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간의 교류가 인터넷상에서 이루어지면서 더 큰 문제가 생겼다. SNS에서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모인다. 과거에는 어떤 쟁점에 대해 친구들과 술상을 엎을 정도로 논쟁을 하기도 했다. 그러고는 술 깨면 다음날 다시 만났다. 지금은 자신의 SNS에 '좋아요'를 눌러 주는 사람들끼리만 모인다.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간단한 클릭 한 번만으로 친구 관계를 끊어 버린다.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만 소통하다 보니 그 생각이 전체의 의견일 거라고 착각한다.
<p.012>
어느 제약 회사에서 신약을 잘 개발하는 연구원의 특징을 조사한 적이 있다. 그들의 모든 습성을 조사해 본 결과 창의적인 사람들은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들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예를 들면 청소부와 떠든다던지, 자신의 업무와 상관없는 다른 부서의 사람들과 잡담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생각을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생각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p.43>
다르게 말하면 모든 공간에 각각 어떤 기능이 주어지면 우리에게 생각할 여유가 없어진다. 과거 주택의 마당은 특정 기능 없는 빈 공간이었다. 계절과 날씨가 바뀌면서 만들어지는 마당의 변화는 우리에게는 '생각이라는 빵'을 만들 때 필요한 밀가루나 버터 같은 재료였다. 변화는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유명한 철학자들이 산책을 하면서 사색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마당 대신 아파트 거실의 변화 없는 인테리어 속에서 TV를 켜면 쏟아지는 정보에 질식하며 살고 있다. TV는 마치 내가 말할 틈을 안 주고 계속해서 떠드는 친구와 같다. 마당이 주는 자연의 변화가 내 해석이 필요한 요리하기 전의 재료라면 TV 속 이야기는 가공식품과도 같다. 가공식품이 있으면 내가 요리할 가능성이 없어진다. 우리에게 밀가루와 버터가 주어지면 각자 다른 빵을 만들지만, 만들어진 빵이 주어지면 먹고 살만 찐다. 지금 우리의 주거 공간은 인스턴트식품 같다.
<p.56>
현대사회의 공간적 특징은 "변화하는 미디어가 자연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p.125>
뇌과학자 이대열은 '지능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정의 내렸다. 우리 지능의 본질은 거의 변한 것이 없다. 과거 우리가 가진 기술과 재료로 동굴 주거라는 해결책을 만들었듯이, 현대인은 같은 문제 해결 능력인 지능을 가지고 아파트를 짓고 케이블 TV를 보며 산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인간의 주거 환경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인공화 되어 왔다는 점이다.
<p.240>
학자들은 기원전 5천 년까지 1만 3천 년 동안 해수면이 120미터쯤 상승했을 것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가 사는 전 세계의 대도시들은 대부분 해발고도가 100미터 아래에 위치한다. 지금이라도 해수면이 120미터 상승하면 대부분의 도시는 물에 잠긴다.
<p.245>
"현명한 자는 다리를 놓고, 어리석은 자는 벽을 쌓는다."
- 블랙팬서
<p.297>
필자와 필자의 아버지를 비롯한 기성세대에게 행복이란 집과 자동차를 사고 세계여행을 갈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뜻한다. 집을 산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나만의 공간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동차 소유는 내가 원하는 곳에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공간의 확장을 의미한다. 세계여행 역시 개인의 공간적 확장을 의미한다. 기성세대가 추구하는 것은 모두 공간과 관련된 가치들이다. 반면 젊은 세대의 우선순위는 스마트폰으로 영화 보고 음악 듣고 만화 보고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즐기는 데 있다. 이들에게 실제 공간을 소비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대신 미디어를 소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전 세대는 음악을 듣기 위해 전축이나 CD 플레이어와 함께 LP나 CD를 사야 했다. 물건을 사면 그것을 보관할 공간도 많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훨씬 적은 돈으로도 이어폰을 꽂고 모든 음악을 스트리밍 해서 들을 수 있다. 소유하지 않으니 공간도 필요 없다. 젊은이들의 가치관에서 '공간'은 중요도 순위에서 하위권으로 점점 내려가는 중이다. 물론 지금도 여행을 다니고 맛집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사진을 찍어서 개인 SNS에 올리기 위해서 가는 것 같다. SNS에 필요한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 여행을 가는 것이다.
과거 인류 사회는 공간은 많은데 인구는 적었다. 초기 인류 역사는 정복을 통해서 공간을 소유하려는 자들의 역사였다. 각종 제국과 식민지가 그 결과다. 지금은 75억 인구가 비좁은 공간에 살아야 한다. 지나친 공간 소유는 갈등이고 공멸이다. 미디어 속의 공간으로 숨어 들어가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인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p.310>
공간과 건축이 사람과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책이다. 그러므로 책의 제목이기도 한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질문의 '어디서'는 단순히 지리적 의미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공간과 어떤 건축 속에서'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즉, '어떤 공간과 어떤 건축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류가 출현한 이래 처자식에 대한 부양의 의무를 지게 된 남자가 늘 그래 왔듯이 나 역시 몇 년 전 곧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며 우리 가족은 어디서 살아야 할 지에 대해 고민했다. 지금은 2년 전 청약 당첨으로 수도권 신도시의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를 기다리고 있기에 당장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살 곳이 정해졌지만 그래도 고민은 계속된다. '그곳에서 계속 살아야 하나? 무리를 해서 서울로 들어와야 하나? 서울로 온다면 어디로 가야 하나?' 같은 고민이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 집에 살았고, 스무 살 이후로는 학교 근처나 직장 근처에 살았다. 결혼해서도 나의 의지라기보다는 우연한 기회로 지금 살고 있는 곳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돌아보니 내 거주지를 놓고 고민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내가 살 곳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한두 가지 정도로 명확했고 달리 다른 곳을 선택할 여유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곳에 사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살 곳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더 많아졌고, 선택지는 늘어났다. 과거에는 객관식 문제의 5개의 보기 중 아닌 것을 지우다 보니 자연스레 2개 정도가 남고 그중에 답을 찾았다면 지금은 주관식 문제의 답을 고민해서 써야 하는 것 같달까.
그렇다고 이 책을 통해 좁고 낡은 구식 아파트라도 서울에 살아야 하느냐, 넓고 쾌적한 대단지 아파트가 있는 수도권으로 나가야 하느냐를 놓고 저울질하는 내 오랜 고민에 대한 직접적인 해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놓고 곰곰이 생각하는 과정에서 이는 본질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유시민 작가의 책 제목과 같다.) 그리고 '나는 어떠한 삶을 원하는가'에 대한 고민 없이 서울이냐, 수도권이냐만을 따진다면 그것은 내 속에 크고 굵은 철학적 줄기 없이 얇고 가느다란 가지 하나만 갖고 있는 것과 같아 훗날 내 선택에 대한 후회가 들이칠 때 그 잔바람에 이리 휘청 저리 휘청 하겠구나 싶었다. 당분간은 살 곳이 정해진 덕(?)에 고민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점까지 시간을 좀 벌 수 있었지만, 앞으로 꾸준히 가족들과 대화하고 고민하며 우리 가정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철학적 줄기를 잡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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