "요즘 안 좋은 일 있는 거 아니지?" 하는 말을 듣게 될 수도 있고. (...)

 그러나 만약 최인철 교수의 <굿라이프>를 읽고 독서 토론을 하는 자리에서라면, 누구나 쑥스러워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삶에 대해, 인생의 가치와 행복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아니, 말하게 된다. 그런 생각을 누군가 경청해주는 것은 대단히 감동적인 경험이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점점 말이 많아진다. 생산적인 대화가 오간다. 

 책은 우리가 진지한 화제로 말하고 들을 수 있게 하는 매개체가 되어준다. (...)

 사람들 앞에 책이 있고 그 책 역시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고집스럽게 한 가지 주제를 이야기한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책이 묻는 질문에 답변해야 한다.

 책은 우리의 대화가 뒷담화로 번지지 않게 하는 무게 중심이 되어준다.

<p.97>

 

 가끔은 내가 당대를 굉장히 못마땅해한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세상이 너무 좋고 아름답고 옳은 방향으로 제대로 굴러간다고 보는 사람은 중요한 글은 못 쓸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친구나 동료의 호감은 분명 더 많이 얻을 테지만. 불화의 근원을 탐구하려는 의지가 나의 연료다. 그런 의지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려는 자세와 집요함이 나의 무기다. 그런 태도는 대인 관계에는 도움이 안되지만, 글쓰기에는 좋다.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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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제목인 <책, 이게 뭐라고>는 장강명 작가가 요조와 함께 2017년부터 2년 간 진행한 팟캐스트의 이름이다. 그리고 이 책은 작가가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느꼈던 점들을 '읽고 쓰는 인간'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적어낸 산문집이다.

 

 나는 우연한 기회로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리게 되었다. 오랜만에 도서관에 갈 수 있게 되었는데 가기 전까지만 해도 도서관에서 한 번에 빌릴 수 있는 책의 권수가 3권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서 빌리고 싶은 책 3권을 미리 정해 놓았고 가자마자 도서관에 놓인 컴퓨터를 통해 3권의 위치를 각각 찾아내 집어들었다. 그리고 대출을 하려는 순간에 안내문에 적힌 '1회 최대 5권 대여 가능' 이라는 문구를 보게 되었다. 아니, 이렇게 인심이 후할 수 있다니... 라는 생각을 하며 모처럼 온 김에 책을 더 빌리기로 했다. 그러나 5권은 양심적으로 대출 기간 내에 다 못 읽을 것 같아 1권만 얼른 더 빌리기로 했다. 그렇게 막상 1권을 더 빌리기로 했는데 따로 정해 놓은 책이 없다 보니 그 많은 책들 속에서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또 얼른 책을 빌리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에 쫓기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마음은 더 초조해졌다. '정말 아무거나 괜찮긴 한데, 이거는 좀...'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때 신간 코너에서 이 책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이 책의 뒤표지에 실린 글을 읽고 나서 마지막 1권은 이 책을 빌리기로 결정했다. (참고로 이 책의 뒤표지에는 책 내용 중 내가 위에 인용한 97페이지의 글이 적혀 있다.)

 

 블로그를 개설하고, 책을 읽고, 좋은 내용을 인용하고, 소감을 적어보는 것도 5개월이 되었다. 처음에 소감을 적은 건 사람들에게 이 책에 대해 소개하기 위함이었다. 이 책은 이러한 책이고 나는 이렇게 느꼈다, 정도로 간략하게 적어보고자 했다. 그런데 소감을 쓰다 보니 나도 하고 싶은 얘기가 생겼다. 책에서 나온 특정 단어에 대한 나의 생각을 풀어보기도 했고, 책의 내용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다른 주제에 대해서 줄줄이 적어보기도 했다. 이미 책 소개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그러나 사실 내가 어떤 글을 쓰는지는 별로 중요치 않은 일이다. 이 블로그를 딱히 누가 보는 것도 아니고, 써야하는 주제를 정해놓은 것도 아니기에 이제는 마치 일기처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쓰는 곳이 되었다.

 

 그럼에도 내가 꾸준히 책을 읽고, 인용한 뒤, 글을 쓰는 것은 작가가 적은 것처럼 책이 내게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작가와 내가 대화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과 대화할 때 말을 끝까지 들어보는 것처럼 책을 끝까지 읽어 보고 나의 생각을 조심스레 적는다. 하지만 대화와 다른 점은 말이 아니라 글이라는 점이다. 작가는 오랜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을 오랜 시간을 들여 글로 적어낸다. 그 결과물이 책이다. 누군가와의 대화도 분명 가치 있는 일이지만 더 많은 공을 들여 적은 글은 말보다 더 정제된 누군가의 생각이다. 그리고 나 역시 소감을 글로 써본다. 짧은 글이지만 쓰는데 1시간, 2시간이 넘게 걸린다. 나 역시 내 생각을 정제하는 것이다. 단 몇 초의 생각 끝에 말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더 고민해보고, 단어와 문장을 바꿔보며 내 생각을 더 정교하게 다듬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막연한 형태의 내 생각과 감정을 구체화시킨다.

 

 독서와 글쓰기는 항상 즐겁지는 않지만 내 삶에 이런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는 바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좋은 습관으로 남아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