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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덟 단어 > 박웅현, 2013

by Ditmars 2025. 7. 8.

<여덟 단어> 박웅현, 2013

 

 頓悟漸修

 돈오점수, 불교용어지요. 돈오(頓悟), 갑작스럽게 깨닫고 그 깨달은 바를 점수(漸修), 점차적으로 수행해 가다, 라는 뜻입니다.

<p.8>

 

 짧은 생의 덧없음과 변화를 주제로 하는 그림을 '바니타스(Vanitas)'화라고 한다. 바니타스는 모든 정물화에 공통으로 담긴 메시지로 기독교 성서 중 전도서에 쓰인 '바니타스 바니타툼 옴니아 바니타스(Vanitas vanitatum omnia vanitas);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구절의 첫 단어를 따온 것이다.

<p.19>

 

 어느 대학 교수는 이런 미국 사람과 한국 사람의 차이를 이질 문화와 동질 문화라는 말로 해석한다. 미국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너와 나는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객관적인 정보를 준다. 반면, 우리는 '너와 내가 생각하는 바가 비슷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내가 "저어~기"라고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도 "음, 저기를 이야기하는구나!"라고 알아들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한다는 이야기. 미국이 인종 전시장이라는 말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세계에서 흔치 않은 단일 민족 국가라는 점을 고려할 때 공감이 가는 설명이다.

<p.23>

 

 그런데 요즘은 그야말로 Everything Changes, 다 변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변하지 않는 진짜 본질을 잡아내지 못하고 있죠. 돌아보면 인류는 요즘같이 급변하는 시대를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어볼까요? 만약에 1350년대에 살던 사람이 그때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1850년에 환생했어요. 그렇다면 사는 게 많이 힘들까요? (...) 이번에는 1850년에 살던 사람이 1950년에 환생했다고 생각해봅시다. 살 수 있을까요? (...) 그렇다면 20세기로 들어와봅시다. 1950년에 살던 사람이 2000년에 왔어요. 어떨까요? 

<p.48>

 

 어쨌든 강의와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을 모두 극복했어요.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광고계에서 먹고사는 이상 프레젠테이션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니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죠.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떨리는 걸까?'하고 제 자신을 돌아봤더니 너무 잘하려고 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남들한테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거죠. 하지만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할 말을 하는 것'이었어요. 열 명의 스태프들이 오랜 시간 동안 피와 땀을 흘려 생각해낸 아이디어를 잘 정리해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내 역할이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의 본질은 내가 멋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잘 전달하는 것에 있더라는 거죠. 그 이후로 덜 떨렸어요.

<p.59>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이 다 본질이냐? 고스톱이나 애니팡 같은 게임을 진짜 잘하는데 그럼 이게 내 본질일까?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 5년 후의 나에게 긍정적인 체력이 될 것이냐 아니냐가 기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치는 고스톱이, 애니팡이 당장의 내 스트레스는 풀어주겠지만 5년 후에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요? 본질은 결국 자기 판단입니다. 나한테 진짜 무엇이 도움이 될 것인가를 중심에 놓고 봐야 합니다.

<p.60>

 

 본질이 아닌 것 같다면 놓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단점이지만 저는 신문을 많이 보는 편이 아닙니다. 미디어에 대한 편견 때문이 아니라, 신문에 있는 이야기들은 어차피 흘러갈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회문맥을 파악해야 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중요하죠. 하지만 왠지 저는 흘러가는 것보다 본질적인 것에 시간을 쓰고 싶었어요. 예비군 훈련처럼 덤으로 시간이 주어졌을 때에도 신문 대신 주로 책을 읽고 사색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 습관은 여전합니다. 여행을 떠날 때나 비행기 안이나, 숙소에서도 신문 대신 책을 선택합니다. 이런 것들이 더 본질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 변화에 대한 문맥 파악은 좀 놓고 사는 편입니다.

<p.63>

 

 지금까지 살아남아 고전이 된 모든 것들을 우리는 무서워해야 해요. 하지만 되려 무시하기 일쑤죠. 우리들, 특히 젊은 청춘들에게 고전은 사실 지루해요. 매일 새롭게 터져 나오는 것들에 적응하며 살기에도 바쁘기 때문이겠죠. 계속 변하는 세상의 속도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들인 만큼 고전을 뒤돌아볼 여유가 없어요. 그런데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뭐가 더 본질적인 걸까요? 오늘 나타났다가 일주일, 한 달 후면 시들해지는 당장의 유행보다 시간이라는 시련을 이겨내고 검증된 결과물들이 훨씬 본질적이지 않을까요?

<p.80>

 

 많이 가르치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방법만 알면 아이들은 자신에게 좋은 것을 알아서 찾을 테니까요.

<p.83> 

 

 존 러스킨이라는 영국의 시인은 "네가 창의적이 되고 싶다면 말로 그림을 그려라"라고 했습니다. 누군가가 "뭘 봤니?"라고 물었을 때 그저 "풀"이라고 대답하지 말고, 풀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었고, 잎이 몇 개 있었는데 길이는 어느 정도였고, 햇살은 어떻게 받고 있었으며 앞과 뒤의 색깔은 어땠고, 줄기와 잎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 등 자세하고 소상히 그림 그리듯 말하라는 것이었죠. 이것은 즉, 들여다보라는 겁니다.

<p.113>

 

 "스님도 도를 닦고 있습니까?"
 "닦고 있지."
 "어떻게 하시는데요?"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
 "에이, 그거야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까? 도 닦는 게 그런 거라면, 아무나 도를 닦고 있다고 하겠군요."
 "그렇지 않아. 그들은 밥 먹을 때 밥은 안 먹고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고 있고, 잠잘 때 잠은 안 자고 이런저런 걱정에 시달리고 있지."

 - <붓다의 농담>, 한형조
<p.135>

 

 萬物皆備於我矣 만물개비어아의
 反身而誠 樂莫大焉 반신이성 낙막대언
 - 맹자

 '만물의 이치가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으니, 나를 돌아보고 지금 하는 일에 성의를 다한다면 그 즐거움이 더없이 클 것이다.'

<p.136>

 

 모든 선택에는 정답과 오답이 공존합니다. 그러니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하지 말고 선택을 해봤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옳게 만드는 겁니다. 

<p.141>

 

 인생은 개인의 노력과 재능이라는 씨줄과, 시대의 흐름과 시대정신 그리고 운이라는 날줄이 합쳐서 직조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의 의지와 노력과 재능이라는 씨줄만 놓고 미래를 기다립니다. 치고 들어오는 날줄의 모양새는 생각도 안 하고 말입니다. 이 씨줄과 날줄의 비유는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인 이 책에 나온 '인생을 내 마음대로 계획하기에는 시대라는 날줄이 너무나 험했다'라는 문장을 읽고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p.215>

 

 인생에 공짜 없습니다. '현재'에 대한 강의에서 나폴레옹 이야기를 했었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불행은 언젠가 내가 잘못 보낸 시간의 결과다.' 이걸 믿어야 할 것 같습니다. 왜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야 하느냐? 이 하루하루가 쌓여서 언젠가 내 인생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잘 보낸 시간은 긍정으로 돌아오고, 지금 잘못 보낸 시간은 부정으로 돌아온다는 걸 염두에 두고 하루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면서 한 가지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 나는 성실하게 잘 살고 있는데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고 기회도 나를 비켜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不患人之不己知 患其無能也

 불환인지불기지 환기무능야. <논어>에 나오는 말입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고, 내가 능력이 없음을 걱정하라는 뜻입니다. 기회는 옵니다. 제가 보장합니다. 이런 단어 잘 쓰지 않는데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책 속에서 그렇게 이야기할 겁니다. 인생의 기회는 옵니다. 반드시 올 것이고, 준비된 사람이라면 그걸 잡을 겁니다.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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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작가가 2012년 10월부터 두 달여간 살아가면서 꼭 생각해봐야 하는 여덟 가지 키워드에 대해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 여덟 가지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 지난번에 읽은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책은 도끼다>에서도 많은 영감과 감동을 받았었는데 이 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각 챕터가 시작될 때마다 눈길을 끄는 사진이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수첩에 직접 적은 해당 키워드에 대한 강의 노트였다. 강연자로서의 내공(?)이 느껴지는 이 강의 노트는 얼핏 봐서는 '별 거 없네?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겠다' 싶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해봤거나 어떤 주제로 글을 써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걸 보고 '이 사람이 정말 이 주제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또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노트에서 풍기는 그의 인생에 대한 깊은 고찰과 흔들리지 않는 철학이 좋아 보였다.

 

 특히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딸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한다. 저자에 말에서 대놓고 얘기한다. 본인이 딸에게 해줬거나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다고. 자녀가 있는 부모로서 공감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 본인이 지금 딸과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을 모아놓고 어떻게 하면 좋은 인생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해 얘기해주고 있는데, 딸에게는 얼마나 더 얘기해주고 싶었겠는가. '내가 살아보니 이런저런 가치가 정말 중요하더라, 너는 나보다 한 살이라도 더 빨리 이런 저런 가치를 깨달았으면 좋겠다' 싶어서 이것저것 알려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 아니겠는가. 그러나 작가가 딸을 대하는 방식은 이것과는 달랐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얘기를 했다. "많이 가르치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방법만 알면 아이들은 자신에게 좋은 것을 알아서 찾을 테니까요."

 

 그리고 2013년에 있었던 주간조선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얘기를 했다. "아이를 덜 사랑하세요. 아이는 독립적인 유기체다. 나와 다른 생명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렇게 보도록 의도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내 딸이지만 만나는 사람이 다르고 살고 있는 시대정신이 다른데 어떻게 내 주관을 집어넣을 수 있겠나. 우리나라 부모는 자식을 너무 사랑하는 게 문제다.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 이게 다 너를 위한 거다, 너를 위한 희생이다'라는 발상은 위험하다. 아이의 인생에 족쇄를 채우는 거다."

 

 내 생각도 비슷하다. 가르쳐줄 순 있지만 배우는 건 아이의 몫이다. 부모의 소임은 가르쳐주는 것에서 끝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문제는 가르쳐준 것을 잘 배웠는지 확인하고, 저번에 가르쳐준 것을 왜 아직도 배우지 못했냐고 재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다. 어른이 돼서야 엄마, 아빠 말이 이해가 되고 그제야 '아! 이게 이거구나!' 싶다. 결국 배우는 건 본인의 몫인데 그것마저 부모가 컨트롤하려고 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자신이 인생을 살면서 알게 된 여러 깨달음과 좋은 가치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자 책을 썼다. 그러나 저자의 말에서 얘기했듯 귀 기울이되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한다. 이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꾸기는커녕 큰 영향도 주지도 못할 거라고 한다. 다만 가랑비 같은 시간이 되어 천천히 젖어들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결국 같은 말이다. 가르쳐줄 순 있지만 배우는 건 우리 몫이다.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랑비에 옷 젖듯 깨달음이 스미는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 불현듯 '아! 이게 이거구나!' 하고 또 하나 배우는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