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봉하마을 초라한 흙집에서 나서 판사, 변호사, 국회의원, 장관, 그리고 대통령이 되었다. 젊은 시절 초라한 집을 떠났다가 늙어서 번듯하게 잘 지은 집으로 돌아왔다.
남들은 성공항 인생이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할 자신이 없다. 인생에서 성공은 무엇이고 실패는 또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기준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굳이 성공과 실패를 따지고 싶지 않다. 돌아보면 나는 한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 때로 제어하기 힘든 분노와 열정에 사로잡혀 피할 수도 있었던 상처를 받거나 입힌 일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양심과 직관이 명하는 바에 따라, 스스로 당당한 사람으로 살고자 몸부림쳤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어쨌든 나는 작은 흙집에서 났고, 거기에 새로 지은 큰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 집에서 살다가 죽을 것이다. 이것이 내 운명이다.
<p.34>
큰형님이 꾸지람을 했다.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반성문을 쓸 일이고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버텨야지, 사내놈이 왜 도망을 치느냐는 것이다. 다시 학교에 갔다. 그러나 반성문은 끝내 쓰지 않고 경위서만 냈다.
<p.49>
세상이 바뀌긴 했는데 좀 이상하게 바뀌었다. 군사정권은 남의 재산을 강탈할 권한을 마구 휘둘렀는데, 민주정부는 그 장물을 되돌려 줄 권한이 없었다. 과거사 정리가 제대로 안 된 채 권력만 민주화되어 힘이 빠진 것이다. 부당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한테 더 좋은 세상이 되어 버렸다. 억울하지만 이것이 우리 역사의 한계일 것이다. 정수장학회 문제만 그런 게 아니다. 지난날 잘못된 역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 장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 소유자가 정권까지 잡겠다고 했다. 그런 상황까지 용납하고 받아들이자니 너무나 힘들었다.
<p.52>
버림받은 사람은 도덕적 성숙을 이루기 어렵다. 자기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분명한 의식과 자부심이 있어야 모범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을 책임 있는 주체로 참여시켜야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 기회, 참여, 책임... 대통령을 하면서도 늘 이런 것들을 어떻게 실현할지 고민했다.
<p.58>
사법연수원 동료들은 나의 교만을 깨뜨려 주었다. 나는 마음 먹고 공부하기만 하면 어디서든 1등을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부심을 어려서부터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선을 다했지만 선두 그룹에 낄 수 없었다. 좌절감이 컸다. 대충대충 공부를 했다. 그래서 졸업 성적이 중간에도 미치지 못했다. 세상에는 나보다 머리 좋은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p.66>
변론을 하면서 청년들을 자주 만났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 성적도 우수하여 남보다 나은 자리가 보장되어 있는데, 왜 부모님의 간절한 소망마저 내팽개치고 자기 앞날을 망치는 어리석은 일을 고집하는지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젊은 그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자신과 가족, 부모형제를 먼저 챙기면서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사회와 국가에 기여할 수 있다는 논리가 늘 옳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p.79>
그를 지켜보면서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 건호를 생각했다. 건호도 몇 년 지나면 대학에 갈 것이다. 그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이 청년과 같은 길을 가라고 할 수 있을까? 모든 걸 못 본 체하면서 어떻게든 출세하고 돈 많이 벌어 편하게 살라고 할 것인가? 양심이니 정의니 말은 쉬웠지만, 내 아들한테 고난의 삶을 권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고민해 본 끝에 내린 결론은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아이들이 받을지 모르는 고통을 예방하는 길이었다. 아들에게 권하기보다는 아버지인 내가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p.83>
내 선거구호는 무척 거창했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고,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헤엄친다." 유권자들보다는 지지자와 운동원을 격려하는 구호였지만 나름 매력이 있었다. 1986년 학원안정법 반대투쟁을 할 때 투쟁기금을 모으려고 백범 김구 선생의 글씨 복사본을 팔러 다닌 적이 있었다. "대풍역풍비 생어역수영."大鵬逆風飛 生魚逆水泳 별 가치가 없는 복사본인데도 많은 분들이 적지 않은 돈을 주었다.
<p.123>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려고 눈물겹게 노력하고 희생을 감수한 기자들이 그 시대 언론의 역사를 빛나게 했지만, 이 신문사들은 부당한 기득권의 성벽 안에서 정치 권력과 유착했다. 그런데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정치 권력의 지배에서 벗어난 보수신문들은 시장 권력과 유착되었고 그 자신이 새로운 사회적 권력이 되었다. 민주주의가 제공하는 언론 자유의 과실을 먹으면서,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고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 절대권력이 된 것이다.
<p.278>
선거에 나온 후보는 누구나 자기 자랑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정당과 후보의 정체성이다. 진보냐 보수냐, 이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진보 보수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이 원칙을 아는 정치인인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여부이다. 일관성 있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진보든 보수든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왔다 갔다 해서 그 사람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경우에는 정체성 평가를 할 수가 없다. 아예 심사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p.292>
'사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언론은 사람을 해치는 흉기가 된다.
<p.349>
살다 보면 존경하는 사람이 성공하거나 출세를 한 뒤 변해버린 모습에 실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항상 궁금한 게 있었다. 그 자리에 가면 누구나 어쩔 수 없이 변해버리는건지 아니면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건지 말이다. 그리고 동시에 또 하나 궁금해진다. 나는 그 자리에 갔을 때 변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지. 나도 살면서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있어보거나 남들보다 먼저 원하는 목표를 이뤄본 적이 있다. 대단한 성공이나 출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반장이나 팀장, 원하는 직업 갖기 등 남들보다 한 발짝 앞서보는, 뭐 그런 수준의 이야기다. 아마 살면서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당신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팀장으로 선발되어 프로젝트를 이끌게 되었을 때나 같이 준비한 동기들에 비해 빠르게 직장을 얻거나 목표를 이뤘을 때 분명 그 자리에 가게 되어 변해야 하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려야 하고, 의견을 수렴해 누군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전체를 위하는 모습이 때로는 개인을 무시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남들보다 앞선 모습이 자칫 다른 사람들에게 잘난 척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 처음 가지고 있던 생각, 자신의 철학 등 근본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변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여태까지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렇게까지 대단한 권력을 갖거나 큰 일을 이룬 적도 없었기에 눞 앞의 이익을 위해 내 소신을 저버릴 필요까진 없었다. 그러나 내가 큰 권력을 가지게 된다면, 혹은 눈 앞의 이익이 엄청나게 크다면 그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만약 그게 나 자신만을 위한 이익이라면 과감하게 이익을 포기하고 내 소신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자녀가 생기고 가장이 되면서 내가 아닌 가족의 행복이나 자녀의 성공과 같은 이익에도 내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베트남 독립과 통일을 이끈 호찌민이 평생을 독신으로 산 이유가 가족이 생기면 권력과 이익 앞에 부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아빠가 되고 가장이 되어 보니 그 말의 의미를 알 것도 같다.
정치인들의 자녀를 둘러싼 입시 비리, 채용 비리, 증여 비리 등이 끊이지 않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청렴하고 소신을 지키는 데 있어 자녀의 행복에 대한 유혹이 걸림돌이 되는 이유는,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없다고 한 이유는 그만큼 자녀의 행복이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입시, 취업, 자산 모두 다음 세대로 갈수록 더더욱 이루기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내 아이가 나보다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또는 최소만 나만큼은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할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다. 그래서 부모가 되는 순간 자녀를 둘러싼 이익 만큼은 포기하기 쉽지 않은 것이 아닐까.
몇 년 전 늘어나는 항공 수요로 저비용 항공사나 중국의 항공사들이 고경력 기장 부족 현상을 겪었던 적이 있다. 이에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의 고경력 기장의 몸값이 몇 배로 뛰었는데, 몇몇 회사는 그들을 스카우트하면서 자녀까지 부기장으로 같이 입사시켜주는 조건을 걸었다. 그리고 마침 자녀 역시 조종사의 꿈을 꾸던 몇몇 기장들은 이를 통해 자신이 이직하는 대가로 자녀의 취업을 보장받기도 하였다. 또한 최근에는 기아 노조가 버티고 버티며 유지했던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채용 조항을 결국엔 개정하고 임단협 잠정 협의를 이루기도 하였다. 이것의 합법 여부를 떠나 우리 사회의 극도로 어려워진 취업 현상이 한 개인이 소신을 지키는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게 두 자녀의 아빠로서 안타깝다.
갑자기 뜬금 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이 책을 읽으며 인간 노무현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그는 그래도 스스로 원칙과 소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그 역시 두 자녀를 둔 가장이었는데 자신의 인생과 가족의 삶 속에서 원칙과 소신을 지키면서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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