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벗이여, 경박한 마음으로 정도에서 벗어난 사람은 불시에 다른 고난의 길로 접어들게 되며, 그 길은 계속 옆으로 그를 벗어나게 만들게 마련이지.
<p.97>
친구여, 자네가 만약 사람들 가운데 살고 싶다면, 부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도 그림자를 중시하고 그 다음에 돈을 중시하라고 가르쳐 주게나. 물론 자네가 단지 자기 자신, 그리고 더 나은 자기 자신과 함께 살고 싶다면, 자녀에게는 그 어떤 충고도 필요 없겠지만.
<p.138>
소설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주인공 페터 슐레밀이 어느 파티장에서 회색 옷을 입은 신비로운 남자를 만난다. 그 남자는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금화가 나오는 주머니를 보여주며 주인공의 그림자와 바꾸고 싶다며 거래를 제안한다. 평소 생활이 궁핍했던 주인공은 금화들을 보고는 그림자쯤이야 없어도 된다는 생각에 흔쾌히 거래를 받아들인다. 곧 주인공은 금화 주머니를 이용해 부와 명예를 얻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주인공의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이 점차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를 '그림자가 없는 사람'이라며 멸시하기 시작하고 결국 불행해진 주인공은 모든 걸 내려놓고 마을을 떠나 방랑을 시작한다. 현실과 환상이 혼재된 이야기 속에서 한 인간의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무려 18세기 초반에 쓰인 소설이다. 그럼에도 꽤나 재미있다. 내용 전개도 빠르고 스토리도 흥미진진하다. 18세기 초반이면 자본주의가 막 시작될 무렵이었을 텐데 작가는 자본주의가 미래에 불러일으킬 물질만능주의와 인간성 상실에 대해 예견했던 걸까?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문학, 영화, 드라마 등의 단골 소재로 쓰인다는 걸 생각해 보면 돈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 불러오는 불행과 비극이라는 건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영영 극복할 수 없는 과제인 걸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데, 글을 적으면서 떠오른 건데 그러고 보니 우리 전래동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들이 많이 있지 않나? 요술 맷돌이라던지 요술 항아리 같은 이야기 말이다. 서양의 이솝우화 중에서도 욕심을 다룬 이야기들이 많다. 어쩌면 이 비슷한 이야기들의 큰 줄거리는 결국 과욕이 불러오는 비극일 뿐인데, 21세기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읽으면서는 자연스럽게 돈에 대한 욕심을 떠올리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첫째 돌잔치 때의 일이다. 행사가 진행되면서 돌잡이 차례가 되었는데 당시 사회를 봐주시던 분께서 나와 아내에게 아이가 뭘 잡았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돌잔치 준비에 당일까지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 바람에 '아기가 알아서 뭔가를 잡겠지'라고만 생각했을 뿐, 아기가 무엇을 잡았으면 좋겠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아 그 질문이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온 가족이 다 나만 바라보고 있던 그때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돈'이라고 얘기했다. 가족들이 모두 웃는 가운데 아빠가 "허~참" 하며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는 그냥 그러고 넘어갔는데 시간이 지나도 계속 그게 신경이 쓰였다.
아빠의 "허~참"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겠지만 내게는 '네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생의 가치가 결국 돈이었니?'라는 실망 섞인 질문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아무리 농담 반 진담 반이었지만 그 질문에 대해 돈이라고 대답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정말 아기가 테이블에 놓인 물건들 중 어떤 걸 잡았으면 좋았을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당시만 해도 사실 '돈이 어때서?'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주식부터 부동산까지 자산 가치 상승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도 돈이 유행했다. 파이어족, 비트코인, 돈 버는 투자법부터 돈의 속성,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부의 의미 등 온통 돈에 대한 얘기들 뿐이었다. 그 분위기 속에서 나도 자연스레 돈에 관심이 많아졌다. 가정이 생기고 아기가 태어나면서 갖게 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탓도 있었을 것이다.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어떻게든 빨리 돈을 모아서 불려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특히나 세대를 거듭할수록 부모가 가진 부에 따라 출발선이 달라지는 대한민국 사회의 특성 아래에서 내가 지금 돈을 많이 모아놓아야 내 아이들이 그래도 어느 정도 비슷한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나를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가 첫째 돌잡이를 한다면 나는 사회자의 질문에 돈이라고 말하진 않을 것이다. 그 대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행복이다. (돌잡이 물건 중에 행복을 나타내는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아이의 삶에 돈이 가득하기보다는 행복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돈은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돈 버는 방법보다 행복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마치 행복은 행복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쉽게 누릴 수 있는 것인 반면 행복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얻기 어려운 일인 듯하다. 쉽게 말하자면 행복을 아는 사람이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는 방법에 대해 제대로 배웠거나 아니면 아직도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내 아이는 행복을 잘 알고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아무튼 첫째의 돌잔치는 그렇게 지나갔지만 내년 겨울이면 또 둘째의 돌잔치를 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마음 같아서는 사회자의 같은 질문에 망설임 없이 행복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참, 참고로 첫째는 부모의 희망과 상관없이 책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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