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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 페터 빅셀, 2009

by Ditmars 2021. 1. 25.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2009

 

 원래는 좋아했지만 살아가다가 잃어버리는 것이 많다.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그게 없어진 지 이미 오래라는 것을 깨닫는다. 예를 들면 열정, 현대 재즈를 향한 내 열정이 그렇다. 지금도 좋은 재즈 작품을 듣거나 재즈 콘서트 -거의 우연이긴 하지만- 에 가게 되면 기쁘다. 하지만 재즈를 여전히 좋아하면서도, 나에게선 뭔가 빠져있다. 바로 절박함이다. 이제 나에게 재즈란 있으면 좋지만, 꼭 있으 필요는 없는 것이 되었다. 정말 유감스럽다. 마음만 먹으면 열정이나 절박함은 쉽게 되살릴 수 있을 텐데. 어쨌든 절박함이 사라졌으니, 재즈가 꼭 있을 필요는 없다.

<p.49>

 

 우리는 무질서만이 아니라 아마 질서 때문에 환경을 훨씬 더 많이 파괴할 것이다. 우리 마음에 들어야 할 뿐 환경의 동의는 얻지 않는 질서 때문에.

<p.58>

 

 이고스 스트라빈스키(Igor Fedorovich Stravinsky)는 작곡할 때 언제나 망치와 집게를 피아노 위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이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 생각에는 -그에게서 받는 인상도 그렇다.- 스트라빈스키는 무척 엄격하고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왜 이런 도구를 피아노 위에 두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작곡할 때 혹시 필요한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그런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이런 희귀한 경우가 생기면 아주 급해지는 거지요. 그러면 오랫동안 도구를 찾을 시간이 없으니까요."

<p.59>

 

 막스 프리쉬(Max Frisch)의 설문지에 있는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죽은 사람을 생각할 때 그 사람이 당신에게 말하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당신이 그에게 뭔가 말하고 싶습니까?"

<p.101>

 

 어쩌면 '듣기'란 '이해하기'보다 훨씬 단계가 높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결국 대단찮은 청중일 것이다. 언제나 성급하게 이해하려고 하니까.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우리는 진정으로 들을 수 있다. (...) 

 약간 교육을 더 받고 조금 더 숙달된 지금은 읽으면서 성급하게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제 어쩔 도리가 없다. 순진무구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장 파울을 읽으며, '이해하기'를 거부하려고 약간 노력한다. 그에게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다. 귀 기울여 듣기에는 관용이 필요하고 선입견이 없어야 하는데, 이른바 경험이라는 게 많아질수록 그게 점점 더 어려워진다.

<p.103>

 

 어쨌든 모든 권력은 공포다. 권력은 자신이 퍼뜨리는 공포를 먹고 산다. 나는 권력 획득과 유지를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권력을 원하는 사람들은 일단 공포를 퍼뜨려야 한다. (...)

 그래서 공포에 떠는 사람들은, 공포를 퍼뜨리고 안전을 약속하는 사람의 뒤를 쫓는다. 불합리한 결합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기들 스스로 권력이 있다고 믿는다.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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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책을 김정운 작가의 <남자의 물건>을 읽던 중에 알게 되었다. 제목만 봐도 무슨 내용일까 무척 궁금해져서 그 자리에서 바로 구입하여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작가인 페터 빅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어 조금 알아보았더니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책을 쓴 사람이었다. 매일 똑같은 단어만 쓰는 것이 지루했던 한 노인이 일상적인 단어인 '책상, 의자, 침대'부터 '올리다, 내리다, 읽다'와 같은 동사들까지 다른 단어로 바꿔서 사용하다가 결국은 원래 쓰던 말이 뭐였는지 잊어버려 사람들과 소통이 안되고 결국 혼자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나는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책의 제목과 내용을 알게 된 순간 어디선가 읽어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의 내용의 일부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고 한다. 중학교 때 교과서에서 읽었던 것이 어렴풋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마치 중학교 때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지만 친하지는 않던 친구를 TV에서 우연히 보게 된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페터 빅셀은 1935년에 스위스 루체른에서 태어나 졸로투른에서 살고 있다. 졸로투른은 스위스의 동북부에 있는 도시이며 루체른의 서쪽, 베른의 북쪽에 위치한다. 그는 13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고, 이후 전업 작가의 삶을 살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모든 교과서에 그의 글이 실릴 정도로 매우 유명한 작가이며 2021년인 지금까지도 살아계신다. 나는 대개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편인데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던'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문득 궁금해져서 한 번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았다.

 

 이 책은 그가 나이 든 후 졸로투른에서 쭉 살면서 일어난 일들이나 만났던 사람, 평소 했던 생각들에 대해 짤막하게 글을 쓰고 그 글을 묶은 책이다. 책의 제목인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역시 그 글들 중 하나이다. 세대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인지 큰 공감을 얻을 수 없던 글도 더러 있었지만 책이 얇고 내용이 어렵지 않아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시간이 아주 많은 여행을 갈 때 가지고 다니면서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