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는 그동안 참은 울분을 토해 내듯 수십 개의 라면이 든 솥단지를 번쩍 들어 공사장 바닥에 쏟아 버렸다.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모두 할 말을 잃었다. 현장소장이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며 따로 라면을 주문한 직원들을 혼냈다. 사건을 유발한 장본인들은 조용히 삽자루를 들고 바닥에 흩뿌려진 라면을 퍼 담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통해 가끔은 가진 전부를 걸어야 세상이 겨우 움직인다는 것을 배웠다. 다음 수를 계산했다면 엄마는 절대로 솥단지를 쏟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자식 다섯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버텨 왔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사람들의 이기심을 나무랐다.
꿈이든 행복이든 어쩔 수 없는 삶의 무게든, 가끔은 용기를 내야 한다. 필요한 순간, 가진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용기는 그동안 잘 살아온 삶의 경험과 지혜가 알려주는 멋진 '한 방'이 아닐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면, 생각지도 못한 세계가 펼쳐진다.
<p.23>
'때마침'이란 그 '때'가 아니면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뜻이다.
<p.153>
현명한 지혜가 하루아침에 뚝딱 하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올바른 정책도, 기발한 아이디어도, 타인의 생각을 수용하고 이를 반영하는 지혜도 모두 배움에서 나오는 법이다. 아무리 훌륭한 두뇌도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퇴화한다. 직접 관련이 없다고 내치면 큰일이 난다. 가장 중요한 순간 빛을 발하는 건 우리가 언젠가 읽고 생각을 깨우쳤던 한 권의 책, 한 줄의 문장일 수도 있다.
<p.160>
내년이면 경찰 경력 15년이다. 공무원이지만 한 번도 안정을 찾아본 적 없고, 늘 흔들리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버텼던 시간이다. 그런데 익숙한 패턴을 더 반복하기 싫다는 강한 욕구가 발동 중이다. 단 한 번도 권태기를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근래에 '혹시' 하는 마음이 절로 인다.
지금까지는 안정, 성공, 인정에 더욱 집중했다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도전, 변화, 시도로 채울 생각이다. 낯선 곳, 색다른 문화, 약점으로만 남겨 두었던 그늘진 부분에 마음을 쏟으며,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넘어 전혀 몰랐던 세상으로 가려고 한다.
<p.165>
법 집행에 있어 '예외'란 누군가에게는 선의지만, 누군가를 제외한 모두에게는 악의가 된다.
<p.223>
한때는 묻는 것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몰랐던 것을 알고 나면 알기 전의 나는 사라지고 없다. 이미 한 단계 성장한 나만 있을 뿐이다.
<p.251>
이 책은 경찰의 꿈을 가지고 있는 여학생이 가볍게 읽어볼 수 있는 에세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책 제목과는 다르게 경찰관이 아니라 여경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는 점을 미리 알려주고 싶다. 남초 집단에서 여성으로 근무하면서 겪게 되는 여러 고충들을 알게 되는 계기는 되었으나 한편으로는 이런 내용이라면 책 제목을 다르게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난 여경의 이야기가 아니라 경찰관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자연스레 우리 회사에 재직 중인 유일한 여성 기장님 두 분을 떠올렸다. 생각해 보면 그녀들도 20년이 넘는 비행 생활을 하며 여성으로서 여러 고충을 겪어 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두 분과 비행을 하며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고, 그들이 여성이라는 걸 신경 써본 적도 없다. 조종석에는 기장과 부기장만 있고 각자의 위치에 맞게 해야 할 일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승객들은 조종사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지 못하며 신경 쓰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를 안전하게 여행지로 데려다 주기를 바랄 뿐이다. 항공기 역시 조종사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지 못한다. 이 육중한 하늘을 나는 기계는 아주 단순해서 조종사가 조종간을 움직이는 대로 하늘을 날 뿐이다.
우리는 레스토랑에 가서 주방장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내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주기를 기대한다. 의사에게는 내 병을 고쳐주기를 기대하고, 목수에게는 내 집을 잘 지어주길 기대하고, 경찰관에게는 나의 안전을 기대한다. 모든 직업에 대해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남성과 여성에게 동등하게 부여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그 직업이 마땅히 해내야 하는 업무의 수준에도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적 차이가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부터 여경의 채용 기준과 범죄자 제압 능력 관련하여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나를 포함하여 국민들은 경찰관을 원한다. 경찰관으로서 본인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다. 이 사안에 대해 남녀평등과 젠더 이슈로 접근할 문제가 아닌데 자꾸 남녀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쓰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 책의 제목은 오히려 국민들이 경찰 조직에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닐까. '당신은 여경/남경이 아니라 경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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