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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부대 > 장강명, 2015

by Ditmars 2022. 9. 3.

<댓글부대> 장강명, 2015

 

 '처음에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내 또래들은 정말 엄청난 도구가 왔다, 이걸로 이제 혁명이 일어날 거다, 하고 생각했지. 모든 사람이 직위고하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으로 대안을 찾아낼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생각했지. 인터넷이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권위를 타파해서 민주화를 이끌 거라고도 믿었어. 거대 언론이 외면하는 문제를 작은 인터넷신문들이 취재하고, 인터넷신문조차 미처 못 보고 넘어간 어두운 틈새를 전문 지식과 양식을 갖춘 블로거들이 파고들어 갈 줄 알았어. 독재 국가에서는 지금도 인터넷이 그런 고발자, 감시자 역할을 해. 그런데 한국에서도 그런가? 인터넷신문이나 블로거들이 과연 그런 역할을 하냐고. 아니지. 그냥 거대 언론이 하던 나쁜 짓을 아마추어들도 소자본으로 하게 됐을 뿐이야. 거대 언론이 점잖게 기업에 겁을 주며 광고를 따냈다면 인터넷신문들은 대놓고 삥을 뜯지. 블로거들은 동네 식당을 상대로 협찬을 요구하고. 이것도 민주화라면 민주화지. 협박, 공갈, 갈취의 민주화. 그런 대신에 인터넷신문들과 블로거가 기존 언론이 쓰지 않던 무슨 좋은 기사를 내놓느냐 하면, 이런 거야. 누구누구 아찔한 뒤태, 남녀 생각 차이 열네 가지, 노래 따라 부르는 일본 강아지 화제...' (...)

 '한때는 인터넷이 영원히 익명의 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 헛소문이나 추측, 잘못된 정보가 많이 나온다는 건 그때도 알았어. 그래도 좋은 정보가 많이 나오면 사람들이 그걸 보고 자기 생각들을 고칠 줄 알았어. 자정작용이 일어날 줄 알았떤 거지. 하지만 이제는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알아. 인터넷에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자정작용이 일어날 수가 없어. 오히려 그 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나지. 끼리끼리 뭉치는 거 말이야. 사람들이 어떻게 TV를 보는지 보라고. 채널 돌리는 것도 귀찮아서 광고를 그냥 참고 보잖아. 인터넷도 마찬가지야. 사람들은 절대로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고치려 들지 않아.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뭔가를 배우려 드는 대신, 애착이 가는 커뮤니티를 두세 개 정해놓고 거기 새로운 글 올라오는 거 없나 수시로 확인하지.
 그런데 그 커뮤니티들은 대개 어떤 식으로든 크게 편향돼 있어. 취향과 성향 중심으로 모인 공간이다보니 학교나 직장처럼 다양한 인간이 모이는 오프라인 공간보다 편향된 정보가 훨씬 더 심한 게 당연해. 그런 데서 오래 지내다 보면 어떻게 되겠어? 처음에는 집 꾸미기나 육아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커뮤니티에 가입하지. 거기에서 시댁이나 남편 욕도 같이 하고, 산후우울증 이야기에 공감도 해주면서 그 커뮤니티 공간에 대한 애착심이 생겨나지. 직장 다니면서 애 키우려니 힘들어 죽겠고, 지하철에서는 늙은이들이 자리 비키라고 행패를 부리니 이놈의 한국 사회 정말 짜증 난다, 누가 그렇게 글을 올리면 폭풍 공감이라는 댓글들이 우르르 달리지.
 그런데 왜 사회가 바뀌지 않지? 그건 기득권 탓이고, 정부와 재벌과 언론이 그 기득권과 결탁해 있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다는 댓글을 쓰는 한 사람을 다른 아홉 사람이 불편해하고 은근히 따돌리게 되네. 온건한 진보주의자 열 사람이 모여서 시국을 논의하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중 세 사람은 극좌파로 변하게 돼.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고. 그 사람들은 자기가 극단적이라는 사실도 몰라. 왜냐하면 자기 옆에 있는 아홉 사람의 평균 의견이 자신과 크게 차이 나지 않으니까.
 그렇게 인터넷을 오래 할수록 점점 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돼. 확증 편향이라는 거야. TV보다 훨씬 나쁘지. TV는 적어도 기계적인 균형이라고 갖추려 하지. 시청자도 보고 싶은 뉴스만 골라 볼 순 없고,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달라. 사람들은 이 새로운 매체에, 어떤 신문이나 방송보다도 더 깊이 빠지게 돼. 그런데 이 미디어는 어떤 신문 방송보다 더 왜곡된 세상을 보여주면서 아무런 심의를 받지도 않고 소송을 당하지도 않아.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최악의 신문이나 방송사보다 더 민주주의를 해치지.'

<p.56> 

 

 "하지만 밑바닥은 다 똑같은 겁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인정 투쟁. 모두 가슴에 단도 한 자루씩 숨기고 있다가 기회만 생기면 팍! 그런데 저희들은 언제 사람들이 미쳐서 그 칼을 휘두르는지 그 타이밍을 알아낸 거죠."

 "그게 타이밍의 문제입니까? 논리나 설득하는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논리야 아무거나 갖다 붙이면 그만이죠... 타이밍이 중요해요."

 "그게 언제인데요?"

 "자기가 다수가 됐을 때요. 자기가 모르는 사람이 어정쩡한 글을 올리면 처음에는 다들 눈치를 봐요. 이걸 받아들여줘야 하나, 아니면 공격해야 하나. 그런데 누가 '저도 그래요. 공감 100배'라고 댓글을 달면 이제는 상대해야 하는 사람이 둘이 되는 셈이죠. 거기에 누가 '글 정말 잘 쓰시네요. 읽는데 내 얘기인 줄'이라고 댓글을 달면 이제 원 게시물은 철옹성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제3자가 '이 글 저만 불편한가요?'라고 의문을 표시하면 공격의 틈이 살짝 열리죠. 그다음에 '저도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다들 별말씀 없으시네요. 다른 분들은 괜찮으신가 봐요?'라는 댓글이 달리면 슬슬 멍석말이를 준비해도 됩니다. 거기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의견은 처음 듣습니다'라고 또 댓글이 달리고, '불쾌하군요. 마시던 커피 맛이 싹 달아날 정도로'라고 누가 동조하면, 짜잔. 이제 나도 칼을 뽑아도 됩니다.
 비아냥거리는 댓글이 세 개만 연속으로 달리면 돼요. 그러면 생각이 다른 사람은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어디 스트레스 풀 데 없나 하고 언터넷을 헤매던 하이에나들이, 배운 여자 코스프레를 해보고 싶었던 상어 새끼들이, 저리 가라고 해도 알아서 몰려듭니다."

<p.78>

 

 "요즘 정치하는 친구들은 그걸 몰라. 경제가 사회 분위기를 결정하는 게 아니야. 사회 분위기가 경제를 결정하는 거야. 집단의 힘, 군중의 마음!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믿음을 품게 되면, 주변이 다 잿더미고 쓰레기산이어도 상관없어. 인간은 강한 거야.
 괴벨스가 이런 말을 했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반드시 국민들에게 낙관적 전망을 심어줘야 한다고. 우리는 전쟁 중이었어. 그 지긋지긋한 가난과 싸우고 있었어.
 일자무식의 농촌 출신 병사들이라도 말이야, 저기가 고지라고, 저기만 넘으면 된다고, 저걸 넘으면 넌 위대한 전사가 되는 거라고 북돋워주면 다 그걸 넘어. 자기들끼리 군가를 부르고 '조금만 참자, 버티자'고 외치면서. 그런 때 사람들은 애를 낳아. 여자들은 짧은 치마를 입고 남자들을 유혹해. 자기 미래를 낙관하니까. 하루에 열두 시간을 일하고 돌아와도 몇 년 뒤에 보답이 더 크게 돌아올 걸 확신하면 피로가 금방 가시지. 그런 흥분이 경제도 움직이는 거야.

 그런데 멍청한 놈들이 그런 열광을 불러일으킬 생각은 않고 요즘 젊은이들은 패기가 없다느니, 뭘 포기한 세대라느니 하면서 오히려 기를 꺾어놔. 아주 악질적인 사고방식이야. 조금만 부추겨주면 에베레스트도 오를 수 있는 애들한테 '동네 뒷산 오르는 주제에 무슨 엄살이냐'라고 비아냥거리고, '힘드니까 등산이다'라며 멸시하고. 자기들 인생 하나 성공하지 못한 종자들이, 자라나는 애들 미래를 발목 잡고 있어. 다 붙잡아서 감옥에 처넣어야 해."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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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처남에게서 요즘은 대화의 시대라는 얘기를 들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여기서 대화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인 대화(對話)가 아니라 대화(大火)란다. 요즘 사람들은 다들 어딘가 혹은 무언가에 크게 화가 나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다들 크게 화가 나 있는 시대다. 인터넷 뉴스를 보면 대부분 비판과 조롱이 베스트 댓글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 댓글에 대한 대댓글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화를 내며 싸우고 있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아예 특정 집단을 자신들의 적으로 규정하고는 열을 내며 싸움에 참여한다. 근거와 출처도 알 수 없는 얘기가 검증의 시간을 거치기도 전에 인터넷 공간으로 퍼져 이미 사실이 되어 버리고, 건전한 토론으로 시작되는 것 같아 보이던 대화도 결국은 인신공격과 조롱으로 마무리된다. 다들 이렇게 화를 내며 자신의 유한한 시간 중 일부를 무의미하게 소모해버린다.

 

 그러나 우리가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현실은 어떠한가? 나는 아직 현실에서는 대화의 시대라는 말을 체감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현실 속의 사회는 아직도 상식이 통하고 서로 예의를 지키는 사회이다. 다들 평범한 직장인이거나 학생이고, 누군가의 부모이거나 누군가의 자녀다. 지나가다가 길을 물어보면 친절하게 알려주고, 지하철에서 어깨를 부딪히면 죄송하다는 말을 한다. 논쟁이 될 만한 주제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대화하고 무엇보다 평상시에 화를 내거나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그런 보통 사람들도 인터넷 공간 안에서는 쉽게 혐오의 말을 던지고 나와 다른 의견은 무시하거나 쉽게 조롱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인터넷 공간과 현실 사회가 상반된 모습을 갖는 이유가 인터넷이 가진 익명성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보다 본질적인 이유를 알게 된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성인이 되고 난 이후부터는 고정된 믿음과 가치관을 갖게 되는데, 인터넷 공간에서 주어지는 정보의 자유는 나의 생각과 가치관을 고착시키는데 쓰이기 때문이다. ( '자유'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와는 정반대로 사용되는 것이 아이러니한 일이다.) 쉽게 예를 들자면 음식을 고를 자유가 없는 코스 요리 식당에서는 어떤 음식이 나오건 모든 요리를 한 번씩은 먹어보게 된다. 그러나 음식을 고를 자유가 있는 부페 식당에서는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골라서 먹는다. 다양하게 준비해놨으니 골고루 먹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결국 자신이 평소에 좋아하던 몇 가지 메뉴를 더 많이 먹을 뿐이다. 모든 정보와 지식에 대한 접근이 자유로워지면 사람들은 그것들을 통해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갖고 다채로운 생각을 하게 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였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믿음을 더 견고히 하는데 그 정보들을 이용했다. 이것이 확증편향이고 이는 기본적으로 안정된 자아상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특성과 기존의 믿음과 가치관을 무너뜨리는 데에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인간의 한계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자유로운 인터넷 공간이 갖는 역설이다.

 

 며칠 전 우연히 어떤 글을 하나 읽었다. 미노와 고스케의 <미치지 않고서야> 내용의 일부였다. 내용은 대강 이렇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어도 같은 매체(TV, 라디오)를 통해 정보를 접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직접 만나 대화를 했다. 그러나 현재는 각자 다른 매체(유튜브, 팟캐스트)를 통해 각자의 취향에 맞는 정보만 접하고, 취향에 맞는 사람들끼리 인터넷 공간 속에서 대화한다. 현실에서는 여전히 옆자리에 앉아 같이 공부도 하고 일도 하지만 서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심도 없고 대화도 줄어들어만 간다. 그렇게 사람들은 더욱 고독해져 간다.

 

 나는 이 책과 위의 글을 읽으면서 왜 우리 사회가 점점 더 갈등이 심화되는 것처럼 보이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터넷과 (혹은 스마트폰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인터넷이라는 우주와 그곳에 실시간으로 연결되게 하는 스마트폰은 무한한 우주의 속성과는 정반대로 인류를 유한한 공간 안에 가두고 있다. 이건 어찌 보면 망망대해 같은 우주 속에서 자유로움보다는 두려움을 느낀 인간들이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뭉쳐 있으려는 본능에서 나온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앞으로는 우리가 땅을 붙이고 사는 현실보다 비현실의 인터넷 공간이 우리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현실에서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하고 서로 몸을 맞대는 기회는 줄어들 것이고, 그럴수록 개인은 더 고독해지고 현실이란 그저 먹고사는 생존의 공간에 불과해질 것이다. 그리고 취향에 따른 선별적인 정보 선택이 더 심화되면 더 이상 현실 세계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 불가능해지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지금 사회의 세대 간 소통, 남녀 간 소통, 정치 이념 간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 이미 어느 정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결국 가상의 공간에 자기들만의 소행성을 만들고 그 안에서는 대화가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모두가 모두에게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 같은 존재가 되는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