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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쓸 만한 인간 > 박정민, 2016 (eBook)

by Ditmars 2024. 12. 14.

<쓸 만한 인간> 박정민, 2016 (eBook)

 

 그렇게 오기로 아직은 발을 담그고 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기적' 같은 버저비터를 꿈꾸기도 하고, 어차피 "평생동안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해야 할 때가 그리 여러 번 오는 게 아니"라면 조금은 즐기면서 해보려고도 한다.

<p.26

 

 여하튼 여행은 이토록 흥미롭다. 어쩌면 평생 만나볼 수 없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도 설레는 일이다. 조금만 용기를 갖고 도전해보시길. 적지 않은 돈이지만, 적지 않은 경험과 사람을 얻을 수 있다. 대형마트에 가도 살 수 없는 것들이다.

<p.40>

 

 가끔씩 느끼는 감정의 요동을 글자로 남겨보길 바란다. 그중 8할은 훗날 이불을 걷어찰 글자들이지만 그중에는 분명 나를 세워주는 글자가 있을 것이다.

<p.118>

 

 어쨌든 지금 서로 다른 목적으로 열심히 남의 돈을 버는 20대가 많을 것이다. 그들을 고용하는 이들에게 부탁드린다. 부디 그 20대의 고귀한 능력을 쉽게 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은 30대에 빛나기 위해 20대에 5천 원이 겨우 넘는 시급과 타협하는 거다. 결코 그들의 능력이 시급 5천 원짜리가 아니란 걸 알아두었으면 한다.

<p.237>

 

 "영화에 인생을 걸지 말고 그 영화를 같이 찍는 사람에게 인생을 걸어라."
 - 이준익 영화감독

<p.278>

 

 '그냥 들어준다.'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 나도 모르게 '다음을 듣고 맞는 것을 고르시오.'식의 듣기 평가를 하고 있다. 듣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맞는 것을 고르는 게 중요해졌다. 어쩌다 틀리면 꾸중을 듣고,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는 시대에서 맞는 것을 고르는 데 혈안이 되어버렸다. 그저 들어달라는 것이었는데 그러다가 오히려 틀린 답을 말하는 바람에 상대는 더 힘들고 죄스러운 감정을 부풀린다.

<p.332>

 

 문학은 사실이 아니지만 그 어떤 사실보다 진실에 가깝다.

<p.366>

 

 '도광양회'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사자성어다.

<p.412>

 

 본 적 없는 그의 과거를 가만히 추측해본다. 당신의 청춘은 어땠느냐고 혼자서 질문을 해본다. 아마도 내가 느꼈던 청춘의 설렘과 고민과 열정과 슬픔이 아버지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졌을 것이며, 무언가에 실패하고 또 성공했을 것이다. 그에게도 꿈이 있었을 테고, 좌절도 해봤을 것이다. (...)

 훗날, 나도 자식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어렴풋하게 예상해보면, 나 또한 그 아이에게 우리 아버지의 모습으로 비춰질 것도 같다. 내가 미워했던 그 모습들이 이제 와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노력이었던 것 같으니까. 나도 나름의 노력으로 내 자식에게 원칙에 어긋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을 것 같다는 거다. 그럼 그 자식놈 또한 난 아빠처럼 살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p.553>

 

더보기

 유명인이 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이런 물음이 떠오른다. '이 사람이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어도 이 책이 사람들한테 인기가 있었을까?' 이미 많은 유명세로 돈도 많이 번 사람들일텐데 책까지 낸다는 사실에 시기와 질투가 생겨서인지 유명인의 에세이에는 나도 모르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 먹고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니 이런 물음도 떠올랐다. '유명인일수록 책을 내기 어렵지 않을까?' 어쩌면 그들이 갖고 있는 유명세가 반대로 부담으로 작용하여 남들은 쉽게 한 번 써 볼 수 있는 책도 그들에게는 도전하기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은 다른 책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배우 박정민이 지금처럼 많이 유명하지 않았던(?) 2013년 <topclass>라는 잡지에 실은 칼럼을 모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위에 적은 것처럼 유명인의 책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 필요도, 그들이 느꼈을지 모르는 부담을 걱정할 필요도 없는 책이다. 

 

 누군가를 향한 호감은 관심이 되고, 관심은 질문이 된다. 질문을 통해 그 사람이 살아온 삶과 생각을 알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 듣기 어려울 때 우린 그 사람이 쓴 글을 읽는다. 영화 <시동>에서 알게 된 배우 박정민, 그리고 우연히 보게 된 <고민중독> 부르는 영상에서 그가 참 솔직하고 매력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책도 재밌게 읽었다. 요점이나 알맹이가 없다라던지, 너무 가볍기만 하다는 평도 있지만 배우 박정민에게 하고 싶은 질문의 답으로는 충분한 책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