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때 지식이 잘못 쓰여질 때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한 사회의 가치관이 거꾸로 서 있거나 가치 판단이 흔들릴 때, 잘못된 양심을 가진 사람의 지식은 어떤 도둑질이나 살인보다도 위험한 범죄인 것이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국민을 속이는 머리를 빌려주고 이론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에 전두환 씨 같은 사람이 8년간이나 독재 정권을 유지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p.24>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부질없는 객기였다. 사실이 어떻든 이미 그곳에서 따진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바른 소리라 해도 쓸모 없는 헛소리에 불과한 일이었다. 매사에 이런 식이었으니 정치 9단이라는 YS가 보기에는 얼마나 답답한 철부지들로만 보였을까.
<p.78>
특히 남보다 앞서 생각하고 남을 다스려야 할 입장에 있는 지도자라면, 상당히 '체계화된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정도의 철학을 갖추려면 이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 다방면에 걸쳐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철학'이 없는 정치인은 '두목'이라는 말은 들을 수 있어도 '지도자'라는 이름을 들을 수는 없다.
그리고 정치, 경제에 관해서 지식을 빌리는 경우에도 지도자는 무엇을 빌려야 하는 것인지, 또 누구한테 빌려야 할지, 그런 것을 판단할 줄 아는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농부가 밭 갈러 가는 데 호미를 빌려야 하는지, 괭이를 빌려야 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p.86>
이렇게 강점을 갖고 있긴 하지만 DJ에게도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가장 큰 허점은 허점이 너무 없다는 점이다. 이건 말장난이 아니다. 논리적으로 너무 완벽하고 또 그 완벽성에 대해 너무 자부심과 확신이 강해 다른 사람들에게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다. 게다가 논쟁을 하면 항상 이겨 버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을 꺼내기를 어려워한다. 그러니 남의 머리를 빌리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다.
<p.96>
제나라의 장공이 사냥을 나갔을 때, 한 마리의 벌레가 다리를 쳐들고는 수레의 바퀴를 향해서 왔다. 장공이 마부에게 "저게 무슨 벌레냐?" 하고 묻자, 마부가 이렇게 대답했다.
"저 놈은 사마귀라는 이름의 벌레이옵니다. 저놈은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았지 뒤로 물러설 줄을 모릅니다. 제 힘은 생각지도 않고 적을 가볍게 여기는 그런 놈입니다."
그러자 장공은 이렇게 말했다.
"이 벌레가 만일 사람이라면, 반드시 천하에서 날랜 사나이가 될 것이다." 그리고는 수레를 돌려 그 벌레를 피해서 가도록 했다.
이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이란 고사 성어의 유래이다.
<p.99>
지금까지 아이들을 키운 일을 돌이켜보면, 잘못된 일도 많고 아쉬움도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뼈아픈 실책은 교육은 부모가 다 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한 것이다. 오히려 아이들은 가정보다는 학교나 친구들에게서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거스르는 부모의 교육이 자칫하면 아이들에게 부담만 주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입시 공부에 짓눌려 인간성 발달에 문제가 심각하다고 모두들 걱정이 많을 때였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어떤 부모들도 아이들의 성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 풍조에 과감히 도전장을 냈다. 내 아이들을 성적의 노예가 되도록 내버려두진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놀렸다. 놀지 않으면 내가 데리고 놀았다. 아내가 걱정을 하면, "괜찮아, 내가 책임진다."는 한 마디로 밀어붙였다.
그런데 큰놈이 고등학교 2학년쯤 되자 문제가 생겼다. 그 동안 부자간에 죽이 맞아서 놀기는 잘 놀았는데, 막상 고2가 되니 사정이 달라진 것이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도 친구들도 온통 대학 이야기뿐이니, 큰놈으로서는 대학 입시 걱정을 안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공부를 하려 하니, 이미 공부좀 하는 아이들은 중3과 고1 때 미리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해 뒀고, 게다가 학교 수업은 그 아이들에게 맞추어 진도가 나가니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큰놈은 뒤늦게라도 따라가 보겠다고 한 동안 공부에 매달리는 것 같더니, 나중에는 슬금슬금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며 왕창 놀아 버리는 것 같았다. 노는 것도 문제지만, 스스로의 불안감으로 인해 행동이 거칠어지고 불안정해지는 것이 점점 자포자기 상태로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여 더 걱정스러웠다. (...)
그런데 대학에 가서도 역시 문제가 생겼다. 내가 대학을 교양 과정으로만 생각하고 친구 잘 사귀고 책이나 많이 읽어 인생을 폭넓게 배우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학과 공부는 하기가 싫고 신경은 쓰여서 매우 고통스러운 모양이다.
나는 큰놈의 일을 통해서 교육은 부모가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보통 사람들은 혼자서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거역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도 자기 스스로의 깨달음과 선택이 아니라, 부모의 권유인 경우에는 더욱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지금 나더러 아이를 다시 키우라면 망설이지 않고 아이를 경쟁의 대열로 밀어 넣을 것이다. 세상이 잘못되어 있을 때는 그 잘못된 구조와 제도 자체를 고치도록 노력해야지 혼자서 이탈하거나 외면해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p.84>
옛날 우리가 자랄 때는 그저 먹고사는 것이 큰 문제였다. 독재니 부정 부패니 빽이니 하는 것 외에는 사회 문제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문제는 대충 해결된 대신에 환경 파괴, 쓰레기, 소비자 문제, 청소년 범죄, 마약, 에이즈 등 사회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제 우리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가 기아와 질병, 전쟁의 공포, 자원의 고갈, 환경의 파괴, 도덕의 타락 등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젠 개인의 문제보다 공동체 의식과 시민 정신을 교육해야 할 때가 아닐까.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미래의 문제, '나'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를 이야기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p.88>
내가 의도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는 주로 옛날에 실수한 이야기, 잘못한 이야기들이다. 실수한 이야기가 배울 것도 많고 설득력도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보고 배운다. 아이들 교육에 위선만큼 해로운 것도 없을 것이다.
<p.141>
버려진 사람들에게 도덕적 성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신들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뚜렷한 의식과 자부심이야말로 모범적 행동의 기초가 된다. 이런 점에서 그들을 사회의 책임 있는 주체로 참여시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관심과 배려에 달려 있지 않을까.
<p.187>
또 며칠을 허송했다 하여 갑자기 초조해지고 그를 보상하겠다고 급하게 열을 올리고 무리를 하는 것은 잇달아서 또다시 며칠의 침체와 시간의 낭비를 강요하는 결과가 되기 십상이다. 지나간 시간은 아무리 아까워도 깨끗이 잊는 것이 좋다. 장기전에서의 며칠의 허송은 그리 문제되지 않는다.
<p.207>
이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그 중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건 '남의 머리를 빌리다'는 말이었다. 허점이 없고 논리적으로 완벽한 DJ에게는 사람들이 말을 꺼내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남의 머리를 빌리기 어려울 것 같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의견에서 나온 말이다. 이 부분을 읽고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그렇구나, 그래서 그랬던 거였구나' 싶었다.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 잠깐 나의 비행 얘기를 해야겠다. 부기장으로서 비행을 하다 보면 매 비행 새로운 기장님과 편조를 이루게 된다. 출신도 다르고, 경력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다양한 기장님들과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좁은 조종석에 같이 앉아 있다 보면 알게 모르게 참 다양한 것들을 배운다. 좋은 건 좋은 대로, 나쁜 건 나쁜 대로 배우는 말 그대로 타산지석의 현장이다. 그중에서는 '나는 나중에 기장이 되면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싶은 것들이 있는데 여기서 나는 꽤나 아이러니한 사실을 깨닫고는 계속 고민해 왔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완벽한 기장님과 비행할수록 어딘가 비행이 잘 안 되고 불편하다는 사실이다.
규정과 절차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공과 사를 칼같이 구분하여 자신의 임무를 정확히 수행하는 기장들이 있다. 그 분들과 같이 비행하면 나 역시 보다 더 정확하게 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이렇게 두 명의 조종사가 각자 맡은 바에 집중하여 정해진 임무에 충실하면 그날의 비행은 완벽할 것만 같다. 그러나 예기치 않는 실수가 생기고 왠지 모르게 손발이 안 맞는 느낌이 든다. 반대로 최근에 개정된 규정을 잘 몰라 옆에서 알려줘야 하거나 절차를 가끔씩 헷갈리는 기장들이 있다. 그분들과 같이 비행하면 나도 덜렁대고 뭔가를 빼먹게 된다. 이런 비행은 상당히 위험할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봤을 때 사고로 이어질 만큼 안전에 치명적인 결함이나 실수가 발생하는 건 전자의 비행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후자의 비행엔 '빈틈'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빈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전자의 비행일 경우에는 빈틈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비행이 이루어졌다. '나는 무엇 하나 실수하지 않을테니 너도 하면 안 된다' 같은 엄숙한 분위기다. 그러나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현대 항공기 운항에 있어서 단 하나의 실수도 없이 완벽한 비행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항공기 운항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 요소에는 조종사의 실수뿐만 아니라 공항, 관제, 기상, 항공기, 기타 항공종사자 등 다양한 위험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항공기 운항의 총책임자라는 기장이 대단한 능력과 방대한 지식을 갖추었다고 할지라도 하나의 비행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변수를 전부 통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조종사는 운항 중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완벽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심각한 위험이 되지 않을 정도로 관리하며 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는 비행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대부분의 과정에서 동일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갓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독립된 주체로서 삶을 살아가는 개인에게 세상은 모르는 것투성이다. 쓰레기 버리는 법 같은 사소한 일부터 전세대출을 받고 집을 계약하는 일처럼 크고 어려운 일까지. 내가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똑똑한 사람이고 사전에 잘 알아봤다 할지라도 인생이라는 실전에서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으며 그 또한 실수 하나 없이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너무 완벽하게 살고자 노력하거나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며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책에 나온 것처럼 주변 사람들의 머리를 빌리기 어렵지 않을까. 사람도 빈틈이 있어야 매력이 있고 옆에서 도와주고 싶어 하니 말이다. 삶이나 비행이나 모든 것이 완벽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몸에 힘 좀 빼고 여유를 갖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가장 최적의 결과를 가져오는 게 아닌가 싶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골목의 전쟁 > 김영준, 2017 (eBook) (6) | 2024.08.29 |
---|---|
< 생각의 지도 > 진중권, 2012 (0) | 2024.08.24 |
< 만들어진 신 > 리처드 도킨스, 2007 (eBook) (2) | 2024.06.30 |
< 자본주의 사용설명서 > EBS 자본주의 제작팀, 2014 (eBook) (1) | 2024.06.01 |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 에릭 와이너, 2021 (1) | 2024.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