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사사키 씨는 잘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
"잘은 모르겠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겠죠.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가 처음부터 세상을 삐딱하게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인생이 너무 아깝잖아요."
<p.32>
고등학생 무렵이었을 것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가 유명해졌던 것이. 그 책의 줄거리라고는 엉뚱한 정신과 의사가 나와서 여러 사람 상담해 주는 내용이었던 것만 기억나는데 당시의 유명세에 비해 크게 인상 깊진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 일본 소설에 한창 빠지게 되었을 때도 도서관 책꽂이에서 오쿠다 히데오의 책은 왠지 모르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거의 십여 년이 지나 오랜만에 그의 책을 다시 읽어 보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나와 잘 안 맞는 일본 소설 작가인 것 같다. 이 책 역시 무난하고 쉽게 술술 읽혔지만 아쉽게도 큰 감흥은 없었다.
이 책은 과거 번성했지만 지금은 쇠락한 시골 마을인 도마자와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그곳에서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마을 주민들이 특유의 시골 공동체 정신을 발휘하여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이 책에서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지방 도시 인구 감소라는 일본이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에 대해 꽤나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나는 이 부분이 묘하게 공감되었다. 그 이유는 현재 우리 부모님도 도시가 아닌 시골에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은 결혼 후 도시에 (수도권) 계속 사시다 내가 결혼할 무렵 시골로 내려가셨다. 지방 도시라고도 할 수 없는 정말 깡시골인 그 곳은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던 시골처럼 주변에 걸어서 갈 수 있는 슈퍼조차 없는 곳이다. (아니, 어렸을 때 할머니집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구멍가게라도 있었다.) 차가 없으면 어디도 갈 수 없고, 밤이 되면 마당 너머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해져 집 밖을 나갈 수도 없는 그곳에 부모님이 사신 지도 벌써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명절이나 쉬는 날 짬을 내어 차로 편도 4시간 거리인 그곳에 다녀올 때면 나는 이곳의 미래와 이곳에 사는 우리 부모님의 미래를 종종 고민한다.
지금이야 두 분 다 건강하셔서 각자 운전도 하시고 소일거리도 하시고 집도 관리하신다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난다면 아무래도 도시에서 사셔야 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든다. 또 이런 과정에서 자식으로서 부모의 삶에 어느 정도까지 관여를 할 수 있으며, 또 어느 정도까지 관여를 해야 하는 건지 고민도 된다. 처음에는 내 입장에서 시골의 삶이 도시의 삶보다 그다지 나을 것이 없어 보여 애초에 귀농을 말렸거나 지금이라도 도시로 오시라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러나 그러면 금새 또 '내가 뭐라고 내 기준에서 두 사람의 행복을 정의하려 드는 거지?'라는 반문이 든다. 결국 이 고민의 끝에 내게 돌아오는 답은 '두 분이 생각하시고 결정하신 일인데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다. 좋게 보면 부모님을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이지만 나쁘게 보면 자식으로서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 태도이자 자기 속만 편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도 있다. 매번 귀경길마다 서해안고속도로 위를 운전하면서 나는 이런 답을 알 수 없는 생각에 빠진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두 아이와 함께 하는 바쁜 삶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잊어버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이 글을 쓰면서도 또 같은 생각에 빠졌으나 이내 곧 잊히겠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2019 (1) | 2025.03.18 |
---|---|
<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 김지원, 2024 (eBook) (9) | 2025.03.08 |
< B주류경제학 > 이재용 외, 2024 (eBook) (1) | 2025.01.14 |
< 채식주의자 > 한강, 2007 (3) | 2024.12.29 |
< 쓸 만한 인간 > 박정민, 2016 (eBook) (5) | 2024.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