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바로 내일부터 근무 시작하시잖아요? 일은... 힘드실 거예요.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고 나오세요. 저도 처음 이 일 시작했을 땐 이 일을 몇 년씩이나 어떻게 하나 싶었어요. 제 개인적인 얘기 하나 해드리자면 제가 여기서 일한 지 5년 됐거든요. 근데 저도 처음엔 딱 6개월만 일할 생각이었어요. 그때 무슨 자격증 준비하다가 생활비 때문에 잠깐만 하려던 거였는데 그렇게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하는 거예요. 근데 재미있는 게 뭔지 아세요? 우리 센터 관리자나 직원 중에 여기 몇 년 일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온 사람 아무도 없어요. 정말 그래요. 다들 여러분처럼 계약직으로 그냥 몇 달만 해야지 하고 왔다가 계속하게 된 거예요. 이것도 그냥 사람이 하는 일이에요. 다른 일보다 특별히 더 좋을 것도 또 특별히 더 나쁜 것도 없어요. 이제 직접 전화받게 될 테니까 거짓말 안 할게요. 처음엔 일 정말 힘들어요. 그런데 몇 년씩 어떻게 일하냐고요? 그렇지만 여러분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1년 전 오늘 뭣 때문에 화가 났었는지 기억나세요? 아니면 한 달 전에 무슨 일 때문에 기분 나빴는지 기억나세요? 다 잊어버리셨죠? 그거에요. 사람들이 그런 말 하잖아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게 우리 상담사들 좌우명이에요. 앞으로 전화받으시다 보면 답답하고 울고 싶을 때 많이 있으시겠지만, 그거 다 지나가는 거예요. 다 잊어버릴 거에요. 그렇게 생각하세요."
<p.42>
이 일이 유난히 힘들고 긴장되는 이유 하나는 나라는 존재가 불특정 다수에게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데 있다. 누구나 우리에게 화를 내고 소리를 칠 수 있었고 실제로 곧잘 그렇게 했다. 전화 상담사라는 일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는 데는 하루면 충분했다. 이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고객의 말에 난타당해도 버텨낼 수 있는 심리적 맷집을 기를 수 있느냐에 달렸다.
맷집이란 게 그렇듯이 별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저 두들겨 맞는 것밖에. 다만 권투 경기와 달리 우리는 상대가 방심한 사이 녹다운을 노리는 게 아니었다. 맞는 것 자체가 목표였다. 강철 같다고 믿었던 내 정신 상태는 실제로 부딪혀보니 단단하기가 크로아상 수준이었다. 여기서 오래 일하면 내 월급의 상당 부분이 정신과 의사들이 제주도 별장 구입하는 데 들어가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p.50>
'남부의 노예 감독 밑에서 일하는 것은 힘들지만 북부의 노예 감독 밑에서 일하는 것은 더욱더 힘들다.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은 당신이 당신 자신의 노예 감독일 때다.'
-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p.60>
내가 경험한 바로, 인간의 감정은 식물과 같은 방식으로 다뤄야만 한다. 따뜻한 봄바람만이 봉우리 속의 꽃을 끄집어낼 수 있듯이, 상담사 내부의 열정과 친절함을 이끌어낼 수 있는 건 상냥한 말, 그것뿐이었다. 어떠한 친절 교육도 아무리 호된 질책도 따뜻한 말 한마디만 못했다.
<p.86>
상담사는 땜장이다. 융통성 없는 업무 프로세스와 엉성한 홈페이지 시스템의 틈새를 상담사의 사과로 덕지덕지 발라 메꾼다. 그래서 대대적인 수리 없이 그냥저냥 굴러가게 만든다.
<p.90>
'자신의 가치를 과장하지 않고도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 버트런드 러셀
<p.102>
'기자를 보면 기자 같고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 같은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 것이다. 뭘 해 먹고사는지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다.'
- <밥벌이의 지겨움> 김훈
<p.113>
막연하게 상자만 나르면 될 뿐이라고 생각했던 일에도 그 나름대로 방식과 절차가 있었다. 내가 일터에서 사랑하는 순간들이 이런 것을 발견하게 될 때다. 너무나도 뻔하고 단순해 보이는 현상 속에서 다양한 체계와 규칙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 조금의 상상력도 자극하지 않는 보잘것없던 존재들이 고통을 함께한 사람에게 자신들의 비밀스러운 단면들을 펼쳐 보여주는 순간들.
<p.124>
그러니까 연습해. 레시피 보면서 머릿속으로 어떻게 할까 그려봐. 팬에다 뭐 담고 불을 켜고 볶고 또 다른 재료 담고 하는 그 과정 하나하나 머릿속에 그리면서 연습해. 재료 위치는 어디 있고, 써는 거는 어느 정도 크기로 하고 이런 것들. 그냥 레시피를 외우기만 하는 거랑 머릿속으로 그려보면서 연습하는 거랑 완전히 달라. 요리는 이미지트레이닝이 진짜 도움이 많이 돼.
<p.207>
주방에서 재료, 도구의 위치는 조리법의 일부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게 더 편하고 효율적이라서 물건의 위치를 바꾸는 것은 내 입맛엔 이게 더 낫다면서 내 마음대로 조리법을 바꿔서 음식을 만드는 것과 같은 행위다. 요리사처럼 자기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도구가 손에 바로바로 잡히지 않으면 당황하고 짜증부터 난다. 그렇게 위치를 바꿔서 얻는 효과가 무엇이든 간에 길게 보면 불필요한 에너지의 낭비가 더 크다.
<p.223>
식당 일이 인간에게 안겨줄 수 있는 가장 지독한 고통은 화상도 자상도 아닌 매출 압박이다. 이거야말로 사람을 골병들게 한다. 나는 제때 요리만 내놓으면 끝이었다. 우리 같은 알바들은, 물론 힘들게 일하긴 하지만 퇴근하면 끝이었다. 매출까지 걱정해야 하는 살마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퇴근은 존재하지 않았다. 조윤진 씨가 한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다. "알바가 왜 알바냐면 식당이 살건 죽건 자기는 알 바 아니라고 한다고 해서 알바예요." 들었을 땐 기분이 언짢았지만 왜 그렇게 말하는지는 조금 이해할 것 같다. 매출 압박은 내성 발톱 같은 것이다. 주방에 있든 버스에 있든 자기 집 화장실에 있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고통이 피부 속으로 날카롭게 파고든다. 몸이 식당을 벗어났다고 해도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 어디에 있든 떨쳐버릴 수가 ㅇ벗다. 발톱을 뽑아버리지 않는 이상.
<p.243>
"보면은 직장에서 젊은 사람들 힘센 남자들, 이런 사람들만 뽑으려고 하잖아요? 그게 뭘 모르는 거예요. 그런 젊은 애들, 덩치 좋은 남자들은 언제든지 내키지 않으면 그만둬요. 우리 남편만 해도 누구랑 싸웠다고 누가 기분 나쁘게 했다고 그만둔 게 몇 번째예요. 그치만 결혼해서 애까지 있는 여자들은 가게가 망하기 전까진 절대 안 그만둬요. 그런 사람들은 정말 필사적이에요. 절대 중간에 일을 그만두지 않는 사람들은 애 있는 엄마들이에요. 직원들이 자꾸 들락날락해서 골치가 아픈 사람은 애 키우는 엄마들만 뽑아야 돼요."
<p.259>
아무리 익숙한 일일지라도 그걸 직업으로 삼으면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 할 때가 있다. 이전까지는 '기술'이라든가 '학습'이라는 개념과 단 한 번도 연관 지어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을 프로 스포츠처럼 대해야 한다.
<p.284>
"우리나라에서 돈 버는 건 내 때나 지금이나 부동산밖에 없어. 그래서 어떻게든 1억이든 2억이든 모아서 아주 허름한 빌라라도 하나 사.. 그 대신 잘 사야지. 수시로 다녀보고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아침에도 가 보고 저녁에도 가 보고 해서 사놓으면 집값이 오를 거 아냐? 그렇게 하나둘 사놓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그때부턴 집이 조금씩 돈을 버는 거야. 그래서 집을 두 채 사면 나 포함해서 전부 셋이서 돈을 버는 거야. 그니까 집을 산다는 걸 이리 생각해야 해. 단순히 방이랑 화장실 딸린 공간을 사는 게 아니고 나 대신 돈 벌어다 줄 니 분신을 사는 거다 이렇게."
<p.315>
생산 활동에 인간의 노동력이 필수적이지 않게 된 상황을 두고 전문가들은 해결책으로 기본소득을 든다는 점에서 대개 비슷하다. 하지만 혀냊의 정치적 상황에서 보편적 기본소득이 온전하게 시행되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신 '복지수당으로 호의호식하는 무리'들을 막기 위한 일종의 변태적인 기본소득제가 나타나리라 예상해 볼 수 있다. 즉 기본소득을 지급하기는 하되 실질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쓸모도 없는 업무를 할당하고 그것을 처리해야만 한다는 조건을 거는 식이다. 이는 성과나 생산성과 아무 상관이 없고 그저 일을 위한 일일 뿐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위와 같은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출근길 만원 열차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만큼이나 흔해해질 것이다.
<p.346>
일이 끝나고 종이 냄새 가득한 서가 사이에 서면 종일 땡볕 아래 서 있다가 시원한 나무 그늘에 들어선 것처럼 몸도 마음도 진정됐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의 작가들, 어떤 내용인지 짐작도 되지 않는 내용의 제목들 사이에 서면 그는 미아가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는 그 느낌을 사랑했다. 그는 평생 읽어도 다 읽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서적들 사이에서 자신의 신분을 잊어버렸고 자신의 가족을 잊어버렸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잊어버렸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스스로를 잊어버렸을 때만 온전하게 자신의 삶에 몰두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p.360>
오직 나에게만 말을 거는 듯한 아름다움과 마주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것은 기쁨이나 감동이 아니다. 그 순간 우리는 삶이 극도로 단순해지는 것을 느낀다. 삶에서 무엇이 의미가 있고 무엇이 의미가 없는지가 명확해진다. 인생의 온갖 '경우의 수'가 말끔히 사라지고 단 하나만이 눈 앞에 남는다. 바로 그 아름다움에 응답하는 일이다.
<p.364>
가슴을 치는 현실은 명언이나 최신의 사회과학 이론을 인용하는 것으로 전달할 수 없었다. 그보다는 콧구멍 밖으로 삐져나온 코털이나 잠바에서 나는 청국장 냄새 같은 것들을 통해 글이 살아났다. (...)
무엇이 옳다, 그르다 외쳐서는 어떤 이의 가슴도 뚫고 들어갈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러한 고민을 하게끔 만드는 지점에 서게 하는 것이다. (...)
그가 쓸모없다고 확신하는 종류의 책은 끝까지 읽고 나서 작가의 결점을 하나도 발견할 수 없는 책이었다. 그런 책이라면 차라리 쓰지 않는 편이 나으리라. 자신의 못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서 작가로서 정확해질 수 있는 길은 없기 때문이다.
<p.379>
"당신은 저에게 조언을 하는 겁니까? 그렇다면 자신에 대한 조언과 교정은 이미 끝난 것입니까? 그래서 남을 지도할 여유가 있는 것입니까?
"나의 마음도 그렇게 비틀어지지는 않았네. 나 자신이 병이 들었는데 남을 간호하지는 않지. 마치 같은 요양소에 누워 있듯이 자네와 공통된 병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치료법을 서로 나누고 있는 것이네. 그러니 부디 들어주길 바라네."
- <세네카 삶의 지혜를 위한 편지> 세네카
<p.381>
그는 글로 세상을 상관있게 만들고 싶었다. 그는 한국어에서 가장 공격적인 단어가 바로 '상관없어'라고 믿었다. 칼이나 총은 사람을 죽이지만 '나랑 상관없어'는 관계를 죽이고 환경을 죽이고 세상을 죽인다고 믿었다. 그는 사람과 닭이 서로 상관있게 되기를, 사람과 돼지도 서로 상관있게 되기를, 고시생과 선원이 서로 상관있게 되기를, 사장과 직원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인간과 자연이 서로 상관있게 되기를 바랐다. 그는 서로가 서로에게 상관있게 만드는 글을 쓰고 싶었다.
<p.385>
문제는 돈이라는 존재는, 얻기 위해 평생을 쏟아부은 다음에야 자신이 그들 삶의 정답이었는지 아닌지를 알려준다는 거다.
<p.399>
오래전 텍사스에의 석유 회사가 알래스카를 가로지르는 송유관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텍사스 소고기를 먹으며 텍사스 위스키를 마시는 건강한 텍사스인들이 이 작업에 고용됐다. 하지만 이들만으로는 현장 작업을 충당할 수 없어 현지인도 고용했다. 바로 알래스카에 사는 이누이트족 사람들이었다.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기 전 함께 일할 동료들을 확인한 텍사스인들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따. 체구가 자신들의 절반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송유관 작업을 경험해 본 그들은 이 일이 얼마나 많이 체력을 갉아먹는지 알았다. 도대체 저런 몸으로 여기서 뭘 할 수 있단 말이야?
하지만 작업이 시작되자 낙오하는 사람들은 텍사스인들이었다. 결국 자신만만하던 텍사스인은 모두 떨어져 나가고 현장에는 이누이트족만 남았다. 이들이 수년에 걸쳐 공사를 완료했다. 회사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두 집단의 식단부터 체지방량, 피의 농도까지 과학적으로 검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검사했다. 그리고 더위를 견디는 힘이든 추위를 견디는 힘이든 텍사스인이 육체적인 면에서는 이누이트족을 월등이 앞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누이트족이 특별했던 점은 하나였다. 그들은 날씨가 더 추워질 수 있다는 걸 예상했다. 그것뿐이었다. 반면에 텍사스인은 지금 날씨가 어떤지만 생각했다. 텍사스인이 이보다 추워지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있을 때, 이누이트족은 더 혹독한 추위에 대비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리고 날씨가 실제로 더 추워졌을 때 텍사스인은 무너졌고 이누이트족은 버텼다.
세상은 오늘도 날카로운 한기로 사람들을 몰아세운다.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하리라. 다가오는 시간은 지금보다 아주, 아주 많이 더 추우리라는 사실을.
- 영화 <5쿼터>
<p.403>
이 책은 <인간의 조건>(현재는 퀴닝으로 개정)과 <고기로 태어나서> 이후 한승태 작가가 쓴 세 번째 노동 에세이다. 작가의 첫 책을 읽고 팬이 되었지만 죄송스럽게도 최신작에 대한 소식을 이제야 접했다. 세 번째 책에는 작가가 콜센터, 택배 상하차, 뷔페 주방, 건물 미화팀에서 근무한 경험을 녹여냈다. 전작이 사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꽃게잡이나 개농장 같은) 일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 책은 그래도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이 책의 첫 부분을 읽으며 깊은 바닷속 낮게 몸을 웅크리고 있던 광어가 밑바닥을 훑는 낚시 바늘에 걸려 몸부림치며 수면으로 올라오는 것처럼 기억 저 깊은 곳에 있던 잊힌 트라우마가 꿈틀거리며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도 콜센터에서 근무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14년, 어떤 나무는 아직 벚꽃이 피지도 않았는데 어떤 나무는 이미 벚꽃이 지기 시작한 혼란스러운 날씨가 이어지는 요즘 같은 시기에 나는 우리 회사 4층에 있는 수많은 칸막이 책상 중 하나에 앉아 전화를 받고 있었다. 조종사가 되고자 입사한 회사에서 의사소통이 중요하다는 사실과 하루 종일 앉아 있다는 사실 말고는 조종사라는 직업과는 딱히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콜센터 업무를 하게 된 건 이유가 있었다. 당시 우리 회사는 공채로 입사한 모든 일반직 신입 직원들에게 현장 경험의 기회를 준다는 명목으로 인원의 절반은 콜센터, 나머지 절반은 공항 카운터에서 근무하게 만들었다. 사람마다 통화할 때 말빨이 센 사람과 얼굴 보고 얘기할 때 말발이 센 사람이 다르기에 신입들의 말발을 사전에 조사하고 배치했으면 좋았겠지만 회사는 알 수 없는 그들만의 기준을 가지고 인원을 나눴다. 나는 문자 메시지에 강한 타입이었으나 애석하게도 그건 선택지에 없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면 공채 신입은 약 1년 정도 현장에서 근무하고 나면 본사로 인사 발령이 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운항직인 나를 포함한 13명의 동기들은 1년도 아닌 3개월만 근무한 뒤 비행교육을 받기 위해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이 말을 듣고 '고작 3개월 가지고 무슨 트라우마까지 생겼다고 그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썼던 비유를 들려주고 싶다. '뜨거운 난로 위에 손을 올려놓으면 1분이 1시간 같지만, 예쁜 여자와 앉아 있으면 1시간이 1분 같다. 그것이 상대성 이론이다.'
콜센터에서 근무했던 기억은 이미 너무 오래 전 일이기도 하고 아무리 잘 써본들 작가의 필력과 경험에 비하면 위스키 동호회에 캡틴큐 가져가는 것과 비슷하기에 기억에 남는 몇 가지에 대해서만 짤막하게 적어보려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동안 아줌마들이 무서워졌다는 점이다. 내가 특히 아줌마들을 두려워했던 이유는 그들 특유의 높은 목소리와 따지듯이 얘기하는 말투 때문이었다. 주로 이런 패턴이었다. "아니 내가 지금 여기랑 전화 한 번 하려고 몇 시간을 기다렸는지 알아요? 거기는 일하는 사람이 없어요? 사람이 없으면 늘려야 할 거 아니에요. 사람 짜증 나게 하네 정말로. 빨리 좀 처리해 줘요. 시간 없어요 나. 그것도 몰라요? 근무한 지 얼마나 됐어요? 이름 뭐예요? 진짜 바빠 죽겠는데 그거 하나 못 해줘요? 그니까 그게 왜 안되나고요. 답답하게 하네 정말" 물론 아저씨, 아가씨, 할머니, 할아버지 등 다양한 연령대가 나의 어리숙함과 항공사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에 대해서 따지고 들었지만 내 기억에 그들은 아줌마에 비하면 뒤끝이 없는 편이었다. 즉, 통화할 때 한 번 와락 화를 내더라도 조금 지나 설명을 들으면 수긍을 한다던가 진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포기를 하거나 체념을 했는데, 그에 비해 아줌마는 긴 설명 끝에도 인정을 하지 않고 어떻게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짜증을 내고 억지를 부렸다.
그래서 언제는 이런 적도 있었다. 콜센터 업무가 익숙해졌을 무렵 집 근처 다이소에 갔다. (콜센터 업무는 한 달이면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 보통 하루에 60~70콜을 받기 때문에 한 달이면 약 1000 콜 이상 받는 셈이다.) 그곳에서 물건을 고르고 계산을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데 계산대에서 어떤 아줌마가 뭔가를 막 따지고 있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위에 얘기했던 패턴의 대화가 오고 갔다. 나는 줄을 선 채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듯 일정한 리듬으로 내 귀를 때려 박고 있는 그 짜증 섞인 말들을 들으며 처음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는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대충 아무 데나 내려놓고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이 일이 있은 직후부터 나는 유독 아줌마의 대충 2옥타브 레 정도는 될 것 같은 높은 목소리의 짜증이 들릴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면서 "왜 이렇게 늦게 와요 아 정말", 거리에 놓인 과일을 사면서 "아 좀 깎아 줘요", 횡단보도에 서서 통화를 하며 "아니 그건 그쪽이 잘못한 거잖아요" 같은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누군가 옆구리에 총부리라도 들이댄 듯 움찔움찔했다. 아니 세상에 원래 이렇게 짜증 내는 아줌마들이 많았었나 내가 지금까지 몰랐던 세상의 감춰진 진실이 바로 이런 거였나 싶을 정도로 거리와 상점의 여러 소음들 속에서도 아줌마의 짜증은 어김없이 존재했고 내 귀를 괴롭혔다.
여기까지 들으면 하루에 받는 70콜의 모든 통화가 하나하나 다 '주옥같은' 대화들의 연속일 거라고 상상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내가 여기서 똑똑히 알게 된 건 뉴턴의 운동 법칙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는 '미친놈 질량 보존의 법칙'이 실존한다는 것이지만 그와 동시에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하루에 받는 70 콜 중에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내 안에 잠들어 있는 흑염룡이 깨어나 저게 진짜 작동할까 늘 의문을 품고 있던 천장의 스프링클러의 작동 모습을 실제로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콜은 5 콜 미만이었다. 나머지 65 콜은 대부분 평범했다. 물론 그렇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친절하고 배려 넘치는 대화까진 아니지만 그저 대부분 사람들이 가게에서 뭔가를 요청할 때나 물건을 살 때, 미용실에서 머리를 이렇게 잘라달라고 말할 때 정도의 대화였다. 즉 (놀랍게도)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우리의 상식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정도의 예의와 교양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센터 업무가 힘들다고 하는 것은 그 비정상적인 5 콜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강력한지 퇴근할 때가 되면 지난 65번의 평범하고 가끔은 화기애애하기도 했던 통화는 까맣게 잊히고 '못해먹겠다'라는 말과 '언제까지 해야 되냐'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도망치듯 사무실 밖으로 튀어나가게 만들었다. 그렇다. 인간은 다른 생물종들과 마찬가지로 나쁜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도록 진화되었다. 생존에 위협이 되는 나쁜 기억을 오래 기억하고 있어야 미래에 또 같은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콜센터 업무는 종의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다. 알면서도 또 당할 수밖에 없고 알면서도 걸려온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다.
이런 콜센터 업무를 꾸역꾸역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는 첫번째로 우리에게는 특정 날짜까지만 근무한다는 말 그대로 끝이 있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 시작부터 모든 일을 같이 겪고 있는 동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군 복무 중에도 전역날을 기다리며 달력에 X표시를 해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그걸 해봤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컴퓨터와 전화기, 탁상달력이 있고 소지품이라고는 스프링노트와 볼펜 밖에 없었는데 나는 매일 5시가 되면 그 얼마 안 되는 소지품조차 책상 한 구석에 내팽개치며 달력에 X를 긋고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마치 두더지 게임 마냥 수많은 칸막이책상들 사이에서 12명의 동기들이 하나둘 일어나 옅은 미소와 함께 눈빛을 교환하며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사무실 밖에 모여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우리는 서로 몇 콜을 했느냐는 말로 시작하여 내가 만난 진상은 이랬는데 네가 만난 진상은 어땠니 하며 각자가 만난 진상과 그들의 부모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다 같이 퇴근 버스를 타고 날이 좋으면 술을 마시며 아까 미처 다 나누지 못한 진상들의 안부를 물으며 안주로 나온 마른오징어를 씹듯 그들을 씹었다. 그렇게 쌓인 스트레스를 조금씩이라도 풀면서 나는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일을 얘기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어느 날은 13명의 동기들이 다 같이 오전 반차를 썼다. 미국 비행 교육을 앞두고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유독 날씨가 좋았던 그 날 오전에 비자 발급 업무를 끝내고 근처 삼계탕집에서 삼계탕을 거하게 먹고 다시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 가도 4시간만 버티면 퇴근이라는 생각에 들어가는 길이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1시에 다 같이 사무실로 들어가던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외계인의 침공에 맞서 싸우던 인간들이 '조금만 더 버텨... 곧 그들이 올 거야...'라고 말하며 떨어지는 폭탄 속에서도 열심히 총을 쏘다가 어느 순간 잠잠해진 외계인의 공격에 고개를 들어 뒤를 바라보니 하늘에서 어벤저스가 날아오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우리는 쏟아지는 문의전화 때문에 콜 대기가 두 자릿수를 가리키는 전광판 아래 어떻게든 열심히 그 숫자를 줄여보려고 하는 지친 기색의 직원들 사이를 성큼성큼 걸어갔다. 사람들의 눈은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왔음을. 사람들은 전화를 하던 중간에 고개를 들어 일렬로 걸어 들어오는 13명의 양복 입은 남자들을 바라보며 '이제 살았다'며 안도의 미소를 짓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 지점의 기억은 많이 미화되었다.) 13명의 용사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헤드셋을 썼다. 그리고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자릿수였던 대기는 한 자릿수가 되었다가 금세 0이 되었다. 화재를 진압하러 온 소방관이 사람들을 향해 모두 비키세요! 도망가세요! 저희가 불 끄겠습니다! 할 때 이런 기분일까? 나는 그때 잠깐이나마 내가 영웅이 된 것 같았다. 어벤저스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소방관처럼 방화복을 입고 소방 호스를 어깨에 둘러맨 건 아니지만 우리에겐 헤드셋과 스프링 노트와 볼펜이 있었다. 그날 우린 오전 내내 오랜 대기시간에 지쳐 안녕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안녕하지 못한다며 너 같으면 안녕하겠냐며 짜증부터 내던 사람들로부터 우리 직원들을 구해냈다. 그때의 기억이 내게는 인상 깊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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