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모론'이라는 것이 있다. 신세대 논객 한윤형의 말에 따르면, 음모론의 특징은 구멍이 없다는 데에 있단다. 하긴, 인간이 신처럼 전지적 시점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이른바 '사실'이라는 것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기 마련이다. 반면, 음모론의 경우는 설명에 구멍이 없다. 미지나 무지의 부분도 상상력으로 빠짐없이 채워 넣기 때문이다.
<p.90>
고르기아스는 오늘날로 말하면 '논객'. 그는 감히 소크라테스 앞에서 자신의 말재주를 자랑하기 시작한다. 언젠가 수술을 받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한데도 한사코 몸에 칼을 대는 것을 거부하는 환자가 있었단다. 의사도 그의 고집을 꺾지 못해 설득을 포기하고 말았는데, 자신이 나서서 몇 마디 말로 그를 설득해 결국 수술을 받게 했다고. 그러니 만약 시의 대표를 뽑는 민회가 열려 의사와 자신이 출마하면, 사람들이 과연 누구를 선출하겠냐는 것. 물론 이 자화자찬이 노회한 소크라테스에게 통할 리 없다.
소크라테스의 반론. 간단하고 명료하다. 가령 수학자는 증명으로 다른 학자들을 설득하고, 의사는 전문적인 의학적 지식으로 환자들을 설득한다. 하지만 고르기아스여, 의학과 관연하여 그대에게 '에피스테메(episteme)', 즉 참된 지식이 있는가? 물론 떠돌이 논객에게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그대는 환자를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참된 지식을 가지고 그를 설득한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그대는 진리 없이 설득만 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진리 없이 설득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다시 있겠는가?
<p.136>
"약속을 되도록 적게 하라. 그래야 더 많이 지킬 수 있다."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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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가 영화 잡지에 약 1년 간 연재했던 '에세이'를 묶은 것이다. 총 43편의 에세이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 우리가 알만한 주제라던지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로부터 글을 시작한다. 이후에는 주제와 맞는 철학적 개념을 소개하고 본인의 생각을 그와 접목시켜 풀어낸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현상이 철학적 사고를 통해 단순화되고 그 속에 담긴 진짜 의미를 찾는 과정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멋드러지게 쓰긴 썼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싶은 글도 있어 나의 이해력이 부족한 건지 작가의 표현력이 부족한 건지 고민이 되게 하는 글도 꽤 있었다. 진중권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읽어보았지만 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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