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시 나를 가장 오해하기 쉬운 존재는 오히려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를 '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다른 이를 안다는 그 확신에 찬 전제가 늘 속단과 오해를 부른다는 걸 알기에. 나는 누굴 안다는 생각을 잘하지 않으려 한다. 당연히 상대도 그러지 않기를 가까울수록 더 바라고. 그건 내가 복잡하거나 대단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든 몇 마디 말이나 경험으로 판단되고, 규정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p.34>
당신은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과
솔직함을 드러내는 것 중
어느 게 더 어려운 일인가요.
<p.36>
사람이 책임을 질 수 없는 대상에게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책임감은 애초부터 그걸 소유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p.68>
그렇지 않은가?
세상에 나말고도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이유가 있든 없든 그게 내가 될 수도 있음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을.
<p.83>
예전에는 엄마가 왜 그렇게나 남의 눈총까지 받아가며 바삐 움직이는지를 도통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어느 날 엄마와 떨어져 혼자 살게 되면서 난 알게 되었다. 너무 일이 많아서 그렇다는 걸. 자식 남편 하루 세끼 밥해 먹여야 하고 집 안 청소하고 빨래하고 꽃도 가꾸고 장도 보러 가야 하고 종일 그래야 하니까 엄마가 바쁘지 않으면 다른 가족들이 살 수가 없으니까 엄마들은 항상 바쁠 수밖엔 없는 거다. (...)
우리들의 아늑한 보금자리는 어째서 다른 가족들이 떠민 일을 누군가 떠안는 희생과 수고로 지탱되어올 수밖엔 없었던 걸까.
<p.102>
그래서 나는 어른들이 어린 내게, 바깥에 나가 큰일을 해야 하느니, 이런 뜬구름 같은 타령을 하기보다 자기 일은 스스로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다른 무엇보다 그게 큰일이라고, 그래야 사람답게, 어른답게 살 수 있는 거라고 훈수를 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랬다면 젊었을 때 이대로 이름 하나 못 남기고 죽어야 하나, 이런 남부끄러운 생각 같은 걸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p.117>
그러던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더라. 설사 그 모든 게 엄마 탓이 맞다고 해도, 이 긴 인생에서 내가 언제까지 누굴 탓하고만 살아야 할까. 내가 상처 받았다는 이유로 이렇게 나를 방치한다면 그건 결국 누구의 손해일까. 그때부터 나는 내 상처를 조금씩 스스로 해결해가기 시작했다. 상처라는 게, 세월이 흐르면 그걸 준 사람뿐만이 아니라 받은 사람의 책임도 되더라. 누구 때문이든 결국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건 나니까, 내게는 누가 주었든 그 상처를 딛고 내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일부 개인적인 문제'에 한한 것이고 부모 자식 간이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세상의 어떤 상처들은 끝내 피해자의 몫으로 남아서는 안 되는 게 있는 법이니까.
<p.123>
왜냐하면 생활 습관과 가치관의 차이란 가족이라 해서 극복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란 걸 슬프지만 인정할 때가 누구나 오기 때문이다. 그걸 늦게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우린 해결되지 않는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p.124>
후배는 자신을 좋아하는 대가로 상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뭔가를 포기하길 바라고 있었다. 그것이 사랑의 증명이라고 믿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그 증명을 상대방만 해야 하는지? 나의 욕심과 상대의 욕심이 충돌할 때, 결국엔 양보하고 이해하는 쪽이 더 사랑하는 거라면 내가 더 사랑하면 안 되는 걸까? 그럼 손해가 되는 걸까?
끝내 자신이 피해자라도 되는 양 서운해하는 후배를 보면서, 상대로 하여금 미안하다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만드는 사람은 피해자가 아니라 차라리 가해자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p.143>
연애에서, 남자가 잘생기고 돈 많고 몸이 튼튼한 것도 좋지만 학습과 발전이 가능하다는 점이야말로 최고의 덕목이 아닐까?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서 나에게나 스스로에게나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그런 자세를 변함없이 오래 유지한다면 어찌 사랑의 묘약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p.147>
누가 누굴 만날 때 갖고 싶어지는 게 아니라 배우고 싶고 닮고 싶어 진다면, 소유욕과 질투가 아닌 존경과 존중하는 마음이 그의 내면을 채우게 된다면 그게 달리 무엇을 뜻하겠는가.
<p.148>
사랑
그거 알아요?
사람은 자기 얼굴을
거울을 통하지 않고서는 실제로는 결코 볼 수 없다는 거.
그럼 그것도 알겠네요?
누가 세상에서
나의 얼굴을
가장 자세히
또 많이 들여다보는 사람인지.
그렇게 보다 보다
끝내는 나의 거울이 되어가는지.
어떤 사람들은 그걸 사랑이라 부르더라고요.
<p.152>
만약 내가, 인생의 끝자락에, 시간적으로 돌이킬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도 없는 시기에, 저렇게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후회를 하게 된다면, 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후회라는 걸 잘하지 않는 이유가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하며 내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 그래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싫고 두려웠던 것이다. 그것이 내 지나온 생애가 후회로 결론지어지는 문제라면 더더욱.
<p.192>
앞서 친구의 이야기를 했지만, 나도 밖에서는 거의 강박적일 정도로 남에게 피해 주는 것 싫어하고 항시 예의를 차리는 편이라 이런 사람들의 특성이기도 한데, 이렇게 밖에서 유난히 예의를 차리는 사람일수록 정작 가까운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게 바로 나라고 아니할 수 없고.
<p.198>
대체로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은 때로 평생이라는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어떨 땐 한쪽이 죽고 나서야 겨우 이뤄지는 수도 있다. 이해라는 건 그만큼 하기도 받기도 어려운, 그래서 더 귀한 것이다.
<p.203>
"자기는 누굴 배려할 때도 그 사람을 위해서라 아니라 그 사람을 걱정하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 배려를 하는 것 같아."
<p.212>
살면서 무수히 부끄러워 달아나려던 순간이 있었고 최선을 다해 내 자랑을 하려 들던 순간들도 있었어. 그런데 돌이켜보면 다 소용없었던 것 같아. (...)
내 자랑을 하려들 때의 남을 봐도 그렇고, 누군가 자기 자랑을 늘어놓을 때의 나를 봐도 그렇고,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자랑은 그렇게 하고 싶어하면서도 남의 자랑에는 무관심해지나 보더라고. 그래서 난 언제부턴가 그걸 안 해. 남 앞에서 스스로를 추켜올리는 일.
<p.221>
세상의 어떤 명서도 내 그릇만큼 읽힌다.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오랜만에 집을 떠나면서 나는 외롭지 않고 불편하지 않으려 조바심치다 그 모든 것들이 여행이 아닌 구경이 되어버렸다.
<p.236>
그것은 마치,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도 기어이 허기를 느끼고 밥을 먹게 되는 그런 이치와 비슷한 것일까. 제아무리 슬퍼도 언젠가는 끝내 웃음을 터뜨리고 말 때의 기분과도 같은?
내가 너를 보내고 이렇게 웃고 있다니.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웃기로 아름답고 멋지고 맛있는 것들도 많은걸, 하며 자조하는 그런?
그래. 누군 조금 먼저 가고 누군 남아서 이렇게 또 계속되는 게 삶의 모습일 테지.
<p.241>
우울하고 어두운 것을 즐기려해도 체력이 받쳐줘야 한다는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암에 걸렸다가 지금은 완치된 친구가 혹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이제는 뒤가 궁금한 드라마나 내용이 센 영화는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이 아프면서도 선뜻 이해가 가지는 않았었는데 이젠 나도 알겠다. 감정과 자극을 즐긴다는 것도 이렇게 체력이 필요하고 그게 안 되면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는 걸. 친구는 같은 이유로 뉴스를 보지 못한 지도 한참 되었다.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일도, 온갖 부당하고 불편한 소식들을 접하고도 크게 타격받지 않고 흘려보낼 수 있는 일도 다 건강과 체력이 받쳐줘야 했던 것이다. 글 쓰는 일도 다르지 않아 예전에는 몸을 한없이 혹사하고 버려가며 글을 썼다면 지금은 지키느라 용을 써가며 해야 한다. 안 그랬다가는 어떤 책이 마지막이 될지 모르므로.
<p.249>
위로
이것은 글로 위로를 하고자 할 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힘내 토닥토닥 너는 잘될 거야 어쩌구 이런 말들을 지면을 빌려 활자로 적는 것은 친구나 가족들이 입 밖으로 내어 말로 할 일이지 그것은 글이라 보기도 어려우며 작가가 할 일은 더군다나 아니다. 앞서 말했듯 작가의 위로는 그런 직접적인 말들이 아닌 그가 쓴 책의 글들을 읽었을 때 그 책 자체가 갖는 힘으로 독자가 위로를 느끼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누구든 그 어디에도 힘내라는 두 글자를 찾아볼 수는 없지만 크나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던 책을 읽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p.253>
행복이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닌 대체로 작고 일상적인 것들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은 진즉에 알았다. 그러나 그 모든 사소하고 평범한 듯 보이는 것들의 가치를 알고 지켜가기가 쉽지 않으니 결국 행복이란 가치 앞에서 세상의 모든 작은 것들은 작은 게 아니더라. 일상은, 일상의 평화라는 건, 노력과 대가를 필요로 할 만큼 힘겹게 지켜가야 하는 만만치 않은 것이더라.
<p.259>
어젯밤엔 친한 동생으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인 그애는, 자기는 이토록 사소한 것에 감동하고 기뻐하며 때론 슬퍼하고 분노하는 이런 공감의 감정들을 엄마가 되고 나서야 배운 것 같다고 합니다. 이 순간들이 너무 좋아서, 행여 잃어버릴까 봐, 매 순간 두렵고 고통스러울 정도라고. 그렇게나 귀한 존재로 자식들을 표현하고 있는 거죠.
<p.267>
밤의 행복
10년 전, 스물두 살 대학교 삼학년이었을 때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말하던 네가 10년 뒤 서른두 살이 된 오늘, 요즘은 밤에 자기 전에 맥주 한잔하면서 좋아하는 영화 한 편 보는 게 최고의 낙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서 나는 잠시 아찔했었지. 이건 슬플 일일까? 글쎄. 나는 그냥 자연스러운 일 같아. 낙관적으로 보자면 여전히 세상을 바꿀 기회는 있을 것이고, 비관적으로 보면 앞으로 남은 생 동안 그것이 네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최대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뭐가 됐든, 그래. 10년 전의 너는 조심스럽지만 똑똑하고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열성적이던 아이였지. 그랬던 네가, 세월이 흘러서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고 기다리며, 때로 상처 입기도 하면서 그렇게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서 이제는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밤의 그 안온한 한때가 더 행복한 사람이 되었지만, 뭐 어때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걸. 게다가, 네가 지금 누리는 그 밤의 시간들, 생각보다 크고 덜 쓸쓸하고 진하지 않아?
<p.283>
그러고보면 사람의 얼굴은
한 번도 스스로 보지 못하는 그 자신의 것일까.
아니면 그걸 평생 보고 사는 타인의 것일까.
<p.294>
이석원이라는 작가를 인터넷에서 검색했을 때 그가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책 <보통의 존재>로 작가 이석원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고, 언니네 이발관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 둘이 같은 사람이라니... 게다가 언니네 이발관의 활동이 2017년에 끝났었다니... 책을 읽는 도중에 알게 된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에 무척 놀랐다. 그리고 그제야 언니네 이발관의 노래 가사가 특별하게 느껴졌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역시 창작과 표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이 책은 작가가 일상에서 느낀 생각과 감정을 소소하게 표현한 산문집이다. 목차에 따르면 8부로 나뉘어 있고 각 부의 제목에 따라 글을 묶어 놓은 듯 보이지만 막상 읽어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작가의 첫 작품 <보통의 존재>는 워낙 유명하기에 알고는 있지만 아직 읽어보진 못했다. 그리고 내게 작가의 첫 작품으로써 이 책은 다소 우울하고 장황하게 느껴졌다. 위에 많은 구절을 적었듯이 작가의 생각과 감정에 공감하는 내용도 정말 많았으나 지극히 개인적인 말이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장들이 중간중간 튀어나와 당황스러운 적이 종종 있었다. 마치 감성에 가득 차 있던 시기의 내 싸이월드 다이어리와 비슷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그래도 책의 제목처럼 긴 밤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공감이 되었으리라 생각해본다.
싸이월드 얘기가 나와서 돌이켜보니 나는 중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싸이월드 다이어리를 참 애용했다. 한창 고민이 많고 감수성이 예민했을 시기, 내 머릿 속에 있는 무언가를 꺼내서 표현하는 도구로써 싸이월드 다이어리를 이용했던 것 같다. 때로는 그 날의 감정을 한 단어로 적어 보기도 하고, 누가 내 마음 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에 몇 자 적어보기도 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끝에 얻어낸 결론을 오랜 시간 정성 들여 쓰기도 했다. 그리고 페이지가 무한한 그 특별한 다이어리는 해가 갈수록 글이 쌓였고,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에는 '투데이 히스토리' 기능을 이용하여 과거의 같은 날에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 들여다보는 소소한 재미를 누릴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싸이월드 다이어리를 애용하는 와중에도 따로 노트에 일기를 적곤 했다. 자판을 두드리는 것과 직접 글씨를 쓰는 것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싸이월드 다이어리는 읽는 사람을 의식할 수 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같은 주제여도 내용이 다른 일기가 되었다. 일기는 일기이지만 어디선가 읽고 있을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쓰는 일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다 보니 이 책도 작가의 싸이월드 다이어리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글도 있었지만 내가 알 수 없는 많은 문장들과 작가의 감정 표현은 내가 아닌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썼으리라. 우리 모두는 누구에게나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긴 밤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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