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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임솔아 외, 2022

by Ditmars 2022. 11. 6.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솔아 외, 2022

 

 "솔아야, 너무 열심히 쓰지 마."
 원영은 말했다. 그 말이 나는 못내 서운했다. 내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열심히 하려는 사람에게 왜 자꾸 그런 말을 하느냐고, 나는 불만을 섞어 볼멘소리를 했다. 

 "너무 열심히 하면 무서워져."
 공부든, 글쓰기든,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너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고 원영은 말했다.

<p.43, 초파리 돌보기 작가노트, 임솔아>

 

 하지만 나는 그런 주호가 마음에 들었다. 모임 안에서 체호프를 좋아하는 유일한 사람이어서 마음이 가는 것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하는 말에 과연 그런가 싶은 뚱한 표정으로 한 번씩 물음표를 던지는 모습은 특별해 보였으니까. 주호는 배열이 조금 다른 회로를 장착하고 있는 듯 자신에게 다가오는 건 그게 사람이든 생각이든 감정이든 일단 멈추게 한 다음 판단을 보류했고, 나는 무릇 예술가란 이래야 하는 게 아닐까, 뭐든 그런가 보다 하며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이렇게 의심하고 분별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p.119,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김병운>

 

 지금 뭔가 오해하시는 거 같은데... 설마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어떻게요?
 저희가 무슨 사이였던 적이라도 있다고요.
 인주씨가 웃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뺨을 씰룩이며 말했다.
 주호씨 말이 진짜였네요.
 뭐가요?
 윤범씨는 죽어도 모를 거라고요.
 나는 인주씨가 말을 채 맺기도 전에 손을 내저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들으신 건지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라고 단언했고, 맹세컨대 우리에겐 아무 일도 없었다고, 걷다가 손끝이 한 번 스친 적도 없는 게 바로 우리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다음 이어진 인주씨의 말은 주호와 내가 보낸 시절의 모양이 결코 같지 않으며, 내가 말이 되지 못한 감정이나 생각이 복잡해지는 관계는 좀처럼 인정하지 못하는, 아니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라는 걸 실감하게 했다.

<p.128,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김병운>

 

 나는 변명하고 싶었다. 이건 원래 내 것이 아니라고, 전적으로 운나쁘게 묻은 것이라고, 재수가 없어 떨쳐지지 않는 것뿐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아무렇게나 생각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렇게 체념하기까지 힘들었는데 체념하고 나니까 힘든 줄도 모르게 되었다. 그게 정말 나빴던 것 같다. 그게 나를 견디게 해준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다른 식으로 나를 망치는 것이었다.

<p.163, 공원에서, 김지연>

 

 나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희망이 있다, 희망을 가져라. 그렇게 말할 때의 확고하고 단호한 표정이 아니라, 주저하고 망설이면서도 어쨌든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다. 희망이라는 게 정말 있는지 없는지, 확신할 수 없으면서도 일단 가봐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의 변화. 그 변화가 불러오는 찰나의 활력과 활기를 붙잡고 싶었던 것 같다.

 희망이라는 것은 지금은 없는 어떤 것을 상상하는 힘이고 그것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 마침내 어디에 다다르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건 서 있는 자리에 따라, 자세에 따라, 잠깐 고개를 돌리면 또 달라지고 마는 직진의 방향처럼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논리와 이성으로는 설명되지 않고, 때때로 무모하고 터무니없기까지 한 어떤 것. 그러니까 희망은 그저 아주 작은 가능성을 담보한 에너지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p.221, 미애 작가노트,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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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한 친구로부터 이 책을 선물 받았다. 젊은작가상이라는 건 작가의 약력 등에서 몇 번 본 적은 있는데 이렇게 수상작품집을 읽어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 전에는 빌려본 적도 사본 적도 없는 종류의 책이다. 책의 맨 뒷장 책갈피에는 2010년 1회부터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가끔씩 아는 작가의 이름이 보여 반가웠다. 그리고 이렇게 매년 새로 상을 받는 작가들의 작품집을 구매해서 읽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도 이 책을 계기로 젊은작가상을 알게 되었으니 아마 내년에도 어떤 작품들이 상을 받았는지 궁금해하게 될 것 같다.

 

 처음으로 젊은작가상 작품집을 읽어 본 감상을 짧게 적어보자면 각 작품에 대한 호감이 양 끝단에 있는 것 같았다. 어떤 말이냐 하면 좋다고 생각한 작품은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좋지 않다고 생각한 작품은 정말 좋지 않았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작품을 고르자면 <초파리 돌보기>,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미애>, <골드러시>이고, 좋지 않았던 작품은 <저녁놀>, <공원에서>, <두개골의 안과 밖>이다. 가장 좋았던 작품은 <미애>와 <골드러시>였다. 둘 다 언젠가 한 번쯤 겪어봤거나 주변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현실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인물들의 상황이나 대화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들여다보면서 겉으로 보이는 관계 속 숨어있는 어떤 긴장감 같은 걸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반면에 좋지 않았던 작품 중에서 <저녁놀>은 동성애를 다뤘고, <공원에서는>는 여성차별을 다뤘는데 그 수준이 남성비하나 남성 혐오까지 가는 것 같아 읽는 내내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없었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짧은 단편들이 모여 있어 읽기 편하고 다양한 소재의 소설들을 한 번에 모아 읽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책을 좋아하고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뜻밖의 감동을 받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