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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2021 (eBook)

by Ditmars 2025. 8. 26.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2021 (eBook)

 

 "아들 말도 들어줘요. 그러면... 풀릴 거예요. 조금이라도."
 그제야 선숙은 자신이 한 번도 아들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제나 아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기만 바랐지, 모범생으로 잘 지내던 아들이 어떤 고민과 곤란함으로 어머니가 깔아놓은 궤도에서 이탈했는지는 듣지 않았다. 언제나 아들의 탈선에 대해 따지기 바빴고, 그 이유 따위는 듣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p.320>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p.414>

 

 어떤 글쓰기는 타이핑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이 오랜 시간 궁리하고 고민해왔다면, 그것에 대해 툭 건드리기만 해도 튀어나올 만큼 생각의 덩어리를 키웠다면, 이제 할 일은 타자수가 되어 열심히 자판을 누르는 게 작가의 남은 본분이다. 생각의 속도를 손가락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가 되면 당신은 잘하고 있는 것이다.

<p.485>

 

 "여러분 이 채널 이름이 편편채널이지만 사실 편의점 일은 힘듭니다. 일이니까요. 무엇보다 손님이 편하려면 직원은 불편해야 하고요. 불편하고 힘들어야 서비스 받는 사람은 편하지요. 저는 이걸 깨닫는 데에만 1년이 걸렸어요."

<p.749>

 

 "가족들에게 평생 모질게 굴었네. 너무 후회가 돼. 이제 만나더라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손님한테 하듯... 하세요."

<p.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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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무척 유명한 책이다. 나는 이제야 읽었지만. 서점이나 도서관, 혹은 밀리의 서재에 들어갈 때마다 추천 도서나 연관 도서로 자주 보였지만 그동안 왠지 읽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남들이 다 읽는 베스트셀러 같은 책 별로야' 같은 못된 마음도 약간 있었고, 소설의 스토리와 결말이 뻔할 것 같다는 마음도 약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이번 기회에 읽게 된 이 책은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쉽게 읽히고, 재미와 감동도 있고, 부담 없는 편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100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이다. 이 소설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어떠하든 간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다는 건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이유를 좋은 의미의 오지랖에서 찾고자 한다. 이 소설에서 사람들은 오지랖을 부린다. 남의 삶에 오지랖을 부리고, 삶의 힘든 점을 막 얘기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고, 또 기꺼이 도움도 받는다. 이 소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익숙한 편의점이라는 배경과 비교적 현실적인 모습의 등장인물을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이 부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우리는 남 일에 나서서 도와주려고 하거나 남에게 불필요한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지극히 개인화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웬만큼 가까운 관계가 아니라면 오지랖을 부리거나 민폐를 끼치지 않는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는 서로의 삶에 관여한다. 조언을 하고 도움을 준다. 소설 속에서 이어지는 이러한 장면들이 어색하지만 왠지 모르게 익숙하고 정겨운 이유는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민폐나 오지랖이 아니었던 과거 공동체 사회를 우리가 한 편으로는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떻게 지내는지, 요즘 힘든 일은 없는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없는지 물어보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기꺼이 받고, 보답에 대한 부담도 없었던 예전 우리 사회의 모습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살면서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해 나가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도움은 부정적인 의미의 간섭과 오지랖이 되었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태도는 냉담해지다 못해 '루저' 라던지, '누칼협' 같은 말을 써가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이 나약하기 때문인 것처럼 대하고 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마저도 내가 주려는 관심과 도움이 그 사람에게 부담이나 간섭으로 느껴지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알아서 잘하겠지.' 라며 가던 길을 가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혼자서 해결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버겁다. 이런 세상에서는 작은 불행 하나가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도 있다. 주변 사람들의 작은 관심과 도움이 있다면 아무것도 아닌 아주 작은 불행이 홀로 남겨진 이에게는 이겨내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다른 사람의 관심을 간섭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기꺼이 도움을 받고 편하게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남 일에 관심을 끄는 것이 배려가 되고, 도움은 사양하는 것이 예의가 된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살기 좋아지고 즐거운 곳으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