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는 고독과 가난과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받은 모욕이 자신을 작가로 만들어주었다고 말했다. 그것이 작품의 모티프가 되었냐는 진행자의 질문에는, 소설이란 자기 인생이라는 집을 부수어 그 벽돌로 다른 새로운 집을 짓는 일이라는 외국 작가의 말을 인용한 뒤 그러나 옛 친구들이 자기 소설을 읽지 않기를 바란다고 농담했다.
<p.10>
그러나 그녀에게는 사람을 대할 때 미묘한 권력관계를 만드는 습성이 있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관계의 자장을 만들어내고 우월감과 피해 의식을 번갈아 써가며 그것을 정당화했다. 거기에는 증인이 필요했다. 결국 나로 하여금 위성처럼 그녀의 궤도를 따라 돌며 그녀라는 일방적이고 변덕스러운 광원을 반사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p.12>
그것은 내가 동창회 같은 데에 나가지 않는 이유와 비슷했다. 남들에 의해 소환되는 그 시절의 나도 싫었고, 그들이 알고 있는 그 시절의 나인 척하고 있을 게 분명한 현재의 나도 싫었다.
<p.18>
지금 눈앞에 있지만 무관한 현재, 그리고 친밀했지만 지나가버린 과거. 어쩌면 그 둘은 나로부터 비슷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한때 아무리 가까웠던 사람이라도 이제는 개방된 장소에서 스쳐 가는 모르는 사람과 비슷한 정도의 접점을 공유할 뿐이니까.
<p.21>
짐 정리가 거의 끝났다. 들고 올 때는 힘들었는데 막상 풀어보니 단출한 짐이었다. 방 안을 한번 둘러보았다. 방에서 나의 사적인 공간은 침대 아니면 책상이었다. 책상 앞에 앉았다. 이제 뭘 하지. 그런 기분은 좀 낯설었다. 지금까지는 늘 시간표와 조회 종례의 지시 사항이 있었고 사소한 목표나 준비할 게 있었고 엄마를 돕거나 하다못해 잠이라도 자두어야 했다. 하릴없이 가만히 있으면 교사나 부모로부터 지적을 받고 꾸중을 들었다. 이제부터는 아니었다. 내가 목표를 정하고 나의 일정을 계획하고 관리해야 한다. 그 생각을 하자 홀로 객지에 나와 대학생이 되었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피로감이 몰려왔다.
<p.34>
며칠 사이 깨친 사실이지만 공동생활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고립이었다. 정보를 얻지 못하면 뒤처지고 다수에 끼지 못하면 손해를 봤다. 이곳은 숨을 곳이 없는 공동 공간이었다. 그런 점에서 고립은 차별보다 더 눈에 띄었다.
<p.47>
오현수에게는 길고 지긋지긋했던 초중고 단체 생활의 정서에서 이탈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취향을 갖는 일은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개인행동이란 점에서, 그리고 비용을 요구한다는 측면에서 꽤나 적극적인 행위였다. 그것은 이전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종류의 '다름'이기도 했다.
<p.52>
혼자라는 건 어떤 공간을 혼자 차지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익명으로 존재하는 시간을 뜻하는 거였다.
<p.84>
여전히 나는 무력하고 방어적인 회색 지대에 갇혀 있었다. 나 자신이 실망스럽고 그러다 보니 의욕이 없어 방치하게 되고, 결국 해야 할 것을 제대로 못 해 무력감에 빠지고, 무력감은 쫓김과 불안을 낳고 그래서 자신감을 잃은 끝에 제풀에 외로워지고, 그 외로움 위에 생존 의지인 자존심이 더해지니 남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고, 그러자 곧바로 소외감이 찾아오고, 그것이 또 부당하게 느껴지도, 이 모든 감정이 시간 낭비인 것 같아 회의와 비관에 빠지는 것, 그 궤도를 통과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p.86>
약점이 있는 사람은 세상을 감지하는 더듬이 하나를 더 가진다. 약점은 연약한 부분이라 당연히 상처 입기 쉽다. 상처받는 부위가 예민해지고 거기에서 방어를 위한 촉수가 뻗어 나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약점이 어떻게 취급당가는가를 통해 세상을 읽는 영역이 있다. 약점이 세상을 정찰하기 위한 레이더가 되는 셈이다.
그들은 자주 위축되고 두려움과 자괴감에 빠지지만 그런 태도를 되도록 감춰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약점이 있다는 걸 공유하면 편해지긴 하지만 무시당하는 걸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약점을 숨기고 방어하고 또 상처받았을 때 태연하게 보이는 법을 연구하면서 타인을 알아간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약점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나를 조종하고 휘두를 힘을 가진다. 우리는 장점의 도움으로 성취를 얻지만 약점의 만류로 인해 진정 원하던 것을 포기하거나 빼앗긴다. 어쩔 수 없이 약점은 삶의 결핍과 박탈을 관장한다.
<p.112>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갈 것인가, 외따로 피어 고립될 것인가"
<p.114>
약자는 위로받기보다 차별이 없는 존중을 원한다. 결점이 있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특별한 배려를 받는 게 아니라, 다수와는 다른 조건을 가졌을 뿐 동등한 존재로서의 권리를 누리기를 원하는 것이다. 맞은편 대열에서 응원을 보내기보다는 내 곁으로 와서 서는 것.
<p.115>
모범생들은 눈치를 본다. 문제를 낸 사람과 점수를 매기는 사람의 기준, 즉 자기를 어디에 맞춰야 할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답을 맞히려는 것은 문제를 내고 점수를 매기는 권력에 따르는 일인 것이다. 그렇게 그저 권력에 순종했을 뿐이면서 스스로의 의지로 올바른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모범생의 착각이다. 그 착각 속에서 스스로를 점점 더 완강한 틀에 맞춰가는 것이다.
<p.116>
나의 결혼은 길거리 헌팅과 비슷하게 절차를 무시한 타인의 행동력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그때의 나로서는 상대의 결정을 뒤집을 만한 자신감과 대안이 없다는 게 내 결정인 셈이었다. 그 결과 평생 곤궁한 것들에 둘러싸여 그 안에서 비교적 좋은 것을 찾아내야 했고 그 결정을 합리화하는 데에서만 평화를 얻었다. 결혼 역시 나의 기나긴 숙제 기간 중의 한 과정이었다.
약점을 숨기려는 것이 회피의 방편이 되었고 결국 그것이 태도가 되어 내 삶을 끌고 갔다. 내 삶은 냉소의 무력함과 자기 위안의 메커니즘 속에서 굴러갔다.
<p.181>
고향 친구들은 만나고 싶지 않았다. 만나면 으레 듣게 되는 변했다거나 변하지 않았다는 말, 둘 다 싫었다. 예전에 알았던 익숙한 풍경 모두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저만치 멀어져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내가 그곳으로부터 밀려났거나 겉도는 느낌이었다. 고향도 아니고 고향도 아닌 것도 아니었으며 집도 아니면서 집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p.233>
나는 그 시간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난 것일까. 오로지 내게 주어진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과 성적을 올리는 것, 두가지에만 의미를 두던 고등학교 시절 훈육의 틀과 그리고 내가 동의할 수 없었던 세상의 모범생이라는 모순된 자리. 거기에서 시스템의 눈치를 보며 적응한 척했던 것이 단지 임시방편이었을까. 혹시 그대로 내 삶의 태도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훈육과 세뇌에는 탈출구가 없다.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뀔 수도 없으며, 끝없이 반복되는 그 틀의 궤적에 부딪히고 상처 입고 위축되며 계속해서 눈치껏 나를 속이며 살아야 하는 걸까.
<p.245>
그동안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가지 않고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오현수는 모르는 것이 거의 다라는 생각을 하나 더 보태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다른 조건을 가진 삶에 대한 존중의 한 방식이었다.
<p.264>
마무리는 <교양국사> 강사의 몫이었다. 그녀는 최근에 읽은 루쉰의 책을 인용했다. 출구도 창문도 없는 폐쇄된 감옥에 많은 사람이 깊이 잠들어 있다고 하자. 그들은 얼마 안 가 모두 질식해 죽을 운명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잠든 사람들을 깨운다면 그것은 옳은 일일까. 그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하므로 더욱 잔인한 짓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그중 몇 사람이 깨어난 이상 그 폐쇄 감옥을 무너뜨릴 희망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깨어 있는 것과 행동하는 것 모두 중요하다고 말한 뒤 깨어난 사람은 누구나 행동해야 할 책임이 있으며 그 책임을 회피한다면 언제까지나 주인 된 세상에 살지 못하고 남의 세상에 억지로 적응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p.267>
나를 지금의 인생으로 데려다 놓은 것은 꿈이 아니었다. 시간 속에 스몄던 지속되지 않는 사소한 인연들, 그리고 삶이라는 기나긴 책무를 수행하도록 길들여진 수긍이라는 재능이었다.
<p.281>
비관은 가장 손쉬운 선택이다. 나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적게 소모되므로 심신이 약한 사람일수록 쉽게 빠져든다. 신체의 운동이 중력을 거스르는 일인 것처럼, 낙관적이고 능동적인 생각에도 힘이 필요하다. 힘내라고 할 때 그 말은 낙관적이 되라는 뜻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낙관과 비관의 차이는 쉽게 힘을 낼 수 있는지 아닌지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역설적인 점은 비관이 더 많은 희망의 증거를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어둡고 무기력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관을 일삼는 사람이야말로 그것이 깨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자신 같은 비관론자도 설득될 만큼 강력한 긍정과 인내심을 요구하게 되고, 결국 유일하게 그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히게 된다.
<p.319>
종종 내가 왜 이처럼 비관적인가 생각해볼 때가 있다. 어떤 일이든 내가 주도하기를 피해 비껴서 있다 보니 누군가의 처분을 기대하는 입장이 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누군가를 미리부터 불신하거나 혹은 내게 호의적이지 않을 거라고 단정해버리는 건 또 왜 그럴까. 혹시 지금까지 나를 왜곡시킨 힘들을 폭력이라고 생각하기보다 피할 수 없는 부당함이라고 받아들여버리는 비겁함이 세상에 대한 비관으로 나타나는 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수동성이야말로 비관보다는 낙관의 도움을 바라는 태도일 텐데 말이다.
<p.329>
각자의 기억은 그 사람의 사적인 문학이다.
<p.334>
70년대에 같은 대학을 다니며 기숙사에 함께 살았던 유경과 희진은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가끔씩 만나는 친구 사이이다. 소설가 희진은 당시 살았던 기숙사 생활을 회상하며 쓴 소설을 한 권 내는데 유경도 이 소설을 읽으며 과거를 떠올린다. 그리고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었지만 서로 다른 기억을 공유하는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가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유경과 희진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으로 70년대의 대학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신입생의 기숙사 생활 이야기는 자연스레 나의 신입생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나 역시 대학 신입생 때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익숙한 동네와 익숙한 학교, 익숙한 친구들을 떠나 모든 게 낯선 대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도 긴장되고 겁이 날 일인데 그 와중에 사는 곳과 자는 곳까지 바뀐다니... 돌이켜보면 갓 스무 살이 된 아이한테는 꽤 버거울 일이었을 텐데도 그럭저럭 어떻게든 적응해 살았던 것 같다.
4인 1실인 방 하나에 선배들을 꼭 한두명씩 배정하는 건 70년대 때부터 해왔던 관습인 건지 소설 속 룸메이트 구성과 비슷하게 나도 첫 학기는 4학년 선배 한 명과 신입생 3명이서 한 방을 썼다. 기숙사 입실 첫날, 부모님과 함께 이불보따리와 잡동사니가 들어 있는 박스를 들고 배정된 호실로 갔다. 방에는 먼저 와 앉아 있는 학생이 있었고 그 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모님께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던 그 학생이 당연히 4학년 선배인 줄 알고 부모님께 선배라고 소개를 했다. 구경이라고 할 것도 없는 좁은 기숙사 방 안을 한 번 휙 둘러보고 부모님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부모님이 돌아가고 나서야 그 친구는 내게 자신도 신입생이라고 넌지시 얘기했다. 그것이 대구에서 온 K와의 첫 만남이었다.
입소 후 며칠 뒤 선배들은 같은 방을 쓰게 된 신입생들을 모아 근처 치킨집에서 방모임을 가졌다. 기숙사 생활에 익숙해진 뒤에는 스스럼없이 들락날락할 정도로 가까워진 옆방도 생겼다. 주말에는 집에 가거나 약속이 있어 밖으로 나간 사람이 많아 기숙사가 텅 비었지만 평일 저녁에는 딱히 할 일 없는 신입생들이 복도 한가운데 있는 로비에 옹기종기 모여 같이 TV를 보기도 했다. 9시 수업이 있는 날이면 복도는 세면용품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슬리퍼를 끌며 왔다 갔다 하는 학생들로 붐볐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면 1층 식당에는 밥 짓는 냄새와 함께 학생들이 줄이 길게 늘어섰다. 이름도 모르지만 기숙사에서 마주치며 얼굴을 익힌 사람을 강의실에서 보거나 신촌에서 만나면 인사는 안 했어도 속으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대학생으로서 처음 맞는 여름방학에도 나는 집으로 가지 않고 기숙사에 남았다. K를 포함해 한 학기동안 친해진 P, J도 고향에 가지 않고 기숙사에 남았다. 우리는 그렇게 넷이서 함께 방을 썼다. 학기 때보다 느슨해진 기숙사 분위기와 외박 규정에 우리는 기숙사를 하숙집처럼 이용하며 대학생활을 누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명이 심심하다고 하면 갑자기 버스를 타고 신촌에 가거나 하다못해 학교 앞 치킨집에 맥주라도 한 잔 마시러 갔다. 부모님과 떨어져 아무 간섭 없이 살고 있다는 흥분과 미래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이 가득했던 스무 살 여름, 우리는 늦은 밤까지 많은 얘기를 나눴고 하루하루 방학이 끝나가는 걸 아쉬워하면서 그렇게 대학에서의 첫여름방학을 보냈다.
그렇게 더 돈독한 사이가 된 우리 넷은 1학년을 마치고 각자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곳에서 군복무를 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나 복학한 뒤에는 더 이상 기숙사에 살 수 없었다. 신입생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정원 탓에 재학생이 기숙사에 당첨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같이 수업을 듣고 학교를 다녔다. 모두 같은 꿈을 가지고 입학한 대학이었기에 각자의 방식대로 꿈을 좇으며 공부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우리는 종종 연락하고 만나기도 했지만 거센 시간의 흐름에 우리 넷의 관계는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자 다른 직장을 갖고 누군가는 먼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다른 방식의 삶을 살게 된 뒤로는 더 이상 예전만큼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누구나 겪어본 적이 있지 않을까. 한때 가족보다 더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 점점 소원해지다가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나는 사이가 되는 일 같은 건.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멀어져 가는 사이를 어떻게든 붙잡아 다시 예전처럼 만들고자 노력한 적도 있다. 친구라면, 평생 같이 가는 친구가 되기로 했다면 그게 일종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것도 맞는 말일지 모른다. 때때로 친구에게 연락해 안부를 묻고 최소 일 년에 한두번은 만나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아야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각자 사는 게 너무나 바쁘고 삶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는 건 이런 친구로서의 의무를 외면하기 위한 허울 좋은 핑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지금까지도 이따금씩 나를 괴롭힌다. 늦은 밤 편하게 얘기할 친구를 찾으려 해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거나 오래전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의 안부를 우연히 들을 때면 이제는 멀어져 버린 친구들이 떠오르고 이 모든 게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신경을 못 써서 그런 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겠거니 싶다가도 내 노력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정말 내 성격에 문제가 있는 건지 고민하게 된다.
이렇게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할 때면 나는 언젠가 들은 난로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난로는 정해진 자리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온기를 가져다준다. 누구나 추위를 피해 찾아와 몸을 데울 수 있지만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뜨겁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적당한 거리에 자리 잡고 앉아 오랜 기간 온기를 누리는 사람도 있고 충분히 몸을 데우고 다시 곁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내가 그 사람에게 온기를 주었다는 사실에 만족할 수 있는 난로 같은 사람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고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창밖으로 들리는 자동차 소리에 섞여 나를 스쳐 지나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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