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역사란 이렇게도 가혹한 것이다. 언제 어디서 같은 병에 감염될지도 모르면서 지금은 자신이 멀쩡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박해하고, 내가 오늘 두 다리로 멀쩡히 걷는다고 해서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얕잡아보는 것이 우리들이 아니던가. 인생은 내일 아침에 숨을 쉰다는 보장이 없는 것임에도, 우리는 너나없이 진시황의 불로초라도 손에 넣은 듯 자만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가.
<p.140>
우리는 길을 가다 걸인에게 동전을 던지고, 방송에서 소개되는 사연을 들으며 ARS로 1, 2천 원을 보내면서 뿌듯해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깊은 곳에 이렇게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과 휴머니티가 숨어 있음에 만족한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스스로에게 값싼 면죄부를 주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내가 이야기하는 나눔은 내 안에서의 나눔일 뿐, 나를 내놓는 나눔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는 내 기준에 부합하는 정의이지, 나를 낮추는 정의는 아닌 것이다.
나는 아무 사전 정보도 없이 수술을 맡은 환자가 나병 환자였음에도, 이 환자가 전염성이 있는지 없는지, 왜 이런 환자를 아무 말도 안 하고 데려왔는지 한마디 질문도 없이 조용히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던 마취과 의사의 태도에서 비로소 나의 경박성을 깨달았다. 그는 묵언으로써 내게 삶을 가르쳐준 것이다.
<p.150>
사람이 죽고자 하는 결심을 하는 데는 대개 두 가지의 경우가 있다. 하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할 때, 그것이 시간이 지나도 도저히 개선될 기미가 없을 때, 잠이 들면 잊히지만 눈을 뜨면 다시 그 고통이 엄습할 때 사람들은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이성적인 판단이 순간적으로 마비된 경우다.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 불행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물론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것이 자살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단호하게 말할 자신은 없다. 그것은 자살을 선택해야 할 정도의 절망을 겪어보지 않은 자가,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가 세 치 혓바닥으로 그들 앞에서 삶과 죽음을 감히 이야기하기가 송구스럽기 때문이고, 또 그렇게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그들을 극한까지 몰아붙인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죄의식과 공범의식을 느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기가 좀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무리 상황이 절망적이어도 죽기보다는 살아서 꿈이라도 꾸어보는 게 더 나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더욱이 절망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시던 분들이 약주를 하신 끝에 혹은 부부싸움 끝에 혹은 그날 날아든 한 장의 독촉장에 우발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하룻밤만 자고 나면 넘어갈 일을 엄청난 결과로 만드는 경우라서 더욱더 안타깝다.
<p.163>
사람이란 참 이상한 동물이다. 마치 대단한 일이라도 생긴 양 수선을 떨다가도 그 상황이 종료되면 금방 원래 자리로 돌아가버린다.
<p.193>
"내가 얼매나 더 살지는 몰라도 지금 사는 거는 개평 아잉교."
<p.196>
진료를 하다 보면 환자들 표정이 가지각색이다. 그런데 고학력에 생활수준이 높을수록 표정이 심각하고, 오히려 소외되고 어려운 분들이 병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바람이 제법 찬 가을 아침에 일자리가 없어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분들의 모습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운다. 근사한 카페에서 코냑이나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들은 표정들이 대개 심각하다. 그러나 안동 막창 골목에서 소주 한 병 시켜놓고 돼지 막창을 굽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떠들썩하고 유쾌하다.
이것도 분명 인간에게 주어진 정신적 엔트로피의 문제일 것이다. 엔트로피는 열역학법칙에 따르면, 폐쇄계에서 에너지를 계속 소모하면 결국 그만큼 쓰레기가 쌓이므로 외부에서 새로운 무엇인가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않으면 결국 수명을 다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구에서 자체 화석연료를 계속 쓰면 언젠가는 쓰레기만 쌓여 지구가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감정은 어떨까. 소위 이성으로 해결해야 할 대단하고 복잡한 문제들의 포로가 되어 '고상한 척'하고 사는 사람들은 정신 에너지의 고갈로 뇌 속에 찌꺼기만 쌓여 있는 것은 아닐까. 반대로 솔직하게 노동하고 사는 사람들은 '이성적'이라는 이름의 '어색한 노동량'이 상대적으로 감소함으로써 뇌 속 기쁨의 센서가 낮게 세팅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행복의 총량은 과연 어느 쪽이 더 많은 것일까.
<p.282>
살다보면 로또에 맞을 확률도 있고, 번개에 맞아 죽는 확률도 있다는데, 아버지는 내가 하필이면 표본의 뇌혈관을 끊어내던 순간에 쓰러지셨다. 누구든 행운과 불운의 확률에 속할 수 있듯이 나 또한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불운한 우연의 일치에 상당 기간 죄의식을 갖게 되었고, 그때의 일이 이후의 삶에서도 무의식을 지배하는 어두운 그림자로 남아 있다.
<p.300>
"차는 기분에 따라 맛이 다릅니다. 차 마시기 전에 마음을 다스리고 마셔야지, 차로 마음을 다스리려 들면 안 됩니다."
<p.309>
개인적으로 읽기 힘든 책이었다. 읽을 때마다 슬픔과 두려움의 감정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조금씩 천천히 읽었다. 슬픔과 두려움의 감정이 몰려왔던 이유는 질병과 고통, 죽음이 내가 아직 겪어보지 못한 영역이기 때문이고 그보다 더 두려웠던 건 나를 포함한 누구에게나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2023년 6월, 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샌프란시스코 비행을 마치고 새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카카오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회사에서는 대중교통이 끊긴 시간대에 도착하는 항공편에 대해서는 귀가 시 택시를 타고 갈 수 있도록 택시비를 지원하고 있는데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택시를 타면 몸은 편하지만 마음이 상당히 불편하다. 그 이유는 대다수의 택시 기사들이 그 시간대가 되면 과속, 난폭, 졸음운전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직선으로 뻗은 공항 고속도로 위는 야심한 시각에는 차가 별로 없기 때문에 과속과 졸음운전을 하기 쉬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부기장으로 일한 지도 벌써 8년 차, 그간 숱하게 택시를 탔다. 안전 운전을 하고 친절한 택시 기사도 일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택시 기사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사고가 난 그날도 그나마 괜찮은 택시 기사가 걸리기를 바라며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근처에서 대기하던 택시가 몇 분 내로 도착했고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택시 기사와 함께 백미러에 걸린 십자가가 보였다. 왠지 오늘은 조금 덜 불안하게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공항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택시는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공항고속도로의 속도 제한은 시속 100km이지만 이것을 지키는 일반 택시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대부분 120km~130km로 달린다. 그러나 이 택시 기사는 이보다 더 빨리 가는 것 같았다. 내비게이션에서는 과속 알림이 계속 울렸지만 택시 기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선을 요리조리 바꿔 가며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거 너무 빠른 것 같은데, 한마디 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쾅! 소리가 들리며 차량이 요동쳤다. 모래알처럼 산산조각 난 유리파편이 얼굴에 튀면서 이마에 상처가 났고 일부는 입 안에도 들어갔다. 나는 잡고 있던 핸드폰을 놓쳤고, 안전벨트를 매고 있던 내 몸은 좌우 앞뒤로 심하게 흔들렸다. 나는 양손을 가드 하듯이 올리고는 최대한 버티며 얼른 차가 멈추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택시 기사는 그래도 운전대를 끝까지 놓지 않고 갓길에 차를 멈췄다. 택시 기사의 괜찮냐는 말에 '운전을 이딴 식으로 하냐'라고 화를 냈다. 택시 기사는 얼른 내려 내가 앉은 오른쪽 뒷좌석의 문을 열려고 했으나 문이 열리지 않았다. 차의 오른쪽이 긁히고 심하게 찌그러진 탓이었다. 그는 대신 왼쪽의 문을 열고 나를 부축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나가려는 순간 놓친 핸드폰이 생각났다. 핸드폰을 떨어뜨렸다는 말에 택시 기사는 운전석 밑에까지 들어간 핸드폰을 찾아 건네주고는 내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밖에서 본 차의 모습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오른쪽 범퍼, 바퀴가 비틀어졌고, 그와 함께 조수석이 안쪽으로 심하게 찌그러지고 창문이 다 깨져 있었다. 그리고 뒤로는 택배 트럭 한 대가 서 있었다. 택시는 과속하면서 차선을 이리저리 옮기다 오른쪽 차선의 택배 트럭 후미를 박으면서 차 오른쪽이 그렇게 박살 난 것이었다. 내가 택시의 뒷자리에 앉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조수석에 앉았다면 심하게 다쳤을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마침 뒤따라오던 빈 택시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새벽 비행을 마치고 한숨도 자지 못하고 날이 밝은 대로 우선 병원에 갔다.
결과적으로 나는 아무 데도 다친 곳이 없었다. 혹시 모를 후유증이나 통증을 대비에 입원을 하긴 했지만 사고가 나는 순간에도 크게 어디가 아프거나 다쳤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모든 것은 다 안전벨트 덕분이었다. 안전벨트가 내 몸을 잘 잡아주는 덕분에 그 어디에도 부딪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날은 긴 하루였다. 새벽부터 사고를 당하고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병원에 가서 여기저기 진찰을 하고 입원 수속을 밟고 난생처음 입원도 해보고... 입원한 첫날 혼자만 있었던 3인실의 병실 침대에 눕자 여러 생각이 들었다. 집에 있는 아내와 우현이, 뱃속에 있는 축복이 생각이 나고 고창에 계시는 부모님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내 직업이 생각났다. 내가 이 사고로 크게 다쳐 후유증이나 장애를 얻게 된다면, 비행을 할 수 없게 되어 다른 직업을 구해야 된다면 나는 앞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두려워졌다. 짧은 내 인생을 바쳐 이룩한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상황이 온다면 그 상황에서도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두려웠다. 뭔가 그렇게 힘든 삶을 살게 될 바에는 차라리 삶이 끝나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더 축복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큰 사고 속에서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었지만 삶이란 것이 그 언제라도 갑자기 지옥 같은 걸로 변할 수 있는 것이란 걸 알게 되자 겁이 났다. 도처에 널려 있는 사고의 위험들이 다 너무나 크게 느껴졌고, 어느 순간 큰 장애나 병을 얻게 된 사람들의 사연이 남일 같지 않아 너무 무서웠다.
사고 이후 4개월 정도가 지났다. 내가 가진 것과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며 살고 있지만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불의의 고통을 겪게 되면 어쩌나 걱정된다. 이 책이 읽기 힘들었던 이유도 이러한 걱정 때문인 것 같다. 혹시나 내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그리고 내 이야기가 되면 나는 그것을 견뎌내거나 극복하지 못할 것 같아서 말이다. 예전에 삶은 내가 노력하면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부분 원하는 방향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삶과 운명 앞에 한낱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사람의 힘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면서 나는 책 속에서 "내가 얼마나 더 살지는 몰라도 지금 사는 거는 개평 이잉교."라고 하신 한 할아버지의 말씀을 곱씹어본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동물농장 > 조지 오웰, 1945 (1) | 2024.01.15 |
---|---|
< 그림자를 판 사나이 >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1814 (1) | 2023.12.29 |
< 운명이다 > 노무현재단 엮음, 2010 (2) | 2023.10.22 |
< 부모와 아이 사이 > 하임 기너트, 1965 (2) | 2023.10.19 |
< 정글만리 > 조정래, 2013 (0) | 2023.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