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나를 황홀하게 만드는 책은,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작가와 친한 친구가 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 자기가 받은 느낌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p.32>
그렇지만 이 박물관에서 가장 좋은 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제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자기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10만 번을 보더라도 에스키모는 여전히 물고기 두 마리를 낚은 채 계속 낚시를 하고 있을 것이고, 새는 여전히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사슴은 여전히 멋진 뿔과 날씬한 다리를 보여주며 물을 마시고 있을 것이고, 젖가슴이 드러난 인디언 여자는 계속 담요를 짜고 있을 것이다.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유일하게 달라지는 게 있다면 우리들일 것이다. 나이를 더 먹는다거나 그래서는 아니다. 정확하게 그건 아니다. 그저 우리는 늘 변해간다. 이번에는 코트를 입고 왔다든지, 지난번에 왔을 때 짝꿍이었던 아이가 홍역에 걸려 다른 여자아이와 짝이 되어 있다든지 하는 것처럼. 아니면, 에이글팅거 선생님 대신 다른 선생님이 아이들을 인솔하고 있다든지, 엄마하고 아빠가 욕실에서 심하게 싸우는 소리를 들은 다음이라든지, 아니면 길가의 웅덩이에 떠 있는 기름 무지개를 보고 왔다든지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늘 뭔가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설명하고 싶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난 걸어가면서 주머니에서 빨간 사냥 모자를 꺼내 썼다. 아는 사람을 만날 리도 없을 뿐더러, 날씨도 눅눅했기 때문이다. 계속 걸어가면서 피비가 옛날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토요일마다 박물관에 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예전에 내가 보았던 것들을 그 애는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 그리고 매번 그걸 볼 때마다 동생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지. 이런 생각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것들은 계속 그 자리에 두어야만 한다. 저렇게 유리 진열장 속에 가만히 넣어두어야만 한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잘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난 계속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었다.
<p.164>
나중에 제인과 친해지고 난 후에, 왜 알 파이크같이 잘난 척하는 놈과 데이트를 하게 되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제인은 그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도리어 열등감이 많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는데, 그건 그러는 척하는 것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던 것이다. 여자들은 이상한 점이 있다. 분명히 나쁜 자식인데, 그놈이 아주 비열하다거나, 건방지다는 말을 해주면 여자들은 그 남자가 열등감을 가지고 있닥 말하는 것이다. 어쩌면 정말 열등감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다고 나쁜 녀석이 아니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자들이란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절대 알 수 없는 존재다. 예전에 나는 로버타 월쉬라는 여자애의 룸메이트를 내 친구에게 소개해 준 적이 있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밥 로빈슨으로, 정말 열등감이 심한 녀석이었다. 오죽하면, 부모가 'He don't'나 'She don't'와 같이 문법에 맞지 않는 말을 한다거나, 부자가 아니라는 사실조차도 부끄럽게 생각하는 놈이었다. 그렇지만 나쁜 녀석은 아니었다. 도리어 좋은 친구에 속했다. 한데 로버타 월쉬의 룸메이트는 밥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밥이 너무 거만하다고 로버타에게 이야기했다. 그런 말이 나오게 된 건 밥이 우연히 토론팀의 부장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게 사소한 일로 그가 거만하다고 그녀는 생각한 것이다! 여자들의 문제점은 남자가 마음에 들면, 정말 나쁜 놈을 놓고도 열등감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그 반대로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말 훌륭할 뿐만 아니라, 열등감을 진짜로 가지고 있어도 거만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주 똑똑한 여자들조차도 그렇다.
<p.182>
날씨가 좋을 때면 아버지와 엄마는 앨리의 무덤으로 가서그 위에 꽃다발을 얹어놓곤 하셨다. 나도 몇 번 같이 갔었지만, 얼마 못 가 그만두고 말았다. 우선은 무엇보다도 앨리를 그런 곳에서 만나고 싶지 않았다. 죽은 자들과 비석에 둘러싸인 그런 곳은 싫었다 그나마 해가 떠 있을 때는 봐줄 만했다. 하지만 그곳에 갔을 때, 두 번이나, 무려 두 번이나 갑작스러운 비를 만났던 것이다. 그때는 정말 끔찍했다. 앨리의 비석 위로도, 앨리의 배를 덮고 있는 잔디 위로도 비가 내렸다. 공동묘지 전체에 비가 내렸다. 묘지에 왔던 수많은 사람들은 정신없이 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난 또 미칠 것 같았다. 사람들은 저렇게 자동차 안으로 들어가서 라디오를 틀고는, 좋은 곳으로 저녁식사를 하러들 갈 것이었다. 앨리를 저렇게 내버려두고. 그 사실이 나로서는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다. 무덤 속에 있는 건 동생의 껍데기일 뿐이고, 영혼은 천국인지 어딘지에 있다느니 하는 허튼소리는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애를 이런 곳에 혼자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p.207>
그렇다고 그가 나쁜 사람이었다는 얘기는 아니야. 진짜 나쁜 사람도 아니었을 거고 말이야. 하지만 나쁜 사람만이 사람 기분을 잡쳐놓는 건 아니니까... 착한 사람도 다른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말이지.
<p.224>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p.229>
"홀든... 간단한 거 하나만 물어보자. 좀 답답하겠지만 선생으로서 물어보는 거야. 모든 일은 때와 장소가 있는 게 아닐까? 처음에 아버지의 목장 이야기로 시작했으면, 그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다음에 삼촌의 부목 이야기로 넘어가야 하는 거 아니겠니? 삼촌의 부목 이야기가 그렇게 흥미 있었다면 처음부터 농장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주제로 삼든지 말이다."
"전 모르겠어요. 저도 그 애가 그랬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농장이 아니라 삼촌을 주제로 삼았어야 했어요. 정말 그렇게 흥미가 있었다면 말이죠.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사람들은 대부분 재미없는 이야기를 해보고 나서야, 가장 재미있는게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거죠. 그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말하는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신나게 하고 있다면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좋겠다는 거지요. 전 누구라도 신나게 이야기하는 게 좋습니다. 선생님은 빈슨 선생님을 모르시겠죠. 그분은 정말 사람을 미치게 만듭니다. 빈슨 선생님이나 그분의 수업은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죠. 노상 일관성을 가지고 간결하게 말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지 않는 것도 있는데 말입니다. 누가 말하더라도 쉽게 간결하고, 일관성을 가지기가 어려운 것도 있잖아요. 선생님은 빈슨 선생님을 모르니까 말씀이지만, 지적인 분이긴 해도 머리가 좋은 것 같지는 않았어요."
<p.244>
"지금 네가 떨어지고 있는 타락은, 일반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좀 특별한 것처럼 보인다. 그건 정말 무서운 거라고 할 수 있어. 사람이 타락할 때는 본인이 느끼지도 못할 수도 있고, 자신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거야. 끝도 없이 계속해서 타락하게 되는 거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인생의 어느 순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환경이 줄 수 없는 어떤 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네가 그런 경우에 속하는 거지.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찾을 수 없다고 그냥 생각해 버리는 거야. 그러고는 단념하지. 실제로 찾으려는 노력도 해보지도 않고, 그냥 단념해 버리는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니?" (...)
"좀 낯설게 들릴지는 모르겠다. 이건 시인이 쓴 게 아니라, 빌헬름 스테켈이라는 정신분석 학자가 쓴 글이다. 여기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어.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
"이제 네가 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할 날이 머지않았어. 그리고 나면 그곳을 향해 곧장 떠나야지. 조금도 지체하지 말고 말이야. 단 일분의 여유도 없어. 특히 네 경우는 더하지." (...)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네가 가고 싶은 길을 찾고 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학교에 들어가는 일이어야 할 거야. 그러지 않으면 안 돼. 넌 학생이니까. 네 마음에는 안 드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넌 지식을 사랑하니까 말이다. 일단 그 빈슨 선생과 그 비슷한 선생들 과목에서 합격을 하고 나면, 그런 지식들에 진정으로 점점 더 가까워지게 될 거다. 물론 네가 원하고,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경우에만 말이지만. 먼저 인간들의 행위에 대해 놀라고, 당황하고, 좌절한 인간이 네가 첫번째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 그런 점에서 보면 넌 혼자가 아닌 거지. 그걸 깨닫게 되면 넌 흥분하게 될 거고, 자극받게 될 거야. 현재 네가 겪고 있는 것처럼, 윤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민했던 사람은 수없이 많아. 다행히 몇몇 사람들은 기록을 남기기도 했지.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거야. 나중에는 네가 다른 ㅏ람에게 뭔가를 줄 수 있게 될지도 몰라. 그러면 네가 그 사람들에게 배웠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너한테서 뭔가를 배우게 되는 거야. 이건 정말 아름다운 상호 간의 원조인 셈이지. 이건 교육이 아니야. 역사이며, 시인 셈이지." (...)
"교육받고 학식이 높은 사람만이 세상에 가치 있는 공헌을 한다는 건 아니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교육을 받고, 학식이 있는 사람이 재능과 창조력을 가지고 있다면, 불행히도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그냥 재능 있고, 창조력이 있는 사람보다는 훨씬 가치 있는 기록을 남기기 쉽다는 거지. 불행히도 이런 사람들은 많지 않아. 이들은 보다 분명하게 의견을 이야기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끝까지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거기에 가장 중요한 건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학식이 없는 사상가들보다 겸손하다는 걸 들 수 있어." (...)
"그 밖에도 학교 교육이란 건 많은 도움을 주지. 학교 교육이라는 건, 어느 정도까지 받다 보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게 되지. 자기의 사고에 맞는 것은 어떤 것인지, 맞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돼. 나중에는 자기 사고의 일정한 크기에 어떤 종류의 사상을 이용해야 할 것인지를 알게 될 거야. 게다가 자기에게 맞지 않는 사상들을 하나하나 시험해 보는 데 드는 시간도 절약해 주고 말이지. 결국 학교 교육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크기를 알게 해주고, 거기에 맞게 이용하게 해주는 거야."
<p.248>
이 책은 열여섯 살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이야기이다. 그는 명문 사립기숙학교인 펜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 해 겨울 국어를 제외한 나머지 과목에서 낙제를 맞고 퇴학을 당한다. 그리고 이 사실은 3일 뒤면 그의 부모님께 전달된다. 그는 어차피 3일 뒤면 학교에서 쫓겨날 처지이기에 미리 고등학교를 떠나 홀로 뉴욕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흥청망청 시간을 보내며 자아와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다.
독자로서 지켜본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참으로 혼란스러운 학생이다. 그는 학교와 선생님, 사회에 대해 불만이 가득하다. 친구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제멋대로 생각하기 일쑤이다. 때로는 너무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며 허세를 부리기도 하고 때로는 비겁하게 숨기도 한다. 전형적인 중2병에 걸린 사춘기 소년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나는 주인공이 밉지 않다. 오히려 정이 가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누구에게나 그렇듯 주인공의 모습의 어느 부분에서는 자신의 사춘기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보면 나의 사춘기 시절도 그랬던 것 같다. 친구와의 의리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고, 몇 권 되지 않는 책을 읽고는 크게 감명을 받아 그 책이 마치 인생의 진리인 것처럼 따른 적도 있었다. 나는 이 세상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의 삶은 드라마틱할 수 밖에 없다고 여기며 별 거 아닌 일들에도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는 했다. 이제 알 걸 다 아는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에 이 사회와 어른들의 세상을 이해하고 나아가 깔보기도 했던 것 같다. 겉으로는 허세를 부리고 자아도취에 빠져 있지만 속으로는 두려움이 많은 시기였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터무니없는 멍청한 짓까지 하지는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런데 한가지 떠오르는 건 그때 내가 나 혼자서 사춘기를 오롯이 겪고 지나갈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 뉴욕에서의 3일 동안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러 간 것 빼고는 오롯이 혼자 그 시간을 지나온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우리 부모님 도움이 컸다고 생각한다. 분명 사춘기 시절 아이가 변한 것을 느끼셨을 테고, 어딘가 잘못된 길로 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을 테고, 옆에서 간섭을 하고 잔소리를 해야 할 것 같았을 텐데 부모님은 내게 그 시기 동안 별말씀을 안 하셨다. 최소한의 규칙만 두고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셨다. 그래서 나는 사춘기의 시절에 푹 빠졌다가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책에서 (p.244) 선생님과 주인공이 나눈 대화 속에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할 때는 정해진 주제에 맞게 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지만 말하는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신나게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스스로 자기 얘기가 재미없다는 것을 알고 그때서야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중간에 누구라도 "탈선!"이라고 외치는 순간 그 사람의 재미없는 이야기를 즉시 멈출 순 있겠지만 그 사람은 영영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춘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에게도 올바른 태도와 규칙이라는 것이 있지만 한창 그 시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그 시기를 온전히 겪어볼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엇나가는 것처럼 보일 때마다 혹은 조금이라도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일 때마다 옆에서 야단을 치고, 지침을 준다면 즉시 아이의 행동을 교정할 수는 있겠지만 아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는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다. 부모 혹은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은 아이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착한 심성을 믿고 그 시기를 잘 겪고 돌아오는 것을 기다려주는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런 생각들때문인지, 나는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홀든 콜필드가 방황의 시기를 겪었지만 결국 잘 넘기고 훗날 좋은 사람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다. (20대 초반에 읽었을 때는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이 많이 되었었는데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 이 책을 읽으니 마치 주인공의 부모나 선생님의 입장에 감정 이입이 되는 것 같아 참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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