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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 SBS스페셜 제작팀, 2010

by Ditmars 2025. 8. 29.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SBS스페셜 제작팀, 2010

 

 나는 서울대 도덕심리연구실에서의 오랜 연구 활동을 통해 미래의 경쟁력이 곧 도덕성에 있고 도덕성 없이는 사회의 리더로 설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인재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웬만한 정보와 지식으로는 남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출 수 없고, 설혹 모든 것이 완벽하다 하더라도 도덕적 능력이 부족한 아이는 10~20년 뒤 성인이 되었을 때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 이우 문용린(전 교육부장관,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p.5>

 

 아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분석해본 결과, 온 가족이 함께 한 식사 자리에서 아이는 다른 어떤 상황보다도 훨씬 수준 높고 다양한 어휘를 구사했다. 이는 전문가는 물론, 아이들과 매일 함께 생활하는 부모들조차 의식하지 못한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식탁에서의 대화는 가족 간의 유대를 공고히 하기 위한 좋은 수단으로만 여겨졌을 뿐, 학습효과나 언어발달 측면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아이들의 지적 능력은 부모가 따로 시간을 내어 책을 읽어주거나, 장난감 등으로 놀아주거나, 따로 시간을 내어 학습적 대화를 해야 하는 것으로만 인식되었다. (...)

 하지만 하버드 녹취록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캐서린(Catherine Elizabeth Snow) 교수는 그 결과를 매우 놀라워했다. 가족식사를 자주 하고, 식탁에서 활발한 의견이 오가는 가정의 아이는 책을 읽어주는 부모의 아이보다 훨씬 많은 어휘에 노출되고 있었다. 2년의 연구 기간 동안 연구진은 아이들이 사용하는 2,000여 개의 단어를 빠짐없이 녹음했다. 이중 부모가 책을 읽어줄 때 나온 단어는 140여 개에 불과했지만, 가족식사 중에 나온 단어는 무려 1,000여 개에 달했다. (...)

 그 후 최초 연구 대상이었던 85가정 중, 53가구를 추적 조사한 결과는 더욱 놀라웠다. 아이들의 학업성적은 언어능력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었다. 학업성적의 직접적인 기반은 다름 아닌 어휘력이었다. 공부를 막 시작하는 1학년 때 단어를 더 많이 알고 어휘력이 풍부한 아이는 4~10년 후의 독해력이 훨씬 우수했다.

<p.30>

 

 학습의 매튜 효과

 하버드대 캐서린 스노우 교수에 의하면 아이의 어휘력은 어느 시점이 되면 대화가 아니라 독서를 통해서 발달하게 된다고 한다. 이때 아는 단어가 적어 독서를 어려워하는 아이는 그만큼 텍스트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그것이 결국 학습부진으로 이어진다. 반면 가족식사 중에 다양한 단어를 익혀 어휘력을 키운 아이는, 이를 기반으로 독서 능력을 키우고 그것이 곧 텍스트의 이해도를 높여 결국 학업 성적이 뛰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가족식사가 주는 학습의 매튜 효과이다.

<p.32>

 

 언어능력이 또래보다 월등했던 아이의 식탁 녹취록을 살펴보던 다이안 빌즈 박사는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눈앞에 있는 상황이나 방금 겪은 사건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담화(narratives)가 아이의 언어능력 신장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믿었던 것과 달리, 현재 펼쳐진 상황을 화제로 삼지 않고, 지난 일이나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을 논리적으로 사고하여 말하는 설명식의 대화(explanatory talk)가 아이의 어휘력, 더 나아가 학업성취도를 높인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담화는 오래 지속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아이가 자주 구사하는 흔한 단어들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설명식의 대화에는 상황을 설명함에 있어 일상적이지 않은 단어가 다양하게 등장한다.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을 설명하려면 여러 가지 어휘가 필요하게 마련이고, 제대로 된 어휘를 구사하려면 단어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물론 연관 단어와 표현법까지 구사해야만 한다. 설명식 대화에 필요한 이 모든 과정을 아이는 식사 시간을 통해 습득하는 것이다.

 '만일 아이가 놀이터에서 일어난 일을 엄마에게 말한다면 열심히 그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엄마가 거기서 아이를 지켜봤기 때문이죠. 하지만 거기에 없었던 아빠에게 말하려고 한다면 애를 써서 설명을 해야 할 것이고 더 긴 토론이 되기 쉽죠. 따라서 어른과 함께하는 식사시간에는 단순한 담화가 확장되어 아이의 어휘력을 키우는 설명식 대화가 이뤄지게 됩니다.' (하버드대 캐서린 스노우 교수)

<p.38>

 

 이때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것은 바로 '대화식 책 읽기'이다. 중간 중간 아이에게 질문을 던져 아이가 이야기의 전개를 이해하고 있는지, 그에 대한 아이의 느낌은 어떤지 말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는 책에 대한 아이의 흥미를 유지시키면서, 한 가지 주제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상황을 방지해준다.

따라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때 어떤 질문을 받는다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최대한 성의 있게 대답해 주어야 한다. 이를 '설명식 대화'라고 부른다. 책을 읽어주면서 '설명식 대화'를 병행할 때 아이는 좋은 독서 습관을 기를 수 있을 뿐 아니라, 언어 발달에도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p.52>

 

 (가족식사를 하는 중에) 다른 방식의 단어나 말하는 법에 노출되면서 배우게 되는 거예요. 특정 표현을 활용하는 친구와 같이 지낼 때, 아이가 그 친구가 하는 말을 따라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그런데 친구의 말을 배우는 것이 단순한 '따라 하기(Imitation)'라면 부모의 말을 배우는 것은 '모방(Emulating)'이라고 봅니다. 아이는 부모의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의 모든 것에 동참하려고 하고 더욱 주의를 기울이죠. 다른 상황에서라면 몰랐을 단어라도 부모와 관계된 단어는 어떻게든 알려고 합니다.
- 툴사대 다이안 빌즈 박사

<p.55>

 

 의식이라는 것은 대물림되는 것 같아요. 저희 자식들이 그 의식으로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있게 교육하고 싶죠. 특별한 것이 아니라 세상 사는 지혜, 주로 그런 거죠. 저는 식사를 할 때 아이들에게 그런 것을 전해주려고 노력을 해요. 또 함께 생활하면서 아이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게 되는 거죠. 그동안에 쌓아 온 인생의 지혜를 전달해줌으로써 아이들이 살면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그런 교육을 하죠.
- 카이스트 유룡 교수

<p.67>

 

 어릴 때는 먹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배고프고 자고 그러니까. 예를 들면 밥 먹는 것도 아빠가 11시, 12시 이렇게 늦게 들어오면 어쩔 수 없지만 8시에 오신다면 "아빠가 8시에 오신다는데 좀 기다렸다가 오시면 같이 먹자" 이렇게 자연스럽게 아이들 뇌리 속에 아버지의 권위를 세우는 거죠. 권위는 억지로 생기는 게 아니라 옆에서 받들어줘야 생기는 부분이거든요. 그래서 엄마의 역할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빠가 들어오시면 아빠하고 이렇게 상의를 해서 대답해줄게"라든지, "아빠한테 여쭤보자" 이렇게 자연스럽게 아이들 머릿속에 집에서 무언가 결정하려면 아빠가 필요하다는 걸 심어주는 거죠.
- 밀레 코리아 사장 안규문 부인

<p.71>

 

 아이가 크면 클수록 당장의 유혹에 넘어가느냐, 미래를 위해 현재를 참느냐 하는 갈등이 반복된다. 지금 숙제를 하지 않고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느냐,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시험공부를 하느냐 등이 좋은 예다. 많은 유혹을 물리치고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자제하는 능력은 학창시절뿐 아니라 이후의 인생 고비마다 분기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

 우리 주변에는 현재 상황이 어떻든 자신의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해 목표를 성취해내는 '만족지연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이 있다. 당장의 유혹보다는 '상황을 분석하고, 대안을 생각하고, 장기적으로 이득이 되는 것을 택하는' 30% 아이로 키울 것인지, 아니면 눈앞의 목표에 급급해 미래의 혜택을 포기하는 70%의 아이로 키울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볼 때이다. 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비결은 학교나 학원이 아니라 가족이 눈을 맞추며 함께 뜨는 밥 한 수저에 담겨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p.98>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아이를 바로 자라게 하는 핵심적인 요인은 아주 기본적이죠. '아이들과 애정이 넘치는 양질의 시간을 보내라.' 뇌의 연결은 사회적인 상호작용과 양육자와의 애착형성으로 이뤄지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이것이 실망스러울지 모릅니다. 이렇게 문명이 발전했는데도 과학자들이 줄 수 있는 조언이라는 게 할머니가 옛날 옛적에 말씀해주신 것뿐이라는 것을요.
- 기드 박사

<p.120>

 

 10대가 부모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버텨줘요' 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비록 부모를 밀어내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10대가 부모를 소외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부모로부터 진짜 떠나려는 게 아니라, 성숙해진 관계를 다시 맺으려는 과정으로 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사춘기의 과제를 가진 10대라도 부모의 필요성과 영향력을 여전히 절대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간섭하지 마라'는 반항 어린 목소리도 실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모른다는 불만의 표시다.

 부모와의 대화 창구가 줄어들 때, 10대 아이들은 섣부른 지식을 교환하고, 설익은 판단에 의존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 10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밥상을 지켜주는 부모의 존재일 수 있다.

<p.145>

 

 진정한 밥상머리 교육을 위해 부모는 '권위적'이 아닌 '권위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가족 내에서 지켜야 할 규칙은 확실히 알려주고, 왜 지켜야 하는지, 충분한 의사소통을 통해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식사 시간에는 부모가 자녀를 관찰하고 정서적인 교류를 해야 할 뿐, 부모의 명령을 일방적으로 알려서는 안 된다.

 '식사 중에 아이들의 단점이나 잘못된 행동을 말해주는 것은 안 된다고 보거든요. 우리가 만나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 시간에 모든 걸 해결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지만, 그것 때문에 식사 시간을 괴롭게 만들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돌려서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하는 방법을 써요. 그러면 아이가 먼저 "그렇게 하면 안되겠네요" 하고 말해요. 질문을 해도 "너 오늘 시험을 못 봤어? 왜 못 봤다고 생각해?"라고 하는 게 아니라, "이번에 시험이 너무 어렵게 나왔나 보다. 다음번에는 어떻게 하면 잘 볼 수 있을까?"라고 하죠. 아이 스스로 '아, 내가 이번엔 이런 실수를 했는데, 다음에는 이것을 잘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이런 대답을 하도록 질문을 해야죠. (범진이네 엄마)

<p.188>

 

 문제는 집중력이다. 인간이 보이는 집중력은 크게 수동적 집중과 능동적 집중으로 나뉜다. 사람과 일대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상호활동이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집중하는 반면, 컴퓨터나 텔레비전 등의 모니터를 볼 때는 반응 없는 일방향 활동이기 때문에 수동적으로 집중하게 된다.

 문제는 수동적 집중 상태에 익숙해지면 능동적인 집중이 필요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뇌의 구조상 후두엽이 발달하는 청소년기에는 자극적인 영상에 대한 관심이 특히 높아진다. 이때 화려한 영상이나 자극적인 볼거리가 넘치는 모니터에 익숙해지면, 이 시기에 발달해야 할 전두엽의 발달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한 대로 전두엽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뇌의 가장 중요한 부위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문제가 생기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거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창조적인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문명이 만들어낸 각종 첨단 기기들은 분명히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고 재미있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문명의 이기가 주는 달콤함에 탐닉하는 아이는 뇌 발달 저해로 결국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저당 잡히는 형국에 놓이고 만다.

<p.196>

 

 아이와 속 깊은 대화를 하려면 대화로 무언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발달 전문가들은 아이의 행동을 변화시키려면 지시전달형 언어가 아닌, 질문을 통해 사고하게 하는 언어를 사용하라고 권한다. 이를 볼 때 밥상머리에서 흔히 사용하는 잔소리가 아이에게 별 효과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밥상머리에서 매일 '숙제 좀 제때 해라', '공부 좀 더 해라' 하는 말을 매일 해도 아이가 달라지지 않는 것은, 아이가 고집이 세서가 아니라 부모가 말로 아이를 가르치려 들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정말 무언가를 가르치고 싶고 아이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우선 아이의 이해를 구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앞서 말한 '사고하게 하는' 언어다. 질문을 통해 아이 스스로 답을 찾고 해결책을 찾도록 해야 한다.

 대부분 부모는 밥상에서 아이와 대화할 때 어떻게든 아이를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고자 노력한다. 특히 대화를 통해 입을 열게 하고 그것으로 교감하여 바른 습관과 함께 학습적 효과를 거두려는 거창한(?) 욕심이 있다. 하지만 아이가 바뀌기를 기대하면서도 아이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나 언어 습관에 관심을 두는 부모는 거의 없다. 심지어 아이의 말에 대한 부모 자신의 반응은 웬만해서는 바꾸려 들지 않는다. 그저 아이의 잘못된 말과 행동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것을 바꾸는 데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를 변화시키려면 부모 자신의 변화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 그 문제를 푸는 방법은 아이가 아닌 부모에게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p.284>

 

 "뿌리가 튼튼한 나무는 폭풍우에 줄기가 잘려나가도 다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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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서는 가족 식사 시간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교육 효과에 대해 설명한다. 가족 식사를 통해 구성원들끼리 유대를 쌓는다거나 화합을 할 수 있다는, 흔히 알고 있는 정서적 효과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아이들의 언어 발달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학업 능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대화를 통해 부모로부터 세상을 사는 지혜를 터득할 수도 있고, 스스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도 있으며, 미래를 위해 현재를 참는 만족지연능력도 기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언어 발달로 인한 학업 능력 향상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발달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얘기해서 많은 어휘를 알게 되어 조만간 치를 시험에서 몇 문제 더 맞힐 수 있는 것도 가까운 미래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결과이다. 그러나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스스로 답을 찾으려는 태도와 만족지연능력을 기르는 일은 지금 당장 확인할 수는 없지만 먼 미래까지 내다보았을 때 아이의 성장에 있어 훨씬 더 중요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혹시 나도 눈 앞에 보이는 작은 결과를 위해 정작 중요한 걸 잊고 지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이를 키우며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잡는 일이 참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예를 들어, 이 책에 나온 것처럼 가족 식사는 대충, 말없이, 빠르게 먹여 끝내고 그 시간에 학원을 보내거나,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나는 아이의 발달을 위해 아이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고 있다'라고 생각한 건 아닌지.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필요한 법인데 가만히 빈둥거리는 아이의 모습을 참지 못한 건 아닌지. 아직은 감정을 다독여주고 어리광을 받아줘야 하는 시기인데 너무 이르게 참는 법, 절제하는 법을 가르치려고 하는 건 아닌지. 지금은 부모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한 시기인데 너무 이르게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건 아닌지... 등등.

 

 그러고 보면 아이 키우는 일이 어렵다는 이유가 아마도 이것 때문인 것 같다.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는 당장 바뀌는 것(혹은 당장 바꿔야 하는 것)과 최소 몇 년은 꾸준히 알려줘야 하는 것(혹은 기다려야 하는 것)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어떤 성장은 지금 당장 훈육을 통해 바꿔야 하거나 가르쳐주면 바로 교육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있다. 반면에 어떤 성장은 최소 몇 년은 꾸준히 알려줘야 하거나 혹은 스스로 알게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 있다.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그래서 부모로서 어떤 말과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종종 헷갈린다. 아이에게는 시간이 필요한 일임에도 당장 아이의 행동이 바뀌기를 기대하며 다그친다던지, 반대로 아이 스스로 터득할 수 없는 일임에도 부모가 아이를 믿고 가만히 지켜본다던지 하면서 말이다.

 

 모든 부모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것이 최선인지 정해진 답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열심히 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게 정말 이 아이에게 최선이 맞나?' 하는 고민을 떨치기 쉽지 않다. 정답이 있는 문제만 풀어왔던 버릇 때문인지 우리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몇 가지 양육법을 두고 그중에 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따라 하는 것 같다. 문득 대학에 입학하여 첫 서술형 주관식 문제를 풀 때가 생각난다. 딱 떨어지는 정답이 없는 문제였다. 그저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내가 생각하는 답을 논리적으로 서술해야 했다. 그게 최선이었다. 결국 세상의 모든 정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방법도 이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여태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고민한 나 자신을 믿고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써내려가 하나의 답을 완성하는 것. 이 정도만 해도 꽤 괜찮은 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