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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시드니 그린 스퀘어 도서관 (Green Square Library)

by Ditmars 2025. 7. 24.

도서관 전경

 

  • 주소 : 355 Botany Rd, Zetland NSW 2017 Australia (T8 열차를 이용해 Green Square 역에서 하차)
  • 운영시간 : 매일 오전 10시 ~ 오후 6시
  • 열람실 무료 이용 가능, 화장실 무료 이용 가능, 와이파이 무료 이용 가능

 

도서관 로비

 

 이 도서관은 지상으로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지하에 위치해 있다.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카페와 헬프데스크가 있고 계단으로 이어지는 지하에 있는 넓은 공간에 여러 책들과 자유롭게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지도상에서 보면 지하철역과 가깝고 어떻게 보면 여러 건물이 둘러싸고 남은 자투리 공간 같은 곳인데 이런 곳에 공공 목적의 도서관을 지을 생각을 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또한 도서관을 지하에 만든 덕에 지상으로는 유리로 된 건물 두 채만 올라와 있어 남는 공간을 평지로 꾸미고 벤치 등을 놓아 시민들이 오며 가며 쉴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어떻게든 빈 땅만 있으면 최대의 용적률을 뽑아내려고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랄까.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고 읽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에 공원을 만들고 벤치 등을 놓아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도심에서 그 목적을 잘 달성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도서관 내부의 중정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지하에 위치한 도서관 한 가운데에 중정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나는 이게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만약 중정이 없었다면 이 도서관은 정말 말 그대로 지하에 있는 도서관이 되어 답답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중정을 만들고 그곳을 통유리로 구분한 덕에 자연스레 지상과 연결되어 하늘이 보이고 자연광을 받을 수 있어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가 간 날은 날씨가 맑은 날이었지만 비가 오는 날이라면 중정 안으로 떨어지는 비를 보며 빗소리를 듣는 것도 책 읽기에 참 좋은 분위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 외부의 벤치에 앉아 바라본 풍경

 

 집으로 가기 위해 도서관을 나왔다. 바로 앞에 도로와 마주하고 있는 벤치가 있길래 잠깐 앉았다. 저 도로만 건너면 바로 지하철역이고 그 곳에서 지하철을 타면 호텔로 금방 돌아갈 수 있는데 왠지 여기에 좀 더 앉아 있고 싶었다. 해가 지고 있었고 퇴근 시간이 된 지하철역은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분주해졌다가 다시 한산해지기를 반복했다. 도시가 내뿜는 들숨과 날숨 같은 그 모습을 보며 몸을 웅크리고 있는 낯선 생물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 속에 녹아들어 야생 동물을 찍으려 하는 사진가가 이런 느낌일까. 동시에 그들이 나에게 낯선 존재이듯 나 또한 그들에게 낯선 존재일 것이다. 어쩌면 그들에게 나는 그저 풍경의 하나, 즉 그곳에 놓인 여러 벤치 중 하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김영하 작가의 책 <여행의 이유>에 적힌 글이 떠올랐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그 곳에서 나는 왜 지난 여행을 돌이킬 때마다 유명한 관광지에서의 기억보다 잠시 쉴 겸 앉았던 강가의 벤치나 공원에서 바라본 풍경의 기억이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지 알 것 같았다. 낯선 이들의 익숙한 공간에 낯선 존재가 되어 머무는 순간, 잠시나마 나란 존재가 아무 의미를 갖지 않게 되는 그 순간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때 느껴지는 세상으로부터의 단절에서 오는 자유스러움이랄까 혹은 세상을 바라보던 시점이 1인칭 주인공에서 3인칭 관찰자로 변하는 그런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람의 행복에는 관계로부터 오는 행복도 있지만 때론 고독으로부터 오는 행복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