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더 많은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내면서도 오히려 이전보다 더 글을 쓰는 일이 힘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세상은 다시 대학보다 더 작게 줄어들어 있었다. 대학 연구실 바깥으로 간신히 나오고서도 나는 또다시 내가 앉은 책상과 거기 진열된 책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했다. 그러면 내가 앉은 공간과 책의 두께만이 세상의 전부가 되는 것이다. 책을 덮고 일어나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어느 날 아침처럼 밖으로 나왔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나는 무엇으로 규정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답을 얻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p.21>
국가 시스템에 효율적으로 통제되면서도 자신을 주체로 믿는, 동시에 사유하지 않고 모든 현상을 바라보는 국민은 지금의 국민국가가 지향하는 '대리사회'의 이상향이다. 그렇게 '대리국민'이 된 이들은 국가를 위한 싸움에 스스로 나선다.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국가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자신들의 국가'를 위해, 그에 순응하지 않는 이들과 몸소 싸워나간다.
국가라는 단위를 벗어나더라도, 그러하 시대의 논리를 몸에 새긴 개인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시스템에 순응하지 않는 개인들을 주저앉힌다. 하지만 그것이 대리된 욕망임은 알지 못하고 주체로서 정의로운 행위를 하고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국가/조직 시스템에 편입되어 있는 모든 개인의 문제일 것이다.
<p.36>
호칭은 한 인간의 주체성을 대리하는 수단이 된다. 자신을 그 공간의 주체라고 믿게 만드는 동시에, 그를 둘러싼 여러 구조적 문제들을 덮어버린다. 나 역시 내가 속한 공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나는 그 구성원이라는 환상에 한동안 빠져 있었다.
그 환각에 익숙해질 때, 우리 모두는 '대리'가 된다. 그 공간에서는 더 이상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없다. 누군가의 욕망을 대리하며 '가짜 주인'이 되어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나는 대학뿐 아니라 내가 속했던 여러 공간에서 대개 주체로 서지 못했다. 누구도 호칭 뒤에 숨은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았고, 나도 스스로 한 발 물러서서 그와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의도치 않게 밀려나고서야 나는 누구였는지 나는 거기에서 무엇이었는지를 돌아보았고, 그때는 너무 늦었다.
<p.53>
대리사회의 괴물은 개인에게 주체로서 자신을 정비할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자신이 속한 공간에서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설 수 없게 만든다. 자신의 눈으로 공간을 바라볼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패배'로 규정한다. 자신을 주체로 믿던 누군가가 밀려나고 나면 그를 잉여, 패배자로 규정하고는 곧 다른 대리인간을 세운다.
<p.77>
일상은 한없이 평온하다가도 어느 날 이렇게 가혹하게 다가온다.
<p.101>
그러고 보면 인생의 어느 중요한 결정을 두고, 나는 아내의 동의를 구한 일이 별로 없다. 오늘 저녁엔 뭘 먹을까, 하는 사소한 말은 주고 받으면서도 정작 더 중요한 일들을 제대로 상의하지 않았다. 홀로 고민하고, 결정하고, 통보하는 식이었다. 대학을 그만둘 때도 "나 대학에서 나와도 될까?"가 아니라 "나 대학에서 나오려고 해"라고 말했다. 아내는 나의 결정을 존중해 주었지만, 만약 그러지 않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믿어달라고 자주 말했다. 가족이 가진 삶의 무게를 온전히 내가 감당하고 끌어올려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되지 않았고 그것이 오히려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함께 있으면서도 외롭고, 서로를 바라보며 지쳐갔다. 나는 아내와 아이를 위한 대리인생을 살아가는 동시에, 또 그들의 삶을 대리로 격하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가족 중 그 누구도 주체로서 살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가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p.103>
집에 돌아와서 아내는 나에게 "그런 거 아까워하면 마음이 아프다"라고 했다. 내가 일하는 이유는 나의 가족과 함께 행복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도와주러 나온 아내가 목이 마르다는데 고작 그것에 과민하게 반응했다. 나도 마음이 아프다. 무값을 아끼고 뛰어다니는 것은 나 혼자서만 하면 그만이다. 나의 할머니는 차비 몇백 원을 아끼겠다고 몇 정류장을 걸어 다녔다. 나의 어머니도 그랬다. 덕분에 나는 행복했나 보다.
<p.106>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동요 '섬집아기'
<p.111>
그러면서 논문과는 점점 멀어졌다. 나도 모르게 짜증이 늘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뒤처질 것이 두려웠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뽀로로를 틀어주고 박수 치면서도 그 시간을 온전히 함께 보내지 못했다. 자료를 읽고 싶었고 논문이 쓰고 싶었다. 아이를 바라보다가 '너 때문이야' 하는 원망이 문득 생겨나기도 했다. 그런 마음은 아이에게도, 그리고 지켜보는 아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을 것이다.
아내와는 이때 많이 싸웠다. 사소한 대화가 다툼이 되고 "너는 나를 왜 이해하지 못하니?" 하는 것으로 대개 끝이 났다. 아내는 나에게 "다른 집 남편들은 당신 같지 않아"라고 했고, 나는 "다른 연구자들 아내는 당신 같지 않아"라고 했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상대방을 배려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나는 나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가족을 위해 자신만이 그 시간을 견디고 있다고 믿었다.
<p.134>
집 근처 스터디카페에서 글을 써보기도 했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동생들 사이에서 팔자 편하게 글을 쓰고 있자니 민망한 것이었다. 그곳의 가라앉은 공기는 대학원의 합동연구실 이상이었다. 하나같이 공무원 수험서를 장벽처럼 쌓아놓고는 노트북으로 동영상 강의를 보았다. 네모난 초시계도 모두의 필수품이었다. 그러니까, 거기는 전쟁터였다. 물론 나에게도 글을 쓰는 행위가 생계를 위한 전쟁이기는 했으나, 그 안에서 가장 우아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대리사회'라는 제목의 글을 쓸 만한 장소가 못 되었다. 아이가 나를 찾는 걸 뻔히 알면서 속 편히 바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기도 멋쩍어서, 되는 대로 집에서 꾸역꾸역 글을 써나갔다.
<p.145>
지난 7월부터는 당신의 권유에 따라 파주에 6평짜리 작업실을 얻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는 분의 후의로 망원역 근처에 글을 쓸 공간을 얻어 자리를 옮겼지만, 여전히 당신과 아이와는 떨어져 지낸다. 대학에 있을 때와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다. 다시 한번 내 역할에서 도망쳐 나왔다. 글쓰기와 대리운전으로 번 돈을 꼬박 생활비로 부치고는 있지만, 그것은 내가 맡아야 할 여러 역할 중 일부이고 가장 간편한 방식이기도 하다.
<p.152>
대학이라는 '갑'은 전쟁의 주체로 나서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주체로 믿는 대리인들이 자연스럽게 그 전쟁을 수행하게 했다. 그런데 나의 앞을 막아선 그들을 미워할 수가 없다. 나 역시 갑을 위한 '대리전쟁'에 수차례 동원되어 왔기 때문이다. 대학을 그만둔 선후배들은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아니라 대학의 입장에 섰다. 아무 문제가 없는 공간에서 왜 버티지 못하고 도망쳤는지 알 수 없다면서 나간 자들의 나약함을 탓했다. 그들의 앞을 직접적으로 막아선 것은 아니지만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들이 한 발 나서면 언제든 그 앞을 막아설 준비도, 아마 하고 있었다.
<p.182>
타인의 즐거움을 보면서 대리로서 즐거워야 한다면, 역설적으로 나는/우리는 지금 그만큼 즐겁지 않다는 것이다. 현실이 만족스럽다면 남들이 먹고 노래 부르는 것에 지금처럼 필요 이상으로 열광할 이유는 없다. 결국 많은 이들이 새벽에 연구실에 앉아서 기약 없는 논문을 써 내려가는 것만큼이나 외롭거나, 아니면 절박한 심정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
그들은 가장 익숙한 공간에서 즐거워하고, 우리는 그들을 지켜본다. 그러면서 삶의 고단함과 절박함을 잠시 잊는다. 익숙한 공간이 재현되며 이전보다 더욱 주체가 되어 함께 그 즐거움에 동참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러한 대리만족은 오래가지 않는다. 곧 누구에게도 대리시킬 수 없는 허탈함이 찾아온다. 특히 자신을 둘러싼 사회구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남들처럼 즐거울 수 없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기게 된다. 일상을 특별하게 재현한 지금의 먹방은 보는 이를 더욱 외롭게 만든다. (...)
'힐링'이라는 단어의 소멸 이후 '분노'와 '혐오'가 우리 사회를 뒤덮었다. 개인들은 이제 더 이상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을 둘러싼 구조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N포 세대'로 대변되는 허무와 고독, '노오력'이나 '헬조선'이라는 비아냥과 냉소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차근차근 임계를 향하던 개인의 감정들이 최근에 이르러 실체를 드러냈을 뿐이다.
하지만 대리사회의 괴물은 여전히 개인들이 그 분노를 온전히 발산할 수 없게 만든다. 대신 대리만족의 기제를 계속 내보내면서, 행복하지 않은 개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마취되고 나면 개인의 분노는 자신을 둘러싼 구조, 그 괴물에게 향하지 않는다. 대신 주변의 개인이나 스스로를 혐오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더욱 자극적인 마취/환각제를 원하게 되고, 그에 따라 점점 더 강한 쾌락의 기제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아주 잠시 즐겁고, 오래 외롭다.
<p.213>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올린 글이 유명해져 이름을 알린 작가가 낸 또 다른 책이다. 시간강사를 그만두고 생계를 위한 대리운전을 하면서 본인이 보고 느낀 것들을 적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아직 대리운전을 해본 적도 없고 불러본 적도 없다. 그러나 대리운전이라는 게 술에 취한 사람을 대신해 그들의 차를 운전하여 집까지 데려다주는 것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얼마나 힘든 일일지 상상이 된다. 우선 술에 취한, 즉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상대하는 일부터가 고역일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차를 운전해야 하는 입장이니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겠는가. (택시 운전사도 술에 취한 사람을 상대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본인의 차를 가지고 본인이 익숙한 공간에서 그들을 상대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꿋꿋이 그 일을 해나간다. 책을 쓰기 위한 취재의 목적이든 생계의 목적이든 꽤 오랜 시간 그 일을 해낸 것은 대단한 일이다.
작가는 대리운전을 통해 겪은 일들과 생각을 '우리는 이 사회에서 얼마만큼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큰 주제로 묶어냈다. 이는 사회의 여러 부분에서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지만 특히 그는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주체성에 주목했다. 노동자들의 말과 행동, 생각이 어떻게 교묘하게 통제되는지 그리고 회사의 목적과 욕망이 어떻게 개개인에게 투영되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서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다. 나는 현재 다니는 회사에 2014년 신입 공채로 입사하였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그룹에서 한 달, 회사에서 한 달, 총 두 달 간의 신입사원 연수가 있었다. 첫 한 달 동안의 그룹 연수 기간에는 수도권 외곽의 연수원에서 합숙하며 교육을 진행했다. 보고서 쓰는 요령이라던지 PPT 발표, 엑셀 사용 등 실무에 관련된 내용도 배웠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연수의 목적은 애사심 고취였던 것 같다. 연수 기간 내내 우리는 그룹의 역사에 대해 배우고 그 내용을 연극으로도 만드는 일련의 활동들을 했다. 그리고 연수 중간마다 그룹의 회장이 오면 멋진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밤을 새기도 했다. 그 때만 해도 나는 자랑스러운 이 회사의 신입사원이었다. 동기애도 끈끈해지고 애사심도 충만했다. 이 회사에 들어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과 더불어 여기에 내 열정을 다 바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때 그렇게 존경했던 그룹 회장은 현재 횡령과 배임의 혐의로 구속된 상태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의 여러 비리와 나쁜 행태를 볼 때마다 나는 신입사원 연수 때 내 모습을 떠올렸다. 회사에 대한 애정과 자랑스러움이 가득 차 있었던 그때를 말이다. 즐거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날들이다. 왜 그때는 그렇게 현실을 분명하게 볼 수 없었을까. 그리고 누군가 목적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생각을 주입하고 통제하면 생각보다 쉽게 사람들의 생각이 세뇌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어쩌다 노동자가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게 되는지, 주체성이라는 착각 속에서 회사를 대변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지 알 것도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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